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89)
러스트 [RUST]-889
총이 주력 무기인 세상에서 칼을 들고 다니는 놈이 있다면?
그건 미친놈이거나 비상식적으로 무서운 놈일 게 분명했다. 총잡이들 사이에 칼잡이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희연은 칼잡이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보고 겪은 게 마루였으니 당연한 이야기. 그래서 그녀는 식인귀에게 돌진하는 흑마의 고삐를 잡았다.
히이이이잉-
갑자기 고삐를 잡아채, 앞다리를 들고 ‘왜 말리느냐는 듯.’ 길게 울었다.
“저거 위험해.”
푸륵-푸르르륵!!!
“지금은 참아. 저것이 무슨 힘이 있는지 모르잖아.”
희연이 링크를 이용해 U+ 자매들에게 공격 신호를 보냈다.
푸슉- 퓨뷱-
퍽- 턱-턱-퍼억-
이어지는 총격에 칼 든 식인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팅- 퉁-
단검이라기엔 길고 장검이라기엔 짧은 넓적한 칼을 휘두르는 식인귀.
‘어? 저거?’
마치 글라디우스처럼 폭이 넓은 칼날로 튕겨낼 건 튕겨내고 피할 건 피하면서 접근하는 식인귀의 모습에 흑마가 푸르릉-? ‘저거 저런지 어떻게 알았어?’ 울었다.
“이런 세상에서 칼 들고 다니는 건 미친놈이라고 그랬으니까.”
푸르르릉-
그렇게 빨리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는데, 어느새 30m 거리쯤 다가온 식인귀. 희연은 식인귀의 눈빛을 읽었다. 무언가 한 수를 감추고 있는 듯한 눈빛.
그녀는 재빨리 박차를 가해 흑마를 달리게 했다. 옆으로 길게 거리를 벌리는 순간. 식인귀의 움직임이 변했다.
8m-
8m-
8m-
단 세 걸음에 24m를 줄이고 마지막 한 걸음을 잡지 못해 어긋난 식인귀의 칼날이 허공을 꿰뚫었다.
“봤지?”
히잉!
저 식인귀 누구와 너무나 유사한 칼질을 하고 있었다. 2년 전 마루 국왕 용병 시절 교전 영상과 너무도 비슷한 모습.
‘식인귀가 국왕의 칼질을 흉내 내고 있어?’
그걸 흉내 낼 수 있다는 건가?
칼질을 흉내 내서 어쩌겠다는 거지?
마스크에 후드, 고글을 쓴 식인귀와 거리를 벌린 흑마. 순식간에 가속해 150m 이상 멀어지자, 식인귀가 방향을 바꿨다.
틈만 나면 저격하고 있는 U+ 자매들을 먼저 공격하려는 것 같았다.
‘접근하지 못하게 대응 사격, 150m 안쪽으로 다가오면 후퇴.’
링크에 따라 움직임이 변한 U+ 저격팀. 순간 가속하듯 달려들던 식인귀가 쏘고 도망치는 저격조가 계속 후퇴와 산개를 반복하자 열이 받았는지 흑마로 목표를 바꿨다.
‘계속 쏴.’
식인귀의 폭발적인 순간 가속력도 에너지가 필요했다. 포위한 채 계속 지치게 한다면 결국 틈이 생길 터. 이기는 건 이쪽이었다.
한참 공방이 이어졌지만, 칼질하는 식인귀는 지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튜브로 뭔가를 빨아 먹어가면서 싸우고 있었던 것.
소모전을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자마자 희연은 깔끔하게 U+ 팀을 퇴각시켰다.
‘후퇴.’
잔탄이 남았을 때 후퇴하는 게 맞았다. 전부 노심 아머로 무장하고 있었고 근접전 숙련도 또한 높았지만, 희연은 결코 접근전을 할 생각 없었다.
‘공을 세우려면 저런 걸 잡아야 하는데.’
쉽게 잡았던 첫 번째 식인귀와는 달리 지금 저건 수상한 점이 많았다. 3개월 넘게 추적을 피한 것도 그렇고. 칼질하는 것도 짝퉁이고.
차가운 바람이 불며 조금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설원. 눈이 쌓인 평야에 또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거리를 벌리자. 거리가 멀어져도 추적할 수 있지?”
히이잉-
저놈 냄새는 놓치지 않는다는 듯한 흑마의 반응.
“믿을 게.”
히이이잉-
보고 해야겠지. 이상한 칼잡이 식인귀도 그렇고 흑마 문제도 더 시간을 끌긴 어려워 보였다. 희연은 흑마를 뒤로 물리며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듬성듬성 내리던 눈발이 어느새 펑펑 내리는 함박눈으로 변해있었다.
‧
‘이거 생각보다 엄청난데?’
마루는 인챈트의 효과를 실험하고 있었다.
탕!
거대한 무스(Moose)가 모로 쓰러졌다. 생명이 빠져나간 대가리엔 생기가 전혀 없었다.
“한 방이라니.”
죽음을 축성한 총탄은 말 그대로 한 방 죽창이었다. 어디에 맞더라도 일단 상처를 내면 한 방 컷.
단점은 상처를 내지 못하면 효과가 뚝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아주 조금이라도 가죽을 뚫거나 장갑과 방탄복을 뚫고 피부에 상처를 내야 효과가 있다는 것.
그러니 관통력이 확실한 특수탄에 죽음을 인챈트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죽창 총알도 총알이었지만 더 무서운 건 신앙으로 변이한 쥐떼였다.
죽음이 깃든 앞니와 발톱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처음부터 철근 콘크리트를 갉아먹을 정도의 쥐떼였는데, 여기에 죽음이 더해지자 생명체 한정으로는 재앙급 공격력을 발휘했다.
찍! (뒈져!)
푹!
쿠어어엉!
덩치 큰 버펄로(Buffalo)가 고작 검은 쥐 몇 마리를 버티지 못하고 죽은 건 놀라울 뿐이었다. 고폭탄과 20mm 벌컨포에도 끄떡없던 버펄로의 방어력도 죽음이 축성된 쥐의 앞니를 막지 못했다.
그런 죽음의 쥐떼가 십만 단위로 몰려다닌다면?
생명체는 그냥 끝이었다.
“전쟁은 이겼군.”
이대로라면 거미와의 전쟁은 확실히 승리했다. 50만의 쥐떼에게 죽음을 인챈트 할 시간이 필요할 뿐. 승리는 확실했다.
[시간이 지나면 휘발된다고 하지 않았어?]“괜찮아.”
죽음 신앙으로 변이한 쥐도 살아있는 생명이기 때문인지 인챈트의 효과가 서서히 사라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인챈트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 걱정 없었다.
마루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 이상한 호흡을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집중이 됐다.
‘전개.’
죽음의 정원을 펼치자, 죽음의 넝쿨로만 이뤄진 영역이 생겼다. 인공지능의 신앙으로 생긴 통제력을 응용한 전개였다.
본래였다면 손가락 굵기 이상으로 굵은 넝쿨이 생겼겠지만, 지금은 마루의 의지에 따라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뽑힌 넝쿨을 형상화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게 가늘게 피어오른 넝쿨 수만이 검은 쥐떼의 이빨과 발톱에 죽음을 인챈트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50만에 달하는 쥐떼에게 전부 죽창을 새긴 마루.
[···워우-그 잠깐 사이에 다 한 거냐?]죽음의 정원이 펼쳐지면서 잠깐 통신이 끊겼던 기순이 호들갑 떨었다.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가 효과 떨어지면 바로 다시 하면 그만이다? 진짜 이제는 왕님이 아니라 신왕님이라고 해야겠네.]기순의 너스레에 어깨를 으쓱하는 마루.
인공지능의 신앙을 흡수한 결과는 확실히 좋았다. 죽음의 정원을 자유롭게 펼치고 해제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죽음의 정원에서 파생되는 EMP 효과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였으니.
호들갑을 떨던 기순이 마루를 향해 파일을 보냈다.
[아. 그리고 식인귀 추격 관련으로 보고서가 올라왔다.]“희연이?”
[어. 이상한 놈을 삼 개월 넘게 추적하고 있다는데, 내가 보니까 좀 묘한 놈이네.]기순이 보내온 영상자료를 확인하던 마루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이거. 내 흉내를 내는 건가?”
[뭐. 상위급 식인귀나 중급 이상 흡혈귀라면 널 흉내 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마루의 신체능력이 꾸준히 좋아졌다고 하지만 신체능력만 따지자면 잘해야 하급 식인귀 정도였다. 그러니 신체능력이 압도적인 고위급 식인귀와 흡혈귀라면 그 움직임을 베끼는 것쯤은 큰 무리가 아닐 터.
[너도 영상 봤으니 알겠지만, 순간 가속이랑 총알 튕기기는 어떻게 비슷하게 가는 것 같더라.]“그래서 네 생각은 어때?”
[하는 짓을 보면···. 예전 용병하던 시절을 기반으로 흉내 내는 것 같은데. 교전 영상 정보가 샜다고 봐야겠지?]우리 쪽은 아니고 제국 쪽에서. 국토안보국이랑 일했을 때 교전 영상 수준의 움직임이니까. 기순의 분석에 마루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뿐만 아니라 여기서도 정보가 새는 것 같아.”
희연이 식인귀를 잡겠다고 나간 게 벌써 3개월 전이었다. 마루가 죽음의 정원 때문에 따로 움직인 건 그보다 오래전이었고.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국왕이 캐나다 지역에서 혼자 다니고 있다는 정보가 샌 것. 캐나다 북부 거점 요새와 외곽 요새를 혼자 털고 다녔던 게 새 나갔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혼자 캐나다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정보도 샜고.
[후드와 사만다가 정보 통제하고 있는데 그쪽으로 빠졌을 리는 없을 텐데.]“능력이겠지. 그것도 최신 정보는 얻지 못했어.”
총알을 튕기며 신속을 응용하는 식인귀의 칼질 영상을 보던 마루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놈은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놈은 나와 일대일로 마주치고 싶은 것 같다.”
[너랑 일대일 하려는 거라고?]죽음의 정원을 펼친다면, 칼질은 고사하고 죽창 한 방으로 끝난다는 걸 알 텐데. 혼자 떠돌고 있다는 이야긴 죽음의 정원을 모른다는 뜻.
“좋네.”
찍! (죽어!)
푹!
우우어어엉!
끔찍할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가진 곰이 검은 쥐떼에 둘러싸여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모습이 마루의 눈동자에 비쳤다.
찌이이익! (죽음의 신에게 승리를!)
찌이이익! (죽음의 정원에 가리라!)
“좋아.”
‧
‧
‧
동전처럼 큰 함박눈이 사방을 뒤집을 듯 몰아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블리자드(Blizzard)는 희연과 흑마를 눈사람처럼 하얗게 만들기 충분했다.
“센서가 먹통이야. 알 수 있겠어?”
적외선 탐지, 동작 감지 전부 먹통에 미리 요청한 성층권 비행선의 추적까지 끝이었다.
푸르르릉-
이런 상황에서는 어렵다는 듯 흑마가 투레질했다. 눈보라가 너무 심해 흑마의 감각이 둔해져 칼질 식인귀의 위치를 놓친 것.
희연은 링크로 U+ 자매들을 전부 거점으로 후퇴시켰다. 중급 이상 식인귀라면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먹잇감을 놓치지 않을 터. 미리미리 빠지는 게 좋았다.
“우리도 가자.”
히이이잉-
블리자드가 끝나면 바로 수색할 수 있는데 그냥 가자고? 놈을 거의 다 잡았었는데 여기서 또 놓치자고? 흑마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미 보고 해서 지원 오기로 했어. 성층권 비행선까지 동원됐으니까. 놈을 다시 찾는 건 시간 문제야.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
푸르르릉?
그럼 공적은? 공적 세우면 특식도 받고, 주문 제작도 할 수 있게 해주는 건? 흑마는 못내 아쉬움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공적보다 중요한 건 안전, 생존이라고 하셨어.”
마루가 언제나 강조했던 것이었다. 공적이 아무리 좋아도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살아남는 걸 전제로 한 말이었다.
“좋은 자세야. 누군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가르쳤군.”
눈보라 속에서 들리는 흐릿한 목소리에 흑마가 바로 풀쩍 뛰어올랐다. 푸식- 순식간에 쌓인 함박눈이 흑마의 움직임을 아주 조금 불편하게 했다.
그 약간의 차이가 칼날이 닿고 닿지 않고의 차이로 변했다. 글라디우스처럼 날카로운 칼날의 찌르기가 흑마의 옆구리에 붉은 선을 그었다.
히이이잉-
옆구리가 긁힌 흑마가 몸을 비틀며 뒷발질을 했지만, 그곳은 이미 허공이었다. 다시 뒷발질 점프 뒷발질- 그리고 앞으로 달려나가려는 순간 다시 그어진 붉은 선이 뒷다리에 새겨졌다.
“정말 튼튼하군. 강철 같아.”
거기냐?
흑마의 뒤차기와 희연의 연사가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헤집었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희연은 노심 아머의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오른쪽에 방어막 쓸 테니까. 오른쪽을 열어.”
푸르르-
놈의 움직임은 마치 그분의 움직임과 너무 비슷했다. 틈이 보인다면 찌르겠지. 반드시 그럴 것이다.
뚝-뚝-뚝-
흘러내리는 핏방울. 흑마의 입에서 하얗게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지금.”
희연이 왼쪽을 무작위로 쏘며, 흑마도 왼쪽으로 몸을 돌렸다.
훤히 드러난 오른쪽.
흑마의 목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강력한 일격과 방어막이 충돌했다.
콰등—
벌집 모양으로 만들어진 방어막이 함박눈을 흩날리며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대전차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노심 아머의 방어막을 흔들 정도의 충격이라니.
희연의 총구와 흑마의 앞발이 오른쪽을 향하기도 전, 방향을 바꾼 칼날이 피가 흐르고 있는 흑마의 옆구리를 노렸다.
그리고. 칼날이 상처를 뚫고 헤집으려는 순간. 줄줄 흘러내리던 핏물이 촉수처럼 움직여 칼날을 막아냈다.
푸슈슈슈슉!
촉수처럼 움직인 빗물이 사방으로 터지며, 붉은 인형을 만들었다.
“피를 다뤄?”
후드득- 떨어지는 붉은 눈발을 털어낸 식인귀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흑마를 바라봤다. 그 순간 작은 소리가 그의 발밑에서 들렸다.
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