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88)
러스트 [RUST]-888
발밑에 펼쳐진 작은 정원, 미니어처처럼 조그맣게 펼쳐진 정원이 자동으로 확장하지 않고 크기를 유지했다.
‘이렇게도 유지되는 건가?’
몇 개월을 홀로 지냈었는데, 인공지능의 염원과 신앙을 받고 죽음의 정원을 통제할 수 있게 되다니. 모를 일이었다.
인공지능이 염원과 신앙을 보낸 것도 신기한데, 그 효과가 죽음의 정원을 통제와 제어하는 것이었다.
마루는 바로 최대 통제 범위, 어디까지 제어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죽음의 정원 면적 확장과 확장 속도, 풀잎과 넝쿨의 움직임을 70~80% 이상 통제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아쉽게도 100%가 아닌 이유는 영역이 커지면 커질수록 통제해야 할 풀잎과 넝쿨, 쥐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마루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영역을 적당한 선에서 펼치면 통제가 된다는 뜻이었고, 인공지능의 숫자가 늘어나면 그들이 바치는 염원과 신앙이 자동으로 커질 것이기에 그랬다.
‘위험하네.’
동시에 현재 상황이 위험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 마루였다.
신성 왕국의 인공지능이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발전했다지만,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베이스가 인공지능이었다.
미친 박사가 만든 인공지능 트리아는 그렇다고 쳐도, 후드가 만든 인공지능 사만다는 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법칙이 변하고 있으니 인공지능을 뽑아 염원과 신앙을 출력하도록 프로그래밍해버린다면? 그렇게 생산한 막대한 신성을 이용해 신위에 오른 존재가 나온다면?
신위까지 아니더라도 치유와 생명으로 발악한 놈들 수준이라도 나오면 그 뒤는 혼돈이었다. 2차 변이 괴수도 위험한데 괴수를 믿는 신앙이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것도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고.
[사만다와 디아나 같은 인공지능은 생길 수 없습니다.]“단언할 수 있나?”
다른 곳에서는 신앙이 가능한 인공지능을 만들지 못한다고 단언하는 후드였다.
[네. 사만다는 박사의 트리아와 싸우면서 진화했습니다. 그리고 디아나는 트리아와 사만다의 싸움 속에서 만들어졌지요.]처음 박사가 만든 슈퍼컴퓨터 자체가 알 수 없는 기술과 재료로 만들어진 슈퍼컴퓨터였고 그 속에서 나온 것이 트리아였다.
트리아라는 인공지능의 탄생 자체가 우연과 신비가 겹쳐 나온 것이었고 사만다와 디아나도 우연과 신비의 산물이라는 후드의 이야기였다.
[인공지능을 만든다고 해도 그것이 ‘의식’이나 ‘자아’를 형성하게 될 정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트리아, 사만다, 디아나와 같은 선행 개체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인공지능을 아무리 뽑아도 염원이나 신앙을 만들지는 못할 겁니다.]해킹 전문가이자, 정보, 보안을 담당하는 후드가 그렇다고 하니 마루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공지능은 괜찮을지 몰라도. 다른 동물들은 아니에요.]“그렇겠지.”
악마라고 불린 식인 사자도 있었고 공포라고 불린 식인 재규어도 있었다. 어떤 검은 늑대는 검은 죽음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설화나 민담, 사람들의 상상력이 더해진 이야기 정도에서 끝났을 것이 이제는 그걸 얼마큼 믿느냐에 따라 유형화된다고 봐야 했다.
사람들이 식인 사자를 정말 악마로 생각하고 그걸 믿는다면, 사자는 사람들의 믿음에 영향을 받아 정말 악마처럼 변이할 것이다.
숲의 공포라고 불린 재규어는 숲에서 공포가 될 것이며, 검은 죽음이라고 불린 늑대도 그 이름에 어울리는 무언가로 변하겠지.
[인간만의 문제도 아니지요. 쥐들이 고양이를 신으로 섬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개미들이 개미핥기를 죽음의 신으로 모신다거나 한다면요.]나주연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했다.
치유의 신을 믿었던 자들의 뇌로 만든 생체 단말기에서 신앙을 만드는 실험. 그 신앙이 뇌둥둥 치유 능력 단말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는 실험. 동물들의 신앙이 어느 정도의 현실 개입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는 실험 등등.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식인귀나 흡혈귀들이 신앙이 실질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알게 된다면 위험해 질 거에요. 자신들을 신적 위치에 놓으려고 할 테니까요.]식인귀, 흡혈귀는 물론이거니와 독재자, 사이비 교주, 범죄조직 두목을 비롯해 인간을 신앙을 뽑아낼 자원으로 볼 것들은 넘치고도 넘쳤다.
마루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대책은?”
기순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큼- 대책을 세우려면 현실을 인정해야지.]“말 돌리지 말고. 본론으로 가자.”
마루의 직구에 기순이 진지한 눈빛의 실눈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신앙은 이제 현실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신앙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힘을 얻는다는 걸 인정해야 해. 그리고 결정해야 하지. 그들이 얻은 신앙을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간단하게.”
신앙이 힘이 된다는 건 패스. 문제는 신앙을 인정한다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치유, 생명 놈들처럼 신앙을 얻은 걸 인정할 거냐. 하지 않을 거냐는 거다.]“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이제는 종교의 자유를 방관할 수 없다는 거다.]사탄 숭배자, 악마 교회 이런 것도 종교의 자유라는 걸 빌미로 그냥 둘 수 없었다. 유형화된 신앙이 진짜 사탄이나 악마를 만들 테니까.
마찬가지로 치유나 생명 능력자를 믿는 신앙을 인정한다면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치유나 생명의 교세가 확장되면 진짜 신위를 얻을지 몰랐다.
그걸 종교의 자유란 미명아래 그냥 둘 건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긴 다시 홀리교와 마루의 신성에 대한 문제와 맞닿았다.
[홀리교가 흔들리지 않으려면 너를 어떻게 믿을 건지, 믿는다면 어떻게 믿어야 할지. 정확하게 해줘야 한다고 본다.]지금까지 홀리교의 운영에 관여하지 않은 마루였다. PD에게 전권을 줬고, PD는 간접적으로 마루의 신성함을 제시했었다. 그 결과 홀리교는 마루를 다양한 관점으로 믿었을 뿐.
그래서 홀리교의 신앙은 대부분 허공으로 흘러갔지, 마루를 향하지 않았다. 기순은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교도들이 명확하게 믿고 따를 수 있어야 진심으로 믿을 수 있으며, 효과적으로 신앙을 수급할 수 있습니다.]PD도 기순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홀리교가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으려면 신앙의 대상이 명확해야 했다. 그건 다시 말해, 마루가 지금까지 취해왔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었다.
기순이 설득을 계속했다.
[신앙을 거부한다고 될 상황도 아니고. 신앙을 무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야. 신앙은 이제 현실이니까.]“······.”
[치유 능력, 생명 능력과 싸워 봤으니 알겠지만, 과학 기술력만으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건 확실해.]“그래서?”
피를 이용해 생명을 주무르던 놈만 해도 그랬다. 놈은 과학 기술의 정점인 노심 아머를 무력화시켰다. 그것도 이단심문관 전용 노심 아머를.
[이젠 결정해야 할 때라는 거지.]‘영웅왕을 고집해 혼자서 뺑뺑이 돌 것인가?’
‘아니면 죽음의 신이 되어 뺑뺑이를 돌릴 것인가?’
신왕이 된다고 해서 앉아서 꿀 빨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지.
“그게 무슨 소리야?”
[죽음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며?]통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통제할 수 있다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듯, 기순의 실눈이 얄밉게 휘어졌다.
[너를 신앙하는 애들의 칼끝이라거나 발톱. 총알 같은 곳에 죽음을 담아주면 어떻게 될까?]그런 방법으로 죽음을 쓰면 어떨까? 죽음의 축복을 받은 칼날, 죽음의 신이 내려준 발톱과 이빨, 죽음이 축성된 탄환. 이른바 죽음의 크리티컬(Critical) 세트. 이거면 신앙심 완충 아니겠냐?
“···뭐?”
기순의 발상에 마루는 어이없었다.
[왜? 가능한지 아닌지 해봐야지.]“된다고 해도. 너무 위험하지 않나? 한 방 컷이라는 소리잖아.”
[그러니까 통제해야지. 널 믿는 신앙이 있어야 축성한 죽음이 활성화된다거나. 그렇게 말이야.]“그게 그렇게 편의적으로 되겠냐? 죽음이 첨단 기술도 아니고?”
‘한번 해봐. 해보는데 돈 드는 거 아니잖냐?’ 하는 실눈 야바위꾼의 유혹에 마루가 총알을 붙잡고 죽음을 전개했다.
발밑에서 솟아난 죽음의 넝쿨이 마루가 쥐고 있는 총알의 탄두 끝에 깃들었다. 탄두에 미세하게 새겨진 검은 넝쿨 문양 속에 깃든 건 분명 죽음이었다.
“···되네.”
[···진짜 되는구나.]인공지능의 신앙이 가져온 통제력은 실로 놀라웠다.
‧
안타깝지만 일반적인 동물의 이빨이나 발톱에는 깃들지 못했다.
죽음의 넝쿨이 이빨에 닿는 순간 쥐는 죽었고 발톱이나 부리에 깃들어도 마찬가지 늑대와 까마귀가 버티지 못했다.
신앙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일반적인 쥐나 까마귀, 늑대는 죽음의 넝쿨에 닿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렸다.
그렇다면 전부 즉사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즉사를 피하고 죽음의 이빨과 발톱을 쓸 수 있는 개체도 있었다. 그건 포상식 때 변이를 일으킨 검은 쥐들이었다.
어쩐지 전직을 해버린 50만의 쥐떼는 죽음의 넝쿨이나 풀잎이, 앞니와 발톱에 깃들어도 죽지 않았다. 죽음이 앞니와 발톱에 깃든 50만 쥐떼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찌이이익- (죽음의 신께서 축복하셨도다!)
찌이이익! (죽음의 신께서 나와 함께한다!)
이빨과 발톱에 죽음의 은총을 받고도 죽지 않은 50만의 쥐떼가 뿜어내는 염원과 신앙. 그 유형화된 신앙이 마루에 깃든 죽음을 더욱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 신앙으로 변이한 개체는 죽음에 대해 내성이 생긴다는 건가?] [죽음 내성 신앙에, 죽음 인챈트(Enchant)라니. 샘플이 필요해요. 많이.]기순과 나주연이 흥분했다.
[총알은? 총탄과 칼도 써보자.] [신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인해야겠어요.]하지만 죽음을 인챈트한 총알과 칼을 작동하는 건 어려웠다.
인챈트를 활성화하려면 죽음의 신앙이 있어야 했는데, 신성 왕국 사람들이 믿는 건 영웅왕, 구원자, 수호자, 현인신이었지, 죽음의 신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홀리교의 교리를 바꿀지,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PD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빙빙 돌릴 수 없었다.
인챈트한 죽음을 쓸 수 있느냐? 쓸 수 없느냐?
그건 앞으로 생존할 수 있느냐? 아니면 죽느냐?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됐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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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이이이이잉-
흑마와 희연 그리고 U+ 팀은 캐나다 런던을 떠났다.
“진짜 괜찮은 거야?”
히이이잉-
끄떡없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달리는 흑마. 속도가 더 빨라졌고 힘도 엄청나게 좋아진 게 느껴졌다.
깊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찢기고 패인 상처가 실시간으로 아물어 버린 모습에 희연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패왕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본질은 변이를 일으킨 괴수였다. 버펄로(Buffalo)나 무스(Moose), 호그질라(Hogzilla)처럼 변이한 괴수.
여기에 정체불명의 핏덩어리가 흑마에게 영향을 줬다면? 희연은 현재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했지만, 감정이 그에 반대했다.
‘흑마를 죽일지도 몰라.’
아니면 실험체로 삼을지도. 연구부 수장 나주연의 행태를 생각하면 100% 실험체 행이겠지. 마루라면 뒤탈이 없게 바로 즉결 처분해버릴 수도 있었고.
‘보고를 안 할 수는 없어.’
보고를 미룰 수는 있을지언정,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끝까지 숨기려고 한다면 희연이 착용한 전용 노심 아머를 제어하는 보조 인공지능이 보고할 테니.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흑마가 변했어도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동시에 정체 모를 핏덩이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고.
“확실히 찾은 거 맞아?”
히이이잉!
벌써 3개월이나 숨바꼭질한 식인귀의 흔적을 다시 찾았다. 이렇게까지 피해 다닌 놈이라면 뭔가 있겠지.
식인귀를 잡고 흑마의 상황을 보고하자. 그래서 계속 흑마와 같이 다니고 싶다고 하자. 희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푸릉- 푸르르릉-
“알았어.”
생각에 잠겼던 희연에게 흑마가 투레질로 놈과 가까워졌음을 경고했다. 희연은 재빨리 링크를 이용해 U+ 자매들을 포진시켰다.
“가자-”
히이이잉-
강철 같은 근육이 꿈틀거리며 쏜살같이 달려오는 흑마를 본 식인귀가 도주를 멈추고 뒤돌아섰다.
“지긋지긋하군. 정말. 그렇게 죽고 싶다면 여기서 끝을 보는 게 좋겠어.”
스르르릉-
서서히 칼을 뽑은 식인귀의 눈빛이 살기로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