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90)
러스트 [RUST]-890
어쩐지 불길한 느낌에 번쩍 발을 든 식인귀가 뒤로 물러섰다.
찍! (죽어!)
얼음과 눈 속에서 삐져나오는 검은 주둥이가 허공을 텁-하고 물었다가 아무것도 없자, 다시 안으로 쏙 들어가는 모습.
‘쥐새끼?’
신성 왕국이 쥐를 조종한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었다. 신성 왕국 핵심 영토 국경선에는 악명 높은 쥐떼가 국경을 지키고 있었다.
희연과 흑마를 가볍게 농락하던 식인귀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찍소리도 내지 않았으면 몰랐다.’
국경에는 초소도 있고 병사들도 있지만, 핵심적인 경계병은 분명 쥐떼였다. 그것도 미친 쥐떼들이.
남부연맹 흩어진 세력들이 신성 왕국에 침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수백 어쩌면 천 단위의 중급 이상 인력들을 보냈음에도 국경지대를 돌파하지 못했다.
만 단위에서 십만 단위가 넘는 미친 쥐떼의 밤낮 없는 공격, 하늘에서 감시하는 까마귀와 고고도 비행선의 추적을 뚫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은 제국을 통해 캐나다로 가서, 캐나다에서 신성 왕국 방향으로 가는 루트였다.
그것도 겨울이라서 가능했지, 괴물 개미들과 거미들이 루트 사이사이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신성 왕국으로 침입하는 건 사실 불가능한 임무가 되고 있었다.
‘기척을 느끼지 못했는데 발밑까지 들어왔어.’
식인귀는 감각을 치켜세웠다. 한 손에 글라디우스를, 다른 손에는 언제 뽑았는지 탄창을 길게 개조한 자동권총을.
딱딱한 얼음과 눈더미를 뚫으려면 분명 소리와 기척이 있을 텐데, 쥐새끼는 말 그대로 기척을 죽이기라도 한 건지. 조짐이 없었다.
‘이건 국경에 있는 미친쥐 이상이다.’
마스크와 고글, 후드까지 꽁꽁 뒤집어쓴 식인귀는 바로 도주를 선택했다. 판단과 동시에 뒤돌아 도망치는 식인귀.
흩날리는 눈발 속으로 식인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걸 본 희연의 몸에서 긴장이 풀어졌다.
위험했어.
시애틀 교전, 남부연맹 교전, 버지니아 잔당 처치 등등. 링크를 통한 교전이라면 충분했다. 직접 나와서 하급 식인귀를 잡을 때와 생명 이단과 싸울 때도 직접 작전에 참여했고.
전용 노심 아머로 무장하면 충분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윗줄의 싸움은 그간 과거 교전 영상에서 봐왔던 이상이었다.
단순히 빠르고 강한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 그게 무엇이든 ‘능력’ 같은 ‘기술’이나 ‘한 방’이 있어야 비빌 수 있었다.
조금 전 도망친 짝퉁 식인귀도 ‘신속’에 가까운 단거리 움직임을 보였다. 그게 고위급 식인귀 특유의 신체능력으로 흉내를 낸 건지. 아니면 진짜 그분의 ‘신속’을 카피한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거 뭐야?”
히힝?
“피. 피로 촉수 만든 거.”
히히힝?
“모르는 척해도 소용없어. 이거 영상도 자동으로 보고되니까.”
희연의 목소리에 걱정이 깃든 것을 읽은 흑마가 눈치를 봤다. 바닥에 뚝뚝 떨어졌던 핏물과 촉수처럼 변했던 핏물이 잘린 것까지 스르륵- 움직여 서로 뭉쳐 한 덩어리로 변해 흑마의 상처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피를 다루는 생명 이단이 움직였던 것과 상당히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걸 바라보는 희연의 눈가에 걱정이 깃들었다.
“그거 잘 다룰 수 있는 거 맞지?”
히이이잉-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흑마의 소리에 희연이 쓰게 웃었다.
‧
‧
‧
진드기처럼 지독하게 달라붙던 흑마를 정리하려고 했더니, 이제는 섬뜩한 쥐가 따라붙고 있었다. 벌써 발목과 발바닥을 노린 공격만도 3차례.
찍- 하는 경고음이 없었다면 속절없이 물렸을 정도로 은밀한 공격. 이제 공격한다는 듯 찍-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자리를 피해야 했다.
신인류로 진화하면서, 그것도 상위 존재가 되면서 날카롭게 변한 오감. 그 오감을 넘어선 육감이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예지와 같이 고차원적인 능력은 아니지만, 총구의 위치 총격의 방향 같은 걸 본능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정도.
아무리 신체능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육감과 날카로운 감각이 없었다면 글라디우스로 총알을 막고 피하는 건 불가능했으리라.
그런데 지금. 그 예민한 육감이 어쩐지 불길하다며 경고하고 있었다.
‘고작 쥐새낀데.’
상급 식인귀는 도망치면서도 자괴감 들었다.
‘fuc···.’
찍-하는 소리를 내고 공격하는 쥐새끼였다. 소리가 나는 순간 카운터를 치면 쉽게 잡을 수 있는 걸. 계속 도망만 치다니.
히이이잉-
그렇지 않아도 씁쓸한데 멀리서 흑마 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공격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놈은 분명 다시 따라붙을 게 분명했다.
‘빌어먹을.’
쥐새낀 무시하고 미친 흑마를 끝냈어야 했는데.
찍!
얼음 밑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식인귀가 글라디우스를 고쳐잡았다.
그래.
죽이자.
이렇게 죽여달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팍- 발바닥 쪽 얼음이 뻥 뚫리며, 입을 쩍 벌린 쥐 대가리가 쏙 나왔다가. 스컥- 얼음 구멍 속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찍!
찍!
찍!
머리가 잘린 쥐의 몸뚱이가 얼음 구덩이 속으로 빠지며 사방에 핏물이 튀었다. 그것에 분노하기라도 한 듯, 쥐떼가 목청을 높였다. 그 벌려진 주둥이를 향해-
투다다다다다닥!
방아쇠를 당기는 식인귀. 자동권총이 기관단총이라도 된 듯 불꽃을 뿜었다. 동시에 휘둥그레 커지는 식인귀의 눈.
쥐새끼의 이빨에 갈려 나가는 총탄. 어이없는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살짝 손이 떨린 식인귀였다. 그 찰나의 흔들림에 따라 총탄이 흩뿌려졌다.
발톱과 이빨이 아닌 곳에 쑥쑥 잘만 들어가는 총알. 괴수의 부산물을 이용한 특수탄이 쥐새끼들을 피떡으로 만들었다.
‧
대류권 경계면에 올라앉은 백색의 비행선.
눈보라가 몰아치는 짙은 구름을 감상하던 마루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낯선 느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인챈트 한 죽음의 기운이 흩어지는 감각. 서서히 녹아들 듯 흩어지는 게 아니라,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느낌에 미간에 잡힌 주름이 점점 진해지는 마루.
‘쥐떼가 죽고 있다?’
쥐떼가 모여 자연스럽게 생체 EMP가 퍼지는 상황이라 교전 영상이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대신이라고 할지, 희연이 보낸 보고자료엔 칼질한다는 식인귀의 모습과 핏물을 조종하는 흑마의 영상이 담겨있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움직임은 마루 특유의 ‘신속’을 닮았다. 눈보라가 치는 상황에서도 총탄을 막고 튕기는 모습은 확실히 제법이었고.
무엇보다 핏물로 만들어진 촉수가 나왔음에도 거리낌 없는 칼질을 보면, 저 식인귀는 전장 경험이 풍부하다고 봐야 했다.
‘또?’
마루가 축성한 죽음의 쥐는 말 그대로 한 방이 있는 쥐였다. 그런 쥐가 몇 분 되지도 않아, 실시간으로 쓸려나가는 느낌.
쥐들이 죽으면서 남긴 염원과 신앙은 어딘지 모르게 끈적한 느낌이었다. 살고자 하는 소망, 죽이고자 하는 복수심. 그리고 쥐들의 천국?
‘죽음의 정원이 쥐의 천국이라고?’
쥐들은 마루가 펼치는 죽음의 정원을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쯧-
죽음의 신을 부르짖는 쥐떼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마루가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그냥 결과만 기다리고 있기엔 기분이 찝찝했다.
마루의 손끝이 뉴클립스와 직도 가운데 뭘 고를지 허공에 잠시 멈췄다. 칼을 고르는 게 분명함에도 뉴클립스는 자신을 선택하라고 울지 않았다. 마치 ‘나는 칼이오.’, ‘보통 칼일 뿐이오.’, ‘그저 칼일 따름이오.’ 하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이것 봐라? 이 녀석. 아직도 이러네.’
1.300만이 넘는 쥐떼의 신앙을 흡수한 뒤로 뉴클립스는 마루를 서먹서먹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먹해진 뉴클립스의 태도는 마루가 인공지능의 신앙을 받으면서 완전히 모르쇠로 변했다.
그런 데면데면한 관계에 방점을 찍은 건 인챈트 사건이었다.
마루가 뉴클립스에 죽음을 인챈트 해보려고 하자. 제발 그러지 말라고 공포에 질린 듯, 미친 듯이 떨어대던 뉴클립스가 완전히 삐졌는지, ‘나는 그저 칼이오.’ 자세로 일관하고 있었다.
“특이한 식인귀인데 갈래?”
마루가 슬쩍 유혹해봤지만, 뉴클립스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직도 삐졌냐?’ 어깨를 살짝 으쓱한 마루가 직도와 단검이 빼곡하게 박힌 단검 벨트를 쥐곤 해치를 열었다.
툭-
리퍼 슈트도 노심 아머도 걸치지 않은 마루가 8km 고도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부화악- 두꺼운 구름을 뚫고 내려가자 순식간에 영하 30도 언저리까지 내려가는 기온.
눈보라가 몰아치는 구름 속으로 자유낙하 함에도 마루는 춥지 않았다. 언제 현현했는지 실처럼 가느다란 죽음의 넝쿨이 코트처럼 변해 마루를 감싸고 있었다.
휘이리리리리릭—-
식인귀와 쥐떼가 싸우는 중간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마루였다. 코트처럼 변했던 죽음의 넝쿨이 둥그렇게 원형으로 펼쳐지며 낙하의 충격을 흡수했다.
마치 거대한 검은 원구가 불쑥 펼쳐지더니, 착지와 동시에 바닥에 깔리는 광경. 거대한 원구가 푹 꺼지듯 사라지며 담담하게 서 있는 마루의 모습이 드러났다.
스르르륵-
그리곤 죽음의 넝쿨이 조심스럽게 마루를 감쌌다. 넝쿨무늬가 선명한 롱코트가 마루의 몸에 걸쳐졌다.
??
!!!
창백한 얼음 대지와 흰 눈보라가 어느새 붉게 물든 공터. 그 치열했던 싸움이 순간적으로 멈춰버렸다.
먼저 정신 차린 쪽은 쥐떼였다.
찌이이이이익! (그분이 오셨도다!)
찌이이이이익! (죽음의 신을 경배하라!)
찌익-찌이이익! (성전-다시 또 성전!)
식인귀는 그 흉포한 기운에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어느새 포위당했는지, 뒤에도 바글바글 모습을 드러낸 쥐떼가 발광하고 있었다.
‘사실은 포위하고 있었던 건가?’
앞에는 블라디마루 칼린. 좌우와 후방은 미친 쥐새끼들에게 포위된 상황.
이렇게 꼬일 일이 아니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그놈의 흑마를 진작 처리했을 것을.
김 양과 마루가 흑마를 아낀다는 정보가 있어 엮이지 않으려고 피했더니, 이렇게 똥이 돼버렸다.
복잡한 마음과는 달리. 식인귀의 눈빛은 짙은 고글로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고위급 이상의 식인귀나 능력자가 한계 이상으로 집중했을 때 보이는 현상.
이글이글 빛나는 식인귀의 눈빛을 무시한 마루가 주변을 살폈다. 최소한 5백은 넘는 쥐들이 죽어있었다.
상황을 보니 도주를 막으면서 포위망을 구축한 것 같은데, 앞에 있는 식인귀를 잡으려면 수천에서 많게는 만 단위까지 갈릴 것 같았다.
죽창도 꽂아 넣어야 죽창이지, 5백 마리 가까이 죽을 때까지 죽창을 박지 못했다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었다.
‘숫자로 밀어붙이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끝낼 수 있겠지만···.’
죽음의 신을 찬양하고 있는 쥐떼를 보니, 그럴 마음이 사라진 마루가 식인귀에게 물었다.
“칼질 제법 하던데. 여기서 뭘 하려고 했나?”
“······.”
마루의 질문에 자동권총의 탄창을 교체한 것으로 답한 식인귀가 글라디우스를 살짝 뻗어 중단자세를 취했다.
근본 없이 본능으로 휘두르는 마루의 칼질과는 달리 확실히 뭔가 있어 보이는 자세에 마루가 작게 말했다.
“뒤로 빠져.”
마루의 명령에 만 단위 이상으로 늘어난 쥐떼가 뒤로 쑥 빠지며 원형 공간을 만들었다.
파파박-
‘빠져-’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 마루가 내쉰 날숨의 틈으로 식인귀가 쑥 찔러 들어왔다.
8m-
10m-
첫걸음.
그리고 하나처럼 이어진 두 번째 걸음.
순식간에 18m를 거리를 압축한 식인귀가 글라디우스를 붕권(崩拳)처럼 쑤셔 박았다.
팅-
그 완벽한 공격에 대응한 건 마루가 아니었다. 죽음의 넝쿨이 단검 집에서 단검을 뽑아 찌르기의 충격을 흡수하며 칼날을 비틀어 흘러내렸다.
식인귀는 그 흘러나 버린 글라디우스를 회수해 뒤로 빠지기보다 전진했다. 아래에서 위로.
팅-
또 다른 넝쿨이 단검을 뽑아 어퍼컷처럼 치솟는 글라디우스를 쳐냈다.
‘씨발-’
위로 치솟은 글라디우스를 그대로 유성처럼 내리꽂는 식인귀였다.
‘맞아라!’
붕권 찌르기에서 어퍼컷 쑤시기 그리고 스매싱 닮은 내려 베기까지. 세 동작이 한 동작처럼 이어졌기에 분명 걸리리라 생각했건만, 식인귀에 눈에 보인 건.
팅-
단검을 든 촉수가 늘어난 모습이었다.
스르릉-
스르릉-
공격할 때마다 늘어났던 촉수가 단검을 뽑기 시작했다.
3개의 촉수가 5개의 촉수로, 5개의 촉수가 8개의 촉수로. 그리고 마지막엔 12개의 촉수가 단검을 엮은 채 하늘하늘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그 자리에서 서 있던 마루의 시선이 식인귀를 향하는 순간. 식인귀는 몸을 뒤로 뺐다.
서걱-
몸은 뒤로 빠졌어도 왼쪽 발목은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목이 잘리는 것과 심장을 꿰뚫는 단검은 막았지만, 자동권총을 쥐고 있던 왼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아아아-
남은 오른발을 박차 뒤로 물러서려는 순간 8개의 단검 촉수가 식인귀를 공중에서 해체했다.
파각- 바가가각-
식인귀의 팔다리가 순식간에 떨어졌다. 내장이 찢어진 몸통에서 흘러나오고 갈비뼈와 척추가 자연스럽게 발골(拔骨)됐다.
철푸덕.
머리통과 상반신만 일부가 남았음에도 식인귀 특유의 질긴 생명력으로 죽지 않은 놈을 향해 마루가 담담하게 물었다.
“그래서.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지?”
“······.”
식인귀의 허망한 눈동자에 비친 모습은.
단검을 든 촉수들이 하늘하늘 경배하고 있는 무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