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71)
러스트 [RUST]-871
신성 왕국의 불간섭 원칙 선언 이후. 제국에서는 신성 왕국의 영향력을 지우려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시러큐스(Syracuse) 사태에 신성 왕국의 블라디마루 칼린 국왕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런 신성 왕국에 대한 제국민의 반감은 속으로 깊어지고 있었다.
식인귀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제국의 도시에서 설친 것도 불만이었지만, 캐나다 방면에서 피난 온 피난민들의 증언도 한몫했다.
‘괴물들이 도시를 공격해도 신성 왕국 비행선은 지켜만 보고 있었다.’
‘신성 왕국은 민간인을 구출하려고 하지 않았다.’
‘신성 왕국에서는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혹한의 추위에서 사람들이 얼어 죽는데도 구조하지 않았다.’
‘신성 왕국의 쥐떼와 까마귀가 난민을 공격해 쫓아냈다.’
제국에는 신성 왕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뉴욕 시만 하더라도 블러디마루 칼린의 도움을 받은 것이 몇 번이던가? 당연히 독이 바짝 오른 난민들 보다, 지금도 거래하고 있는 신성 왕국 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기서 구조를 거부했다면 이유가 있겠지.’
‘하긴, 신성 왕국 뒤통수를 친 사람들이잖아. 뭐가 좋다고 구조하겠어.’
‘생각해 보면 난민들 고이 보낸 것도 신사적인 행동 아닌가? 반란 일으킨 애들인데?’
‘들어보니까 배신이 일상인 애들 같던데. 우리가 받아들여도 괜찮은 걸까?’
‘그러게. 하는 짓이 이상하더라.’
‘제정신이면 식인귀 정권을 인정했겠냐?’
‘자기들끼리 모여서 무장 단체 만들면 위험할 텐데···.’
‘그렇지 않아도 용병대 만들고 의용군 만든다고 하더라.’
‘우리 정부에서 그걸 허가했다고?’
‘미쳤네. 그딴 무장 단체를 인정하다니.’
‘언제 테러가 터질지 모르겠네.’
정계와 재계는 이번 사태를 이용해 신성 왕국의 영향력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인류애를 저버린 신성 왕국.’
‘자유 캐나다 연맹. 그들은 단지 독립을 원했을 뿐.’
‘신성 왕국이 캐나다를 먹은 과정. 생존을 미끼로 굴종을 강요했다.’
‘캐나다를 식민지로 삼은 신성 왕국. 총독부를 설치해 캐나다를 통치해.’
‘인권이 없는 신성 왕국. 쥐떼와 까마귀로 난민들 공격. 해산시켜.’
‘인간보다 동물이 우선. 굶주린 난민은 내쫓고 쥐와 까마귀에 넉넉하게 식량 공급하는 모습.’
‘신성 왕국의 생존 중심주의는 거짓.’
‘강력한 군대와 기술을 독점했으면서도 난민을 내쫓은 이유는?’
제국의 정계와 제국에서 작심하고 작업하는지라 부정적인 이야기가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신성 왕국을 물고 뜯고 씹는 이야기가 제국 여론을 뜨겁게 달굴 즈음, 대규모 병력 동원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신성 왕국의 움직임이 이상하다고?”
[예.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다고 합니다.]보스턴과 뉴욕은 대서양에 닿아있어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날씨였다. 신성 왕국과 캐나다 방면은 그보다 훨씬 낮은 영하 60도에서 70도.
아무리 좋은 방한복을 갖춰 입었다고 해도 영하 60~70도라면 제대로 된 작전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대규모 병력동원? 미쳤나?
“병력을 동원한 이유가 뭔가?”
[신성 왕국에 인접한 미시소거와 토론토 지역을 공략했다고 합니다.]덴 브라운은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라고 명령했다.
“모든 것을 알아보라고 해. 병력 편제, 무장, 보급 전부.”
[알겠습니다.]‘안전을 추구하는 블라디마루 칼린이 무모하게 작전을 펼쳤을 리는 없어.’
안전과 생존. 그게 신성 왕국 국왕 블라디마루 칼린의 명분이었다. 10만에 달하는 군대를 동사(凍死)시킬 생각이 아니라면 대비를 했겠지.
‘혹한기에 대규모 작전이라.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덴 브라운은 신성 왕국 군대를 벤치마킹(benchmarking)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세한 정보를 얻긴 힘들었다. 후드와 사만다의 보안을 뚫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원정에 참여한 병사를 회유해 정보를 얻는 것도 불가능했다.
재생부대와 성장부대는 말 그대로 병사로 만들어진 자들이었다. 그들을 제외하면 악명 높은 친위대였고.
해킹도 불가능 그렇다고 원정대에 사람을 심는 것도 불가능. 덴 브라운은 예비대나 일반 병사들에게 끈을 대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1선이 어렵다면 2선. 2선이 어렵다면 3선에서 정보를 모으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나마 예비대와 일반 부대에 선을 댈 수 있었다.
그렇게 선을 댄 자들도 중요한 작전이나 정보는 몰랐지만, 전황이 돌아가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미시소거와 토론토를 점령한 늑대 무리를 밀어버리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 달이라고? 고작 한 달에 미시소거-토론토 권역을 정리했다는 건가?”
[예.]사실상 시가전이나 마찬가지였을 텐데 놀라웠다. 그 넓은 작전 지역과 수천 단위의 변이 늑대를 고려하면 더욱. 고작 10만으로 정리했다니, 전쟁 기계도 아니고.
[병력을 해산하지 않고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어디로 가고 있나?”
[퀘벡을 노린다고 합니다.]“퀘벡?”
덴 브라운의 머릿속에 캐나다 난민의 증언이 떠올랐다.
“퀘벡이라.”
거미가 장악했다고 했었나?
“우리가 확보한 자료를 넘겨주면서. 퀘벡 작전에 참관인을 보내고 싶다고 하게.”
[알겠습니다.]봄이 되면 거미와 전쟁을 한다고 했으니 공조해야 할 경우도 생길지 모를 터. 무엇보다 10만이 넘는 병력을 전부 엑소슈트나 신형 노심 아머로 완전무장했을 리는 없었다.
‘괴물 늑대를 그렇게 빨리 정리할 수 있었던 방법이 뭘까.’
덴 브라운은 그게 궁금했다.
신성 왕국은 제국이 보낸 자료를 감사히 받겠다고 했지만, 제국군의 참관 요청은 거절했다. 정보를 알려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아쉽군. 그래도 준 것이 있으니. 무엇이든 돌아오겠지.’
주고받는 건 확실한 편이니까.
그의 시선이 창밖 하늘을 향했다. 저 멀리 계속해서 고도를 높이는 비행선이 보였다.
제국의 신형 정찰 비행선의 모습이었다. 성층권 비행선 개발이 성공, 실전 배치가 시작된 것이었다.
성층권 정찰 비행선 개발 성공은 많은 것을 의미했다. 이제까지 신성 왕국이 독점하고 있던 제공권을 제국도 갖게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혹한에도 기동할 수 있는 비행선 기술의 확보. 자체 무선 통신망 구축. 그리고 공군 부활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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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소식에도 마루는 시큰둥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강자는 약자에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신성 왕국은 각성하라.’
제국 언론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한다는 소리란 그저 천박한 농담 같았다.
원주민 학살에 필리핀 식민지배, 멕시코와 남미 작업치고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전부 주물럭주물럭했던 미국의 후예를 자처하는 제국이 책임을 논하고 관용을 논하다니.
진짜 웃기는 것들이네.
마루는 가볍게 무시했다.
양심. 도덕. 인류애. 관용. 다 좋은 소리지만, 그 좋은 소리는 자기들이 먼저하고 난 뒤에 할 소리였다.
먹고 살 만 해지니까 바로 자신들의 관점을 강요하는데, 마루는 그런 명분론에 관심 없었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신성 왕국의 생존이었고 안전이었다.
“그래서 우리 쪽에 피해는 없나?”
제국 정계와 재계가 신성 왕국을 견제하거나 말거나 소비 시장은 정직했다.
[현재까지는 없습니다. 제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물량이 기존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단순한 방한용품만 해도 그랬다. 수출용으로 너프(Nerf) 해서 만든 방한용품인데도 없어서 못 팔 정도.
제국의 언론이 쉬지 않고 신성 왕국을 깎아내리고 두들겨 패고 있음에도 신성 왕국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었다.
디아나의 보고가 계속됐다.
[제국의 신형 비행선이 성층권 궤도 안착에 성공했습니다. 정찰, 통신, 방어, 공격 등 다목적 비행선으로 보입니다.]무선 정보‧통신망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제공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됐으니 슬슬 신성 왕국의 비행선을 제국 밖으로 치워달라고 하리라.
[제국에서 퀘벡 정보를 보내왔습니다.]“퀘벡 자료라고?”
[퀘벡에서 탈출한 난민들의 증언을 교차 검증한 자료입니다.]현재 10만 병력은 몬트리올과 오타와를 건너뛰고 퀘벡으로 향하고 있었다.
“회의 소집해.”
제국에서 보내온 자료를 읽곤 다들 표정이 제각각으로 변했다. 김 양은 이딴 것도 자료라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영양가도 없는 소리를 길게 해놓고 생색만 내고 있음.”
증언을 교차 검증했다지만, 김 양이 보기엔 의미 없었다. 거미의 숫자도 불분명. 어떤 거미인지 종류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어떻게 공격당했는지도 불분명했다. 그저 꺅꺅 도망친 것들이 ‘정말 무서웠어요.’ 감상평 한 줄 끄적인 정도라고 할까.
“그렇게까지 혹평할 건 아니에요.”
“그럼 이딴 자료가 의미 있음?”
나주연의 말에 김 양이 가당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하 60도 이하에서 움직이는 거미가 나왔다는 걸 알려줬으니까요.”
“···그것도 정보? 퀘벡을 거미가 점령했다면 당연한 이야기 아님?”
김 양이 더 하려는 걸 마루가 받았다.
“그리고?”
“60도 이하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거미가 있으면서도 퀘벡에서 더 퍼지지 않고 있다는 거죠.”
엄밀하게 따지자면 거미는 곤충이 아니었다.
거미라는 종 자체가 곤충과는 다른 갈래였고 계통적으로 봐도 따로 놀고 있다고 해야 했다. 그러니까 거미를 보고 곤충이라고 하는 건 실례라는 말씀.
“그런 거미지만 곤충과 비슷한 점이 있어요.”
겨울이 되면 겨울나기에 들어간다는 것.
곤충은 겨울에 움직이지 않는다. 이건 정설이었다.
마찬가지로 주로 곤충을 먹이로 하는 거미도 겨울이 되면 활동하지 않았다. 먹잇감이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
그런데 그런 일반적인 생태에서 벗어난 거미가 등장했다는 것. 그 자체가 경계해야 할 상황이라는 나주연의 설명이었다.
“퀘벡을 점령한 거미는 추위 내성이 생긴 거미인데 하는 짓도 특이하다?”
마루의 의구심을 기순이 받았다.
“확실히 그렇다고 봐야겠지. 확실히 행태는 이상하네. 어째서 영역을 확장지 않는 걸까? 퀘벡을 먹어봤으니 인간의 도시를 공격하면 사냥감이 넘친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후드가 몇몇 거미의 행태가 담긴 자료를 올렸다.
“어쩌면 알을 낳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알?”
“?”
혹한을 방패 삼아 숫자를 늘리려고 확장을 멈춘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그러니까 먹잇감은 퀘벡에 넉넉히 있겠다. 확장보다 번식의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라면? 거미들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었다.
“퀘벡을 먹고 그걸로 숫자를 늘리겠다?”
“흐응- 그럼 지금 치는 게 좋겠네.”
[적의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적의 함정?”
[거미는 식인귀들이 조종할 수 있었습니다.]“그래서?”
[퀘벡의 거미들은 신성 왕국의 대응 능력을 알아보려는 미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시에 퀘벡으로 대규모 병력이 빠졌을 때를 노린 공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이미 한 번 놈들이 썼던 방식이었다.
“그때와는 다르지. 그때는 병력이 부족했었지만, 지금은 캐나다 방면 방어부대가 철수해 본토 지키고 있잖음.”
1+1=2가 아니라 막 3, 4 이렇게 나오는 게 거미였다. 점프 거미와 거미줄 거미가 조합된다거나 독거미와 땅거미가 같이 움직인다거나 하면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일단 몬트리올과 오타와부터 겨울이 끝나기 전에 정리하지.”
그리고 퀘벡에 있는 거미 샘플을 확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마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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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이이이잉-
흑마는 겨울이 싫었다.
물론 여러 할 말이 있기에 크게 불만은 없었지만, 그래도 끓어오르는 힘을 암컷들에게만 쓰는 건 자괴감이 들었다.
이상한 년은 장난감이(신형 노심 아머) 생긴 뒤론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놈들을 등에 태우기엔 자존심이 상했고.
풍성함이 넘치는 인간 암컷도 날개 달린 놈들과 개새끼들만 돌아보고 있었다. 어째서? 왜?
히이이이이잉-
그렇게 울분에 흑마의 후각이 독특한 냄새를 포착했다. 어쩐지 어린 냄새지만, 그 속에 있는 건 분명 자신이 주인이자 친우로 믿었던 인간의 냄새였다.
푸르르르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