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72)
러스트 [RUST]-872
희연과 U+ 프로그램 개체들은 블라디 아크 타워에서 가상현실을 이용한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클론 양산에 사용하는 급속 생장기술을 이용해 12~15살 정도까지만이라도 자랐다면, 반동이 적은 화기를 다룰 수 있을 테니 현장 지휘도 가능할 텐데.
마루가 그걸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유 이사의 기억에서 벗어나 독립된 삶을 살겠다고 했으니 거기에 맞게 시간을 보내라는 이유에서였다.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추억을 쌓는 것. 그 말이 틀린 소리는 아니었지만, 희연은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태어난 년을 횟수로 따진다면 2년. 신체 성장은 5년. 머릿속에 담긴 지식과 기억의 절반 이상은 50대의 기억. 나머지 절반은 2년 동안 채워 넣은 신성 왕국에서의 삶.
이대로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난다고 해도 그 또래 애들과 같기는 틀렸다. 같아질 수 없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클론 급속 생장 기술을 이용해 15살 정도의 나이로 성장하는 게 맞았다. 최소한 짐은 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희연은 우울했다. U+ 프로그램으로 묶인 자매들은 기본적인 활동은 자율적으로 행동해도 따로 인격이 생기는 것 같지 않았다.
제국의 클론 기술로 유전자가 조작됐기 때문인지, 살아있는 생체 안드로이드와 같았다. 이래서는 독립할 수 없을 터.
클론이라고 하더라도 독립된 인격을 갖추게 된다면 인간으로 인정하겠다고 했었는데, 희연과 함께하는 U+ 자매들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고 먹고 화장실 가는 정도에 반응에 따른 대응만 있었지, 무언가 자발적으로 한다거나 그런 게 없었다.
이런 특징을 연구하고 싶은 나주연과 연구원들이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했었는데 희연이 거부했다. 대체로 이런 쪽의 연구는 해부를 동반했기 때문이었다.
“엉망이야.”
아직도 혀 근육을 비롯해 몸을 움직이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후 처리를 받았다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아무래더 결파늘 지어야게써.”(아무래도 결판을 지어야겠어.)
2년을 기다렸으면 많이 참고 많이 기다린 것. 급속 생장기술로 15살. 그게 힘들면 12살 크기로라도 성장시켜 달라고 해야 했다.
희연은 U+ 자매의 품에 안겨 축사로 향했다. 저번에 괜히 친한척하던 흑마가 떠올라서였다. 김 양을 태우고선 불만이 많은 것처럼 인상을 쓰던 말이었는데 희연을 보곤 반가워라 했었던 말이었다.
히이이이이이잉-
뭔가 불만이 많은 듯한 울음소리에 이어 갑작스럽게 흥분한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쿵- 쿵- 나무로 만든 축사가 흔들리나 싶더니 우지끈- 걸쇠로 잠긴 여닫이문이 부서지며 흑마가 달려왔다.
사육사가 ‘어- 어-’ 고삐를 잡으려는 것을 머리를 크게 흔들어 뿌리친 흑마가 희연과 U+를 향해 달려왔다.
히이이이이이잉-
무슨 자동차 마크에 찍혀있는 말처럼 앞다리를 번쩍 들었다가 그 자세로 잠시 폼잡은 흑마가 희연의 앞에서 자태를 뽐냈다.
푸릉푸르으르르-
왜 이제 왔느냐는 듯한 흑마의 소리에 희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흑마가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
희연은 U+ 자매들과 함께 마루를 찾았다.
“그래서. 흑마와 같이 식인귀 사냥을 하고 싶다고?”
“네ㅍ- 예.”
바싹 긴장한 희연이 혀를 씹어가면서도 꿋꿋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본 마루는 거대한 검은 말을 떠올렸다.
‘흑마라···. 패왕이라고 불렀었지.’
식인귀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말이었다. 잠시 김 양이 타고 다녔었지만, 그녀 전용 노심 아머가 생긴 뒤로는 현역에서 물러난 말이었다.
‘지금은 2세 생산에 힘을 쓰고 있다고 했었나···.’
큼. 흠-
“그 몸으로 흑마를 타고 현장에 다니겠다고? 그건 무린 거 알지?”
“그. 급속 선장(성장)으로 15살. 12살이라도···.”
희연은 필사적으로 설명했다. 급속 성장 도중에 멈춰져서 아직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급속 성장하다가 멈춰진 상태라 오히려 성장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몸은 4~5살인데 그 연령대 근력도 없고, 4~5살처럼 활동성도 없는 상황이라, 평균치 이하의 발육상태라고 주장했다. 차라리 급속 성장기술로 12~15세에 맞는 육체가 되는 것이 낫다는 이야기.
지금 5살 6살 이렇게 자란다고 또래와 좋은 추억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희연이었다. 지금 이대로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어린 육체에 갇힌 꼴일 뿐이라며 애원했다.
“어린 육체에 갇힌 것 같다···.”
유 이사의 기억과 잔재에서 벗어나 독립된 개체가 되겠다고 선언한 희연이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자라도록 해준다고 한 건데. 그게 오히려 어린 육체에 갇힌 느낌을 주고 있었다니.
“성장에 문제가 생긴 게 맞나?”
마루가 나주연에게 확인했다.
“병이라고 할 정도로 문제가 생긴 건 아니지만, 평균적인 성장률을 생각하면 평균 이하의 성장률인 것 확실해요.”
나주연이 희연의 자료를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생각해?”
“당사자가 간절히 원하는데 막는 건 좀 그렇지요?”
하긴. 어린 시절 추억을 쌓으라고 유치원에 보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어디까지 성장할 건지는 전문가와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고.”
마루가 자세를 낮춰 희연과 시선을 맞췄다.
“신성 왕국은 이제 강해. 앞으로 더 강해질 거고. 그러니까 전쟁이나 토벌, 사냥으로 네 가치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기억 때문에 힘들겠지만, 그래도 너만의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마루가 희연의 머리를 쓰다듬곤 몸을 일으켰다.
“······.”
‧
나주연은 희연과 함께 연구실로 내려왔다.
“흑마와 같이 식인귀 색출. 사냥하고 싶다고 했죠?”
“네.”
“그럼 무기를 쓸 수 있는 체격을 고려해야겠네요.”
키는 140cm~150cm, 몸무게 35kg~40kg 전후.
“이 정도가 최소치고 더 크고 무거울수록 유리하죠.”
“김 양과 나루즈는···.”
“둘 다 체형 좋죠. 하지만 그쪽은 너무 갔어요. 그분이 하신 말씀 무시할 생각인가요?”
어린 시절을 그냥 없애지 않았으면 하는 이야기.
“채. 최대한 크게.”
“알겠어요. 발성 기관 강화에 신경 쓸게요.”
희연은 강화에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신체 강화가 가능하면 최대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가요? 정말이죠?”
나주연의 눈빛이 번들번들 빛났다.
실험···이 아니고, 의뢰인이 꼭 원한다는데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 강화 기술이 연구되고 있었는데 딱 맞는 실험 의뢰인이 생기다니. 이 또한 우주의 뜻 아니겠나.
“확실히 대답하세요. 정말 신체 강화를 했으면 좋겠어요?”
“···네.”
나주연이 태블릿을 내밀었다.
“거기에 서명하세요.”
싸인(sign) 말이다.
‧
‧
‧
13살 정도로 자라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중간에 이런저런 신체 강화 프로그램이 추가된 결과. 무려 160cm 가깝게 성장한 희연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160cm에 50kg대 몸무게. 이 정도면 무거운 중화기를 제외한다면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몸이었다. 게다가 강화 때문인지 전신에서 힘이 솟았다.
“신체 능력을 강화했어도 진짜 신체 능력 각성자와 비교하면 약하니까 주의하도록 하세요.”
“네.”
주의 사항을 전달하는 나주연에게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는 희연이었다.
이제는 U+ 자매들과 비교해도 그렇게 막 작은 편이 아니었다. U+ 클론의 생물학적 나이는 18~20살가량.
희연은 13살이었지만 강화를 통해 13살보다는 큰 편이라 실제로는 크게 차이나 보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희연은 한 사람 몫을 하게 된 것만 같았다.
“오래 기다렸지?”
히이이이이잉-
푸륵- 푸르르륵-
그런 희연의 모습이 좋다고 투레질하는 흑마였다. 패왕의 목덜미와 갈기를 쓰다듬은 희연이 날렵하게 뛰어올라 앉았다.
“그래. 가자. 파트너.”
식인귀를 잡으러.
U+ 자매들이 할리 오토바이를 타고 희연의 뒤를 따랐다.
‧
‘눈 속에 터널이라니.’
항상 누군가에게 안겨 이동했던 희연 인지라 모든 것이 신기했다. 눈과 얼음 속에 3.5m 높이로 판 반원형 터널은 환기구를 비롯해 비상 탈출로까지 완벽한 모습.
길게 잡아야 5개월 정도를 쓰기 위해 이런 대공사를 하다니. 이게 가능한가 싶었지만, 전용 얼음 터널 굴착 장비를 만들어 버린 신성 왕국의 과학 기술력 앞에선 간단한 일이었다.
디트로이트에서 다리를 건너 윈저로 들어가자, 고작 다리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도 느낌이 달랐다.
신성 왕국의 수도에 가까운 윈저였지만, 5m 넘게 눈이 쌓인 도로를 제설하기보다 터널 기계로 터널을 뚫어 생활하고 있었다.
1~2층은 터널과 연결됐고 3~4층은 눈과 얼음 속에, 다시 4~5층은 눈 밖으로 모습이 드러난 상태였다.
“이런 식이면 냄새 맡기 힘든 거 아니야?”
사방이 연결된 얼음 터널이었다. 환풍구도 여기저기 뚫려있었고.
푸르르르릉- 푸릉-
찾을 수 있다는 듯 투레질하는 흑마. 희연이 알았다는 듯 목덜미를 두들기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믿을 게.”
흑마와 소녀는 반짝이는 얼음과 흰 눈으로 만든 미로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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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이 넘는 병력이 몬트리올(Montreal)을 우회하기 시작했다.
[곰들이 도시 밖으로 나오지 않습니다.]“이상합니다. 저 정도 곰이라면 숫자 따위는 무시할 수 있다는 걸 알 텐데.”
“그게 다 우리 최고 존엄 때문이지. 건드렸다가 강림해버리면 뒈진다는 걸 아니까 사리는 것임.”
디아나의 보고에 후드와 김 양이 한마디씩 했다.
쿠오오-
10만의 병력이 멀찌감치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챈 곰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지켜 보고 있다고 소리칠 뿐 딱히 공격하러 나올 기세는 없었다.
쿠오오오오–
그러니까 다가오지 마. 나도 안 간다. 이런 정도.
“쟤들 눈치 보는 거 같은데?”
[선제공격하거나 기습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사실 곰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와 군대를 공격했다면 마루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병사들과 곰이 뒤엉킨 곳에서 죽음의 정원을 소환하긴 힘들 테고.
“신형 라이플이면 통할 것 같은데.”
[피어를 이용해 전열을 무너뜨린 뒤, 돌진할 확률이 크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교전은 불합리한 선택으로 보입니다.]살기에 가까운 피어를 발산하는 곰들이 수십, 수백 단위로 달려들 경우, 그걸 한 번에 막을 방법은 없었다.
어쨌든 곰들이 도시에 콕 박혀있기를 선택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
“퀘벡까지 얼마나 걸리지?”
[빠르면 3일에서 늦어도 4일로 예측됩니다.]하지만 디아나의 예측은 틀리고 말았다.
[···너무 큰 일교차 때문에 행군 속도를 조정해야 합니다.]10만이 넘는 병력 대부분이 도보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날씨가 지랄 맞으면 정말 피곤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이 그랬다.
영하 60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순간적으로 75도 이하로 떨어졌다. 웃기는 건 최고 온도는 15도까지 치솟은 것.
일교차가 50도 이상 벌어지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영하 50~60도 이하를 대비한 방한복을 입고 그대로 행군하면 영하 10~15도에서는 사우나 찜질이 됐다.
그래서 일반 방한복으로 갈아입고 행군하는데 갑작스럽게 기온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멈추고 다시 특수 방한복으로 바꿔입어야 했다.
이동에 필요한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널뛰는 환경에 노출된 시간이 길어질수록 비전투 손실이 커지기 시작했다.
장거리 원정을 통해 신성 왕국은 교훈을 얻었다. 빌어먹을 이상 기후가 판치는 겨울에는 신형 장비고 나발이고 작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퀘벡까지 30km 남았습니다.]뼈아픈 교훈과 함께 퀘벡이 하루 거리에 들어왔다.
[움직임이 없습니다.] [적 거미줄 발견.] [거미줄이 얼어있습니다.]상황이 더러운 건 거미들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