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97)
러스트 [RUST]-897
근거리에서 총구가 겨눠졌음에도 마루는 담담하게 버튼을 눌렀다. 삐삑-하는 소리와 함께 벽과 천장, 바닥까지 벙커 전체에 정신파 차단 장치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착한 동생이 좋다고 하니까 총부터 뽑네. 그렇게 착한 게 싫었니? 아니면 동생인척하는 전투 프로그램일까?”
“무슨 소리야? 지금 뭘 한 거야?”
그러니까 세뇌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가짜 인격이거나, 클론에 주입하려고 만든 전투 인격 같은 거 말이지. 마루의 말에 자칭 나루가 발작했다.
“오빠 정말 미쳤어?”
“총구를 겨눈 사람이 누군데? 지금 총구 들이밀며 나한테 미쳤냐고 하는 게 정상이냐?”
마루의 몸에서 뭉클 검은 넝쿨이 피어오르는 것과 동시에 권총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김 양과 비슷할 정도의 반응 속도로 마루의 가슴과 머리를 노린 총격이 이어졌다.
가슴. 가슴. 머리.
머리. 가슴. 가슴.
순식간에 6발을 발포했지만 죽음의 넝쿨이 더 빨랐다. 공간과 시간을 무시한 것처럼 펼쳐진 죽음의 넝쿨 잎사귀에 힘을 잃은 총알.
후두둑-
잎사귀에 닿은 할로우(Hollow Point, HP.) 탄이 고스란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총탄이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닫자마자 밖으로 도망치려는 나루의 다리를 죽음의 넝쿨이 휘감았다. 단숨에 목숨을 끊지 않고 다리를 바짝 말려버리는 넝쿨.
서서히 파고드는 죽음에서 도망치러 발버둥 치던 나루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그리고 타앙-
마루를 향해 쏴도 소용없자, 바로 그녀 자신의 머리를 향한 총구가 그대로 불을 뿜었다. 마루 이마에 힘줄이 툭 불거졌다.
‘자살?’
나루가 자살을? 구멍 뚫린 머리통이 바닥에 피를 뿌리며, 무언가 비명 같은 게 들리는 듯했다.
꺄아아아아아-
귀신의 울음소리 같은 무언가가 죽은 육체에서 빠져나와 벙커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파직-
투명한 무언가가 정신파 방지 장치에 튕겼다.
■ ■■ ■■ ■—
벽이 막히자 위쪽으로 치솟은 투명한 무엇이 천장을 막고 있는 정신파 장지 장치에 걸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찔러봐도 뚫린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마루를 향해 달려드는 뭔가를 무시한 마루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 마루를 뒤따라 나가려던 투명한 일렁거림이 파지직- 허공에서 튀는 스파크와 함께 방안으로 밀려났다.
■ ■■ ■■ ■—
절규를 내지르며 면담실을 헤집는 무언가를 잠시 지켜보던 마루가 출입문을 닫았다.
파지지직-
‧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빠져나오겠다고 휙휙 발버둥 치다 치지직- 지져지는 것을 본 기순이 바싹 긴장했다.
“저게 뭐냐? 귀신이냐?”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진짜 귀신 된다.”
사념이 형상화되는 판에 귀신을 찾으면 진짜 귀신이 될지 모른다며 타박하는 마루.
“아니. 귀신이 아니면 그럼 저게 뭐냐고?”
“정신파 차단 장치에 걸린 것을 보면 일종의 정신체라고 봐야겠지.”
“정신체? 그게 귀신이잖아.”
“귀신은 영혼이고. 정신파 차단 장치에 걸러지는 걸 영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루의 해석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기순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 영혼이 아니라고 치자. 그래서 저걸 가둬서 어쩌려고?”
“저런 게 또 있는지 마저 확인해야지.”
“뭐? 저런 게 또 있을 수 있어? 또 있으면?”
“이번에 싹 정리해야지. 그러니까 새로 벙커 깔고 면담실 만들자. 하던 거 마무리하게.”
다행스럽게도 면담 도중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나루즈는 나오지 않았다. 정신체가 됐건, 지휘 개체가 됐건 하나만 있다는 이야기.
“개체가 죽으면 마크해둔 다른 육체로 갈아탄다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커.”
확실히 마루의 직감은 좋았다. 과정을 패스하고 바로 결과로 넘어간다고 할까? 기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맞는다면.’
기순은 결과에서 역으로 가능성을 찾아갔다.
“하긴. 클론을 통제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분열해서 둘이나 셋이 생기면 통제력에 혼선이 생길 테니까 그렇겠다.”
“······.”
자신이 유 이사의 환생이라고 주장한 개체를 가둬버린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급속 성장을 시키지 않고 아이인 채로 그냥 두는 것도 그렇고.
정신파 차단 시설 밖으로 나가는 순간, 희연이 링크하고 있는 U+ 개체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어쨌든 저건 나루의 정신이잖아.”
“갔어야 할 곳으로 보내줘야지.”
담담한 대답에 기순은 자기도 모르게 마루의 감정을 확인하곤 물었다.
“어떻게? 정신체라 물리 면역이던데.”
“······.”
“설마 죽음의 정원으로 수확하게? 아서라. 혹시라도 귀신처럼 붙어버리면 어쩌려고.”
“넝쿨에 발이 감기니까 바로 자살했다.”
“······.”
“죽음의 넝쿨이 위협적이었으니까 그랬겠지. 나루가 자살할 애냐?”
자살해서라도 죽음의 넝쿨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는 건, 나루의 성향을 생각했을 때 확실히 이상했다.
“···그렇겠네.”
“자살했다는 건 몸을 갈아탈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죽음의 정원을 펼쳐봐야 알겠지만, 분명 반응이 있으리라 생각한 마루였다.
아니라면.
지금처럼 이대로 가둬두고 방법을 찾으면 되리라.
“영혼을 일종의 에너지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어요.”
나주연이 치지직- 정신파 차단 장치가 만든 역장에 걸린 투명한 무엇을 보며 말했다.
“정신도 마찬가지죠.”
그녀가 보기엔 정신도 일종의 에너지였다. 결과적으로 감정과 감각도 에너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동서양 많은 문화권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바로 승천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이승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장례 절차에는 죽은 자와 산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하는 과정이 있다고 해요.”
그리고 장례라는 과정을 통해 남은 감정을 해소하는 과정이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감정을 없애는 것.
“감정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감정에너지가 다른 쪽으로 영향을 끼칠 테니까요.”
소중한 사람의 죽음으로 발생하는 정신적 에너지가 폭주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시스템이 장례라고···. 나주연은 생각했다.
“그러니까 저것도 일종의 에너지다.”
“네. 그냥 가둬만 둬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희귀한 정신체이기도 하고 클론의 독립성과 신체 갈아타기, 부활 연구에 필요한 소재가 될 수 있으니···.”
서서히 번들거리기 시작한 나주연의 눈빛. 마루가 그녀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아니. 갔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낸다.”
“복제가 아니라 부활을 연구할 수 있어요. 클론으로 부활한 사람들이 겪을 혼란을 없앨 수 있고요. 정신체를 이용한 육체 갈아타기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면···.”
“거기까지. 뭘 연구하든 연구하는 건 좋아. 하지만 정신체를 실험할 수 있는 도구가 있나? 연구할 방법은 있고? 시간이 지난다면 자연스럽게 소멸할 거라면서? 소멸돼지 않게 하려고 멀쩡한 나루즈를 하나 던져주려고?”
“······.”
“연구 방법부터 구상하고 기자재부터 만들도록 해. 세상이 이렇게 변했으니 정신체는 또 나올 테니까.”
“···알겠어요.”
나주연은 아쉬웠는지 파직-파지직- 발광하는 정신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신체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부터 연구해.”
“···그럴게요.”
신앙이 유형화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신앙을 흡수해 물질 법칙에서 벗어난 존재들이 생겨날 가능성이 컸다.
‘아니. 어딘가엔 벌써 나왔겠지.’
그런 놈들을 죽인다면 물질 육체를 벗어버리고 정신체로 변해 깽판을 칠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더라도 정신체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무기는 필수적이었다.
“제국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클론 통제 시스템 속에서 정신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
지휘 개체가 죽는 순간. 클론 병력이 통째로 무력하게 된다면 그만큼 치명적인 약점이 없었다. 그러니 지휘 개체가 죽으면 클론 가운데 하나가 지휘 개체의 역할을 이어받게 했겠지.
“제국이 클론을 주력으로 한다면 결국 정신체 문제가 생길 거다.”
날이 풀리면 거미, 개미, 쥐떼와 난장판이 벌어질 터. 해상 도시로 중요 설비와 인력을 옮긴다고 해도 본토를 버릴 수는 없었다.
해상 도시에 들어가지 못한 인구를 포기하는 건 불가능했고 마찬가지로 본토에 있는 설비와 자원을 포기하는 것도 불가능했으니까.
결국. 본토 핵심 지역을 방어하고 토벌하는데 클론 병력이 갈릴 텐데. 지휘 개체가 죽고 갈아타기를 반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확실한 것은 나루즈의 사례를 봤을 때,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 본체에 강한 적개심을 가진 나루즈였으니 망정이지, 아니라면?
“문제가 심각해지겠네.”
“그래.”
신성 왕국은 클론도 개별 인격이 있다면 권리를 준다고 했지만, 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클론을 대규모로 뽑는다면 고기 방패, 고기 소총을 만들기 위해서일 테니.
‧
며칠 동안 집요하게 발작하던 정신체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잠잠해졌다. 마치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은 어디에 있어?”
“왼쪽 구석. 많이 불안한 것 같다.”
혹시나 한 기순이 능력을 사용하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곳에 감정의 기운이 떠올랐다. 기순의 능력이 정신체의 감정을 파악한 것.
“크기는?”
“어제랑 변함이 없어.”
나주연은 40~50일 정도면 정신체가 자연 소멸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기순의 능력으로 살핀 결과 더 오래 버틸지도 몰랐다.
“나루즈 가운데 문제 있는 애는 없고?”
“완전무장하고 다니게 했고 막사와 벙커에는 정신파 차단 장치를 설치해서 그런지 아직까진 문제없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는 정신체. 마루는 정신체가 있다는 왼쪽 구석을 바라봤다.
자연스럽게 돌아갔으면 좋으련만. 며칠이 지났어도 크기에 변함이 없다는 것은 정신체의 집착이 상상이라는 것이겠지.
나주연과 연구진은 정신체를 공격할 무기를 개발하겠다며 벌써 4차례나 실험했다. 기순이 정신체가 있는 곳을 알 수 있으니, 그 방향으로 실험용 무기를 사용해 정신체의 반응을 관찰한 것.
하아-
깊게 숨을 내쉰 마루가 입을 열었다.
“···보내줘야겠다.”
“그래···.”
정신파 차단기가 설치된 해치를 열고 마루가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린 그 틈으로 도망치려던 정신체가 치지직- 뚫지 못하고 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
귀곡성이 마루의 머릿속을 울렸지만, 소용없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마루의 몸에서 뭉클 죽음의 정원이 펼쳐졌다. 죽음이 펼쳐지자, 위이이잉- 정신파 차단 장치가 순식간에 먹통이 됐다.
꺄아아아아아아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솟아오른 정신체를 가로막은 건 죽음의 정원이었다. 바닥, 벽, 천장을 뒤덮은 죽음의 정원에서 넝쿨과 풀잎이 피어올랐다.
보이지 않는 정신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처럼. 치솟는 넝쿨과 풀잎. 이리저리 몰려다니던 정신체가 마루를 향해 달려들었다.
촤라라라락-
하지만 마루에 닿기도 전, 죽음의 쥐가 뛰어올라 정신체의 얼굴 부분을 파고들었다. 잠시 주춤한 사이 사방에서 쏘아진 넝쿨에 둘둘 말린 정신체가 단말마와 함께 파칭- 사라졌다.
“······.”
“······.”
======
======
제국. 임시수도 보스턴(Boston) 총통 관저.
벌써 3월. 3월 중순임에도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었다. 내륙이 15도에서 20도인 것과 비교하면 그래도 병력을 동원할만한 기온이었다.
“날씨가 완전히 풀리기 전에 거미와 개미를 잡아야 해.”
작년을 기준으로 보면 5월부터 최저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컸다. 날이 풀리면 거미와 개미의 활동이 자유롭게 될 테니, 지금이 기회였다.
“준비는 어떻게 됐지?”
“엑소슈트 부대 10만 명과 기계화 보병 15만 명 그리고 클론 부대가 50만입니다.”
무려 75만 명을 동원한 소탕 작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 가운데 클론 부대가 50만. 저번 가을부터 이번 겨울 동안 무려 50만의 클론 부대를 생산한 제국이었다.
덴 브라운은 신성 왕국에서 보내온 정보를 떠올렸다. 클론 병사를 중심으로 병력을 구성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불간섭한다고 하더니 이런 정보를 보내온 신성 왕국이었다.
‘아직은 제국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건가?’
제국이 무너져 3천5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식인귀와 흡혈귀, 변이 괴수와 곤충의 먹이가 된다면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신성 왕국에서 보낸 정보를 흘려 듣지 않은 덴 브라운이었다. 다만, 제국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거미, 개미 굴이 있었고 들쥐 무리도 제법 많았다. 지금이야 세력이 크지 않더라도 그냥 둔다면 몇 년. 아니, 몇 개월 만에 수백 배 커질지 몰랐다.
단기간에 토벌하려면 많은 병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단기간에 병력을 확충할 방법은 클론밖에 없었고. 이미 작년부터 클론 병력 양산을 시작했는데 여기서 클론 50만을 그냥 놀릴 순 없었다.
덴 브라운이 명령을 내렸다.
“작전 개시.”
제국이 토벌 작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