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00)
러스트 [RUST]-900
현재 한국의 인구는 3천5백만. 그런데 중국과 일본, 대만 난민을 합하면 그보다 많을지도 몰랐다.
“이 지경이 되도록 난민을 받은 이유가 뭐지? 처음부터 막았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부동산 때문이겠지.”
“···뭐?”
“뭔가 상태가 이상하다 싶으면 부동산, 주식, 사기 때문은 아닌지 봐야 한다니까.”
부동산 문제, 여기에서 업그레이드하면 부동산 사기 문제. 주식도 대충 마찬가지였다. 주식이 어쩌고 한다? 뒤에 사기를 붙이면 멋진 모양이 잡힌다.
“······.”
“지금 같은 경우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주식과 사기가 겹쳤겠지. 아. 그냥 단순하게 부동산 문제로 엮어서 생각해도 좋고.”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기순이었다.
1천7백만에 달하는 인구가 줄어들었기에 빈집이 넘쳐났다. 그리고 그 빈집을 가득 채운 것은 난민들이었다.
난민들이 많아질수록 빈집은 줄어들었고 가격은 폭등했다. 난민이 돈이 없다고? ‘좋은’ 곳에서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되도록 60년 상환이라는 아름다운 특혜 제도까지 신설한 한국이었다. 기존에 50년짜리보다 무려 10년이 더 긴 특별상품.
“50년짜리는 들어봤어도 60년?”
“5억 이상 부동산 취득하면 영주권 주는 나라였었는데, 60년짜리 노동력-주담보대출 만든 걸 가지고 뭘 그리 놀라?”
처음 중국과 일본에서 난민이 들어왔을 때, 외딴 섬 캠프에 몰아넣고 관리하는 것을 시작했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육지에 있는 연수원에 데려와 금이 있는 난민에게는 금+노동력 주담보대출로 미분양 아파트 분양을, 진짜 몸만 온 난민들에게는 50~60년간 월급에서 자동으로 떼가는 방식으로 빈집 구매를 중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난민을 이용해 부동산 가격 상승을 노렸다고? 한국 정부가 난민들에게 대출 줘서 주택과 아파트를 분양받게 했다?”
“식인귀 정권이었을 때는 도시락들이 알아서 들어오는 걸 막을 이유가 없었지. 대충 한 지역에 몰아넣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미분양 아파트와 빈집을 채워주는 고마운 도시락들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핑계도 좋았다.
난민들이 많아지면 단순노동에서 임금 경쟁이 생겨, 전체적인 월급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었으니까 그걸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인력 갈아 넣기를 해도 새로운 인력이 생긴다? ‘좋소!’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인력난인데 잘됐다고. 요즘 한국 사람들 힘든 일 하지 않으려고 하지 않나? 그러니 난민들 들어오는 것 너무 좋소! 하는 사람들에게 난민 공급은 옳은 일이었다.
문제는 그 숫자가 이렇게까지 빨리 그리고 많이 늘어나리라 예측하지 못했던 것. 일본에서 넘어온 난민의 숫자가 1천만이 넘을 줄 누가 짐작했겠는가? 중국에서 2천만이 넘게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10만, 20만, 100만 정도까지는 각 지자체에서 서로 데려가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경제가 무너지고, 중국과 미국과의 전쟁. 기존 국제 무역의 종말이 이어졌다.
그런 혼란 속에 식인귀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사회경제 시스템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들어온 난민들의 숫자가 몇백만을 넘어서자, 식인귀 정권에서는 한 지역에 새로 들어온 난민들을 몰아넣어 격리를 추진했었다.
식인귀 정권을 몰아낸 뒤, 새로 들어선 한국 정부는 처음에는 난민들과의 공존을 선택했으나 반년 만에 통제 불가능한 사태가 된 것이었다.
“애초에 난민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게 병신이었지.”
기순이 고개를 흔들었다. 당장 캐나다만 하더라도 그랬다. 캐나다 정부가 증발하고 경제와 인프라가 무너졌다.
사실상 캐나다가 망해 버린 걸 살려줬음에도 그 지랄이었는데, 난민들을 이용해서 경제를 돌리고 부동산을 굴리겠다는 발상이 성공하겠는가?
“난민과 이민 받았다가 유럽이 불타는 걸 봤음에도 초기 대응을 잘못한 탓이다.”
기순의 해석은 생각보다 냉혹했다.
“중국 난민도 그렇지만 일본 난민이 무장했다는 건. 사실상 한국으로 넘어올 때, 제대로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잖아. 그래놓고 무슨 난민과 공존이냐? 상대방에게 총 들려주고 공존하자고 하면 공존이 되겠냐?”
식인귀가 넘어왔다는 건, 신성 왕국의 진단키트를 이용한 기본 검역도 하지 않았다는 의미고.
[비공개 회담이 준비됐다고 합니다.]‧
회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 논의는 예상과는 달랐다.
“이렇게 직접 만나서 인사할 수 있어서 좋네요. 반갑습니다. 전에는 화상통화로 인사드렸었죠. 신성 왕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직도 식인귀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겁니다. 한국 국민을 대표해 정말 감사합니다.”
새로 선출된 한국 대통령의 첫 대응은 예상과는 달랐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워낙 당연하지 않은 세계인지라. 감사인사에 조금은 말랑해진 마루와 기순이었다.
“···난민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됐지요.”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현황판이 올라왔다. 인천과 부평은 난민 세력에 넘어갔고 부천도 절반이 넘게 난민 무장 단체에 넘어갔다.
“시흥은 막았지만, 당진과 서산이 넘어갔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평택과 인근 지역에서 맹렬한 공방전이 이어졌고 평택 방어에 매달리는 사이, 태안반도가 넘어갔다.
이후 태안반도를 중심으로 서해안 공격이 이어진 끝에 며칠 전 목포가 함락된 상황이었다. 100만의 병력으로 길게 이어진 서해안을 전부 막는 건 불가능했다.
100만을 온전히 서해안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일터로 돌려보낸 200만을 다시 소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중국 난민과 사실상 전쟁 상태가 되자, 일본 난민들의 움직임도 좋지 않습니다.”
전에 난민들과 협상을 했음에도 고작 6개월 만에 판이 엎어졌다. 협상이나 계약의 기초인 신용이 천박한 농담으로 치부된 것.
“그래서 난민 무장 단체와 중재를 요청하시는 것입니까? 다시 협상한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변하면 지금과 똑같은 일이 반복될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세상이 종말로 치닫는다는 건, 단순하게 건물이 부서지고 치안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종말은 이제껏 쌓아 올린 모든 가치가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신용이 무너진다는 것은 거래, 협상, 계약의 기초가 사라짐을 뜻했다.
화폐가 가치를 잃고 약속에 의미가 없다면 시장은 어떻게 될까? 국가는 어떻게 될까?
난민들이 합의를 어기고 무력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한 순간, 한국은 국가 존속이 위협받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난민과 다시 협상한다?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했는데 허허- 웃으면서 다시 새로운 조건으로 계약하자?
전쟁하느니 다시 협상해 재계약하는 것이 낫다는 관점도 질서를 기반으로 한, 규제가 있을 때나 의미 있는 생각이었다.
세계적으로 기존의 질서가 무너진 현재. 무장한 난민과의 재계약이나 협상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중재가 아닙니다. 난민 세력을 와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감사인사부터 했던 한국 대통령의 눈빛은 한없이 차가웠다.
‧
마루가 한국 대통령과 회담하는 동안, 기순은 한국 총리와 이야기했다.
“와. 싸우자는 건 줄 알았다니까.”
감정을 보는 능력이 없었다면, 시작부터 박차고 나갔을 거라며 기순이 투덜댔다.
“총리가 무슨 소리를 했길래?”
“시작부터 우리가 김기순, 하마루라는 걸 알고 있다는 둥, 친인척과 만나고 싶으면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둥. 뻘 소리하더라.”
블라디마루 칼린이나 버나드 그린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했지만, 하마루와 김기순이 한국에 살았었고 친인척이 한국에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마루의 친인척이야 집안이 망한 뒤로 연을 끊었기에 그들이 어떻게 되건 상관없었다.
기순도 재벌가 사생아 출신으로 미운 오리 새끼의 삶을 살았던지라, 친인척이 어쩌고 그룹이 망하니 어쩌니 하는 건 아무런 의미 없었다.
“재밌네. 그래서?”
“그래서긴 뭘 그래서야. 개소리하지 말고 난민 문제 해결하면 뭘 어디까지 내놓을 건지 말하라고 했지.”
기순의 말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과 거래할 때마다 기순을 보냈더니, 녀석. 이제는 알아서 기브 앤 테이크를 실천하고 있었다.
“난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달라고 하든?”
“한국 대통령 아재 생각보다 무서운 양반이더라고.”
식인귀 정권에 반발하다 도시락 될 뻔했다가 살아남아서인지, 상당히 냉정했다.
“네가 무섭다고 할 정도면 맛이 간 양반이라는 소린데. 뭐라고 하길래?”
“난민 세력을 와해해 달라더라.”
마루의 대답에 기순은 황당했다.
“그냥 대놓고? 갑자기?”
“그래.”
“와- 미쳤네. 미쳤어. 와. 씨발. 난민을 와해시켜 달라?”
황당해했던 기순이 바로 분개했다.
“아- 씨발. 그러니까 지금 우리보고 난민 무장 단체를 없애달라는 소리를 한 거잖아.”
“그렇지. 이야기해보니까 전후 상황까지 다 생각한 것 같더라.”
난민 세력을 와해하려면 구심점이 되는 무장 단체를 없애야 했다. 사실상 전쟁을 대신해 끝내 달라는 소리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
한국군은 방어에 전념하고 있을 테니 공격은 신성 왕국이 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경우 난민을 공격하는 쪽은 어쨌든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난민이라는 것 자체가 살아남기 위해 본국을 떠난 약자를 의미했다. 난민 무장 단체는 그런 난민들을 지키기 위해 생긴 자경단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실제로 공격하는 쪽이 난민 무장 단체라고 하더라도, 난민들은 약자인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사실관계야 어떻든 난민 무장 단체는 그런 식으로 난민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결국. 무장 단체를 박살 내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무장 단체에 있던 친인척을 잃은 난민들의 원한은 신성 왕국으로 향할 것이다.
신성 왕국이 액받이를 해준다면, 한국은 살아남은 난민들과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겠지.
“와- 그걸 알면서도 난민을 와해시켜 달라고 했다고? 우리 보고 독박 쓰라고?”
“신성 왕국은 태평양 건너에 있으니. 난민들이 우릴 원수로 생각해도 어쩌겠느냐는 소리지.”
현실적으로 신성 왕국이나 제국의 비행선이 아니라면 태평양을 건너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굳이 간다고 하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널 수는 있겠지만, 지진이 훑고 지나간 미국 서부 지역에 도착한다고 한들. 신성 왕국으로 살아서 도착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난민 무장 단체를 정리해도 신성 왕국에 실질적인 위협은 없을 거다?”
“그런 뜻이겠지.”
그것도 비공개 회담을 통한 비공식 요청이었다.
“미국도 그러다가 똥을 쌌는데.”
“우리는 미국이 아니니까.”
마루의 대답에 어이없어하던 기순의 실눈이 반달로 휘었다.
“결심이 선거냐?”
난민에게 죽음을 공개할 결심.
“무장 단체 구심점이 식인귀라고 하니, 정리하는 게 맞겠지.”
“성층권 비행선과 드론으로 촬영 준비할게.”
벌떡 일어난 기순이 깜빡했다는 듯 말했다.
“이왕 할 거 PD 아재와 홀리교 사람들도 부르자.”
“···마음대로 해라.”
‧
인천 부평. 무장 단체 회의실.
“한국 정부에서 신성 왕국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하더이다.”
“알고 있소. 오늘 신성 왕국 국왕이 극비로 입국했다고 하더군.”
“한국의 생산력을 지키려고 똥줄이 탔나 보네.”
“국왕과 캐나다 지역 총리까지 왔다는 걸 보니, 실무진 협의까지 할 생각이야.”
중국 난민 무장 단체는 하나인 것처럼 보였지만, 서로 자신들의 정보를 은연중에 자랑하는 것을 보면 하나가 아니었다.
7개로 쪼개진 중국 가운데, 티베트, 신장, 내몽골 지역을 제외한 4곳에서 한국에 특수부대를 보낸 것.
서로 내전 중인지라 처음에는 자기들끼리 싸웠지만, 한국이라는 먹잇감을 두고 싸우는 건 멍청한 짓이라며 한국에서만은 휴전하자는 의견이 통과됐다.
누군가 독점으로 한국의 기술과 인력을 빼가는 것을 나머지 세력이 합심해서 막았기에,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기술과 인력이 아직은 안전할 수 있었다.
“신성 왕국이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기 전 한국 정부를 협상 테이블에 끌고 와야 하는 게 좋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한국 정부가 쉽게 협상할까?”
“협상하도록 만들어야지.”
“어떻게?”
“시흥과 평택 반도체 시설을 장악하고 인질을 이용하면 한국 정부도 어쩔 수 없을 거요.”
“그럼 병력을 시흥과 평택에 집중시켜야 한다는 건데.”
“여기까지 와서 서로 견제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일단 나누는 건 시흥과 평택을 함락하고 난 뒤 다시 논의하지.”
“뭐. 실력대로 나눠도 좋고.”
“실력대로라. 좋지. 어차피 결판을 보긴 해야 했으니까.”
쾅-
거칠게 문이 열렸다.
“괴. 괴물입니다. 도망···.”
찌익-
검은 그림자 같은 쥐떼가 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내의 다리와 등판에 달라붙었다. 으아악! 비명을 지르기가 무섭게, 안구와 목구멍을 파고 들어가는 쥐떼.
!!!!
그 끔찍한 모습에 회의실에 있던 자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투다다다닥!
타다다다당!
실시간으로 파먹히는 남자의 몸 위로 쏟아진 총탄. 총에 맞은 검은 쥐떼가 입자로 변해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에 그들은 넋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