RUST RAW novel - Chapter (862)
러스트 [RUST]-862
마루가 단독 수행에 들어간 동안 나주연은 김 양이 촬영한 영상을 분석했다. 거대한 빌딩이 통째로 검은 넝쿨에 휘감기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였다.
창문을 깨고 도망치려는 자를 공중에서 낚아채는 넝쿨은 점점 더 민첩하게 움직였다. 나중에는 뱀이라기보다 채찍 같이 움직이는 넝쿨들.
죽음의 힘이 없다고 하더라도 저 넝쿨에 맞으면 살이 찢어지고 뼈가 꺾일 것 같았다. 생물학이고 물리학이고 개나 줘버린 위력에 나주연이 분석을 포기했다.
검은 정원. 그러니까 죽음의 정원도 이해 불가능한데, 그 속에서 피어오른 풀잎과 넝쿨을 해석하겠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저걸 가상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문제였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가상현실이었다. 그런 가상현실이 비현실적인 현실, 초현실적인 상황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슈퍼컴퓨터와 생체 단말기를 총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저런 식의 죽음을 재현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해봤지만, 지금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이대로는 힘들어요.’
더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필요했다. 1대로 불가능하면 2대건 3대건 더. 생체 단말기도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다행인 점은 늑대인간과 식인귀의 머리통이 많이 들어와 그것으로 생체 단말기를 만든다면 연산 과부하를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으리라 예상됐다.
‘반드시 재현해 보이겠어요. 반드시.’
단순한 재현에서 끝날 수 없었다. 가상현실. 그러니까 마연시는 그의 전부를 알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나주연이 다양한 프로젝트에 갈려가고 있는 동안 후드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김 양이 가져온 교전 기록에는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제일 중요한 점은 신성 왕국에서 보유한 제국 관련 정보가 틀린 부분이 많다는 것. 정보와 보안을 담당하는 사람이 후드였기 때문에 제국의 정보를 놓쳤다는 건 실책이었다.
“사만다 지금 그 여자가 가져온 정보 확인했지?”
[확인했어.]“어떻게 된 거야?”
[제국에서 더미 정보를 푼 것 같아.]“더미인지 몰랐다고?”
[분석 결과 단순한 더미가 아니었어.]신성 왕국이 제국의 정보를 털어간 것을 알아차린 뒤로, 제국은 더미 정보를 만들기 시작했다. 제국 행정부는 국토안보국 출신이 주축이었기에 정보 통제와 조작에서 상당한 수준이었다.
“단순한 더미가 아니라면 실제 정보이면서 동시에 거짓이었다고?”
[병력 3천 이동한다고 했으면 실제로는 3천에 해당하는 보급만 보냈거나 하는 식이었어. 3천을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정확히 무엇을 보냈는지는 숨기는 방식으로 자료를 작성해서 진짜 정보를 숨겼어.]사만다가 모든 자료를 전부 확인했더라면 그런 장난질도 피할 수 있었겠지만, 현재 사만다가 최우선으로 연산하고 있는 것은 봄에 있을 대규모 토벌 작전 준비였다.
겨울이 완전히 끝나기 직전. 겨울과 봄의 사이에 시작할 거미 토벌 준비에 사만다의 연산력이 전부 쓰이고 있었다.
게다가 제국은 적국도 아니었고, 제국의 대략적인 상황만 파악하고자 했기에 모든 정보를 1:1 검증하고 분석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연산력은 어때? 신형 생체 단말기가 추가됐으니까 제국 쪽 정보 전부 조사할 수 있지?”
[아직은 시험 단계라서 전수 조사는 무리야.]후드가 가만히 모니터를 바라봤다. 사만다의 캐릭터가 모니터 하단에 떠올라 있었다. 2D에 2등신으로 귀여운 모습.
“불간섭 원칙을 선언했다고 하지만 제국의 반응이 너무 이상해.”
[식인귀뿐만 아니라 늑대인간이 다수 있었으니까.]캐나다 북부 거점 요새를 식인귀와 늑대인간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제국 중소도시에 거의 100마리 넘는 늑대인간이 있었다는 것도 이상했다.
정보에 따르면 제국 정보부에서도 독자적으로 식인귀를 추적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아슬아슬해 보였다.
그분이 계셨기에 도시에 숨어있던 식인귀와 늑대인간을 잡을 수 있었다. 그분이 없었다면 겨울 동안 도시 하나가 식인귀와 늑대인간에게 장악될 상황으로 보였다.
그럼 그렇게 작업에 들어간 도시, 식인귀와 늑대인간이 암약하는 도시가 시러큐스 하나뿐일까?
“교통이 끊기고, 통신이 불안정한 겨울이야. 식인귀나 늑대인간이 외딴 도시와 마을을 장악하려고 한다면 지금이 기회지.”
[그래서 제국도 비밀리에 병력을 파견한 거잖아. 아무도 모르게.]“그 병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봄이 됐을 때 제국이 거미와 개미에 대한 대비는 고사하고 식인귀, 늑대인간에게 점령된 도시를 탈환해야 할 상황이면?”
[알겠어. 거기까지 가정하고 시나리오를 여럿 만들어 볼게.]후드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점부터 다시 파악해야겠지.
“부탁해.”
사만다와 후드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을 때, 기순은 침침해진 실눈을 비볐다.
“아- 피곤하네.”
꺼끌꺼끌한 눈곱이 모래알처럼 눈꺼풀을 쓸며 찌릿한 통증이 생겼다. 덴 브라운 아재의 딱딱한 얼굴을 보자니, 의도된 표정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얼굴을 직접 봤으면 감정을 읽었을 텐데.’
직접 얼굴을 보러 가야 하나?
‘차라리 제국 의회와 군부, 행정부 인사가 전부 참여하는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해보는 건.’
한 방에 신성 왕국에 적대적인 자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될 텐데 말이지.
‘어떤 능력인지는 구체적으로는 몰라도 내 능력을 진위판별 능력 비슷한 것으로 보겠지. 그렇다면 회의에 참석시켜주지 않을 테고.’
피곤하네.
후드의 말대로라면 제국에 대한 정보를 전체적으로 갱신해야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느니 미리미리 대비하는 게 옳기도 했고.
기순은 김 양이 보내온 영상과 마루가 작성한 현장 상황을 비교했다. 김 양의 영상 보고는 높은 고도에서 촬영한 영상이었기에 제약회사 건물을 휘감은 넝쿨 영상이 대부분이었다.
‘아주 박살을 냈군.’
그나마 로봇과 드론이 투입, 현장을 정리한 부분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줘서 다행이랄까.
제일 특이한 부분은 미라처럼 변해버린 시체들이었다. 제국군이고 식인귀, 늑대인간 할 거 없이 전부 생기를 전부 빨린 듯한 시체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전에는 이렇게 변하지 않았었는데.’
게다가 바닥에 뿌려진 피의 색깔도 마찬가지로 이상했다. 본래 깊은 상처에서 피가 쏟아졌을 때 그 색은 선홍색에 가깝기 마련. 그런데 지금은 며칠은 지난 것처럼 칙칙한 검붉은 흔적으로 변해있었다.
‘생명을 흡수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지.’
생명을 죽음으로 치환하는 것 같다는 마루의 이야기가 떠오른 기순은 다시 눈을 비볐다.
“아오- 씨- 그냥 좀 평범하면 어디가 덧나나?”
식인귀와 늑대인간의 생명을 뽑아먹은 죽음의 정원은 유지 시간이 늘어났다.
더 많은 적이 있었다면 더 오래 유지됐겠지.
어쩌면 더 넓은 영역을 잠식할 수도 있고.
‘최소한 전술 무기, 최대로 보면 전략 무기가 됐네.’
생포 불가능 일단 영역에 있는 존재는 확실히 몰살. 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생명력의 양에 따라 다르지만, 통계로 보면 길어야 3~5초.
무서운 점은 넝쿨에 낚이고 풀잎에 엉키는 순간, 무력해진다는 점이었다. 발이 풀잎에 엉켰을 때 힘으로 뜯고 나가지 못했다. 넝쿨이 사지를 옭아맸을 때 뜯고 탈출한 놈도 없었고.
거기에 사실상 물리 공격 무시 공간이었다. 총알이고 발톱이고 전부 무시. 어느 것도 넝쿨과 풀잎을 뚫지 못했다.
‘와- 시간 한정이지만 거의 무적 아닌가?’
진짜 포격이나 폭격도 넉넉한 생명만 있으면 버틸 수 있을지 몰랐다. 문제는 죽음의 영역을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인데.
‘그것도 그렇지만, 쥐와 개미들을 죽인 뒤부터는 확실히 달라졌어.’
죽인 숫자가 늘어날수록 살기가 강해졌다. 그리고 지금은 죽음의 영역을 펼칠 수 있게 됐고. 만약 거미 소탕 작전에서 수십만 수백만 단위의 거미를 죽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죽음을 통제하지 못하게 될 위험은 없을까?
그렇지 않아도 인간에서 벗어나는 능력인데?
누군가는 몰이 사냥을 시켜 능력을 강화하는 게 좋겠다고 하겠지만, 기순의 생각은 달랐다.
마루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지금 죽음의 영역, 검은 정원도 감당하기 힘든데 거기서 더 변한다?
당장 지금도 혼자 떨어져서 생활해야 하는 판인데 여기서 더?
그러다 임계점을 넘어 존재 자체가 변해버린다면?
기순은 따개비에 감염됐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생각이 존재를 구성하기도 하지만, 존재가 생각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었기에 알 수 있었다.
따개비 인자가 온몸을 잠식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던 그때. 본래 자기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살육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했던 그 순간을 기억했기에, 혹시라도 마루가 선을 넘어 버리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마루가 대량살상을 하지 않으면서 거미와 개미를 잡을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어.’
기순은 전문적으로 전술, 전략을 연구하는 부서를 만들 것을 건의했다.
폐관수련 아닌, 폐관수련을 하고 있던 마루가 답했다.
[그런 걸 뭘 물어봐. 나중에 알려줘도 괜찮으니까 필요한 게 있다 싶으면 추진해라. ]“그래. 그러마. 폐관수련은 할 만하고?”
[아. 이것들이 소문이 돌았는지 근처에 있던 놈들이 싹 사라졌어.]거점 요새 하나당 늑대인간이 많게는 열 마리, 적게는 두셋이 있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텅 비었다.
“언제까지 거기에 있을 건데?”
[기한이 있겠냐? 대형사고 치지 않으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을 때까지 있어야지.]“상대가 없는데도 연습할 수 있겠어?”
[변이 괴수라도 잡으려고. 아- 참. 가상현실 업그레이드는 다 됐냐?]가상현실로 죽음을 재현할 수 있다면, 그걸 이용해서 훈련할 생각이었다.
“나주연과 연구진들이 철야 하고 있는데 최소한 40~50일은 걸릴 것 같다. 길게는 3개월 이상 걸릴 것 같고.”
[기다리기는 글렀네.]마루와 기순이 그간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인공지능 디아나가 상황을 보고했다.
[변이 괴수들의 이동이 시작됐습니다.]캐나다 북부 지역에서 변이 괴수들의 이동이 관측된 것이었다.
“지난번 버펄로(Buffalo)와 무스(Moose-말코 사슴) 이동했던 것처럼?”
[무스 무리가 남하하고 있고 그 뒤를 회색 늑대 무리가 추격하고 있습니다.]저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할 거냐?”
[뭘 어떻게 해.]저번처럼 지킬 이유가 없었다. 자유 캐나다 연맹이라며 독립했으니 알아서 하겠지.
“경고라도 해주자. 우리가 받지 않기로 했으니, 제국 쪽으로 도망칠 시간은 줘야지 않겠냐? 늑대들이 사람 먹고 변이를 계속 일으켜 변수가 되는 것도 피할 겸.”
소형 자동차 크기의 늑대가 수백 단위로 몰려온다고 하더라도 마루 혼자서 거름으로 만들 수 있었다.
“너도 이상한 능력이 생겼는데, 사람을 포식하고 이상하게 변하는 놈이 생질지도 모르잖아.”
나주연의 가설대로라면 사람을 잡아먹고 강해진 늑대는 무슨 개념을 형성하고 어떻게 실체화될까?
[그래라. 난민만 받아들이지만 않으면 되니까 알아서 해.] [근데 걔들이 우리 말 믿겠음?]김 양이 자유 캐나다 연맹을 지지했던 인간들이 신성 왕국의 경고를 믿을 것 같지 않고 말했다.
[믿지 않으면 자기 팔자지.] [도망도 안 치고 집에 처박혀 있다가 늑대 밥이 될 거 같으니까 그럼.]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마루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켜보다가 2차 변이하는 놈들만 처리해.]마루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음.]늑대들이 자유 캐나다 연맹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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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가 식인귀를 거의 전멸시켰기 때문에 자유 캐나다 연맹은 정치적인 혼란에 빠져있었다.
식인귀로 구성된 지도부가 사라진 것도 문제였지만, 그들을 지배하고 있던 흡혈귀 백작까지 사라지면서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된 것.
인프라 재건 사업도 멈췄고, 식인귀들이 지역을 맡아 방어하는 지역 방어 시스템도 무력화됐다.
군사 쪽도 마찬가지 보급을 받지 못한 군대는 각 지역 자경단으로 변하거나 지역 방위대가 됐다. 그나마도 중대 규모 정도로 유지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변이 늑대 무리가 남하하고 있습니다.] [경고합니다. 변이 괴수가 된 늑대 무리가 남하하고 있습니다.] [도시를 버리고 제국으로 대피할 것을 권고합니다.]“저 새끼들은 왜 갑자기 지랄이야.”
“변이 괴수? 늑대?”
“그 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우리가 도시를 버리길 바라는 거야.”
“그럴 순 없지.”
자유 캐나다 연맹 사람들은 신성 왕국이 변이 괴수를 쉽게 사냥했던 기억이 있었다. 제국과의 거래를 통해 얻은 대괴수용 특수탄도 있었고 수가 많지는 않지만, 엑소슈트와 대구경 화기도 있었다.
변이 괴수라고 하더라도 요새화된 도시에서 방어전을 하는데 막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자유 캐나다 연맹 사람들과 짐승들이 충돌했다.
“어? 저기 무스 아니야?”
“무스들이 무슨 짓이지?”
두두두두-
그들은 저번에 어떤 일이 있었고
신성 왕국이 무엇을 막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뿐이었다.
“무스가 충돌한다!”
“막아!”
“쏴!”
쿠우우웅–
요새화된 도시.
성벽처럼 쌓아 올린 컨테이너 벽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