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83)
러스트 [RUST]-883
푸릉- 푸릉- 푸르르릉-
흑마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건물과 건물 도로와 도로가 미로처럼 이어진 공간. 인간의 도시는 언제나 답답했다. 흑마는 그 답답함을 떨쳐버리려는 듯 크게 소리를 높였다.
히이이이이이잉—
“왜 그래. 뭔가 있어?”
조그맣게 들리는 목소리와 함께 은은하게 맡아지는 향기. 맹렬한 불꽃 같았던 예전 파트너와 너무나도 똑같은 냄새였지만 확연히 다른 감각.
흑마는 살짝 투레질하곤 후각에 집중했다.
식인귀?
그 짓밟아 버리고 싶은 것의 냄새는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불안하고 불길한 냄새. 인간의 피 냄새가 뒤섞인 이상한 무엇.
작은 파트너와 함께 가도 괜찮을까?
흑마는 발걸음을 늦추다가 덜컥 멈췄다.
아무래도 불안하다고 투레질하자, 작은 파트너가 흑마의 목덜미와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뭔가 위험한 게 있는 거지?”
히잉-
희연은 그렇다는 듯 작게 우는 흑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람들을 도시에서 대피시킨 거구나.”
히이이잉-
이단심문관이 들어갔다고 했는데 사람들을 대피시켰다는 건. 이단심문관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뜻일 거다.
‘생명의 신과 치유의 신 이야기가 소문이 돌았다는 건 최소한 2개 이상의 세력이 있다는 의미고.’
이번에 나와서 제대로 잡은 식인귀는 하나뿐이었지만, 흑마는 분명 식인귀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 것을 볼 때 흑마는 최소한 뭔가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건 분명했다.
‘90일 넘게 추적하기도 했고.’
그런 흑마가 갑자기 가던 길을 멈췄다?
무슨 이유 때문일지 짐작하긴 힘들어도 확실한 건 한 하나. 발걸음을 멈출 정도로 불길했기 때문이겠지.
‘생명의 신, 치유의 신이라고 한 걸 보면 위험하지는 않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로는 흑마가 경계할 정도로 위험한 세력일까? 희연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흑마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다는 건. 식인귀와 조금이라도 연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일 테고.
부르르르릉-
우우우우웅-
얼마 지나지 않아 U+ 자매들이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정찰부터 해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자.”
히이잉–
정찰부터 천천히 하자는 말에 흑마가 동의하듯 울었다.
“그렇지? 저기 튼튼해 보이는 건물에 캠프를 설치하자.”
희연이 단단하게 생긴 2층 건물을 캠프로 삼고 정찰에 들어갔다.
‧
영하 20~30도의 날카로운 혹한이어야 했건만, 차갑기는커녕 묵직하다 못해 끈적한 느낌마저 있었다.
‘확실히 분위기가 이상해.’
위기감지는 반쯤 맛이 갔는지 죽음을 재촉하는 감각으로 변해버렸기에 믿을 수 없었다. 치유 녀석을 봤을 때 두근거림대로 처리했다면 교회에 있는 사람들 전부를 죽였어야 했을 터.
‘광기로 가득한 집회에서 죽음의 정원을 썼다가 혹시 이상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사용하지 않았던 건데.’
죽음의 정원에 당한 사람들의 염원이 치유 놈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몰랐다. 굳이 위험을 무릅쓸 이유도 없었고.
두근-두근-
‘젠장.’
치유 능력을 잡았을 때도 그러더니 지금도 심장이 미묘하게 뛰기 시작했다. 올드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교회로 가까이 갈수록 두근거림이 강해진 것.
그게 위험함을 경고하는 위기감지인지 아니면 죽음을 이용해 밀어버리라는 두근거림인지 확실하지 않기에 마루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죽음을 쓰지 않고 오래간만에 뉴클립스를 사용하려고 했었는데 심장이 미묘하게 뛰는 것을 보니 뉴클립스는 이번에도 휴업해야 할 판인가보다.
마루가 드론으로 뉴클립스를 돌려보내려고 하자, 윙-윙- 가기 싫다는 것처럼 날을 울리는 뉴클립스.
[죽음의 정원을 부를지도 모르는데 괜찮겠냐?]바로 울어대는 것을 뚝 멈춘 뉴클립스였다.
······.
역시 뉴클립스에겐 죽음의 정원이 직방이었다. 금방 조용해진 뉴클립스를 비행선으로 돌려보낸 마루가 조금 전부터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 골목으로 향했다.
팍-
눈이 짓밟히는 소리와 함께 붕 떠오른 마루의 몸이 2층 옥상에 닿았다. 우수수 무너져내리는 눈덩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흘러내리는 눈덩이를 박차고 다시 점프. 2층에서 3층으로, 3층에서 5층 건물로 솟아오른 마루의 눈에 보인 것은 거대한 흑마와 그걸 잡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패왕?’
희연이가 타고 나간 말이 왜 저기에.
그러고 보니 거대한 흑마의 등에 작은 소녀가 타고 있었다. 꽁꽁 싸매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희연이겠지.
‘일부러 포위된 건가?’
마루는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희연이라면 근처에 U+ 팀도 있을 테니.
“쏴버려!”
“이 새끼가 미쳤나. 총 내려! 전부 총구 내려! 쏘면 안 돼!”
“미친 말 때문에 벌써 3명이 죽었어! 쏴버려!”
“야. 생명력이 강한 제물이 필요하다고 하신 것 몰라?”
“저거 죽이고 네가 대신 제물 할래? 저거 쏜 새끼들은 대신 제물이 될 생각인 거지?”
“그럼 잡으라고? 저걸 어떻게 잡을 건데?”
“발목을 부러뜨려. 말은 정강이가 부러지면 힘을 못 써.”
“고삐 잡은 년을 쏴!”
“미친 새끼야 죽이지 말라고 하면 좀 들어. 생포하라고 생포!”
말발굽에 차이고 짓밟힌 시체가 세구나 됐다. 그래서인지 빙 둘러싼 채 조심스럽게 포위망을 좁히는 사람들. 얼추 서른 명은 넘어 보이는 숫자가 흑마와 소녀를 겁박하고 있었다.
퍼억-
쇠파이프를 들고 뒤에서 몰래 접근하던 남자의 머리통이 말의 뒤차기에 터져버렸다.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지면서 몸이 붕 날아가 처박히는 광경은 상식을 벗어난 모습이었다.
이어 탱크처럼 돌진하는 흑마. 겹겹이 막아선 사람들과 총구를 아랑곳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가속한 흑마에 치인 사람들이 볼링핀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부러지고 꺾이고 뒤틀려버린 몸통과 사지. 단 한 번의 가속 돌진에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투불능이 되는 모습.
“그냥 쏴!”
살기를 알아챘는지 흑마가 90도로 꺾었다. 벽돌로 치장한 목조 주택을 박살 내고 들어간 흑마가 주택을 관통해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그 모습을 지켜본 마루가 살짝 감탄했다.
‘휘유-’
졸지에 사망자를 포함해 중경상자가 무더기로 생겨 추격을 포기한 무리가 부상자를 썰매에 태우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아악- 괜찮아. 혼자서 일어설 수 있어!”
“내려줘. 제발.”
“으으으- 살려줘.”
스텔스 드론을 이용해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확인하던 마루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부상자들이 하는 소리가 이상했기 때문.
‘왜 두려워하는 거지?’
흑마와 희연이를 생포하려고 했던 이유가 제물 때문이라고 했지. 그럼 부상자를 제물로 바친다는 건가?
마루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치유 놈은 정리했으니, 남은 놈은 생명이었다. 생명의 신이라고 하는 놈이 제물을 받아? 아무래도 생명의 신이라는 놈 치유와는 전혀 다른 놈인 것 같았다.
‘음?’
그렇게 부상자를 태우고 가는 사람들 뒤로 멀찌감치 흑마가 추격하는 모습이 스텔스 드론에 잡혔다.
어떻게 할까?
처음처럼 일단 지켜보기로 한 마루가 몸을 일으켰다.
‧
‧
‧
캠프를 차리고 주변을 정찰하기 시작한 희연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 소요 사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이비와 관련 없는 시민은 도시에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약탈, 방화, 강도, 절도 같은 범죄는 특별법에 따라 즉결 심판합니다.] [시민께서는 법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도시 곳곳에서 사이비들이 준동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께서는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도시에서 떠나시기 바랍니다.]저고도로 운행하는 비행선과 까마귀들이 경고하는데도 올드 이스트 빌리지 사람들은 꿈적하지 않고 있었다.
더 이상한 점은, 이곳 사람들이 모여 다른 동네 사람들을 납치해 온다는 것이었다. 희연은 일단 납치된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희연과 U+ 팀이 납치된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하자, 무리의 규모가 더욱 커졌다. 처음에는 열에서 스물 정도로 몰려다니던 사람들이 지금은 서른에서 마흔 많게는 쉰 넘게 무리를 지어 납치와 약탈을 시작한 것.
어쩔 수 없이 희연이 흑마를 타고 유인하는 동안 U+ 팀이 납치된 사람을 구출하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성공했다. 동시에 납치하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제물로 써야 한다고 생포하라고 했지?’
설마 그 제물일까? 자신뿐만 아니라 흑마까지 제물로 삼는다고 했으니, 살아있는 걸 제물로 한다는 이야기였다.
히이이잉-
썰매에 부상자들을 태우고 가는 무리의 뒤를 멀찍이서 추격하던 흑마가 살짝 불안한 소리를 냈다.
“괜찮아. 모두 완전무장하고 있으니까.”
U+ 자매들이 전용 노심 아머로 무장한 채 뒤따르고 있었다.
푸르르릉-
“저들이 어디로 가는지 위치만 확인하고 나도 무장할 게.”
그제야 흑마가 다시 속도를 높였다.
‧
그렇게 한 시간 이상 추격한 끝에 보인 건 성당 건물이었다. 흑마는 갑자기 탁 트인 공간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건물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주변 건물을 모조리 무너뜨린 것이 희연의 시야에 들어왔다. 자유 캐나다 연맹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했으니, 건물이 부족했을 텐데 무너뜨렸다는 것은.
‘집은 무너뜨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야긴데.’
집을 무너뜨린 이유가 뭘까?
야트막한 언덕 위에 홀로 서 있는 오래된 성당 건물. 그걸 중심으로 모조리 잘려나간 나무 그루터기와 무너진 건물 잔해가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시야 확보?’
시가전 교리와는 달랐다. 중요한 건물이라면 주변 건물 초소나 벙커처럼 사용해 지키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니까 저건 시가전 상황을 염두에 둔 게 아니었다. 저렇게 외따로 두면 오히려 포격이나 폭격에 취약했으니까.
폭격과 포격을 막기 위해 인질로 삼을 사람들을 모은다고 하더라도 주변에 건물이 있는 게 유리하지 않나?
최악의 상황에서 탈출한다고 해도 건물과 나무가 있는 게 유리했다. 그런데도 전부 벌목하고 건물을 무너뜨렸다는 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저기 얼음으로 만든 강단은 뭘까?
희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생명의 신이라.’
‧
위이이잉-
희연이 날린 초소형 드론이 낡은 성당으로 향했다.
눈을 치우지 않아 5m가 넘게 쌓인 눈에 파묻힌 성당에는 정문으로 들어가는 터널이 뚫려있었다. 그리고 그 터널 앞쪽으로 거대한 단상이 있었다.
이것만 봐도 수상했다. 주변은 제설하고 벌목하고 건물까지 무너뜨렸으면서 정작 성당에 쌓인 얼음은 그냥 뒀고. 그 앞에 커다란 얼음 단상을 만든 건 뭐란 말인가.
초소형 드론이 고도를 높여 종탑으로 향했다. 종을 울리는 굵은 밧줄은 끊어져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밧줄이 들어가는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위이이잉-
종탑 내부로 들어간 드론이 녹슨 계단을 따라 아래로 향했다. 그렇게 예배실(?)로 향하는 2층 복도가 나왔고 복도 한쪽 벽에 뚫린 난간 건너편에 단상이 보였다.
영상에 집중하던 희연의 귓가에 삑-하는 경고음이 들렸다. 희연은 재빨리 화면을 작게 축소하고 사방을 살폈다.
랜턴과 횃불을 든 사람들이 성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광경. 얼추 잡아도 수천 단위였다. 어쩌면 만 명이 넘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초소형 드론에서 보낸 영상. HUD 구석으로 축소해 놓은 영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재밍(jamming)?’
전파 간섭이라고? 희연이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녀는 일단 초소형 드론은 한쪽 구석에 숨긴 뒤 전원을 끄곤 밖의 상황에 집중했다.
해가 떨어지자, 낮에 영하 20도 언저리쯤 했던 기온이 순식간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4~5도가 더 떨어져 영하 25도까지 내려갔음에도 횃불과 랜턴을 든 사람들은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공터를 가득 채웠다.
성당의 정문으로 향하는 터널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부복 비슷한 복식에 마찬가지로 수녀복 비슷한 복식을 한 사람들이 붉은 연기가 나는 향로를 흔들며 나왔다.
핏빛처럼 검붉은 색의 옷에 동방정교회 비슷한 남자의 옷과 가톨릭 수녀 비슷한 옷이지만 어딘가 몸매가 드러나는 형식은 정식 수녀복이라기보다 코스프레용 옷에 가깝게 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노예 엮이듯 목에 줄이 묶인 사람들이 끌려 나오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입에는 재갈이 물린 모습.
얼음 단상에 올라간 자들이 사방에 붉은 연기가 나는 향로를 흔들며 중얼중얼 주문인지 기도일지 모를 짓을 하고 나자.
반짝반짝 금박을 씌운 것처럼 화려한 옷과 모자를 쓴 늙은이가 단상 위로 올라와 두 팔을 들곤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명은 피이니, 피로 생명을 대신하리라!”
흰 수염을 부들부들 떠는 것과는 달리 목소리는 중후했다.
그 말과 동시에 사람들의 광기가 순식간에 커지는 느낌에 희연은 숨을 죽였다. 공터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내뿜기 시작하는 것은 분명 광기가 맞았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생명의 신에게 감사를.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신 분께 감사를.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께 감사를.”
“제물을 데려오라.”
으으으읍- 으으으읍-
“보라 생명의 위대함을. 보라. 기적을.”
꽁꽁 묶인 채 무릎이 꿇려진 사람 옆으로 이상한 복장을 한 여자들이 굵은 바늘 같은 것을 찔러 넣었다.
!!
굵은 빨대처럼 생긴 대롱을 사람의 가슴팍에 박아 넣다니.
흐으으으읍- 흐으으읍-
무릎이 꿇린 채 버둥거리는 사람의 몸에서 피가 빠지기 시작했다. 대롱을 타고 빠져나오는 뜨거운 피가 얼음 단상을 붉게 물들였다.
횃불과 랜턴의 빛을 일렁이고 붉은 피가 울컥울컥 솟아나는 기괴한 공간 속에서 바닥에 흘러내려 식었어야 할 핏덩이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중력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피는 생명이니. 피로 생명을 대신하리라!”
길게 이어진 핏방울이 반짝이는 옷을 입은 단상 위 노인에게 흡수되는 것처럼 보이더니 하얗던 수염이 실시간으로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쪼글쪼글 검버섯 핀 손등이 서서히 팽팽해지며, 주름살 깊었던 얼굴이 중년의 모습으로 역행하는 모습.
우오오오오오—-
“생명의 신!”
“생명을!”
“피는 생명이다!!”
사람들의 외침에 잠시 가늘게 떨던 희연이 신호를 보냈다.
[발사!]U+ 자매들이 단상에서 피를 흡수하고 있는 자를 향해 저격을 시작했다.
퉁- 투두두둥- 팟!
크직- 우드득-
서서히 피를 빨리던 사람이 갑자기 알루미늄 캔처럼 찌부러지는 소리.
쥐어 짜인 시체에서 흐른 핏방울이 방어막처럼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