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77)
러스트 [RUST]-877
복수심에 불타는 200만 들쥐떼가 돌격했지만, 퀘벡 지하를 점령한 거미와의 전쟁은 쉽게 결판나지 않았다.
[거미줄이 문제라고 해요.]지하로 내려갈수록 기온이 따뜻해졌기 때문에 얼어붙었던 거미줄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김 양이 진입했을 때도 따뜻한 고치 공간이 나오면서 엄청난 숫자의 거미들이 출몰했다. 그녀가 후퇴한 이유도 엄청난 숫자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많은 거미가 쏘아대는 거미줄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커튼처럼 처진 거미줄을 시작으로 천장과 벽, 바닥에 숨겨진 함정과 거미들이 가득한 공간. 그런 곳에 아무런 장비도 없이 내려갔으니, 어느 지점에서 병목현상에 걸려 꽉 막혔을 터.
장비 이야기하는 건 좀 우습기도 하지만, 신성 왕국 소속 쥐들에게는 다양한 장비를 준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싸울 날이 많은데 허무하게 잃는 건 아니었다.
“올라오라고 해.”
[예?]간호사가 눈을 깜박였다. ‘성전이라고 뛰쳐나간 애들 보고 그냥 올라오라고 하라고요?’ 하는 눈빛.
“내가 올라오라고 했다고 해.”
[아-에- 옛.]간호사의 말에 전령 쥐들이 지하로 내려갔다. 그렇게 쥐떼와 거미의 대규모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실제 교전 시간은 대략 반나절 남짓. 그 짧은 시간에 이쪽은 대략 80만이 죽었고 거미 측은 최소 150만 최대 200만이 죽었으리라 예상됐다.
근방에서 흡수한 들쥐들이 한 번에 200만에서 120만으로 줄었다. 거미들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알 수 없었고.
“주변을 순찰하면서 야생 들쥐 무리가 있으면 전부 데려오라고 해.”
[에- 가까이 있는 애들은 다 데려왔을 텐데요?]“더 멀리까지.”
[에-옛.]고작 반나절에 80만이 죽는 게 가능한가? 여기에 거미까지 합하면 반나절에 230만에서 280만의 생명이 사라진 것이었다.
두근-두근-
엄청난 숫자가 죽었다는 생각과 함께 어쩐지 심장이 점점 강하게 뛰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당장 지하로 내려가고 싶다는 충동이 치밀어올랐다.
흐으응흡- 흐으으읍- 하아아아-
깊은 호흡을 반복하며 마음을 다스린 마루의 발밑에는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듯 작은 넝쿨과 풀잎 가득한 죽음이 그림자처럼 피어올라 있었다.
아니.
안 돼.
들어가.
슬금슬금 작게 피어올랐던 죽음의 넝쿨이 꼬리를 내린 애완견처럼 발끝을 배회하다 서서히 사라졌다.
길게 숨을 내쉰 마루는 나주연이 경고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다수의 생명을 한꺼번에 죽이는 건 위험할지 모른다는 경고.
합류를 거부한 10만의 들쥐 가운데 1~2만 정도만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들쥐들이 먼저 선제공격하는 순간 일이 틀어졌다.
자동으로 펼쳐진 죽음이 들쥐들을 말 그대로 지워버렸다. 만 단위의 생명이 꺼지는 시간은 고작 10초 남짓에 불과했다.
10만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30초 언저리. 그러니까 만 마리를 죽이는 데 걸린 시간이 10초라면 4만을 더 죽이는 데 걸린 시간은 20초. 더 빨리 더 많이 죽일 수 있게 됐다는 의미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아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위험을 경고했던 심장이 어쩐지 낯설게 뛰는 듯한 느낌에 마루는 호흡을 가라앉혔다.
살기가 변해서 죽음의 개념으로 변했고, 죽음이 유형화한 모습이 정원의 모습이었다. 생명을 거름 삼아 피어나는 정원.
그게 무슨 의미건. 자신의 살기가 변하면서 생긴 것이었다. 그렇기에 마루는 끌려다닐 생각이 없었다. 그게 설령 진정한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두근-
두근- 두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다.’
마루는 어느새 빼꼼 머리를 내민 죽음을 지워버렸다. 반짝반짝 검은 입자가 허공 속으로 녹아들었다.
‧
마루의 명령에 따라 새로 편입된 들쥐들이 사방을 이 잡듯 훑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인간 마을 근처에는 거의 다 들쥐 무리가 있었다. 인간이 버린 음식물 찌꺼기로 시작해 인간이 보관하고 있는 식량, 인간을 노리고 주변을 배회하는 동물과 인간 그 자체까지. 인간의 마을이란 들쥐 무리에게 있어 화수분 같은 존재였다.
[생각보다 작은 규모의 들쥐떼가 많이 있었어요.]무려 100만에 가까운 들쥐 무리가 추가로 합류했다. 80만이 줄었는데 하루 만에 다시 100만이 늘어난 것.
물론 합류를 거부하는 들쥐 무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마루에 대한 신앙심이 하늘을 뚫고 올라간 쥐들은 합류거부를 불신, 이단으로 규정해 ‘도시락’형을 선고했다.
그렇게 들쥐 무리를 흡수하는 도중,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외곽에 터를 잡은 들쥐들은 개미와 싸우고 있다고?”
[예. 작은 규모의 개미 왕국이 제법 많은 것 같아요.]하긴. 디트로이트 인근만 하더라도 작은 규모의 개미 왕국이 수십 개나 있었다. 캐나다 지역은 더 넓고 인구 밀도도 낮았으니, 개미와 들쥐가 많이 있어도 이상할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나?”
[들쥐 무리 숫자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개미도 문제긴 했다. 모든 개미가 전부 변이를 일으킨 건 아니지만, 지금도 속속 변이를 일으키고 있을 터.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어떤 곤충학자의 주장대로라면 개미는 조(兆) 단위도 아니고 경(京) 단위 숫자였으니까.
마루가 수상도시를 건설하면서 우주식민지까지 생각하게 만든 이유 가운데 하나가 개미였다. 수소폭탄이 없었다면 깔끔하게 개미 제국을 밀어버릴 수 있었을까?
마루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개미 제국 상층부가 도망쳐 새로 세력을 꾸리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억 단위로 몰려오는 개미. 그것도 땅굴을 파고 아래로부터 밀고 들어오는 개미를 막을 방법이 있었을까? 수소폭탄 말고?
시간이 지날수록 수상도시만으로 안전과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마루였다.
몇 명 정도라면 비행선에서 생활하면서 자원이 떨어질 때마다 지상에 내려오는 식으로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그걸 다르게 말한다면 신성 왕국 시민 대부분을 버린다는 걸 전제로 한 이야기였다.
그들을 버리는 순간, 많은 보조 인공지능도 버린다는 뜻이었고. 늑대와 까마귀, 까치, 산성 갈매기 쥐떼도 대부분 버린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소수 정예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환경에서? 규모는 생존에 불리하기도 했지만, 때론 규모가 작다는 것 자체가 위험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무엇보다 마루는 약속을 어길 생각이 없었다. 신성 왕국 시민들이, 동물들이 자신을 따르는데 먼저 손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이번 봄은 정말 위험하겠군.”
마루의 혼잣말 같은 소리에 간호사는 그저 눈을 깜빡였다.
“수상도시 입주를 5월 이전에 마쳐야겠는데 가능할까?”
[기초 작업과 핵융합 발전소, 배리어(Barrier) 공사가 끝나서 충분히 가능해요.]수상도시는 점점 규모를 키워 지금은 상당히 큰 면적이 됐다. 그렇게 처음 계획보다 규모를 크게 잡은 이유는 하나였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매스 드라이버가 하나로는 부족해. 최소한 4개 이상으로 부탁해.”
[바로 우주식민지 건설에 들어가실 건가요?]“실증실험과 시행착오를 생각한다면 최대한 빨리 진행하는 게 좋지 싶어.”
[네. 그렇게 준비할게요.]과중한 업무임에도 나주연은 선선히 대답했다.
“고맙다.”
[···별말씀을.]나주연이 작게 당황한 목소리로 답했다.
[수상도시만으로는 힘들겠음?]“예감이 조금씩 비틀리기 시작하는 걸 보면 그래.”
우주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상도시 선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거미도 이렇게 지랄인데 경 단위의 개미라면 뭘 어떻게 하든 답이 없었다.
[예감이 비틀림? 촉이? 어떻게?]“위험을 경고하는 쪽이 아니라, 생명을 거두는 쪽으로.”
‘그게 무슨 소리임?’ 하는 김 양의 눈빛에 마루는 자기도 모르게 봄이 되어 억 단위의 개미들이 공격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예전 같았으면 그게 사실일 경우 심장이 두근거리며 긴장감이 커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졌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억 단위의 생명체가 적대감을 품고 온다. 억 단위의 생명체를 어떻게 죽일까? 그와 동시에 다시 꿈틀거리며 죽음이 반응했다.
작게 피어오른 죽음의 넝쿨이 주변에 위험이 될 만한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슬쩍 뉴클립스를 향해 뻗어가다가 검은 입자로 변해 허공으로 녹아들었다.
[지금 뭐임?]“개미들이 억 단위로 온다고 생각했더니 그런 거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위험이 온다면 피하고 대비하는 쪽이었다면, 이제는 위험이 오는 쪽으로 가고 싶다는 충동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럼 위험한 거 아님?]“아직 완전히 변환된 건 아니라서 괜찮기는 한데.”
마루의 입에서 탄식 같은 숨이 삐져나왔다.
“피곤하네.”
[에? 그럼 쉬셔야죠.]간호사가 펄쩍 뛰었다. 무조건 안정적인 휴식을 취해야 한다며 호들갑 떨었다. 마루는 피식 웃곤 일 마무리 하고 쉬겠다고 했다.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억 단위의 개미가 쳐들어오는 상상을 했지만, 사실 마루의 머릿속은 그 이상을 보고 있었다.
경 단위의 개미들이 지상을 활보하고 마찬가지로 조 단위의 거미들이 사방에 거미줄을 펼치는 광경.
그에 필적하게 불어난 쥐떼와 거대한 육식, 초식동물들이 지축을 뒤흔들며 뛰어다니는 지구엔 인간의 자리가 없었다.
다시 꿈틀거리는 죽음이 마루를 유혹했다. 전부 쓸어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살기가 변해 죽음이 된 건 우연이 아니라고.
억 단위를 넘어 조 단위의 생명을 흡수한다면 어떻게 될까? 두근거리는 심장은 이제 경고인지 터질 듯한 기대감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마루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비틀린 감각과 감정을 삼켰다.
“퀘벡의 거미를 단기간에 없애는 건 불가능해. 그러니 놈들의 먹이 공급을 막고, 이쪽은 숫자를 불려 누른다.”
[숫자요?]“그래. 숫자. 지금부터 전쟁에 참여하려는 들쥐는 무조건 3번 이상 번식해야 한다고 해.”
[에?]복수하려는 쥐는 3번 새끼를 낳을 것. 그러니까 성전에 참여해 쥐 낙원으로 가려면 3번은 자식을 봐야 한다는 방침이 세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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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둬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들쥐의 숫자가 폭증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들쥐에게 제공되는 먹이엔 나주연이 만든 성장 가속 약물이 조금씩 함유되어 있었고. 갓 낳은 새끼 쥐가 성장하는 기간을 대폭 줄였다.
4월 초가 될 무렵 퀘벡 전장은 백만 단위가 아닌 천만 단위의 전장으로 변했다. 단 한 번의 교전으로 합산 백만씩 죽어 나갔다.
‘상식이 이상해지는 것 같네.’
툭하면 함정에 걸려 십만이 죽었니, 우회 공격으로 백만을 죽였니. 단위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더 황당한 것은 한 달 동안 양측이 죽고 죽인 숫자는 천만을 넘겼다는 것.
끔찍한 소모전에 기순은 학을 뗐다. 거미줄 때문에 조금씩 밀렸던 들쥐들은 신성 왕국이 제공하는 쥐 전용 장비가 보급되면서 다시 전선을 밀어 올릴 수 있었다.
‘확실히. 마루의 판단이 좋았어.’
일반 보병 한 명 무장시킬 자원으로 쥐 20~25마리를 무장시킬 수 있었으니. 10만 명을 무장시킬 자원이면 200~250만 마리를 무장시킬 수 있었다. 100만 명을 무장시킬 자원이면 2,000만에서 2,500만의 쥐를 무장시킬 수 있었고.
마루는 들쥐의 무장과 보급을 우선하도록 하면서, 들쥐의 전투력을 최상으로 유지 시켰다. 그 결과가 한 달이 지난 시점부터 효과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확실히 신성 왕국으로 전황이 기울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괜찮겠냐? 아무리 쥐들이 너를 신앙한다고 하지만, 전용 라이플까지 주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다양한 쥐 전용 무장이 지급됐다. 단발식 라이플을 시작으로 거미줄의 끈적임을 없애주는 화학제, 쥐가 던질 수 있는 크기로 만든 작은 수류탄. 방독면과 헬멧. 군장까지.
[위험 감지 능력도 좀 이상해졌다면서.]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간과 시간을 벌어줄 숫자니까. 덴 브라운 총통에게는 상황을 전달했냐? 뭐라고 하든?] [거미를 찾겠다고 지하를 헤집어봐야 감당할 수 없는 데 굳이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 [무슨- 하-]마루는 어이가 없었다.
[덴 아재 쪽은 해양도시로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지하에 거미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인하지 않을 거래?] [뭐. 우리가 불간섭한다고 하지 않았냐.] [···그래.]알아서. 잘하라고. 그래.
디아나가 긴급 보고를 올렸다.
끔찍한 퀘벡 공방전이 신성 왕국의 승리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