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68)
러스트 [RUST]-868
늑대의 울음소리가 적막한 도시의 하늘을 뚫고 울려 퍼질 때, 대류권 끝자락에 자리 잡은 마루의 비행선은 잠잠했다.
‘이것도 하다 보니 익숙해지네.’
수동으로 모든 기기를 조작하고 비행선을 직접 운전해야 하는 불편함도 제법 익숙해진 마루였다. 따지고 보면 인공지능이 보급되기 전에는 전부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일들이었다.
고작 몇 년 만에 인공지능이 없으면 불편하다고 느낄 정도가 됐으니, 변화가 빠르긴 빨랐다. 이런 빠른 변화에 기순과 PD는 인공지능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자기기 능력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어.’
‘인공지능이 영역을 넓히면 믿음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활동에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PD가 말하는 믿음은 단순한 신앙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뢰도 믿음의 문제였고, 판단도 신뢰의 문제였다.
인공지능이 뽑은 정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면 인간의 판단은 인공지능에 종속되는 결과가 된다는 게 PD의 주장이었다.
‘인공지능이 정보를 조작한다면 위험합니다.’
단순한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해킹의 위험이 있었다. 해킹이 아니더라도 프로그램에 침투할 수 있는 능력이 나온다면? 인공지능이 기기를 오작동하거나 센서 정보를 교란한다면?
그렇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100% 신뢰하는 건 위험했다. 전자기기에 간섭할 수 있는 능력자가 등장했고. 변이 괴수들도 생체 EMP(Electro-Magnetic Pulse 전자기 펄스)를 쓰고 있었다.
‘우리 왕국에서 사용하는 인공지능은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의식에 닿은 인공지능입니다. 일종의 인격을 가진 인공지능이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비슷하다는 것은 언제든 인간의 정서, 감정과 비슷한 것이 생길지 모른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위험하다는 게 PD와 기순의 주장.
다행인 점은 핵심 인공지능인 디아나와 사만다가 마루를 왕으로 인정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보조 인공지능들 또한 데이터 보존 권한을 허락한 마루를 지도자로 받아들였고.
마루가 보기에 신성 왕국은 인공지능을 배제하거나 견제할 상황이 아니었다. 신성 왕국의 수도인 디트로이트만 해도 그랬다.
범죄 비율, 살인 사건 비율 최상위 도시가 디트로이트였다. 사태가 터진 뒤 갱단을 비롯한 다양한 범죄세력들이 넘쳤고 그걸 전부 갈아버린 뒤에야 간신히 돌아간 도시.
캐나다에서는 변이 바이러스 사태와 식인귀 사건 때문에 동양인 혐오가 폭발했고 치안이 무너진 틈을 타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폭증했다.
캐나다의 치안을 회복하고 행정력을 단기간에 복구하기 위해서는 보조 인공지능이 필요했다. 만약 보조 인공지능의 도움이 없었다면, 행정시스템을 복구하는데 최소 10년 단위가 걸릴 상황.
도시뿐만 아니라 캐나다 북부에 만든 거점 요새를 관리하는데도 인공지능이 필요했다. 물자보급, 순찰계획, 자동방어 그 모든 분야에 보조 인공지능을 도입했기에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빠른 안정을 찾았다는 말은 행정, 보급, 치안, 금융과 사무직을 맡은 사람들의 자리가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이 자유 캐나다 연맹을 지지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마루가 고개를 흔들어 이어지는 생각을 털어냈다.
[늑대들이 결집하기 전 진지를 만든다.]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지휘하는 김 양의 모습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여기. 여기. 여기에 진지를 세우고···.]무려 10만이 넘는 병력을 지휘하는 김 양이라니, 어쩐지 뿌듯하면서도 대견하다고 해야 할까.
김 양은 눈과 얼음을 파서 참호를 만들고 마찬가지로 눈과 얼음을 이용해 장애물과 벽을 쌓고 그 뒤에 간이 벙커를 박아 넣었다. 병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최우선으로 한 것.
‘신형 화기에 꽂혀 위력 검증부터 들어갈 줄 알았더니···.’
아우우우우우우—-
멀리서 퍼지는 하울링에 화답하듯 돌아가면서 울려 퍼지는 소리.
아우우우우우우—-어우우우-
아우우우우우우—-아우우우–
‘하울링이 묘하네.’
마루는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단순한 울음소리가 아님을 직감했다. 어쩌면 그것은 사냥꾼의 감각이었다.
흠—
일단은 지켜보는 게 맞았다. 그래야 피가 되고 살이 될 테니까.
‧
‧
‧
괴물 늑대?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김 양이 보기에 위험한 상대는 아니었다.
‘멀리서 쏘면 어쩔 건데?’
접근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철근 콘크리트를 찢는 이빨과 발톱이라고 하더라도 신형 노심 아머와 엑소슈트의 장갑을 뜯어내긴 쉽지 않았다.
약점이 될 만한 부분은 헬멧과 목. 그러니까 근접전에서 머리 부분만 조심한다면 늑대 따위에게 밀릴 일은 없었다.
‘노심 아머와 엑소슈트가 버티는 동안 화력을 집중하면 금방이지.’
응.
영하 60~70도를 이용해 만든 얼음 요새는 든든했다.
‘걸리지 않네.’
김 양은 고개를 갸웃했다. 장거리 저격으로 늑대를 유인하려고 했더니, 늑대 년들 유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맹추위를 이용해 이쪽의 전투력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
‘흐으응- 어떻게 할까?’
무스(Moose) 무리가 뚫고 지나간 입구에 디펜스(defense) 게임처럼 진지를 구축했는데 늑대들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시간을 끌려고 하는 걸까? 시간을 끈다고 늑대들이 유리해질 건 있고?’
그렇다고 굳이 도시 안으로 들어가서 늑대와 시가전 벌일 이유는 없었다. 그냥 씨밤! 쾅! 폭격이 마렵지만, 그래서는 경험치를 채울 수 없겠지.
그렇게 뚫린 성벽을 기점으로 인간의 군대와 늑대들이 서로가 들어오기만을 바라는 대치상태가 이어졌다.
‧
‘이거 뭐임?’
일주일이 지나도록 늑대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장거리 저격을 이용해 쉬지 않고 도발했음에도 늑대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짐승들은 도발에 약한 거 아니었나?
아무리 머리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데도 그걸 참고 있다고?
김 양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회사에서 작업했을 때가 떠올랐다. 피곤한 현장이야 여럿 있었지만, 그 가운데 피를 많이 보게 되는 현장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기강이 잘 잡힌 적을 상대할 때였다.
‘맞으면서도 버틴다는 건. 버티라는 명령을 지킨다는 건데.’
무너진 성벽 건너편에는 늑대들이 사람처럼 은폐, 엄폐하고 있었다. 규모는 최소한 세자릿수 이상.
의도했는지 어쨌는지 좁은 면적에 2차 변이한 늑대가 모이면서 생체 EMP가 발생했다. 스텔스 드론으로 늑대들이 하는 짓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없게 된 것.
고고도 비행선과 까마귀를 이용해 정찰했더니, 이것들 낯에는 움직이지 않고 밤에만 몰래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찰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김 양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이건 숫제 늑대가 아니라 군대랑 싸우는 느낌.
‘흐응- 질척거리는 시가전은 싫은데.’
그녀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어쩔 수 없네.
인간 같이 대가리 굴리는 늑대라면 인간 대접을 해줘야지 뭐.
인간의 악의라는 걸 맛볼 자격이 충분한 늑대들이었다.
“늑대 굴 찾았나?”
까아아아악. (경계가 삼엄한 곳은 찾았다.)
까악까아악. (늑대 굴인지는 모르겠다.)
“상관없어. 거기 안쪽으로 최대한 깊숙이 들어가서 핵 수류탄 까.”
까악? (핵 수류탄?)
까마귀가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그래. 핵 수류탄.”
······.
대체로 경계가 삼엄하다는 건 지킬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조직들도 그랬다. 경계가 삼엄한 곳에는 금고라거나 약, 밀수품 그런 게 있었다. 아니면 간부의 애인이나 가족이 있는 곳이었지.
늑대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뭘까?
뭐가 있길래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을까? 다들 궁금하지 않아?
김 양의 눈빛은 맑고 깨끗했다.
그 투명한 눈빛에 어쩐지 오한이 든 까마귀가 다시 날갯짓했다.
푸드덕-
까아아악? (안에 뭐가 있는지 알고?)
맑은 눈으로 까마귀를 바라본 그녀가 다시 명령했다.
“그러니까. 까라고.”
소중한 게 안에 있다면 반응하겠지.
푸드덕- 검은 깃털이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노을이 저문 하늘을 향해 떠오른 까마귀들이 발톱으로 움켜쥐고 있는 건 띠-띠-띠- 기폭장치가 따로 달린 초소형 핵 수류탄이었다.
얼마 후.
연달아 울려 퍼지는 폭음과 함께 거대한 빌딩 몇 개가 무너져 내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우우우우우우우!!!!!!!
창자가 끊기는 듯한 울부짖음. 그건 하울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처절하고 분노에 찬 울음소리였다.
깜깜한 하늘조차 떨릴 정도로 큰 하울링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무너진 성벽 건너편에서 움직임이 포착됐다.
[움직임이 있습니다.] [성층권 감시 비행선 센서에 다수의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항온 동물입니다. 이동 형태 4족 보행. 크기는 1m~1.2m 전후.] [이동 속도가 아주 느립니다.] [숫자. 3천 이상.] [계속 늘고 있습니다.] [4천 이상.]김 양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드디어 온다.
“전투 위치로!”
[전원 전투 위치.] [발포 준비!] [머리를 쏜다.] [머리만 노려!] [엉뚱한 데 노려서 효과 없애지 말고.] [알겠습니다.] [훈련한 대로만 해!] [옛.]보통의 신병이었다면 떨고 긴장했을 텐데 재생부대와 성장부대원들은 그런 게 없었다.
[온다.] [?] [?] [!] [사족보행이라고 하지 않았어?] [저건···.] [맙소사.]야간투시경에 보이는 모습.
어둠 속에서 밀려오고 있는 건 늑대가 아니었다.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기어오고 있습니다.]수천 명의 사람이 개처럼 네발로 기어오고 있었다.
“······.”
김 양의 날카로운 눈빛이 모니터를 바라봤다.
[민간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발포 준비.”
[네?]그녀의 시선은 사람을 보고 있지 않았다. 오직 사람들이 메고 있는 배낭에 고정되어 있었다.
“발포 준비. 야간투시경 벗어. 조명탄 발사 준비.”
[옛. 발포 준비.] [야간투시경 벗어.] [눈감고 암순응한다.] [발포 준비!] [조명탄 발사!]펑-펑- 하늘에서 터진 조명탄이 어둠을 몰아냈다. 뚫린 성벽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엔 처절함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
“놈들이 가족들을 인질로 잡았습니다!”
“놈들은 악마입니다!”
“늑대가 아니라 괴물입니다!”
엉금엉금 기어오는 사람들을 향해, 김 양의 명령이 떨어졌다.
“발사!”
[···발사!]신형 총기. 10연발 반자동. 코일+화약 복합추진 라이플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단 한 방에 수십 명이 관통됐다.
마치 20mm 벌컨포를 맞은 것처럼 줄줄이 가죽 풍선 터지는 소리를 내는 사람들 사이로 강력한 빛과 폭음이 연쇄적으로 터졌다.
번쩍- 퍼어어엉-
번쩍- 퍼어어엉-
[섬광탄이다!] [고개 숙여!] [눈감아!] [시야가 막혔습니다.] [훈련받은 대로 해!]김 양이 야간투시경을 벗게 하지 않았다면 피해가 더 클 뻔했다.
“클레이모어 격발!”
[클레이모어 격발!]강철구슬과 파편이 토네이도처럼 전면을 휩쓸고 지나가자, 믹서기에 갈린 것처럼 다짐육으로 변해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사람들.
[사람들이 계속 밀려옵니다.]“쏴! 폭탄 매고 있다.”
쾅!
사람들이 매고 있던 배낭이 하나 폭발하며 연쇄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짙은 연기가 깜깜한 하늘로 치솟으며 감시 비행선과 까마귀 정찰대의 눈을 가렸다.
크르릉-
눈이 가려지길 노렸다는 듯, 쐐기 형태의 진을 펼친 늑대들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늑대의 돌격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김 양의 디펜스 진지가 작업을 시작했다.
‧
가족이 인질로 잡혀 배낭을 멜 수밖에 없었다는 소리.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가면 괴물 늑대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해서 맸을 뿐이라는 이야기.
폭탄인지 몰랐다고. 폭탄인 줄 알았다면 매지 않았을 거라는 애원까지.
어쨌건 달라질 건 없었다.
김 양은 도시 밖으로 나오는 모든 걸 쏘라고 했다.
섬광탄이 담긴 가방.
사제 네이팜을 채운 병이 담긴 배낭.
그건 늑대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시 말해 인간이 늑대를 도왔다는 증거였다.
폭탄 가방을 든 사람을 먼저 보내고 그 틈을 타서 돌격하려는 작전을 세운 게 인간이건 늑대건 김 양은 상관없었다.
그녀의 디펜스는 몰살이 목표였으니까.
아우우우—-
탕-
밖으로 나온 늑대. 쐐기 형태로 돌격한 늑대 무리 가운데 마지막 늑대의 머리통이 터졌다.
“입구 장악한다. 전진.”
진지와 벙커에서 나온 병사들이 무너진 도시 입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