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84)
러스트 [RUST]-884
핏물이 치솟아 방어막을 만드는 것을 본 마루의 표정이 굳었다.
‘혈액 지배?’
저건 그 백작급 흡혈귀 능력 아니었나? 그거랑 비슷한 거 같은데?
‘같은 건 아닌가?’
언뜻 보면 비슷하긴 했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긴 했다. 사람의 생피를 뽑아, 생명력을 추출해 늙은 몸뚱이를 회춘한 건 확실히 달랐다.
피를 이용해 신형 라이플의 총격을 막아내는 방어막을 만들었다는 점과 피를 이용해 생명력을 채우는 건 비슷했고.
한 사람을 쥐어짜 만든 핏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줄줄이 엮여 있는 사람들을 덮치기 시작하는 핏물.
크으으으업-
쿠직- 퍼극-
가죽 풍선 터뜨리듯 사람들을 터뜨린 핏물이 점점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열댓 명을 쥐어짜서 나온 핏물은 얼핏 봐도 엄청난 양이었다.
“저쪽이다. 놈들을 잡아라!”
저격 위치를 알아챘는지 반짝이는 옷을 입은 사내가 단상에서 외치자, 공터에 모인 자들이 함성과 함께 횃불과 랜턴을 치켜든 채 우르르 달려나갔다. 수천에 달하는 인파가 몰려가는 장면은 광란 그 자체였다.
‘U+ 팀과 같이 있다면 전용 노심 아머로 무장하고 있을 테니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
광기에 빠진 폭도로 변한 자들이 들고 있는 건 횃불과 랜턴 그리고 사냥용 라이플과 날붙이 정도.
“놈들을 잡아오는 자에게는 생명의 축복을 내려주겠다!”
그 외침에 화답하듯, 사방으로 흩어지는 무리였다.
“생명!”
“축복!”
“잡아!”
빽빽하게 사람이 몰려있던 공간이 텅 비기까지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건물과 집을 헤집고 다닌다는 것처럼 여기저기 창문마다 횃불과 랜턴의 불빛이 어른거리는 전경이 이어졌다.
탕!
타다다탕!
멀리서 울려 퍼지는 총성에 횃불과 랜턴의 일렁거림이 그 방향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마루의 눈썹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몰려간다고 의미 있나? 노심 아머의 특수 기능인 방어막까지 갈 것도 없이, 장갑도 뚫지 못할 텐데?
‘피로 뭔가를 한다는 건가?’
혈액에 관여해 흥분하게 만든다거나. 혈류 속도를 높여 강제로 운동 능력에 관여한다거나. 흰 수염이 검게 변하고 실시간으로 주름이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능력이었다.
‘젊어지는 효과가 길게 가는 건 아닐 거다.’
그랬다면 늙은 모습으로 나오지 않았겠지. 제물로 삼는 사람들도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았을 거고.
마루의 시선이 얼음 단상 위를 향했다. 연쇄적으로 제물을 쥐어짜서 만든 거대한 핏덩이가 둥둥 떠오른 모습.
‘어디. 흡혈귀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까.’
다들 도시 밖으로 나가라고 했으니, 죽음의 정원을 펼치는 건 문제 없었다. 마루가 얼음 단상을 향해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한쪽 구석에 있는 건물 벽이 폭탄에 맞은 것처럼 터지며 거대한 흑마가 튀어나왔다.
히이이이이이잉-
오토바이처럼 순식간에 가속하는 흑마의 등엔 전용 노심 아머로 무장한 희연이 타고 있었다. 흔들리는 흑마 위에서 리듬에 맞춰 사격하는 모습.
한 방 한 방이 얼음 단상 위에 있는 놈의 머리통을 향했다. 퍽-퍼퍽-퍽- 둥둥 떠 있던 핏덩이가 사내의 머리를 향한 총탄을 막고 분열되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서서히 회전하는 핏덩이 사이로 보인 놈의 표정은 기괴했다.
“흑마? 오-”
머리통이 날아갈 뻔했음에도 사내는 흑마를 보곤 탐심을 숨기지 않았다.
“가라. 저 말을 잡아와!”
신부와 수녀 코스프레 복장을 한 사람들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한 핏방울. 피로 만든 갑옷처럼 변한 게 아니었다.
이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에엑
진흙과 뒤섞인 핏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변한 자들이 6~7m는 될 법한 얼음 단상에서 그대로 뛰어내린 뒤 아무렇지도 않게 흑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대한 근육질의 흑마가 전속력으로 달리는데, 아무런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정면으로 내달리는 핏덩어리들.
히이이이잉-
흑마는 자폭하듯 달려드는 핏덩이를 가볍게 무시하듯 점프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장갑차가 갑자기 점프한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장면. 톤 단위는 나갈 법한 거대한 말이 붕 떠오르는 건 확실히 영화 속 장면 같았다.
흑마에게 달라붙겠다고 달려들던 핏덩이 인간들이 목표를 잃고 자빠지는 동안 흑마는 얼음 단상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제 발로 오는구나!”
좋구나! 좋아!
분열된 핏방울이 어느새 뱀처럼 길게 변해 사내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스르르르- 챠르르르- 피로 만들어진 뱀이 얼음 단상에 붉은 흔적을 남기며 뒤엉키는 모습.
그에 호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빠졌던 핏덩이들이 관절이 역으로 꺾인 모습으로 변해 흑마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앞에는 핏덩이로 만들어진 구렁이들이, 뒤에서는 인간을 반쯤 벗어던진 핏덩이 괴물들이 흑마를 노렸다. 앞뒤로 가로막혀 잡힌다 싶을 그때.
히이이이잉-
마치 곡예를 하듯 방향을 직각으로 꺾은 흑마.
빙글빙글 회전하며 전방을 노리던 핏물 구렁이들과 꺾인 관절을 이용해 가속도를 최대한 높였던 핏덩어리들이 서로 충돌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떨어졌다.
?
!!!
서로 충돌하기 직전까지 가면서 속도가 줄어든 핏덩어리들 사이로 폭탄이 쏙 들어갔다. 청량음료 캔 크기의 폭탄. 핵 수류탄이었다.
“막아!”
폭음이 터지기 전 핏물 구렁이가 화구를 감쌌고 그 위를 핏덩어리 인간들이 겹겹이 감쌌다.
번쩍- 쿠우웅-
300~400m를 한 방에 날려버린 폭발력이 핏덩어리를 뚫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그 강력한 폭발의 여파로 까맣게 타버린 핏덩이가 진득한 피떡과 선지처럼 변해 후두둑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네- 네노오오오옴!”
얼음 단상에서 핏덩어리를 조종하던 자가 여차하면 죽을 뻔했다는 걸 알았는지 부들부들 떨어댔다.
완전히 검게 변했던 수염 끝이 조금씩 하얗게 돌아가고 있었고 탱탱하게 주름이 사라졌던 피부도 푸석하게 변하는 모습.
분노 때문인지 힘이 떨어져서인지 바르르 떠는 남자의 머리통을 향해 희연이 집요하게 총을 쏴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얼마 남지 않은 핏방울이 총탄을 막고 또 막았다. 총격을 막을 때마다 통제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핏방울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저년을 잡아!”
얼음 단상을 부수며. 노심 아머 넷이 튀어나왔다. 이단심문관 특유의 백색 갑주. 다섯 명이 갔다가 전원 실종이라고 했는데. 넷이 여기에 있다니.
방패와 메이스를 든 이단심문관 전용 노심 아머가 희연과 흑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히이이이잉-
흑마가 몸을 들어 앞발로 노심 아머 하나를 걷어차며 몸을 뒤틀었다. 흑마의 등에 탄 희연이 두 다리만으로 안장을 붙잡고 고삐를 놓은 채 균형을 잡았다.
붕 뒤로 몸이 젖혀졌다가 다시 앞으로 푹 꺼지는 널뜀. 앞 발차기를 한 흑마가 몸을 비틀어 메이스를 피하면서 뒤차기를 하는 순간.
희연의 두 손에서 불꽃이 연발로 뿜어졌다. Rsh-12. 5발의 12.7mm 특수탄이 흑마의 옆구리과 뒷다리를 노리고 달려든 노심 아머 둘에게 연속으로 쏟아졌다.
이단심문관 전용 노심 아머의 상반신에서 생긴 반원형 쉴드가 근거리에서 발사된 12.7mm 특수탄 세 발을 막아냈고 네 발째 흔들리다 다섯 발째 깨져나갔다.
퍽- 퍽- 퍼버버벅-
뒷발! 뒷발! 히히이잉- 앞발!
희연이 낸 틈을 놓치지 않고 날뛰는 흑마. 이단심문관 전용 노심 아머 4기가 순식간에 눈밭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이이이이잉-
끼긱- 끼기긱-
널브러졌던 노심 아머들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30mm 벌컨포도 막아내는 이단심문관 전용 노심 아머가 흑마의 발차기와 12.7mm 특수탄 정도로 무력화될 리 없었다.
“후. 후후후후하하핫- 그래. 팔팔하구나. 팔팔해. 잡아. 산채로. 잡아서 끌고 와!”
희연과 흑마가 재빨리 탈출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골목을 틀어막고 있는 사람들. 광기로 번들거리는 사람들이 횃불과 랜턴을 비추고 있었다.
‘여기까지인가?’
흑마와 희연의 합이 좋았지만, 상대가 나빴다. 식인귀나 변이 괴수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겠지. 하지만 둘의 조합은 노심 아머 같은 체계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흑마가 아무리 힘이 세도 장갑차 이상의 방어력을 가진 노심 아머를 말발굽으로 부수긴 어려웠다.
희연이 가진 무기도 마찬가지. 12.7mm 특수탄이라면 2차 변이 거대 괴수를 제외하면 효과적인 화력이었지만, 노심 아머를 상대로 하긴 빈약한 화력이었다.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마루가 몸을 일으켰다. 리퍼 슈트의 은신 모드를 해제하자 갑작스럽게 나타난 마루의 모습에 희연과 흑마, 얼음 단상 위의 놈이 동시에 놀랐다.
“폐하?”
히잉?
“뭐. 뭐냐? 네놈은!”
[이단심문관도 그렇고 보조 인공지능은 어떻게 한 거지?]이단심문관 전용 노심 아머엔 정신계 대응장비가 최신형으로 달려있었다. 그러니까 어지간한 정신계 능력은 먹히지 않았다.
설령 정신계 능력에 장악된다고 하더라도 노심 아머의 제어 보조를 맡은 보조 인공지능이 배신을 허락할 리 없었다.
노심 아머를 작동하려면 등록된 조종사만 움직일 수 있고, 동시에 보조 인공지능의 도움이 있어야 노심 아머를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실종된 이단심문관이 여기서 사이비의 어깨 역할을 하고 있다니. 여러모로 신기한 상황.
“무. 무슨 소리냐? 저놈도 잡아!”
[저기 저 사람들 돌파할 수 있지? U+ 애들 데리고 도시 밖으로 나가.]그냥 밀어버리고 나가라는 마루의 말에 희연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가. 뒤돌아보지 말고 바로.]뒤돌아보지 말고 바로 가라는 말에 희연이 흑마의 고삐를 살짝 쥐었다.
[가자-]히히히히힝—
희연에게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정작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는 건 흑마였다.
“저. 저. 잡아라!”
골목을 틀어막고 있던 사람들이 개떼처럼 흑마에게 달려든 건 패착이었다. 빽빽하게 들어찬 채 골목에 있었다면 흑마의 돌진력이 줄어들었을 것을. 잡겠다고 골목 밖으로 나오면서 대열이 앞과 뒤 옆으로 퍼져버린 것.
“와아아아아- 잡아라!”
“잡으면 축복이다!”
“이번엔 나야. 내 차례라고!”
“말을 찔러!”
흑마는 띄엄띄엄 흩어진 사람들을 장갑차처럼 밀어버렸다. 몇 명이 짓밟히기 전 날붙이로 찌르고 쇠파이프와 철근으로 만든 창으로 쑤셔댔지만, 생체 장갑 같은 흑마의 가죽을 뚫은 사람은 없었다.
콰직-
콰드드득-
토마토와 달걀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사람들이 으깨졌다. 바로 눈앞에서 깨지고 부러지고 다져지는 시체를 보면서도 사람들은 공포라는 게 뭔지 모르는 것처럼 흑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히이이이잉-
앞발을 들어 네다섯의 머리통을 한 번에 날려버리고 뒷발로 십여 명을 날려버렸지만, 그 잠깐 사이에 수십 명이 더 달려들었다.
[골목으로 들어가.]히이이이잉-
골목으로 밀고 들어가자, U+ 자매들을 놓쳤는지 몰려갔던 사람들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앞뒤로 빽빽해지는 모습.
마치 무언가에 중독되기라도 한 것처럼 맹목적으로 갈구하는 모습에 희연의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변했다.
아이와 여자와 노인을 이용해서 자폭하던 중동의 어느 마을. 약에 중독돼 칼과 몸으로 마약수사대를 막아선 남미의 어느 마을. 그리고 변이 바이러스로 좀비처럼 변해 달려들던 사람들과 이들의 차이가 뭐지?
‧
흑마와 희연을 향해 달려가는 노심 아머의 앞을 가로막은 마루가 직도를 쭉 뻗었다. 앞으로 내달리던 노심 아머가 두툼한 방패로 마루의 칼질을 막았다.
쩌어어엉-
금속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뒤로 쭉 밀린 노심 아머. 이단심문관 전용기라서 그런지 방패도 더 두껍고 출력도 확실히 좋았다.
한 놈이 방패로 막은 사이, 마루의 칼질을 무시하고 흑마와 희연을 향해 달려가는 노심 아머 셋.
[무시하고 간다고? 어이가 없네.]뭉클-
마루의 발밑에서 검은 정원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죽음의 정원 속에 파묻힌 노심 아머들.
위이이이잉-
현현함과 동시에 노심 아머의 다리를 얽어맨 풀잎과 땅에서 하늘로 치솟은 넝쿨이 노심 아머를 휘감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넝쿨을 잡아 뜯고 다리를 얽어맨 풀잎을 뽑아내려 했지만, 이제까지 생명을 먹고 자란 죽음의 정원은 강력했다.
콰직-
노심 아머를 얽은 넝쿨이 비틀어지며 노심 아머의 장갑을 우그러뜨리기 시작했다. 넝쿨 모양대로 찌그러지며 장갑이 구겨지기 시작하는 모습.
까드드득-
노심 아머의 다리로 마찬가지. 날카로운 풀잎이 장갑을 서서히 찢고 파고들었다. 버티는 것도 잠시.
콰드드드득-
뿌그드드득-
사지가 뜯겨버린 노심 아머 속엔 핏덩이가 뒤엉킨 사람이 있었다.
“끄아아아아- 생명! 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위이이이잉-
노심이 폭주하는 것보다 빠르게 뜯어진 장갑 속으로 밀고 들어가는 넝쿨들. 넝쿨이 핏덩어리 인간 속에 박히는 것과 동시에 순식간에 죽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생명이라고 하더니 확실히 생명력이 강했다.
하나를 해체하는 것과 동시에 나머지 셋도 거의 동시에 해체되고 있었다. 팔이 뜯기자 그 속을 파먹고 들어가는 죽음의 쥐떼. 다리를 뜯어내고 속을 헤집는 죽음의 풀잎.
그리고 도망치지 못하게 얽어매는 넝쿨까지. 자폭할 틈도 주지 않고 죽음으로 인도한 죽음의 정원이 얼음 단상 위에 있는 자를 향했다.
분 단위도 아니고 초 단위로 해체당한 노심 아머를 본 남자가 발작했다.
“저. 전부. 나를 지켜라. 생명을 지켜!”
주변에 있던 핏방울이 굵은 뱀으로 변해 밀려드는 죽음을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핏방울은 생명력을 잃고 딱딱하게 굳은 선지로 변했으며, 뱀으로 변한 핏방울도 굳어버린 고무줄처럼 변해버렸다.
“생명. 피는 생명이고. 생명은 피다.”
“내가 살면 영생을 할 수 있다! 피만 있으면 영생을 할 수 있어!”
이제는 숫제 발작하는 놈의 모습은 처음에 봤던 늙은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안 돼! 나는 죽지 않는다! 죽지 않아!”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놈을 지키던 핏방울 방어막이 넝쿨에 의해 갈가리 찢겼다.
찌이이익-
찍-
찢어진 틈을 타고 달려드는 죽음의 쥐떼가 하늘 높이 치솟는 비명까지 삼켜버렸다.
[죽지 않긴.]가득 차오른 죽음의 정원이 폭발하듯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