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80)
러스트 [RUST]-880
검은색 작은 무언가가 자유롭게 풀잎과 넝쿨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말 쥐라고?’
마루는 순간 당황했다.
‘쥐가 어떻게 죽음의 정원에?’
변이를 일으켜 1m 남짓한 덩치의 쥐가 아닌, 평범한 사이즈의 쥐였다. 그것도 북미 대륙의 기상을 이어받고 대도시 지하수로의 축복을 받은 거대한 쥐가 아니라 몸통 길이 20~30cm 정도인 일반적이 쥐.
마루는 문득 식육 넝쿨이 떠올랐다. 동물과 사람을 잡아먹게 변해버린 식육 식물을 이용했던 기억.
무자비한 칼날 앞에 굴복했던 넝쿨들. 만약 그 넝쿨에 이성이 있다면? 당시에도 식물이 주인을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화분을 정성스럽게 가꾸던 사람이 살해된 사건에서 식물과 용의자를 대질시켜 보자는 실험이 있었다.
그 결과 유독 한 용의자에게만 식물이 이상한 파장을 내뿜는 것을 의아하게 여겨, 중점적으로 조사했더니 식물이 강하게 반응했던 사람이 살인범이었다는 결과가 있었다.
당시에도 넝쿨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 싶기는 했었지만, 그냥 넘어갔던 것이었는데. 외벽에 심어 놓은 넝쿨이 강한 염원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 염원이 모여 ‘살기’가 ‘죽음’으로 변할 때, ‘죽음의 정원.’ 속에 형상을 이룬 것이라면? 어디까지나 짐작이었다.
마루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거미 굴을 정리하러 온 것이었다. 규모가 작은 거미 굴을 찾으라고 한 이유를 잊지 말아야겠지.
죽음의 확장과 유지시간은 저번에 확인했고. 이번에는 1,300만 이상의 쥐떼가 보낸 염원으로 능력이 변한 게 있는지 확인하려고 한 건데.
죽음의 정원 사이로 불쑥, 쪼르르 돌아다니는 검은 쥐들을 보니 무엇이 변했는지도 답이 나왔다.
‘그래도 직접 확인해봐야겠지.’
마루가 죽음의 영역을 확대했다. 반경 100m에서 반경 200m로 순식간에 넓어진 영역. 영역 끄트머리에 매복하고 있던 거미가 걸려들었다.
몸통 크기가 50cm 정도인 거미가 매복 경계를 하고 있었지만, 살아있는 생명인 만큼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휘감기는 죽음의 넝쿨을 향해 필사적으로 거미줄을 쏘며 도망치려던 시도는 허무하게 끝났다. 그렇게 매복 정찰, 엄폐 경계를 하는 거미의 생명을 거두며 죽음의 정원이 조금씩 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입구를 경계하던 거미들이 사라진 걸 알아챘는지, 거미 군집이 반응했다. 땅이 꺼지고 천장에 붙은 거미줄이 끊어지면서 돌덩이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직접 들어갔다면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함정. 하지만 죽음의 정원이 잠식해 들어가는 것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음-’
갑자기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체력과 집중력. 거미들이 함정 뒤로 숨어 후퇴하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생명을 거둬야 그것을 연료로 죽음을 유지할 수 있는데, 거미들이 도망쳐 죽음을 유지하는데 마루의 체력과 정신력이 소모되기 시작한 것.
예전처럼 작은 범위였다면 수십 초에서 몇 분은 버텼겠지만, 지금처럼 넓은 면적을 그렇게 오래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풀어야 하나?’
죽음의 정원을 풀고 쥐떼를 내려보내야 하나 하는 찰나. 죽음의 정원에서 검은 쥐떼가 튀어나왔다.
‘어? 그 쥐떼가 아니라 밖에 대기하고 있던 쥐떼를 생각한 건데.’
쥐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죽음이 소리 없이 거미 굴 안으로 우수수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죽음의 정원이 확 줄어들며 마루의 정신력과 체력 소모를 줄였다.
죽음의 쥐는 거미줄에 뒤엉키고 함정에 빠져도 전진했다. 죽음으로 이뤄졌기에 죽음은 당연한 것. 그 이상한 돌격에 거미들이 허둥지둥했다.
똑똑해진 거미였기에 더 크게 당혹스러워하는 모습. 함정에 빠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려 들어오는 죽음의 쥐떼라니.
그리고 처음으로 도착한 죽음의 쥐가 거미의 다리를 물었다.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생명. 거미는 물린 다리 관절을 끊어내 죽음에서 벗어났다.
끼릭-끼릭-
이것들 위험하다. 맹독이다.
진동과 소음으로 경고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 삽시간에 달려들어 사방에서 거미들의 다리를 물고 몸통을 물고 늘어지는 죽음의 쥐떼.
단순한 물어뜯음이 아니었다. 물리는 순간 생명이 녹아버리는 듯한 느낌. 그건 죽음 그 자체였다.
끼릭- 끼리릭-
거미줄로 다가오지 못하게 해-
거미들이 거미줄과 독 엄니를 이용해 반격했다. 먹잇감을 단숨에 무력화시키는 독 엄니가 통하지 않았다. 쥐는 그저 쥐의 형상을 한 죽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끼리리리릭- 끼릭
머리를 잘라-
날카로운 앞다리로 그림자 같은 쥐의 머리통을 잘라내자, 반짝이는 입자로 변해 허공으로 녹아내리는 모습.
그 허망한 결말에 몇몇 거미들이 움찔했다.
그건.
허무함이었다.
죽고 죽이고 싸웠는데 얻은 것이 없다고?
거미줄을 치는 이유는 먹잇감을 잡기 위해서였다. 독 엄니를 박아 넣는 이유도 먹잇감을 잡기 위해서였다.
둥지에 침입한 적과 싸우는 이유도 마찬가지. 둥지를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쳐들어온 적을 죽이면 그게 먹잇감이 됐기 때문이었다.
적을 죽이고 더 풍성해지는 무리. 적을 잡으면 더 성장하는 군집. 그래서 싸우는 건 아닌가? 그런데 지금 들어온 이 쥐떼는 이상했다.
싸워도 남는 게 없었다.
죽은 건 동료 거미들뿐.
죽여도 남는 것이라고는 반짝이는 가루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모습이라니.
끼릭-끼리리릭-
둥지를 버리고 퇴각한다-
거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요하게 추격하던 죽음의 쥐떼가 어느 순간 더 쫓지 못하고 입자로 변해 사라졌다.
‧
쑥쑥 빨려 나갔던 체력과 정신력이 조금씩 차오르나 싶더니 순식간에 전부 회복됐다. 죽음의 쥐떼가 거미 굴로 들어간 뒤부터 그랬으니. 아마도 죽음의 쥐가 거미들을 죽인 것이겠지.
넝쿨은 죽음의 정원과 이어졌기에 넝쿨이 움직이고 죽이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죽음의 쥐는 그렇지 않았다.
죽음의 쥐가 정원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도 몰랐고, 나가서 거미를 죽임으로 죽음의 정원을 유지하고 체력과 정신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도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거리 제한 없이 계속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야.’
넝쿨처럼은 자세하게는 아니지만 죽음의 쥐도 미약하게나마 감각이 연결되어있었다. 어디로 가서, 뭘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느껴져서 다행이었다.
‘공격 그리고 추적?’
추적은 한계가 있었다. 죽음의 정원에서 뛰쳐나가는 건 가능했어도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지금 느껴지는 거리라면···. 대충 3km 정도까지는 갈 수 있나?’
조금 더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생명을 계속 수확하면서 간다면 더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다만 지금은 거미들의 후퇴가 굉장히 빨라서 확인하긴 어려웠고.
‘거미 새끼들 상황 판단이 빠르네.’
죽음의 쥐를 이길 수도 없고 이겨봐야 의미 없다고 판단했는지 거미 굴을 버리고 어디론가 후퇴했다. 거미들이 도망치는 곳을 추격할 수 있다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여기까지였다.
‘그나저나. 이것 참.’
마루는 어느새 반경 10m 정도로 줄어든 죽음의 정원으로 보곤 혀를 찼다. 자동으로 크기를 줄여 사라지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
“돌아가.”
조금씩 반짝이는 검은 입자로 변해 사라지는 죽음의 정원. 넝쿨과 풀잎 그리고 이제는 작은 쥐까지 허공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통제력이 강해졌군.’
이것 참.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늘어난 마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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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는 이단심문관과 이단심문 쥐떼를 풀어 홀리 교회 전체를 감찰했다. 시작은 이단심문 쥐떼가 각처에 잠입해 확보한 정보부터 분석하는 것이었다.
대부분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간혹 하나씩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은 목자라며 그분께 돌아가야 할 믿음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새끼가 있었다.
“기적을 보였다고 합니다.”
“기적이요?”
“병을 치료했다고 합니다.”
“이것 참.”
그분에게 돌아가야 할 믿음을 가로챈 놈이 능력을 각성하다니. 아니, 반대로 능력을 각성했기에 그걸 믿고 가로챈 건가?
정보를 확인한 결과 범상치 않은 능력이었다. 무려 치유와 관계된 능력이었으니까. 하필이면 수많은 능력 가운데 하필 치유라니.
“일단 이단심문관을 보내서 당사자를 확보하도록 합시다. 이단심문 쥐도 더 파견하도록 하지요.”
“예.”
그렇게 이단심문관 다섯과 이단심문 쥐떼 2천 마리를 보낸 PD는 다시 서류작업에 들어갔다. 몇몇을 빼고는 다들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어째서 신앙이 모이지 않고 있는 거지?’
인간의 믿음이 쥐 새끼만도 못하다는 건가? 그럴 리 없었다. 인간의 광기는 다른 어떤 동물의 광기보다 더 컸다. 광기의 동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그건 분명 인간이었다.
심장 뽑기도 인간이었고 불꽃 화형도 인간이었다. 목 자르기와 꼬챙이로 꿰기도 인간이었고 달궈진 청동 불판에 갓난아이를 굽기까지 한 게 인간이었다. 종교적 광기로 인성을 혐성까지 승화시킨 존재는 분명 인간이 틀림없었다.
종교적 광기로 뭉친 존재가 인간이었고 그건 홀리 교를 믿는 사람은 예외가 아니었다. 종말의 공포에서 벗어나기를, 멸망에서 구원받기를 원한 자들이 모인 곳이 홀리 교회였다.
‘그런데 유형화된 염원(念願)이 모이지 않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건데.’
PD는 다시 치료 능력을 각성한 이단이 한 짓을 다시 살폈다. 치료 능력을 신이 주신 능력으로 선전하면서 자신이야말로 세상을 치유할 존재라고 역설했다는 내용. 홀리교라는 안전한 방패막 속에서 세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는 이야기.
‘세력이 커질수록 치료의 능력이 더 강해졌다?’
그건 놈에게 사람들의 염원이 들어갔다는 소린가?
혹시.
그분에게 염원이 모이지 않은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
[이단심문관이 공격받았다고 합니다.]“뭐라고?”
PD의 눈매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다섯 명의 이단심문관은 사실 엄청난 전력이었다. 숫자는 고작 다섯이지만, 이단심문관 전용 노심 아머로 무장했기 때문이었다.
초소형 노심에 첨단 복합 장갑 그리고 방어막까지. 2차 변이를 일으킨 변이 괴수, 중급 식인귀, 늑대인간, 흡혈귀가 아니라면 이단심문관을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같은 노심 아머로 무장했거나 그 이상의 엑소슈트로 무장한 부대가 있다면 모를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런 가정은 무의미했다.
인공지능 디아나와 사만다가 노심 아머와 엑소슈트가 민간에 유통되게 그냥 뒀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단심문관이 공격받았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PD가 바로 상황을 보고했다.
작은 거미 굴을 토벌하고 돌아온 마루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염원을 가로챈 것 같다는 PD의 설명에 마루의 심장이 작게 뛰었다. 그냥 두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과 가야 한다는 느낌이 뒤섞인 박동.
숨을 고른 마루가 생각을 정리했다. 이단심문관이 공격받은 뒤 통신이 끊겼다는 것은 그만한 전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거기가 어디죠?”
[캐나다 방면 런던에 있는 홀리 교회입니다.]자유 캐나다 연맹이 됐을 때도 그쪽으로 넘겨주지 않았던 지역이자, 자유 캐나다 연맹에 동조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거 이주한 곳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캐나다 난민들이 들어오려고 했던 도시였고.
“이단심문 쥐떼는 어떻습니까?”
[2천 마리 정도 들어갔지만, 지금 남은 규모는 1천 마리 전후입니다.]쥐떼도 실종됐다는 건가?
“지금 바로 출발할 테니. 런던에 대피 방송하세요.”
[대피 방송 말씀이십니까?]“국왕 혼자. 단독으로 간다고 방송하십시오.”
[위험합니다.]인간의 광신은 위험했다. 블라디마루 칼린을 신의 대행자, 구원자로 믿을 때는 그 무엇보다 든든했지만, 지금처럼 이단이 파고든 상황에서는 그 무엇보다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여파에 휘말리지 않도록 대피하라고 권고하세요. 국왕의 이름으로 대피 명령 내리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마루의 단호한 목소리와 표정에 PD가 굳은 얼굴로 대피 방송을 시작했다.
[블라디마루 칼린 폐하께서 직접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단과 관계없는 시민 여러분께서는 지금 즉시 도시를 떠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경고 말씀드리겠습니다.]“에이 씨- 갑자기 무슨 이단이야. 이단은.”
“홀리(HOLLY) 교회 가운데 이단이 발생했다고 하더라고요.”
홀리교라면 신성 왕국 국교였다.
“그게 말이 돼?”
“그러니까 말이에요.”
“블라디마루 칼린 국왕이 직접 온다는 건 사태가 심각하다는 소리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죠.”
“마녀사냥처럼 닥치는 대로 죽이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요.”
“아니 그러니까 도시를 떠나라고 하는 거잖아.”
“반대로 생각해야지. 이 사람아. 도시를 떠날 기회를 주는 거잖아. 이단 놈들은 말을 안 들어 처먹을 거고.”
“이단 놈들이 같이 도시를 떠나면 어쩌려고.”
“어쩌긴 다 분류할 방법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두런두런 웅성거리며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을 기순이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 머리 위로 보이는 감정의 기운. 비틀린 색이 있는 자들을 골라내는 기순이었다.
“저기 노란색 패딩.”
[거기 노란색 패딩. 정지.]엑소슈트와 노심 아머로 무장한 병력이 기순이 찍은 사람들 따로 색출하기 시작했다.
“어디쯤 왔냐?”
[거의 다 왔다. 사람들은 어때?]“모르겠다. 감정이 비틀려 있어서.”
[···그래. 수고해라. 정리하고 갈게.]잠시 뒤, 백색의 날렵한 비행선이 도시의 상공에 도착했다. 일렁이는 무언가가 비행선에서 툭 떨어져 혼란한 도시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