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8)
러스트 [RUST]-88
정리가 필요했다.
야마츠키 신약 연구원들과 보안요원들이 1층에서 지랄하는 걸 병원 관계자들이 몰랐을까? 2층과 3층은 주로 의료진들과 연구원들이 있었고, 1층에는 주로 병원 직원들과 일반인들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병원 대가리들은 알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냥 두고 가면 또 지랄 나겠지?’
핑계 스케일도 컸다. 역시 구라도 쳐본 놈이 친다고, ‘윗분들이 그렇게 결정하셨어.’ 그러면 끝인가? 거기에 예방 접종까지 들먹여? 어떤 한 지역은 가능하더라도 전국을 지랄하는 건 물리적,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거 아닌가? 그런데도 교묘하게 마치 일본 전체가 그런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다만 일본 대기업들이 관여 한 건 사실 같았다. 샬롯 그룹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도 여기저기 욕먹기 바쁜 기업이 이 정도 규모를 혼자 감당할 리 없었다. 자금 담당으로 쥐여 짜이고 나중에 ‘팽’용으로 쓰이고 있다면 모를까.
좀 뭐라고 할까. 그냥 신분이나 세탁하고 슈킹한 돈으로 조금 넉넉하게 편하게 살고 싶은 것뿐인데, 그걸 방해하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아. 진짜.’
칼을 메트로놈처럼 까딱까딱 반복해서 흔들자 짜증이 올라오던 게 좀 가라앉았다. 시작하지 않았으면 모를까 시작했으면 마무리를 짓는 게 좋았다.
여기저기 좋다고 똥 싸는 새끼를 치우지 않으면 사방이 똥 밭이 될 게 뻔했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병원 하나 제대로 돌아가면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좋아.’
이런 건 적성에 맞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시작했으니.
“지랄하지 말고 다 까봐. 어디서 구라야.”
터놓고 다 까발리지 않으면 알지?
“바보 같은 새끼. 내가 아는 건 다 말했다고. 뭘 더 말하라고! 칙쇼!”
앞뒤 맞지 않은 말을 해놓고도 이렇게 연기라니. 대단하다 정말.
“그래? 정말? 아닌데···. 이상한데.”
“뭐가 아니야. 뭐가 이상해? 이상한 거 없어! 다 말했다고! 정말이야!”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지금 느낌이 그래. 딱 감이, 구라야.”
“칙쇼! 바보가 무슨 감으로 사람을 잡아! 내가 아는 건 다 말했다고!”
“그렇게 나온다면 좋아. 그럼 뭐 아까 하던 거 계속해 보면 알겠지···.”
날이 나간 칼이 서서히 반쯤 해체된 종아리를 향했다.
“그만! 제발. 그만해. 대체 뭘? 뭐가 듣고 싶은 건데.”
“진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다. 놈의 말대로라면 버서커 폴과 같은 전술 마약 같은 건 개발 중이어야 했다. 샬롯 직계들이 쓴다는 급속치료제 같은 것도 마찬가지, 그런데 그 두 약은 이미 있지 않은가?
그 말은 변이 바이러스가 퍼진 건 나중이라고 하더라도, 변이 바이러스를 이용해 뭔가 만든 것은 그 이전이라는 말이었다. 최소한 6개월 어쩌면 1년 전부터 연구해서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는 이야기.
돼지처럼 꿀꿀거리다가 한다는 변명이, ‘네가 급속치료제를 보이지 않았냐?’. ‘그래서 연구원들을 포섭하기 좋았다.’, ‘네 탓이다.’ 이딴 앞뒤 없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그래서? 급속치료제를 본 사람들이 생기고, 그 소문을 들어서 눈이 돌아간 의료진들이 자기들 실험에 참여하겠다고 따라 내려왔으니, 모든 일의 책임은 ‘너에게 있다.’ 이딴 소리를 듣겠다고 고생하는 게 아니었다.
기절했던 여자는 언제 깼는지 소리도 없이 깼다가, 좋지 않게 된 남자의 종아리를 보고 다시 기절했다. 턱뼈와 턱관절이 으스러진 사람은 한참이 지나서야 깼다. 약 기운이 떨어졌는지 아니면 통증 때문인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고, 턱관절이 나가서 말도 못 했기 때문에 수면제랑 진통제나 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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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는 바리케이드 흔들리는 거 다시 단단하게 고정하고, 똥들이 여기저기 숨겨놓은 자료들과 약품들 전부 챙기고 그렇게 1층을 정리한 뒤, 3층으로 향했다.
15층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무전기를 시도 때도 없이 켜서 발작하고 있다고 기순이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전기로 아주 별에 별 소리를 다 하더라.”
“그러다 진짜 필요할 때 무전기 배터리 없어서 연락 못 하면, 볼 만 하겠네.
15층에 올려보내 놓고 엘리베이터 끊어버렸으니, 답답하기야 하겠지. 어쩌겠는가?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인데.
“어쨌든 해결된 건 맞지?”
“그래. 좀 부상자가 생기기는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야마츠키 신약 보안요원 3명에, 관계자로 보이는 3명 그렇게 합해서 6명이었다. 턱 돌아간 애는 경상인 줄 알았는데, 턱 박살 나면서 뇌까지 충격이 들어가 중상이라고 했다. 김 양이 여기저기 총알 박아놓은 사람들도 죄다 중경상이고. 마루가 처음에 잡았던 여자만 그나마 사지 멀쩡했다.
“어떻게 할까? 15층에서 사람들 좀 내려오라고 할까?”
“아니, 됐어. 잡아 놓은 애들끼리 오순도순 치료하라고 하게 두지 뭘.”
“그게 되겠냐? 중경상이라면서?”
“안될 건 뭐냐? 알아서 하겠지.”
일반인들을 실험체로 쓰는 놈들이었다. 뭣하면 자기들끼리 오순도순 실험체가 되든지 연구하든지 알아서 하겠지.
“······.”
“······.”
“야- 전에도 말했지만 죽일 거면 뜸 들이지 말고 깔끔하게 죽이고 끝내.”
“···그래.”
귀신 같은 놈. 얼굴에 티가 나나?
“이번에 죽다 살아 보니까, 그냥 허무하게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좀 그렇더라.”
“···뭐가 그렇게 그랬는데?”
마루의 질문에 기순이 머뭇거렸다.
“야. 너도 반대냐?”
“갑자기 뭔 소리야?”
“너희 엄마, 나 싫어했잖냐.”
“싫어하긴, 오 여사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겠냐?”
왜 또 이러는데.
“수술하기 전에 의사가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위험할 확률이 있다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는데 그냥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나더라.”
“······.”
“용기를 가지고 해봤으면 어땠을까? 후회 없이 해봤으면 어땠을까? 그때 그랬다면 어땠을까? 수술대기실에 혼자 누워있는데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이 멍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땠을까. 정말 그 생각이 나더라.”
“······.”
“야- 중학교 때 네가 고등학생 조졌었잖냐.”
“아니 그럼 고등학교 수능도 끝난 새끼가, 초등학생 여자애한테 집적대고 있는 걸 그냥 둬? 상판을 갈아버려야지.”
“아니, 그래서 진짜 면상을 다져놨잖아. 결과는 좋게 합의 보고 끝났지만, 그때 진짜 무서웠다 너.”
“그 미친 새끼 생각하니까 열 받네. 얼굴 다져놨더니, 성형수술비 굳었다고 쳐 웃는데 때리던 내가 떨리더라. 와 지금 생각하니까 그러네, 나한테 처맞으려고 일부러 내가 보는 앞에서 나루한테 그런 거 아니야?”
기순이 ‘어라?’ 하는 표정이 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럼직도 했다. 당시엔 마루네 집도 잘나 가는 집안이었으니까. 어쨌든 중학생 마루의 고등학교 졸업반 얼굴 다짐 사건은 또 소문이 쫙 돌았고, 마도중 작은 하마룰 건드리면 얼굴 바뀐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 그러고 보니, 그 뒤로 너랑 맞짱 뜨자는 애들이 늘었었지?”
전부 노가드, 안면 가드로 덤벼서 존나게 명치만 때려댔던 일들이 떠올랐다. 기순과 마루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 교체 비용 무료를 위해 노가드에 안면 가드를 하고 덤볐던 거라니, 그걸 몰라주고 명존세로 참교육 보냈던 일들.
그랬었지.
야 왜 이렇게 옛날 일인 거 같냐?
거의 8~9년 전 일이니까 오래된 일 아니냐?
“야. 진짜. 너도 반대하냐?”
“내가 반대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그렇잖아. 너희 엄마, 내가 서출이라고 중학교 때 그랬던 거. 아주 고등학교 때는 집 근처에 오는 것도 싫어했잖냐.”
“야- 우리 모친 원래 그러는 거 알았으면서 뭘 그래.”
마루의 표정을 힐끗 살핀 기순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진짜 나루 좋아한다.”
“···알아.”
“정말이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용기 내지 못한 게 그렇게 한이 되더라.”
“지랄하네. 그런 새끼가 김 양 끌어안고 목숨 거냐?”
“그건 반사적으로 그런 거고.”
“하긴, 예쁘면 일단 척수 반사적이 됐었지. 너란 새끼 내가 모를까.”
마루의 이죽거림에 기순이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 진짜- 아니라고.”
“아니긴···. 내가 내 입으로 말하긴 그런데, 네가 기억하던 우리 집이 아니야. 너도 알잖아.”
집이 바뀌면 사람이 변한다. 아니, 망해서 풍파에 찌들면 서서히 사람이 변하는 법이다.
“알아. 우리 어릴 때랑 다르다는 거. 모든 게 변했다면 변했겠지만, 변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는 후회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하- 난 모르겠으니까. 당사자랑 이야기해라.”
그 말에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고맙긴, 내가 당사자도 아니고,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신분 만들고 너희들 캐나다쯤 내려놓고 바로 한국 가려고.”
“같이 가지 않고? 어지간하면 같이 가는 게 좋지 않겠냐?”
“그래. 난 나루 포기 못 갈 거 같다. 아니, 이렇게는 포기 못 해.”
“···그렇게 말하면 친오빠인 나는 무슨 애 포기하고 간 놈이 되는 거잖냐?”
피식- 웃던 마루가 살짝 문 쪽을 돌아봤다. 기순이 신나게 말을 이었다.
‘그게 팩튼데? 버린 동생 나한테 맡기라고.’
‘지랄하네. 존나 데어 봐야 앗 뜨거워 할 새끼가.’
‘자랑이냐? 동생한테 데어서?’
‘나라서 참았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벽쳤어. 씨발.’
‘왜 벽에 구멍이라도 뚫게? 벽 뚫고 반성하기?’
‘아- 생각만 해도···. 야. 안 되겠다. 이건 아니야. 정말 옛날 나루가 아니라니까.’
‘왜 또 말을 바꾸는데?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하라면서, 내년이면 마루도 대학생이다.’
‘아 이젠 몰라 정말. 이거 녹음했다? 나중에 신세 한탄하면 알지?’
‘본인 킹기순 인생에 신세 한탄이란 없다. 그러니까 녹음해 놓고 잘 들어라. 내가 간다. 나루야, 어머님 이젠 이 킹기순이 웅장하게 책임져 드리겠습니다.’
‘이런 미친!’
‘아니 뭘 어쨌다고. 내가 챙기겠다는데.’
‘너 씨발 와- 미친 새끼.’
병실로 들어가려다 새어 나오는 소리에 잠시 멈칫했던 김 양이 발걸음을 돌렸다.
마루의 표정이 변하자, 기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갔냐?”
“어. 갔어.”
“와 뭔. 감각이. 후덜덜하네. 밖에 사람이 왔는지 어떻게 알았냐?”
“그냥.”
“존나 부럽네.”
“부럽긴. 괜찮겠냐? 후회는 없고?”
“후회고 나발이고 진짜 김 양한테는 감정 없다니까. 나 진짜 일편단심이라고. 나루 아니었으면 내가 엮였을 거 같냐?”
“어쭈? 이제 허락받았다 이거지? 말을 막 하네. 응, 그러면 쓰나 매제. 아니면 김 서방이라고 불러줄까?”
“닥쳐. 아직 고백도 못 했는데. 뭔 매제야. 뭔 서방이고.”
“좋아 우리가 가족이 된 기념으로···.”
기순이 옆에 있던 무전기에서 높은 소리가 났다.
[치직- 닥터 헬기에서 응급 수술 대기 요청이 왔-삐-네.] [2층 3층 검사실과 수술실이 필요하-치직-네]‘어쩔 거냐?’
‘뭘.’
눈빛을 교환한 마루가 웃으며 말했다.
“뭘. 좋지. 헬기라는데.”
언제든 환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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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을 그냥 통과하고 16층에 올랐다. 헬기 착륙장에는 15층에서 계단으로 올라온 의료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뭔가 대단한 사람이 타고 오는 건지, 병원장부터 부원장에 각과 과장들을 비롯한 의료진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사람들이 쏘아 보내는 눈빛 따위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한 마루가 엘리베이터를 마스터키로 잠갔다. 뒤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연하게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자. 열혈 의사가 다가왔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네? 헬기 기다리는데요?”
이 양반 이름이 뭐였더라. 명찰을 힐끗 봤지만 이건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는 한자였다.
“엘리베이터를 왜 잠근 건가? 지금 2층 3층 검사실과 수술실 준비해야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잠가 버리면 어떻게 하나?”
“아- 그거요. 일단 환자부터 보고 이야기하죠.”
“환자가 위급하다는데 정말 이럴 건가?”
“제가 없었다면 어차피 15층에 있는 응급 용품으로 치료했을 거 아닙니까?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시고 흥분하지 마십쇼.”
“그게 사람이 할 소린가!!”
“아- 소리 지르지 마세요. 여기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많아서 말이죠. 밑으로 내려보낼 수가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린가! 당장 마스터키 이리 내게!”
“선생님. 이러지 마십쇼. 1층 사건 듣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미친놈들이 한 짓이고.”
“그 미친놈들이 활개 치도록 한 사람들이 여기 있는데, 또 내려보내서 그런 일 벌어지면 누가 책임집니까? 선생님이 책임지시겠습니까?”
눈을 부릅뜬 중년 의사가. 낮게 말했다.
“내가 책임지지. 열쇠 주게.”
“아니요. 헬기 내려온 뒤에 하려고 했는데, 지금 해야겠네요.”
“뭐. 뭘 한 단 말인가?”
마루는 대답 없이 성큼. 중년 의사를 지나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병원장님 어디 계시죠? 부원장님이랑, 2층 3층 실험실 협동 연구하시는 분들?”
뒤에 서 있던 의료진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몰렸다.
좋게도. 한곳에 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