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66)
러스트 [RUST]-866
“화염능력자를 먹고 그 능력을 흡수한 것 같다고요?”
“영상 있으니까 확인해봐.”
나주연이 스텔스 드론과 고고도 비행선이 촬영한 영상을 보곤, 생체 단말기에 자료를 넣어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거 곰이 능력 흡수한 거 아님?”
“화염계 능력을 흡수했다는 거라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양과 후드가 아직도 불길이 타오르는 곰 가죽을 보며 말했다. 동물들이 인간을 먹고 변이를 일으키면서 똑똑해지고 덩치가 커진 것을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 그것의 의미는 생각하는 인간. 다른 동물에 비해 압도적인 지성은 약육강식의 자연에서 인간이 생존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종말 사태가 터진 이후, 짐승들은 인간을 먹으면서 그들이 부족했던 지성을 채울 수 있었다. 그렇듯이 능력자를 먹고 그 능력을 흡수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면?
“능력을 완전히 흡수했다고 보긴 어려워.”
단순히 먹는 행위로 능력을 흡수한 것으로 보이진 않다는 마루의 이야기에 나주연도 동의했다.
“만약 단순히 먹어서 능력을 흡수했다고 한다면 복수 능력이 있는 변이 괴수가 등장했을 거예요.”
영상분석결과 곰의 가죽이 불타오른 건 화염능력자를 잡아먹기 전이었다. 시뮬레이션 결과를 봐도 그랬고.
먹은 효과가 있기는 하겠지. 다만 먹는 것만으로 능력 자체를 완벽히 흡수해 써먹을 수 있을 정도라고 보긴 어렵지 않을까?
“화염능력자를 먹어서 분명 화염과 관련된 뭔가를 얻었겠지요. 다만 그게 능력을 흡수한 결과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아요. 화염능력자를 먹기 전 곰은 이미 변이를 일으키고 있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있고요.”
“흐응- 주유소 곰도 그렇고. 함정에 빠진 곰도 그렇고.”
김 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공통점은 둘 다 불꽃에 휩싸였다는 거잖음. 불 때문에 죽게 생겨서 불에 대한 내성이라든지 불 속성이라든지 그런 게 생긴 거 아님? 그런 게 먼저 생기고 함정 곰은 불꽃 능력자 먹어서 업글한 거고.”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혹한에 대응하기 위해 화염계 각성이 있었던 걸 보면 말이죠.”
후드도 김 양의 생각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조건을 바꿔서 시뮬레이션한 결과도 그쪽에 가깝게 나왔어요. 함정 불꽃에 대응하는 쪽으로 변이를 일으켰을 확률이 높게요.”
나주연도 비슷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했다.
“거기에 화염능력자를 먹어서 더 변했고?”
“아마 그러지 않을까요?”
불타는 곰을 놓쳤다면 어떻게 됐을까?
“놈이 살아서 도망쳤다면 화염능력을 쓸 수 있었을까?”
“함정 곰은 확실히 그렇기는 하네요. 가죽에서 피어오른 불꽃도 뜨겁고, 숨결이나 타액도 엄청나게 고온이었으니···. 화염능력자처럼 화염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 능력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불타오르는 가죽.
끓어오르는 타액.
불꽃 같은 피와 용광로 같은 심장과 위장까지.
패시브로 화염능력을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놈이 도망쳐서 힘을 길렀다면 아주 피곤해졌으리라.
“흐응- 저번 곰도 몸보신 좋았는데.”
저번에도 효과가 좋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번 곰은 더 효과가 좋을 것 같지 않은가? 김 양의 눈동자가 기대감으로 빛났다.
“······.”
“······.”
“······.”
“······.”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는 여자들에 마루는 속으로 당황했다. 갑자기 왜들 이러는 거지?
“흐음- 이번 곰탕은 정말 효과가 좋을 것 같음.”
“그렇겠죠. 저번에도 연구원들이 곰탕 먹고 며칠 철야를 견뎠으니까요.”
“다들 효과를 봤다고 했습니다.”
김 양, 나주연, 후드의 시선이 마루를 향했다.
‘그러니까 이거···.’
고개를 살짝 흔든 마루가 연장을 챙겨 일어났다.
‧
마루가 잡아온 거대 곰 두 마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맙소사. 이게 곰이라니.”
“이런 곰이 더 있단 말입니까?”
“혹시. 새끼라도 생포할 수 없을까요?”
다양한 연구 활동으로 한계에 몰린 연구진들이 초췌한 모습으로 몰려들었다.
“불에 타고 있는데도 가죽이 타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탄 가죽이라서 그러는 건 아닙니까?”
“불꽃이 일렁이는데 무슨 소립니까?”
털 한 올 한 올에 불꽃이 피어나 마치 불꽃으로 이뤄진 가죽처럼 보였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염화(炎火).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현상이 있다는 건 원리와 법칙이 있다는 의미인데. 대체 무슨 작용으로 이딴 일이 일어나는 거야?
연구원들의 시선이 이글이글 실시간 불타는 곰과 마루의 사냥 영상을 번갈아 봤다. 대체 이걸 어떻게 잡았지? 아무리 봐도 모를 일 뿐이었다.
저번 ‘곰’탕을 만들었던 요리부는 현실적인 문제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외부 온도가 영하 60~70도임에도 불타고 있는 곰 가죽 때문이었다.
“아니 불붙은 채로 어떻게 가죽을 벗깁니까?”
“벌컨포와 재블린 미사일에도 뚫리지 않은 가죽인데···.”
요리사들이 전차의 장갑보다 더 강한 가죽을 벗긴다는 건 불가능했다. 수압 커터도 써보고 노심 아머와 플라스마 커터도 사용해 봤지만 실패한 것.
이번에도 국왕 폐하께서 직접 손질하셔야 한다는 말인가?
괴수 곰을 해체할 수 있는 건 국왕 폐하밖에 없다는 현실에 요리사들은 어쩐지 무력해지는 느낌이었다. 잡아온 고기도 손질하지 못하는 요리사라니.
“오. 오셨다.”
“거기 들쑤시고 자리 비켜.”
“국왕 폐하께서 오셨다.”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났음에도 활활 타오르는 곰 가죽은 신비로웠다.
‘가죽을 벗겨도 불이 계속 붙어있을까?’
컨테이너 선적과 하역할 때 사용하는 대형 크레인을 동원해 곰의 사체를 일으킨 마루가 불꽃이 약한 목덜미 부분에 뉴클립스를 박아 넣었다.
콰직-
울대 근처에 뚫린 구멍에 그대로 뉴클립스를 밀어 넣고 몸무게를 이용해 수직으로 내려긋자 기괴한 소리와 함께 뱃가죽이 찢어졌다.
돌을 자르는 수압 커터, 철판을 자르는 플라스마 커터로도 잘리지 않던 뱃가죽이 갈라지자, 그걸 보던 요리사들과 연구원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길게 세로로 찢어진 뱃가죽 사이로 뜨거운 내장이 흘러나왔고, 엑소슈트와 노심 아머로 무장한 요리사들이 전기톱을 들고 달려들었다.
재블린 미사일도 울고 간 가죽과는 달리, 전기톱으로 부드럽게 잘리는 내장들. 내장과 선지는 잘 가공되어 동물들의 특식이 될 예정이었다.
순식간에 내장이 정리된 현장에서 드디어 곰 가죽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가죽과 근육, 비계를 섬세하게 해체하기 시작하는 마루의 손길. 순식간에 가죽을 벗고 알몸이 된 곰이 텅 빈 뱃속을 드러냈다.
가죽이 벗겨지자, 속에 숨어있는 결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은 마루였다. 그 결을 따라 근육과 근육, 근육과 연골, 근육과 힘줄 그리고 근육과 비계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마루의 나이프.
쿠직- 으드드득-
순식간에 곰의 사지가 분리되고 머리통과 거대한 뼈대만 남는 광경은 마술 같았다. 그렇게 ‘곰’탕과 수육이 조리됐다.
후다다닥-
빛의 속도로 달려온 김 양이 특 ‘곰’탕과 특대 수육과 보쌈김치까지 세팅하곤 자릴 잡았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진하게 우러난 ‘곰’탕에 파, 마늘과 청양고추에 후추까지 호쾌하게 뿌린 김 양이 후후- 불곤 한입 먹었다.
고소하고 진하고 뜨거운(?) 맛. 혀를 타고 내려가는 고소함과 농후한 에너지(?)의 맛이 식도를 코팅하고 내려가 위장에 닿았다.
식도와 위장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는 듯한 느낌. 마치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셨을 때와 유사한 감각에 김 양은 절로 감탄했다.
크아-
감동의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 저번 곰탕은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야무지게 보쌈김치에 수육을 얹어 입에 넣자, 아삭함과 매콤함이 어우러진 수육의 진한 부드러움까지. 극락이 따로 없었다.
어우야- 너무··· 맛있어.
허겁지겁 특 ‘곰’탕 두 그릇에 특대 수육 두 판을 먹어치운 김 양은 만족하고도 만족한 발걸음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역시. 곰은 옳았다.
그런 애들이 아직도 두 자리 숫자나 있다니.
응.
든든한 마음에 김 양은 장식해 놓은 콜트 파이슨과 황금 AK-47처럼 아끼는 컬렉션을 꺼내 소화도 시킬 겸, 청소를 시작했다.
이게 평화고 이게 흐으으응-이지.
좋았다.
?
근데 온도를 너무 올렸나?
어쩐지 더운 느낌에 온도조절 장치를 확인한 김 양.
실내 온도 24도.
딱 쾌적한 온도인데.
몸에 좋은 걸 먹어서 그런가?
무엇보다 그냥 곰도 아니고 ‘불’곰 아니던가?
온도를 2도 낮춘 김 양이 잠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4도를 더 낮췄다.
그래도 더운데?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팔뚝으로 슥-닦은 그녀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동동 떠올랐다.
이거? 설마?
‧
‧
‧
저번에 곰을 먹고 다들 효과를 봤었다. 그래서 ‘곰’탕은 모두에게 특식이었다.
남자들은 ‘흠-흠- 남자에게 참 좋은데 이걸 말로 하기가 그러네.’ 효과를 톡톡히 봤고. 여자들도 ‘피부가 달라졌어요.’ 급의 효과가 있었다.
거기에 덧붙여 체력 증진에 면역력 강화를 시작으로 자연 치유력 회복력 상승까지. 그건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까마귀와 늑대들은 특식을 받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고. 곰 육포를 상품화한 뒤로는 곰 육포를 사기 위해 그간 모은 돈을 아낌없이 쓰기까지 했다.
그리고 지금. 이번 ‘불’곰은 지난번 효과보다 더 좋았다. 영하 10도에서 20도에서 차가운 물로 냉수마찰을 해도 시원하다 할 정도로.
“평균 체온이 37도에서 37.5 정도로 높아진 사람들이 생겼어요.”
땀과 함께 노폐물이 배출되면서 피부가 좋아진 사람들도 나왔다.
“흐흐흥- 왜 그렇게 봄?”
반질반질 피부에 광택이 흐르는 김 양이 콧노래를 멈췄다.
“피부가 좋아진 사람도 생겼고···. 뼈가 단단해지고 근력이 강해진 사람도 생겼어요.”
김 양을 바라보던 나주연의 시선이 간호사를 향했다. 나주연과 눈이 마주친 간호사가 조그맣게 말했다.
“에? 조. 조금요?”
“조금이 아니더라고요.”
간호사와 이번 곰이 잘 맞았는지, 힘이 정말 좋아졌다.
“얼마나 좋아졌는데?”
“신체 능력자와 근력 비교만 한다면 비슷할 정도로요.”
근력과 순발력뿐만 아니라, 뼈의 단단함이나 피부의 질김 같은 건 어지간한 신체 능력자보다 월등해졌다고.
간호사는 부끄러운 일이 아님에도 단단하고 질겨졌다는 나주연의 이야기에 귓불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건 좋은 일이었다. 통역기를 만들었지만, 자세한 소통을 하기엔 부족했다. 특히 교전 상황에서는 더욱.
많은 병력이 뒤엉키는 전장에서는 EMP 효과가 발생해 번역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 경우 간호사의 지휘‧통제가 중요했다.
문제는 간호사의 운동능력이 처참했던 것. 노심 아머와 엑소슈트를 쓴다고 하더라도 EMP 효과가 터지면 위험할 수 있었다.
“시뮬레이션 결과. 난전 상황에서의 생존율이 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어요.”
그러니까 현장에서 마음껏 굴려도 괜찮다는 나주연의 목소리에 동의하듯 김 양이 그윽한 눈빛으로 간호사를 바라봤다.
많이 컸구나. 1호기.
그래 이만큼 자랐으면 현장에서 굴러야지 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특이한 능력이 발현된 케이스도 있어요. 보여주세요.”
나주연의 시선이 후드를 향했다. 반반 가면을 쓴 후드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곤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키보드를 치느라 단정하게 관리된 손톱이 드러났다.
그리고 잠시- 매니큐어도 바르지 않은 깨끗한 손톱에 화륵- 불꽃이 피어올랐다.
“오오- 불꽃 손톱!”
김 양의 감탄사에 반응하듯 후드의 머리카락이 빨갛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꽃에 휩싸여 너울거리기 시작한 후드의 머리카락.
화르르르륵-
그 맹렬한 불꽃에 김 양의 동공이 흔들렸다.
후드의 손가락과 머리카락을 바라보던 시선을 슬며시 아래로 내린 김 양이 진짜 궁금해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응. 혹시···. 거기도 그러면···. 그럼?”
“······.”
“······.”
“······.”
“······.”
화르르르르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