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63)
러스트 [RUST]-863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자유민주주의는 소중한 것이리라.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니었다면 개인은 정치경제를 장악한 세력의 먹잇감이 될 뿐이었으니까.
다만 지금은 종말의 시대. 권력을 잡은 자가 실질적인 무력까지 갖춘 식인귀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총화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늑대인간이라면?
항거할 수 없는 지배력을 가진 흡혈귀라면?
그들 앞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할 수 있을까?
마루가 왕정을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것이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이용해 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식인귀들이 처음부터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자유 캐나다 연맹만 봐도 그렇지.’
독립, 자유, 민주주의, 독재 왕정 타도. 인권 수호. 좋은 말은 다 붙었지만, 그들의 지도부는 식인귀가 됐다.
자유 캐나다 연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식인귀가 기르는 가축이 됐고. 심지어 어떤 식인귀가 좋은 식인귀인지 선거까지 했다.
웃기지 않나?
식인귀와 늑대인간, 흡혈귀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한다는 건 그래서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었다.
[토론토에서 구조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오타와에서 지원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몬트리올 방어선이 무너졌다고 합니다.]도와달라는 구조요청, 살려달라는 애원이 빗발침에도 마루는 냉정했다.
“무시해.”
모든 생각과 판단은 자유였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은 하나였다.
자신이 한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
그렇기에 자유 캐나다 연맹에 어떤 일이 닥치든 그들이 선택한 결과였다.
무스들은 컨테이너 벽을 무너뜨리고 도시를 관통해 호수를 따라 서에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토론토(Toronto)를 시작으로 오타와(Ottawa), 몬트리올(Montreal), 퀘벡(Quebec)에 이르기까지 주요 도시의 외벽을 헤집고 지나간 무스 무리의 뒤를 따라 늑대들이 덮쳤다.
무스를 추격하던 늑대들은 속살을 내보인 도시를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야들야들한 인간은 먹기도 좋고 맛도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었기 때문이었다.
컹! 컹!
크르르-
인구 십만이 훌쩍 넘는 도시가 백 단위의 늑대에게 유린 되는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늑대들은 무스를 쫓는 것을 멈추고 뚫린 담장을 가로막았다.
아우우우우우—-
인간의 도시를 사냥터로 삼겠다는 하울링이 토론토에 울려 퍼졌다.
‧
‧
‧
“개자식들!”
“빌어먹을 새끼들!”
영하 50~60도의 맹추위를 뚫고 탈출하는 사람들의 입에선 욕설이 끊이지 않았다. 입바른 소리를 하더니 그새 식인귀가 된 지도부도 그렇고. 늑대가 내려온다면서 대피하라고 하곤 모르쇠 한 신성 왕국도 그랬다.
신성 왕국에서 비행선으로 폭격했으면 늑대를 몰아낼 수 있지 않았나? 그저 네이팜 탄 몇 발만 떨어뜨려 줬어도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만 있었다면 무너진 벽을 다시 세웠을 것이고 늑대들이 도시로 침입하는 걸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개새끼들!”
“발전소를 뜯어 갔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해.”
“그 새끼들은 사람 새끼들이 아니라고 했잖아!”
“신성 왕국? 인류의 구원? 지랄하네.”
지켜보고만 있을 거라면 왜 비행선을 가져왔을까?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늑대의 먹이가 되는 걸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좋은가?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무능한 지도부보다 더 증오스러운 건 신성 왕국이었다.
고향을 잃고 가족을 잃고 친척과 친구를 잃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심지어 신성 왕국은 살겠다고 도망친 난민을 거부했다. 신성 왕국이 장악하고 있는 서부 지역으로 가려고 하면 어디선가 나타난 쥐떼와 까마귀들이 난민들을 공격해 쫓아냈다.
“아악! 까마귀다.”
“까마귀가 이마를 쪼았어.”
“끄악! 발목.”
“쥐새끼다!”
“다들 발목 조심해!”
신성 왕국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더욱 맹렬하게 공격하는 까마귀와 쥐떼였다. 어쩔 수 없이 난민들은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토론토에서 도망친 자들이 일주일이 넘게 걸려 오타와로 도착했을 때는 오타와도 늑대의 사냥터가 된 뒤였다.
“몬트리올은 곰에게 당했다고 합니다.”
“곰이요?”
“예. 수십 마리가 도시를 장악했다고 하더라고요.”
“퀘벡은 어떻습니까?”
“어이 퀘벡에서 온 사람 있어?”
“이쪽에 있습니다.”
“거. 거미가 사람들을 덮쳤어요.”
“도시 전체가 거미줄로 뒤덮였다고 하더라고요.”
난민들이 모이면서 각 지역에서 떠도는 소문이 합쳐졌다.
늑대와 곰을 중심으로 육식과 잡식 동물이 도시와 마을을 습격했다. 그리고 거미까지. 누군가는 개미떼와 쥐떼가 마을을 덮쳤다는 이야기를 했다.
“개미요? 설마 신성 왕국이 개입했다는 소립니까?”
“신성 왕국이 개미 제국을 공략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개미는 모르겠지만, 쥐떼는 확실히 이상하군요.”
“몬트리올을 들쥐가 습격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신성 왕국이 통치했을 때는 그런 일이 없었지요.”
“그러고 보면 늑대도 신성 왕국 짓이 아닐까요?”
“신성 왕국의 늑대를 이용해서 이런 짓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군요.”
“개새끼들 그 새끼들이 우릴 죽이려고 한 거야!”
신성 왕국은 쥐떼, 까마귀, 늑대를 이용해 수색과 국경 관리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개미를 이용해 인프라 공사를 하고 있었고.
“······.”
“······.”
난민들의 증오와 분노가 핏방울처럼 짙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제국으로 갑시다.”
“······.”
난민들이 제국으로 향했다.
======
======
제국. 임시수도 보스턴(Boston)
자유 캐나다 연맹의 몰락은 제국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신성 왕국이 원한 게 이런 결과라면 제정신이 아닌 겁니다.”
“우리보고 손을 떼라고 해놓고 한다는 짓이 이거란 말입니까?”
“수십만이 넘는 사람들을 변이 괴수의 밥으로 만들다니.”
“신성 왕국은 미쳤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자유 캐나다 연맹 지도부가 식인귀가 됐다는 걸 모르십니까?”
“식인귀에 흡혈귀 백작이 자유 캐나다 연맹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걸 신성 왕국이 그냥 둘 리 없지요.”
“민간인들은 무슨 죄란 말입니까?”
“그들이 식인귀와 흡혈귀를 불러들였는데 죄가 없다는 말입니까?”
“어차피 가축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 아닙니까?”
“식인귀 밥이 되거나 변이 괴수 밥이 되거나. 밥은 똑같은 밥인데 신성 왕국 탓만 하는 건 이상하군요.”
“그래서 멀쩡한 사람을 변이 괴수의 먹잇감으로 만들어도 된다는 소립니까?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오? 그게 사람이 할 생각이냐고!”
“피하라고 경고를 했는데 피하지 않아 놓고 책임을 신성 왕국에 돌립니까?”
“경고만 하면 답니까?”
“경고해줬으면 됐지 뭘 더 바랍니까?”
덴 브라운은 신성 왕국이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건 누구 생각이지?’
아니. 이젠 누구 생각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신성 왕국. 이름에 왕국이 붙은 이상. 지금 이 상황은 왕인 블라디마루 칼린의 결정이란 의미니까.
‘변이 괴수가 인간을 먹어대면 2차 변이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한다고?’
그간 신성 왕국이 제국을 도운 이유가 뭔가?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따지고 보면 제국을 돕는 일이 그들의 안전과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제국이 망한다고 가정해 보자.
수천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식인귀나 변이 괴수의 먹잇감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을 마음껏 포식해 2차 변이 3차 변이를 일으킨 괴수들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식인귀와 늑대인간, 흡혈귀도 마찬가지였다. 제국이 망하면 엄청난 숫자의 식량용 인간을 얻게 될 테고 그들도 강해지겠지.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도 신성 왕국이 안전할 수 있을까?
아니었다.
그렇기에 신성 왕국은 제국을 도왔다. 주고받음 그 이면에는 서로 돕는 것이 양측의 안전과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
‘그런데 갑자기 불간섭 원칙을 선언하더니, 자유 캐나다 연맹에서 제국이 손을 떼라고 한 이유가 이걸 노린 건가?’
자유 캐나다 연맹 사람들을 영토에서 몰아내려고? 자기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변이 괴수를 이용해 몰아내려고 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문득 갑자기 든 섬뜩한 생각. 만약 인간을 잡아먹은 변이 괴수, 2차 변이를 일으킨 변이 괴수를 신성 왕국 소속 짐승들이 잡아먹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까마귀나 늑대···. 쥐떼와 개미들이 자유 캐나다 연맹을 붕괴시킨 2차 변이 괴수들을 잡아먹는다면?’
신성 왕국은 더 강력한 동물 군단을 보유하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2차 변이 괴수를 토벌하는 경험을 쌓게 해 능력을 각성하게 유도한다거나.
덴 브라운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
공식적으로 캐나다 지역은 텅 빈 무주지가 됐다.
“이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제국의 지원을 받아 괴물들에게 뺏긴 고향을 되찾아야 합니다.”
캐나다 난민들 가운데 몇몇이 목소리를 높였다. 임시정부를 구성해 제국의 지원을 받아 고향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안타깝지만 직접 지원할 수 없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자유 캐나다 연맹에 관여하지 않기로 신성 왕국과 조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하지만 여러분이 용병대를 만들거나 회사를 만들어서 그쪽과 거래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조약을 어기는 것이 아닐 테니. 그런 방식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국이 자유 캐나다 연맹에 간섭하지 않기로 조약을 맺었다는 이야기.
“거보라고. 신성 왕국 새끼들이 노리고 한 짓이라니까.”
“제국이 돕지 못하도록 했다잖아.”
자유 캐나다 연맹의 멸망에 신성 왕국이 관여했다는 생각이 더욱 커진 난민들이었다.
“무스가 컨테이너 벽을 무너뜨리고 그 틈을 타서 늑대들이 덮쳤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초식동물인 무스가 늑대들의 추적을 떼어내려고 인간의 도시를 들이받았다는 진술을 시작으로 여러 정보가 쌓였다.
“12.7mm 탄이 먹히지 않았다고요?”
“예. 81mm 박격포 파편도 소용없었습니다.”
무스도 그렇고 늑대도 어지간한 화력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그. 그건 괴물이야. 괴물이라고.”
증언하던 남자 한 명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곰이 습격한 오타와에서 탈출한 남자였다.
“다 죽어! 다 죽는다고!”
“진정제 어딨어? 진정제!”
“팔다리 눌러. 진정제 주사해.”
제국군 장교가 증언을 기록하던 심리 상담사에게 물었다.
“저 사람. 왜 저러는 겁니까?”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입니다.”
“진술 내용 좀 볼 수 있을까요?”
“여기 있습니다.”
일어선 키가 8~9m에 달했다는 괴물 곰에 대한 증언. 전차 주포와 재블린 미사일을 맞고도 달려든 곰이 엑소슈트 분대를 비롯해 3대의 전차, 중대 단위의 보병 전력을 쓸어 버렸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미쳤군요.”
“······.”
상담사는 미쳤다는 소위의 말에 대답 대신 불편함을 드러냈다.
“실례했습니다.”
소위는 고개를 살짝 숙여 실례했다는 뜻을 표하곤 밖으로 나섰다. 여기저기 울부짖는 사람들과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정제와 수면제를 놓는 의료진들로 북적이는 모습.
그래.
미친 게 분명했다.
텅스텐 탄환을 사용하는 120mm 주포의 관통력은 600mm~800mm는 됐다. 그건 재블린 미사일도 마찬가지.
그런데 아무리 변이를 일으킨 곰이라고 하지만 전차 주포와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에 끄떡없다니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갑갑하군- 이런 미친 소리까지 보고해야 하나?”
“어쩌겠어. 변이 괴수와 관련된 내용이라면 아무리 이상한 증언이라고 해도 올리라잖아.”
그렇게 다양한 진술이 회의실로 보내졌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군요.”
“올해만 이런 건 아니었을 테니 말입니다.”
캐나다에서 탈출한 난민들의 증언은 믿기 힘든 이야기로 넘쳤다.
늑대가 달리는 속도가 무려 60마일(97km)에 달한다는 진술이 넘쳤다. 게다가 장갑차 뺨치는 방어력을 가지고 있어 개인용 총기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늑대가 문 손잡이를 열고 들어가 침대 밑에 숨은 사람을 끌고 갔다?”
“창문을 깨서 집안 온도를 낮춰 얼어 죽기 싫은 사람이 밖으로 나오게 유도했다?”
“미친. 무슨 늑대가 사람입니까?”
“시궁쥐들도 머리를 쓰지 않았습니까? 늑대들도 똑똑해졌을 수도 있죠.”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여기 증언에 나온 늑대들. 인간의 문화, 도구를 너무 잘 알고 있어요.”
“큼- 신성 왕국의 늑대란 말입니까?”
“확인해 봐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으로 넘어오는 늑대는 포획하도록 하지요.”
늑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곰이었다. 변이 괴수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덩치. 증언을 믿어야 할지 논란이 될 정도로 거대한 괴물이었다.
“전차 주포와 대전차 미사일에 끄떡없는 곰이라니.”
“심지어 늑대와 비슷한 속도로 달렸다고 합니다.”
60마일(97km)까지 달렸다는 진술에 회의장이 웅성거렸다. 늑대고 곰이고 쌍으로 난리였다. 60마일이 누구 집 개새끼 뛰는 속도도 아니고.
“신형 재블린으로 무장한 클론 부대를 국경선에 배치해야 합니다.”
“변이 괴수들이 언제 국경을 넘어올지 모릅니다.”
다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신성 왕국이 개입했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
캐나다 난민들과 제국 의회, 군부에서 신성 왕국을 의심한다는 첩보를 받은 기순의 실눈이 씰룩거렸다.
“아- 씨-.”
김 양이 기순이 보던 자료를 슬쩍 보곤 한소리 했다.
“망했으면 망한 거지, 자유 캐나다 연맹 임시정부는 뭐고 캐나디안 용병대는 또 뭐임? 그리고 우리가 죽으라고 했나? 도망치라고 해도 듣지 않고, 지휘부가 식인귀가 됐다고 해도 자기들 손가락으로 도시락 되겠다고 해놓고서 왜 우리한테 지랄임?”
괜히 살려주고 신경 써줘 봐야 복수하겠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번지수 잘못 찾아 발광하는 애들 생기면 짜증인데.
[상관없어. 캐나다 지역 변이 괴수를 토벌한다. 친위대와 성장부대, 재생부대를 중심으로 토벌대를 꾸려서 밀어버려. 변이 괴수 시체는 까마귀와 늑대를 중심으로 분배하고.]토벌대를 꾸려서 치우라는 말은 비행선으로 폭격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김 양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영상 보니까 곰은 우리가 저번에 잡았던 것보다 더 크던데. 그런 게 한두 마리도 아니고 저거 다 잡으려면 애들 많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음?”
[곰은 내가 정리한다.]그렇다면야.
김 양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