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70)
러스트 [RUST]-870
피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벙커와 자동포탑을 깔면서 전진했지만, 완전히 틈이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내려오는 늑대도 있었고 눈을 뚫고 나오거나 건물 5~6층에서 뛰어내리는 늑대도 있었기에 그걸 전부 막는 건 불가능했다.
[경험치는 잘 쌓았나?]“다들 잘 먹었음.”
늑대 토벌 작전은 계획부터 병사들의 경험치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사상자는?]“사망은 92명. 중경상자는 188명.”
10만이 넘는 병력 가운데 사망자는 두 자리 숫자 이하였고 중경상자를 포함해 200명 안쪽인 것은 엄청난 대승이었다.
신형 총기와 노심 아머, 엑소슈트의 교전 데이터가 쌓인 것까지 고려하면 얻은 게 많은 작전이었다.
폭격으로 날려버리지 않고 한 달 넘게 작전을 펼친 보람이 있다고 할까? 재생부대, 성장부대의 실전 경험을 비롯해 혹한기 대응 실전을 동시에 했다.
게다가 이번 늑대 토벌은 단순한 토벌이 아니었다. 봄이 된 뒤 거미, 개미 토벌 전쟁의 예행 실전이었기 때문이었다.
늑대를 잡으면서 꼼꼼하게 벙커를 깐 것도 마찬가지.
참호와 해자를 파고 얼음 진지만 세워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음에도 벙커를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설치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거점의 확보와 방어.
방어선을 이용한 전진과 방어를 집요하게 반복한 것도 거미나 개미와의 전쟁을 대비한 연습이었다.
“근데···. 기순은 삐졌음?”
[삐졌다기보다는 좀 난감해하지. 캐나다 총독이었으니까.]윈저에서 런던 라인으로 이주한 캐나다 출신들이 기순에게 친척들 구해달라고 애원했다는 이야기에 김 양이 혀를 찼다.
“그렇게 친척 구하고 싶었음 의용군으로라도 뽑아달라고 하던지.”
[그래서 정말 생존자는 없는 거냐?]마지막 포위 섬멸전은 말 그대로 혈전이었다. 통역 능력자도 그렇고 폭탄 제조 능력자도 그렇고 막판에는 숨어있던 식인귀까지 나와서 설쳐,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없음. 늑대들이 막판에 너도 죽고 나도 죽자고 발작했고. 사람들도 폭탄 배낭 메고 달려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음.”
김 양과 친위대가 우두머리 늑대를 유인해 사냥하는 동안, 본대는 늑대 무리와 늑대 편을 들고 있는 인간들을 습격했다.
사람들이 살려고 했다면 무조건 무장을 해제하고 항복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인질 상관하지 않고 쏜다는 소문이 돌았는지.
아니면 누군가 흥분 능력이라도 각성해서 미치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대놓고 자폭하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통제할 필요도 못 느꼈고.
결론은 몰살.
막판에는 늑대들이 뭉쳐있었기에 생체 EMP가 발생. 전술카메라에 녹화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마루는 이해하기로 했다.
‘아무리 김 양이라고 해도 이유도 없이 그냥 죽였을 리는 없을 테니.’
생체 EMP 때문에 노심 아머와 엑소슈트의 운용이 제한됐고. 경험치를 먹은 보병이 사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자유 캐나다 연맹 인간들을 구하라고? 김 양은 그딴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전부 정리하라고 했을 뿐.
“솔직히. 살아있는 사람이 생기면. 자기들을 구조하지 않았다. 비무장 민간인이 있는데 공격했다. 뭐 그딴 개소리하고 물타기 할 것 같아서.”
마루는 김 양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김 양이 손을 독하게 쓴 것도 있지만, 늑대들이 인간에게 복수하겠다는 듯 물어 죽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문제없다. 재량대로 하라고 권한을 준 건 나니까. 혹시라도 누가 문제 제기하면 나한테 이야기하라고 해. 괜히 서로 감정 상하지 말고. 알았지? 너도 말꼬리 잡지 말고 바로 나한테 보내.]기순이나 후드, PD와 김 양이 감정 상할 필요는 없었다.
“알겠음.”
[오케이. 그럼 다음은···.]싸웠으면 건지는 게 있어야 했다. 곰을 잡았으면 곰탕이 있었고. 늑대나 코요테, 들개를 잡았다면 영양이 풍부한 탕이 있어야 하는 법.
언제 심각했느냐는 듯. 김 양의 얼굴 혈색과 눈빛이 반들반들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이어지는 마루의 이야기.
[우두머리 늑대를 해체했는데, 에너지를 전부 썼는지. 살이 오래된 스펀지처럼 푸석거리더라.]김 양이 눈을 깜박거렸다.
‘왜?’라는 그녀의 눈빛에 마루가 ‘왜긴’ 하는 눈빛으로 받아쳤다.
[변이 괴수들도 그렇고 식인귀들도 재생력이 워낙 좋아서, 단숨에 숨통을 끊지 않으면 생명력? 에너지? 전부 끌어다 써서 상처 치료한다는 거 알잖아.]그렇게 곤죽을 만들면 먹을 게 없어진다는 거 몰라?
그건 아는데. 우두머리 늑대 막판에 입 벌려서. 아가리에 총알로 깔끔하게 죽였는걸?
[깔끔하게 죽이긴. 가죽이고 뭐고 건질 게 없었다. 상체 절반은 화상 흔적에, 온몸이 총알구멍이던데.]김 양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일대일 한다고 나온 우두머리 늑대를···.
어. 음.
다구리? 치긴 했었다.
네이팜 함정으로 불바다도 만들었지.
벙커도 만들어서 도망도 못 치게 가둬놓고 팼고.
“······.”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기억을 쥐어짜던 김 양이 항변했다. 분명 네이팜에 끄떡없던 우두머리 늑대였다.
“네이팜 맞고도 끄떡없었음. 화상. 그건 우리가 한 게 아님.”
[한 게 아니긴. 작은 핵 쓰지 않았어? 늑대 굴에 핵 던지라는 명령 내린 게 너 아니냐?]“······.”
김 양이 기대하고 고대하던 우두머리 늑대 영양탕은 그렇게 사라졌다.
‧
‧
‧
“전장 정리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군.”
[늑대의 숫자가 예상보다 많았습니다.]인공지능 디아나가 전장 정리에 시간이 걸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예상보다 많은 늑대가 눈 속에 굴을 파서 있거나 지하실에 있었기에, 토벌 작전을 계획했을 때 정찰로 파악한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
[자유 캐나다 연맹 사망자 숫자도 예측보다 많았습니다.]미시소거-토론토 권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숫자도 마찬가지. 수천의 늑대들이 한 달 넘게 인간 사냥을 했으니 생존자가 많지 않으리라 예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도시에 들어온 첫날만 넘치는 사냥감에 흥분해서 죽였지 다음날부터는 사냥을 스스로 제한하고 가두리 양식장처럼 도시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
정찰을 통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늑대들은 절제를 잘했다. 늙고 병든 인간과 도망치려는 인간을 먼저 잡았다.
눈 속에 굴을 파고 지하실을 이용해 열량 소모를 줄였을 뿐 아니라, 필요에 따라 극히 제한적으로 사냥하고 배식했다.
“애초에 인구가 많았던 지역입니다. 늑대들이 점령하기 전까지 미시소거-토론토 권역에 120만 이상이 상주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요 5개 도시에 인구가 대부분 모여있었다는 후드의 이야기. 미시소거, 토론토, 오타와, 몬트리올 그리고 퀘벡.
신성 왕국이 철수한 뒤로 사람들은 전부 다섯 개의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전기와 같은 필수 인프라의 복구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재개됐기 때문. 어쩌면 그래서 변이 괴수의 습격이라는 신성 왕국의 경고를 무시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결과는 지금과 같았다. 변이 늑대 무리의 먹잇감이 된 사람들보다 교전 여파로 생긴 사망자가 많은 상황.
“현재까지 제국으로 도망친 난민의 숫자만 10만이 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만다의 연산으로 예측한 결과는 최대 20만까지 제국으로 넘어갔으리라 예상됩니다.”
전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던 후드의 불편한 시선이 잠시 김 양을 향했다. 인간의 생명이 질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전장 정리 중에 생존자가 발견됐습니다.”
“······.”
“······.”
“······.”
김 양은 미시소거-토론토 작전 지역에 생존자가 없다고 했지만, 전장 정리 중 생존자가 나왔다.
어떻게 할 텐가?
그 끔찍한 피바다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르는 척 죽이는 건 어려웠다. 전장 정리였기에 예비대와 일반 부대까지 투입됐기에 그랬다.
그들 전부가 생존자가 있다는 증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존자를 죽인다면 예비대와 일반 부대에서 소문이 돌 것이고, 그건 좋지 못한 결과를 낳을 터.
“좋지 않긴 뭐가 좋지 않고. 그렇기는 뭘 그럼?”
차가운 김 양의 눈빛은 단호했다.
“죽이자는 겁니까?”
“왜 자꾸 물어보는지 모르겠는데···. 생각하고 있는 그거 맞음.”
기순이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어이-어이- 잠깐. 둘 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생존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
“······.”
“깊이 숨어있던 생존자들이라며? 그러니까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고. 일단 우리가 구해준 건 구해준 거니까. 악감정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잖아.”
문제 될 일 없고 악감정 없으면 그냥 살려 보내자는 기순의 이야기였다. 그건 PD의 의견도 같았다.
죽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건 위험했다. 만에 하나 회의록이 공개되거나 전후 처리 과정이 공개된다면?
‘생존자나 병사들을 완전히 믿을 순 없어. 인공지능도 마찬가지고.’
PD가 보기엔 사람이나 인공지능이나 똑같이 봐야 했다. 비밀유지 서약한 자들이 깨는 건 넘치도록 봤었고. 미래 변수를 생각한다면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였다.
‘인공지능에 간섭하는 능력이 생길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조금씩 인간처럼 변하는 인공지능이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PD는 그 생각을 직접 말하지 않았다. 다만, 정보를 완벽하게 차단할 방법은 없다고 가정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교전 중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안타까울 따름이지만, 지금은 전장 정리 중입니다. 상황이 끝났는데 생존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은 의혹과 음모론의 소재가 될 뿐입니다.”
마루는 김 양에게 진정하라는 신호를 눈빛을 보내곤 상황을 정리했다.
“생존자들에게 감시 붙이고, 독립 마을을 만들도록 합시다.”
생존자들만 모여 사는 마을을 만들고 지켜보자는 마루의 이야기에 다들 동의했다.
“기순이는 생존자들 감정 확인해 보고.”
“그래.”
늑대 토벌 현장 정리와 생존자 처우는 그렇게 정리됐다.
“미시소거-토론토 라인은 정리됐고. 몬트리올은 내가 정리하면 되니까 남은 곳은 퀘벡과 오타와로군.”
“퀘벡이 좀 이상합니다.”
후드가 모니터에 자료를 올렸다. 성층권 비행선이 촬영한 영상 속 퀘벡은 하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러게. 이상하네.”
눈이 좋은 김 양이 바로 이질적인 부분을 찾아냈다. 영하 60~70도를 넘나드는 혹한과 블리자드를 고스란히 맞은 도시의 모습 그 자체가 이질적이라는 김 양의 해석이었다.
“사람들이 있었다면 똥을 치웠을 텐데.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음.”
김 양이 보기에 겨울 눈은 굉장히 위험한 똥이었다.
당장 옥상에 쌓인 눈만 하더라도 그랬다. 귀찮다고 그냥 뒀다가 2~3m 쌓이는 순간 지붕이 무너질지 몰랐다.
무너지지 않더라도 균열이라도 생기면? 그 틈으로 물이 스며들고 얼어붙으면서 균열이 더 커지기 마련.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라면 약해질 것이고 목조 건물은 썩어버리겠지. 겨울 똥을 제대로 치우지 않는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작년 영상과 비교하면 확실히 달랐습니다.”
후드가 신성 왕국이 관리했던 시절의 퀘벡 영상을 올렸다.
겨울에 눈을 치우는 영상을 시작으로 굴뚝에 흰 연기가 여기저기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현재의 영상에서는 단 한 곳에서도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있었다.
“제국에서 피난민들의 증언을 모았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이상한 증언이 있었습니다.”
후드가 제국에서 확보한 증언 파일을 재생시켰다.
(퀘벡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거미줄 이야기를 했습니다.)
(거미줄이요?)
(예. 도시가 전부 휘감겼다고 했습니다.)
거미가 퀘벡을 장악했다는 증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