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96)
러스트 [RUST]-896
디트로이트 블라디 아크 타워에 도착한 마루는 바로 나루즈의 현황부터 확인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본체가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다고 하고 있어.”
기순의 설명에 마루가 발걸음을 멈췄다.
“본체? 그게 무슨 소리야?”
“나루즈 가운데 하나에 나루가 생긴 것 같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나루가 생기다니? 나루는 죽었잖아.”
“그건 제가 말해 드릴게요.”
나주연이 설명을 시작했다.
“제국에서는 클론을 만들 때 통제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나루즈를 만들었을 때는 원본 나루가 클론들을 통제할 수 있게 했었죠.”
“그런데?”
“많은 가설이 있지만, 시뮬레이션 결과 크게 2가지 가설이 유력해요. 하나는 본래의 나루가 영혼이나 그와 비슷한 무언가로 변해, DNA가 같은 나루즈 가운데 하나에 기생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기생?”
“네. 정신인지 영혼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요.”
“그래서?”
“기생하고 있는 나루즈 개체가 계속된 전투와 생명의 위협에 약해졌을 때, 육체를 장악했을 가능성이 커요.”
“그러니까 결과만 따지자면 나루의 영혼이나 정신이 나루즈로 몸을 갈아탔다?”
“네. 확인한 바로는 뉴욕에서도 텔레파시 능력자가 죽기 직전 비슷한 짓을 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닌가요?”
“···그랬었지.”
현장에 있었기에 기억하고 있는 마루였다.
“세상의 법칙이 변하고 있으니, 영혼이나 정신도 물리적, 물질적 작용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나루의 정신이건 영혼이건 마귀 들리듯 들릴 수 있다는 건 그렇다고 치지. 다른 건 뭐지?”
“제국이 나루즈를 만들 때 DNA에 새겨둔 통제 시스템이 발현됐을 가능성이 있어요.”
제국은 클론의 통제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U+ 프로그램이 홀라당 신성 왕국에 넘어갔었으니, 그에 대비를 이중삼중으로 했을 것이었다.
“지휘 개체를 뺏기면, 뺏긴 개체가 가진 지휘권을 없애고 자신들의 통제 아래 있는 다른 개체에 지휘권을 넘길 수 있도록 했을 가능성이 커요.”
“나루즈와 관련된 연구자료는 저번에 전부 가져왔잖아. 제국에서 받은 자료. 거기엔 지금 같은 상황이 없었어?”
“네. 생산 관련 자료는 있었지만, 이런 상황과 비슷한 자료는 없었어요.”
“거. 참.”
나루 클론을 더 뽑지 못하게 자료와 원형 세포를 전부 양도받았는데. 이런 경우를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 의도적으로 뺐을까?
육체를 갈아타는 건 몰랐어도. 통제 관련 기술은 뺐겠지. 통제 기술을 넘겨주면 제국의 클론은 언제든 신성 왕국이 제어할 수 있게 될 테니.
“클론 제어 기술을 완벽하게 분석하려면 현재 진행 중인 연구를 멈추고 연산력을 그쪽으로 돌려야 해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지금 중요한 건 수상도시를 하루라도 빨리 완공하고, 여력을 모아 성층권으로 진출하는 게 중요해.”
12 백작이 이제는 10명으로 줄었다. 자유 캐나다 연맹을 통째로 삼키려던 피 권능 백작을 수확했고, 지배력을 바탕으로 유혹의 권능을 가진 백작을 해체해서 뇌둥둥으로 만들었다.
겨울 사이에 고위급 흡혈귀 2명을 정리했으니, 남은 놈들이 신성 왕국을 견제할 게 분명했다. 게다가 바다 위에 건설하는 신도시로 핵심 시설과 인력을 옮기는 제국도 움직일 터. 엮여서 피곤한 건 사절인 마루였다.
“그냥 비료 만들어 버리면 되는 것 아님?”
“통제력이 생겨서 알 수 있어. 만에 하나 죽음의 정원이 계속 확장해 어느 순간 통제를 벗어나면, 주변의 생명을 모조리 잡아먹고 계속 커질 거다.”
통제에서 벗어난 죽음의 정원이 마루를 제외한 모든 생명을 거두려고 할 것이라는 말에 김 양이 입을 다물었다.
“소화(?)할 시간을 주고 쓰는 건 괜찮은 거지?”
“지금까지는 그런 것 같은데. 확인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기순의 걱정에 마루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우선 주연이는 나루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나루 들린 시체를 정밀검사해서 뭐가 문제였는지 확인해주면 좋겠어.”
“알겠어요.”
“아- 그리고 지배력을 중심으로 유혹 능력을 개화한 여자 흡혈귀 뇌와 척수를 가져왔으니까 그것도 확인하고.”
“그렇게 할게요.”
새로운 실험 소재를 가져왔다는 마루의 말에 번들거리는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나주연이었다. 기순이 슬쩍 소름 돋은 팔뚝을 쓰다듬고는 나루즈 사태를 마저 말했다.
“일단 나루즈는 무장을 해제하고 윈저(Windsor)에 있는 임시 주둔지에 격리해 놨다.”
“······.”
“그리고 에리카가 중상이다.”
“중상?”
“볼펜에 뇌를 찔러서. 상처의 깊이가 깊은 건 아닌데. 아무래도 상처 입은 부위가 부위인지라.”
“급속치료제를 썼는데도?”
“상처받은 뇌를 치료한다고 기억까지 전부 되살아나는 건 아니잖아. 그만큼 민감한 부위기도 하고.”
“하- 어쩌다가 볼펜에 뇌를 찔러.”
기순이 당시 상황을 녹화한 영상을 보여줬다. 나루 들렸다는 개체가 에리카의 콧구멍에 볼펜을 꽂아 놓고 인질극을 하는 내용이었다.
“미치겠네. 저건 또···.”
“나도 보고 황당했다.”
콧구멍에 볼펜이라니. 저게 본래 나루라고 해도 문제였다. 피아노 치던 애가 갑자기 볼펜 살인마가 된 꼴이었으니까.
빠른 반응. 단호한 판단. 거침없는 행동.
확실히 위험했다.
마루는 팔뚝과 어깨에 구멍이 나는 장면에서 정지시켰다. 총격을 받았음에도 자칭 나루라는 존재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위험해.”
“그 촉이냐?”
심장은 두근거리지 않았다.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이 죽음과 뒤섞이면서 이런 일에는 반응하지 않게 된 것이 아쉬운 마루였다.
“아니. 촉은 아니야.”
“그럼?”
인질극이 실패했고 두 팔을 잃었다. 나루즈의 성향을 볼 때, 분명 본체 나루의 목숨을 끊으려고 할 텐데. 목숨에 집착하는 나루의 표정이 그대로다?
“여기 이 표정. 두려움이 없어.”
“···?”
그렇다는 건.
“나루즈에 정신체로 기생하고 있는 나루가 더 있을 수 있다는 거지.”
“죠셉 마이어처럼?”
“확인해봐야겠지. 에리카가 어디까지 확인했지? 확인하다 중지한 뒷번호를 따로 분류해라. 내가 직접 따로 봐야겠어.”
“괜찮겠냐?”
기순의 물음에 마루가 어깨를 으쓱했다.
“봐야 알겠지.”
“알았다. 바로 준비하마.”
“아- 그리고 에리카가 검사를 마친 애들은 완전무장하고 반드시 헬멧까지 쓰고 있으라고 해.”
“확실히···. 그래야겠네.”
기순도 그 의미를 알아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노심 아머로 무장하고 있으면 정신계 대응장비로 보호받을 터, 정신 기생은 막을 것이다. 영혼 기생이라면 어쩔지 모르겠지만.
‧
마루는 지금까지 적 정신계는 반드시 죽였다.
식인귀와 흡혈귀를 죽인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지배력이건 아우라건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주는 능력은 사회를 무너뜨리는 데 최적화된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식인귀과 흡혈귀에 빠진 인간은 애인, 자식, 부모를 제물로 바쳐서라도 그들과 같아지려고 했다.
식인귀에게 사형수를 공급하는 게 잘못이냐는 말. 흡혈귀에게 헌혈하는 게 잘못이냐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 사회는 끝났다고 봐야 했다.
이번에 다녀온 캔자스도 마찬가지였다. 흡혈귀와 식인귀에 저항하며 싸우기보다, 자발적으로 가축이 된 사람들이 있었다.
식인귀가 되기 위해. 혹시라도 흡혈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자발적으로 협력했지만, 대부분은 가축으로 일생을 마감하리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알았으면서도 몰랐다고 그러는 사람들.
속일 수 있다는 건 알면서도 속일 줄 몰랐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
욕심 때문일까?
피지배자에서 지배자가 될 기회가 있다고 제로는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마루가 친위대를 몰살하고 백작을 해체했음에도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잔당과 맞서 싸우겠다고 총을 들지도 않았다.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가축으로 끝날 텐데.
어째서 도망치지도 싸우지도 않는 거지?
자유와 저항이 뼛속까지 박힌 사람들 아니었나?
정신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능력은 그만큼 무서운 능력이었다.
정신적으로 무너진 사람들. 가치관이 완전히 변해버린 사람들은 예전과 같은 공동체를 만들 수 없었고 만들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마루는 식인귀와 흡혈귀를 죽였다. 정신지배의 가능성이 있는 능력자도 정리했었고.
그렇다면 지금. 나루 사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에리카에게 검사받지 않는 나루즈를 따로 분류했다. 바로 보내냐?]“바로 보내라.”
천 명이 넘는 나루즈 가운데 거의 80%를 검사했고 남은 숫자는 200명 정도.
영상 속 자칭 나루는 마루를 만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니 남은 애들 가운데 기생한 나루가 있다면 마루와 개인 면담할 때 반응이 있을 터.
‘격리한다고 될까?’
나루즈에 달라붙은 걸 볼 때, 정신계열은 아무래도 위험했다. 나주연의 가설대로라면 무작위적으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DNA가 같은 나루즈에 붙는다고 봤다.
‘그게 아니라 제국이 만들어 놓은 클론 통제 시스템이 발동해서 생긴 현상이라면···.’
나루즈 가운데서 무작위로 나루가 나온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마루는 자신의 감정이 조금 낯설었다.
죽은 동생이 부활했고 부활한 동생이 인질극을 벌이다가 나루즈에 살해당했다. 그런데 자신은 나루즈 가운데 동생이 더 있는지 확인해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심지어 더 있다면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하고 있었고.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별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아무리 동생이 똥을 싸고 다녔어도 무언가 조금이라도 감정이 있어야 했는데 전혀 없었다.
‘그래서였나?’
마루의 시선이 모니터 속 영상으로 향했다. 문이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총구를 피하는 모습. 그리고 에리카의 콧속에 볼펜을 꽂아넣고 인질극을 벌이는 모습은 전혀 나루 같지 않았다.
럭셔리한 명품을 좋아하고 돈을 좋아하는 나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살인마가 있었다.
옛날 마루를 향해 소리 질렀던 나루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빠 같지 않다며,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죽이냐며 소리치던 나루.
그때 나루의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을까?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럼 바로 순서대로 들여보낸다.]“그래.”
끼익- 문이 열리고 빼꼼. 나루즈가 안으로 쏙 들어왔다. 마루와 눈이 마주치자 빨갛게 상기되는 얼굴.
꺄아아아아아악!
오라버닝이다!!!
하는 마음속 외침이 표정으로 바로 드러나는 모습에 마루가 말했다.
“다음.”
“네? 개인 면담이라고···. 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다음.”
“······.”
사이코메트리도 2~3분 걸렸던 것을 마루는 2~3초 컷을 해버렸다.
‧
꺄아아아아악!
왕님!
“다음.”
어쩌지-어쩌지-어쩌지
오라버닝과 둘이서 상담을···
“다음.”
끼이이익- 문이 열리자, 마루가 담담하게 말했다.
“다음.”
“네? 저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요?”
“나중에 다시 보자. 다음.”
“네에에?”
나루와 똑같은 얼굴이 지나가고 지나갔다. 나루와 같은 얼굴이었지만 전혀 다른 반응들이 이어졌다.
몇 명이나 봤을까?
절반 정도는 봤다 싶을 즈음 기순이 통신을 보내왔다.
[지금 들어가는 애. 감정이 조금 미묘하네.]“들여보내.”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얌전히 걸어와 의자에 앉은 나루즈가 말했다.
“날 찾는 거 같던데. 맞지?”
“네가 먼저 날 찾지 않았니?”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는 똑같은 얼굴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나루즈. 관리하기 힘들지 않아?”
“그래서 수류탄을 던지고 불안하게 만들었냐?”
마루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는지, 바로 목소리가 달라졌다.
“어머. 오빠 진짜 냉정해졌다. 죽었던 동생이 돌아왔는데 표정 하나 안 바뀌네.”
“한참 생각해 봤는데 동생아. 난 착한 동생이 좋더라.”
그게 무슨 뜻인지 고개를 갸웃한 나루가 팍- 테이블을 박차고 뒤로 몸을 빼며 권총을 뽑았다.
“미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