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76)
러스트 [RUST]-876
2월 중순이 지났어도 겨울은 끔찍한 추위를 떨치고 있었다. 일교차가 50도에 이르는 이상 기후와 밤에는 영하 70도까지
추가로 온 예비대를 합해 15만이 넘는 신성 왕국 군대가 퀘벡의 지상을 점령했지만, 지하 3층 아래에 있는 거미들은 아직 건재했다.
거미들은 시시각각 적게는 수천, 많게는 만 단위로 나와 진지 이곳저곳을 찔러봤다. 마치 진지에서 약한 부분을 찾는 것처럼.
15만이 한곳에 있지는 않았기에 천 단위로 주둔하고 있던 곳은 거미들의 찔러보기에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한다는 것은 항공지원을 비롯해 탄약의 소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김 양이 퀘벡 지하에 있는 거미 굴을 발견하고 고작 닷새가 지났건만, 남부연맹 작전에서 소모했던 자원보다 더 많은 물자를 소모하고 있었다.
[닷새 동안 지켜봤으면 많이 지켜본 거 아님?]김 양이 결단을 촉구했다. 수소폭탄을 쓰자는 것. 120Mt 짜리 크고 아름다운 핵으로 지하를 박살 내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위험하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터질지 안 터질지도 모르고 설령 화산이 터져서 화산재가 쌓인다고 해도. 우리는 충분히 살 수 있는데 뭐가 문제임?]후드가 지치지도 않느냐는 표정으로 나무라자 김 양이 옳거니 되받았다.
[그렇게 쉽게 생각할 건 아니에요. 일단 지표면에 있는 물은 전부 오염된다고 봐야겠죠. 필터로 거른다고 해도 순식간에 필터가 막힐 겁니다. 막대한 양의 필터가 필요한데, 신성 왕국 시민이 쓸 필터를 만들 자원도 설비도 시간도 없어요.]정수 필터뿐만이 아니었다. 공기 필터도 마찬가지.
나주연의 말에 김 양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화산재와 먼지가 독하다는 건 그녀도 충분히 경험해서 알고 있었다.
일본으로 탈출했을 때 요트에서 필터 막혀서 얼마나 고생했던가? 일본에 갔다가 이상한 괴물 딱지와 화산재, 먼지 덕분에 정말 힘들었었다.
같이 경험했던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이건 지진이건 안 터지면 모르겠지만, 터지면 뒷감당하기 어렵다는 거다.”
군대가 2~3달 정도 쓸 분량의 필터라면 이리저리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신성 왕국 국민이 모두 사용할 수 있을 분량을 단기간에 생산한다? 불가능했다.
신성 왕국이 자랑하는 스마트팜 시스템도 물이 없으면 돌아갈 수 없었으니 마찬가지였고 스마트팜에 들어가는 물을 돌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막대한 양의 필터가 필요했다.
[그나마 모듈원전과 핵융합 발전이 있어서 햇빛 문제는 자유롭겠네.]기순이 걱정인지 응원인지 모를 소리를 한마디 했다.
태양을 대체할 LED 파장 램프가 있으니 화산재와 먼지로 가려지는 건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였지만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확실한 건. 정수 필터와 공기 필터도 그렇고 현재 신성 왕국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택 사양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 양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분진 때문에 폐가 망가진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걸 봤었으니까.
마스크를 쓰고 창문 틈마다 테이프를 붙여서 미세한 입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음에도 결국에는 몸이 망가진 사람들.
[수소폭탄 쓰면 100% 화산이 터진다는 거야?] [절대적으로 터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죠. 그럴 확률이 매우 높다고 밖에는요. 다만 옐로우 스톤 화산만 위험한 게 아닙니다.] [그럼?] [북미에는 대규모 화산이 여럿 있어요. 그 가운데 하나만 터지더라도 연쇄적으로 화산 폭발이 일어날 수 있고요. 지진 단층도 상당히 많지요. 북미 전역에서 연쇄 지진이 일어날 수 있지요. 둘이 같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그래서 100%가 아니라 10%의 확률만 있어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나주연의 설명에 김 양이 혀를 찼다.
[칫- 됐음. 그럼 어떻게 할 건데 거미는? 저거 내가 보기엔 우리 존엄이 내려가서 ‘살!’하는 방법과 수소폭탄밖에 답이 없어 보였는데.] [지표에 큰 영향이 없는 전술핵을 사용하면 어떻겠습니까?]3Mt에서 5Mt 정도의 전술핵이면 거미 잡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후드의 의견에 김 양이 흥- 코웃음 쳤다.
[안에 구조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고 구조를 파악할 수도 없는데, 전술핵을 어떻게 쓰시려고? 그리고 한 발 터지면 거미들 사방으로 도망칠 텐데. 어쩌려고. 내가 괜히 큰 수소폭탄으로 날려 버려야 한다고 한 게 아님.] [에- 또- 거미가 들쥐를 잡았다고 했잖아요.]‘그래서?’ 라는 눈빛들에 간호사가 흐끅-하는 숨소리를 삼키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니까 이 근방에 있는 쥐들과 거미는 사이가 나쁘겠죠. 에- 이 근처에 있는 쥐들이 거미와 싸울 수 있게 도와주면···.] [좋은 생각입니다.]PD는 간호사의 의견을 적극 지지했다. 신성 왕국 소속의 신앙심 깊은 쥐들을 이곳에 자생하고 있는 들쥐 무리에게 보내 전도하자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주 잠깐 실존하는 죽음을 보여준다면, 야생 들쥐들도 믿음으로 성전에 참여하리라는 주장이었다.
[불꽃 쥐를 교관으로 삼고, 산성 쥐를 특공대로 사용한다면 함정과 거미줄을 무력화시키면서 내부를 공략할 수 있습니다.] [흐응- 억 단위의 거미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되겠음?]흐릿한 미소를 지은 PD가 단언했다.
[숫자라면 이쪽도 뒤지지 않습니다.]먹이가 충분하고 환경이 적절하다면 젊은 쥐 한 쌍이 1년에 3백 마리에서 최대 1천 마리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신성 왕국에서는 쥐의 번식을 제한하고 있었다.
그 규제를 푼다면 어떻게 될까? 근방에 있는 야생 들쥐를 포섭해 동시에 숫자를 늘린다면? 그래도 거미들이 숫자를 무기로 삼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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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대는 퀘벡에서 빠져나와 진지를 세웠다. 굳이 도시 안에 진을 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까아아악. (저쪽이다.)
깍. (확인.)
까마귀 폭격대가 거미를 폭격하는 날들이 흘러갔다.
까아아악! (놈들이 도망칩니다!)
까아! (쫓지 마!)
도망치는 거미를 추격하려는 신병 까마귀를 나무라는 고참 까마귀. 건물에는 거미의 함정이 있다는 말과 함께, 맡은 바 임무에 집중하라는 잔소리를 바가지로 먹는 신병이었다.
“까마귀들은?”
[새로 들어온 신병 까마귀들이 호기심 때문에 작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제외하면 큰 피해는 없습니다.]PD와 간호사의 주도로 산성 쥐와 불꽃 쥐, 그리고 신앙 쥐들이 근방에 있는 야생 들쥐를 포섭하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예측한 대로 들쥐들은 퀘벡 지하에 있는 거미에 대해 강렬한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찌이이이익! (죽음의 신께서 너희에게 복수할 힘을 내려 주시리라!)
찍! 찌이익! (보라! 그분께서 주신 힘을!)
산성 쥐가 침을 뱉자, 강철처럼 강한 탄성과 끔찍한 접착력을 가진 거미줄 뭉치가 서서히 녹아내리는 모습에 들쥐들이 털을 빳빳하게 세웠다. 어찌 저런 일이.
찌이이이익! (불타오르리라!)
죽음이 두려운가? 죽음의 신을 믿고 죽는다면 낙원으로 가게 될지니, 복수의 불꽃이 되어 믿음을 불태우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불꽃 쥐가 전용 폭탄을 둘러매고 거미 무리에 달려들어 싸운 뒤 장렬하게 폭발하는 모습은 복수심 가득한 들쥐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전용 무기로 무장하고 단단한 갑옷으로 전신을 가린 신앙 쥐, 이단심문관들이 같은 쥐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전투력으로 거미들과 싸우는 모습까지.
찌이이익? (믿습니까?)
찌이이익! (믿습니다!)
야생 들쥐 무리는 그렇게 신성 왕국 쥐에게 흡수됐다. 고작 일주일 동안 포섭한 숫자가 150만이 넘었다.
물론 모든 들쥐 무리가 포섭된 건 아니었다. 죽음의 신 따위는 없다는 말과 함께 마루를 모욕하는 쥐도 있었다.
합류를 거부한 채 대놓고 뒤통수를 노리는 들쥐 무리를 한 곳으로 모으자, 그것만도 10만에 달했다. 기순은 그 압도적인 물량에 혀를 내둘렀다.
[몬트리올 쪽 들쥐는 저번에 한 번 쓸어버리지 않았었냐? 그쪽 쓸면서 퀘벡 쪽도 한 번 치우지 않았어?]“벌써 1년이 지났으니까.”
[그래서 거부하는 쥐들을 왜 한 쪽으로 모은 건데?]“죽음을 보여달라는 거다.”
성전에 참여하지 않고 믿음이 없는 쥐에게 죽음을. 신성 왕국 쥐들은 죽음이 강림해 심판을 내리길 기원했다.
나주연이 대량의 죽음은 피하라고 했지만, 이건 피할 수 없었다. 여기서 뺀다면 그들이 열렬하게 믿는 죽음의 신이라는 이미지가 사라질 테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10만 전후라는 숫자였다. 개미 제국에서 날뛰었던 것처럼 숫자 무시하고 날뛰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적당히 죽이고 적당히 빠지면 되리라.
‘만 정도만 죽이고 빠지면 되겠지?’
제트팩으로 날아오른 마루가 불신 들쥐 무리 중앙에 착지했다. 파직- 밀집된 들쥐 무리 속으로 내려앉자, 그대로 전원이 나가버리는 제트팩.
쯧-
거미랑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한 들쥐였기 때문인지, 합류를 거부한 들쥐 무리도 어지간한 신성 왕국 쥐보다 덩치가 컸고. 생체 EMP도 강했다.
찌익! (인간!)
찌이익? (인간이 왜?)
150만이 넘어 거의 200만 가까운 쥐떼에 포위당한 10만의 들쥐 무리가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떨어진 인간을 보곤 웅성거렸다.
그리고 불신 들쥐를 포위한 200만의 쥐들은 흥분했다. 중간중간 마루를 알아본 신성 왕국 쥐들이 경배와 찬양을 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분이 오셨다.
죽음이 오셨다.
불신자에 영원한 죽음을.
순교자에 영원한 축복을.
200만에 달하는 쥐떼가 마루의 모습을 보기 위해 서로의 몸을 타고 올라섰다. 마치 거대한 도넛 모양으로 불룩 치솟는 괴이한 광경.
우글우글 미끄러지면 무너지고, 무너져 내린 쥐들이 다시 기어 올라가고. 죽음의 신을 보기 위해 해일처럼 일어나는 모습에 합류를 거부한 쥐들이 질려버렸다.
찌이익! (미친놈들!)
찌이이! 이이이익! (죽음의 신은 무슨! 인간을 죽여!)
찍찍찍! (인간을 죽여야 놈들이 정신 차릴 거다!)
포위당한 들쥐들이 마루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고 펄쩍 점프해 마루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 넣으려던 들쥐 한 마리가 허공에서 굳었다.
점프해 날아가는 관성도. 목표를 향해 뻗었던 살의도 전부 멈춰버린 모습.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마루의 아킬레스건을 노리고 입을 벌렸던 들쥐도. 정강이를 물어뜯으려 했던 놈도. 뒷목과 사각지대를 노렸던 그 많은 들쥐가 허공에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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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발밑에서 솟아오른 검은 넝쿨들이 하늘하늘 들쥐들을 얽어매고 있었다. 쭈우우우욱- 시간을 빨리 감아버린 것처럼 검은 넝쿨에 붙잡힌 들쥐의 살이 홀쭉하게 변하더니, 이윽고 가죽만 남아버렸다.
휘적-
턱-
생기가 전부 빨린 가죽 껍데기를 내팽개친 넝쿨이 삽시간에 수십 배로 늘어났다. 그와 동시에 마루를 중심으로 동그란 정원이 펼쳐졌다.
그것은 죽음을 형상화한 것 같은 정원. 죽음이 생명을 수확해 가꾼 정원이 반경 100m 가깝게 확장됐다.
마루를 공격하려고 했던 들쥐들 가운데 정원에 빠진 들쥐들은 순식간에 가죽만 남아버렸다. 철근 콘크리트를 끊은 강력한 이빨도, 인간의 장비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해진 머리도 죽음이라는 재난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고작 몇 초 남짓한 시간에 만 단위의 들쥐가 가죽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살아있는 죽음이란 얼마나 모순적인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현실이 그랬다. 죽음의 정원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스스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수천, 수만으로 갈라진 넝쿨이 정원 주변에 있는 들쥐의 생명을 갈취했고. 맥동하는 것처럼 죽음의 정원이 넓어졌다.
그리고 다시 늘어난 넝쿨과 풀잎이 생명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10만이 넘었던 들쥐들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린 시간은 채 30초가 넘지 않았다.
살아남은 5만 남짓한 들쥐들이 살아보겠다고 이리저리 몰려다녔지만,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200만 쥐들은 살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쥐 특유의 소리로 죽음을 찬양할 뿐.
살려달라는 처절한 들쥐들의 울부짖음.
죽음의 신이 강림하셨다. 불신 쥐는 죽으라는 장엄한 찬양.
그리고 생명을 찢어발기는 채찍소리와 온기를 통째로 삼키는 뱀 기어가는 소리가 뒤섞였다.
고작 30초 남짓한 순간이 영원히 잊지 못할 시간이 됐다.
그 참혹한 현장을 보던 기순이 가늘게 떨리는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말했다.
[미친-] [······.]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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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 만에 절반 넘게 죽인 것 같아. 죽음의 정원을 멈추려고 했건만, 사방에 널려있는 생명에 자극을 받았는지, 죽음의 정원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 들쥐의 공격을 자동으로 방어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것들 이렇게 통제가 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했다.
‘여기서 끊어야 해.’
사방팔방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들쥐들도 이제는 확연히 숫자가 줄어있었다.
후으으읍- 후으으읍- 하아-
마루는 호흡을 반복하며 집중했다.
‘멈춰. 멈춰. 멈춰.’
그렇게 얼마나 집중했을까.
죽음의 정원이 확장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뒤 촉수처럼 위를 향해 흔들리는 넝쿨과 풀잎이 하늘하늘 하늘을 행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만에 달하는 쥐들은 죽음의 신을 부르짖었고. 광기에 휩싸였다.
그들은 보았다.
실존하는 죽음을.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을.
죽음의 신께서 이르시길 거미를 잡으라 했으니!
찌이이익! (성전이다!)
찌이이익! (성전이다!)
200만 마리의 쥐떼가 거미 굴을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