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64)
러스트 [RUST]-864
마루는 괴수에게 점령당한 도시 영상을 확인했다.
토론토와 붙어있는 미시소거는 이미 늑대들의 사냥터로 변해있었고. 몬트리올은 곰이 자리를 잡은 상황.
도시를 감싼 벽이 무너지고 바로 도망친 자들을 제외하면 7할에서 8할에 가까운 사람들이 도시에 갇혔다.
처음에는 넘치는 먹잇감에 흥분한 늑대와 곰들이 닥치는 대로 사냥했지만, 배불리 먹고도 남아도는 사람들에 여유가 생겼는지 학살을 멈춘 상태.
똑똑한 짐승들은 무스 무리가 뚫고 나간 벽 근처를 둥지로 삼았다. 뚫린 구멍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위주로 잡아먹기 시작한 것.
늑대와 곰이 그런 식으로 도시 양식장을 운영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도시 중심부와 고층 건물과 아파트로 몰렸다.
마트는 텅텅 비었고 전기가 끊긴 고층 건물은 지옥으로 변했다. 식량을 가지고 고층 건물로 올라가는 동안 뺏고 뺏기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도 사람들은 고층을 선호했는데, 계단을 막으면 늑대를 비롯한 변이 괴수를 일차적으로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변이체가 일정 밀도 이상 모여있으면 전자기기에 간섭하는 현상이 없다는 것은 아직 도시에 청소부들이 몰려오지는 않았다는 의미였다.
캐나다 지역은 넓었다. 신성 왕국의 휘하에 있는 쥐와 개미는 캐나다 북부 지역에 퍼져있을 쥐떼와 개미를 생각하면 한 줌 정도라고 봐야겠지.
“쥐떼와 개미의 이동이 있으면 바로 경고 보내.”
[알겠습니다.]혹한의 겨울인지라 어지간하면 자기들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겠지만 모를 일이었다. 무스 무리가 남하해서 인간에게 엿 먹이리라 누가 예측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작년에 그런 무스 놈들 때려잡아서 농장으로 보냈는데, 새로운 무리가 그 짓을 할 줄. 무스가 그랬으니 버펄로나 다른 초식동물이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대규모 이동이 있으면 바로 확인하고.”
[네. 이번 겨울이 지나기 전 북미 전역에 감시, 통신망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그래 저번에 보고받았어. 동아시아까지 연결하기로 했었지?”
[현재 일본에서 계속된 화산 분출과 러시아 사할린, 캄차카 반도 인근에서의 화산활동으로 동아시아 통신 라인은 불안정한 상황입니다.]마루는 말이 나온 김에 한국과 7개의 중국 상황을 확인했다.
[중국 7개 국가는 대공망을 확충하기 시작했습니다.]성층권을 넘나드는 비행선으로 상황을 살폈었는데, 앞으로는 어려워질 전망. 그나마 대공망 구축 전에 알토란 같이 정보를 찾아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으니 아쉬운 대로 그만.
[한국은 야생동물의 창궐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방사했던 반달가슴곰을 시작으로 멧돼지의 창궐이 심각한 상황이 됐다. 겨울 전에는 숲에 살던 짐승들이 마을로 내려온 것.
종말의 시대. 고령 인구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생긴 한국은 오히려 좋아를 외쳤다가 농산물 생산이 바닥을 치는 걸 보곤 허겁지겁 농촌 되살리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빈 마을에 듬성듬성 기계화 농업을 준비 중이었던 사람들이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았다.
[과수원을 지키던 까치와 시골 마을에 상주하던 까마귀들이 사라져, 야간 기습을 알아채지 못해 피해가 컸다고 합니다.]“······.”
까마귀와 까치는 훌륭한 생체 경보기였던 것. 특히 까치들은 농사지을 때 사람들을 이용할 정도였기에 일군 보호 차원에서라도 인간을 도왔을 텐데···. 이젠 없었다.
큼-
[···그리고 길고양이와 유기견들이 변이를 일으키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습니다.]“겨울인데?”
[네. 길고양이와 유기견의 덩치가 유의미하게 변화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한국 정부에 경고해줘.”
7개의 중국, 환경 자체가 이상하게 변한 일본 그리고 러시아 상황을 확인하고 대응하려면 한국이 버텨주는 게 좋았다.
‘이게 미국의 심정이었을까?’
마루는 속으로 헛웃음 지었다.
“러시아는 어때?”
원동(遠東) 혹은 극동(極東)이라 불리는 러시아 동부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김 양의 원정대가 확인했듯 이상한 생물들이 러시아 해군 기지를 점령하고 있었고, 시베리아 철도가 끊겨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만주지역을 장악한 중국 북부 전구와 러시아 극동 군부는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서로 물물교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생존이 어려워지면 질수록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식인귀를 선택하는 자들이 많아지기 마련.
[···러시아 극동지역에 식인귀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디아나가 보여준 영상에는 도시를 통제하고 있는 러시아 병사들이 보였다. 영하 70도에 가까운 날씨에도 기존 군장만으로 돌아다니는 병사들.
“···지금 특수 군장인가? 혹한기 전용 특수 군복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일반인이었다면 8시간이나 경계 근무를 할 순 없었다. 신체 능력자로 각성했다고 해도 영하 7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 2시간 이상 버티기는 어려운 게 사실.
그렇다는 것은 도시를 통제하고 있는 병사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최소한 감시 카메라에 찍힌 저들은 전부.
“러시아군이 저렇다는 건. 중국 북부 전구도 그렇다는 뜻이겠군.”
[연산 결과.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결론입니다.]쯧- 그랬지. 중국 놈들 방공망을 때려 박아서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워졌다고.
마루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러시아 동부는 독립된 군벌로 나갈 게 확실했다.
서방의 지원이 끊긴 우크라이나는 식인귀 병사들을 만들어 러시아를 압박했고, 러시아도 그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모스크바가 코앞인데 통신과 교통이 끊긴 극동이 군벌화되는 걸 신경 쓸 여력이 없겠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러시아는 몸살을 앓게 될 전망이었다.
‧
‧
‧
며칠 동안 부대를 시찰한 김 양은 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정보 주입만으로는 이번 작전을 수행하긴 좀 어려운 것 같아서.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가 너무 부족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그냥 출동하긴 위험해 보임.”
한국에서 데려온 재생부대(재활부대)와 성장부대(클론 기술로 급속 성장시킨 부대)는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의 전쟁 경험을 정보화해 주입한 부대였다.
유 이사의 기억이라거나 유명한 용병대의 기억. 생존 전문가의 기억에서 정보를 뽑아 주입한 것. 문제는 전장과 주적이 주입된 정보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유명한 용병대의 기억은 주로 내전 상황의 국가에서 싸운 기억이었다. 환경도 마찬가지. 대부분 중동과 동남아시아 남미의 기억이었다. 영하 60~70도를 넘나들며 변이 괴수와 싸우는 상황과는 전혀 다른 전장과 상황이었다.
이건 유 이사의 기억도 마찬가지. 그녀가 활약한 전장은 사막과 황야 지형에 걸친 소대, 중대 규모의 교전과 시가전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라크와 아프간의 전장이 대부분인지라 혹한기 캐나다와는 거리가 멀었다.
생존 전문가의 기억도 비슷했다. 영하 60~70도에서 생존하는 기억은 없었으니까. 김 양은 한국에서 데려온 부대로 작전을 실행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노심 아머나 엑소슈트를 추가로 지급하는 건 어렵나?”
경험이 부족하다면 압도적인 화력으로 밀어붙이면 될 터. 마루의 질문에 디아나가 답했다.
[현재. 보급 상황에 여유가 없습니다.]대부분 자원을 수상도시 건설에 쏟아붓고 있는지라, 자원이 많이 필요한 노심 아머의 생산이 밀려있었다.
그나마 신형 엑소슈트는 가성비가 좋아 계속 생산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이번 작전에 넉넉하게 보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고.
“훈련 기간은 얼마나 걸리겠는데?”
“최소한 3주~4주?”
내년 1월 중순에나 갈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마루가 잠시 생각했다. 한 달 뒤로 미룬다고 큰일 날 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엑소슈트도 생산분도 그만큼 모였을 테고.
“상관없겠네. 훈련 끝내고 가도록 해.”
도시의 방벽이 사람들을 가둔 가두리 양식장이 됐듯, 김 양과 군대가 투입되는 순간 인간을 가뒀던 외벽은 고스란히 늑대와 곰을 가두게 될 터.
“늑대랑 곰이 다른 곳으로 가면?”
“사냥 거리가 넘치니까 이번 겨울은 도시에서 나려고 할 거다.”
며칠 동안 블리자드가 불어닥쳐 무스 무리가 남긴 흔적이 사라졌으니, 좋든 싫든 도시에 있어야 할 판이었다.
다시 겨울잠을 잔다고 하더라도 경쟁자가 넘치는 야생에서 자는 것보다, 나약한 인간이 있는 도시에서 겨울잠을 자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터. 먹을 것이 떨어지기 전까지 도시에서 떠날 이유가 없는 변이 괴수들이었다.
“알겠음.”
마루의 설명을 들은 김 양이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갔다.
김 양이 혹한기 훈련을 하는 동안, 변이 괴수에 점령된 캐나다 도시에서 이상한 기류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고층 건물과 대형 건물로 계속 모이고 있습니다.]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불을 다루는 능력자의 숫자가 유의미하게 증가했습니다.]혹한기라서 그런가? 대부분 신체 능력자로 각성하기 마련인데 유의미한 비율로 화염계 능력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1,000명이 각성하면 그 가운데 1명꼴로 나올까 말까 한 비율이라고 했었는데.’
각성자가 200명 남짓인데 벌써 3명이나 화염계 능력자가 나온 것. 능력으로 불을 다룰 수 있다는 건 생존에 유리했다.
영하 60~70도의 혹한에도 불을 피울 수 있다는 뜻이니까. 게다가 아무리 변이를 일으켜 덩치가 커지고 똑똑해진 늑대와 곰이라고 해도 바로 코앞에서 불길이 치솟으면 피할 수밖에 없었다.
능력으로 생긴 불꽃은 네이팜처럼 잘 꺼지지도 않았고 거기에 입은 화상도 쉽게 아물지 않았다. 그래서 불꽃 능력자가 있는 인간 무리를 늑대와 곰은 굳이 기를 쓰고 사냥하려 하지 않았다.
늑대와 곰이 소가 닭 보듯 무시하니 도시를 떠날 수 있음에도 화염계 능력자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도시를 떠나지 않는 이유가 뭐지?”
[세력을 규합해 변이 괴수를 몰아내려고 하고 있습니다.]‘화염계 능력만으로는 힘들어 보이는데.’
늑대와 곰이 공격하지 않고 피한 이유는 불이 까다롭기도 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아서였다.
‘불꽃이 능력이라면 집중력이나 정신력. 체력으로 피워올린 것일 테니 한계가 있을 텐데.’
마루는 네이팜 불꽃에도 물러서지 않는 변이 괴수를 여러 차례 경험해봤기에 알 수 있었다.
‘늑대와 곰도 철근 콘크리트를 부술 수 있고 그 잔해를 역이용할 수 있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나?’
시간이 지나면 늑대고 곰이고 철근 콘크리트 속에 숨은 인간을 적극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할 터.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눈 속에 터널을 파서 탈출하는 게 더 가능성이 있을 텐데.
화염계 능력자를 필두로 엑소슈트와 12.7mm 기관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곰을 사냥하려는 모습이 스텔스 드론에 잡혔다.
고층 건물에서 저격해 함정을 판 곳으로 곰을 유인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대물 저격총에 맞고도 끄떡없는 곰이 분노해 달려들었다.
콰직-
함정이 꺼지며 얼음 구덩이로 빠지는 곰. 그리고 화염계 능력자가 구덩이에 불꽃을 피워올리자 거대한 폭발이 터졌다.
콰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불꽃.
순식간에 3m 가깝게 쌓인 눈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잡았다!] [씨발! 우리가 잡았어.]사람들은 환호했다.
거대한 울림이 불구덩이에서 울려 퍼지기 전까지는.
크우우어어어어어-
픽-
불구덩이에 빠진 곰을 가까이서 확인하려 접근한 스텔스 드론이 제어를 잃고 추락했다. 조금 떨어져 있던 드론은 잠시 흔들렸을 뿐 바로 자세를 잡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앙!
그 자리에서 뻣뻣하게 굳어버린 사람들. 몇몇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줌을 지렸고 심지어 정신을 잃은 사람도 보였다.
이것 보소?
지금 저거 포효 속에 살기 비슷한 게 섞인 거 같은데?
두근. 두근.
드론이 촬영한 영상으로 보는 것이라 제대로 된 느낌은 없었지만, 심장이 작게 경고하기 시작했다.
‘이거. 먼저 가봐야겠는걸.’
김 양이 군대로 늑대 잡을 때 같이 가려고 했더니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마루는 바로 일어서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마루가 멈칫 발걸음을 멈추곤 고개를 돌리자, 가지런히 놓여있는 뉴클립스가 있었다.
죽음으로 곰을 잡으면 곰탕은 물 건너갔다.
지난번에 잡았던 곰도 효과가 대단했는데, 이번 곰은 더 할 터. 그걸 그냥 죽음이 빨아 먹게 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흠-
마루가 뉴클립스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를 조각내서 총알 만들자는 이야기가 있어. 내 죽음도 위험하고. 여러모로 상황이 그러니까 나대지 말고 잘하자.”
뉴클립스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소. 나는 그냥 칼이요.’ 하는 것처럼.
“그래. 그렇게 잘해.”
픽- 웃은 마루가 뉴클립스를 들고 비행선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