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01)
러스트 [RUST]-901
저게 뭐야?
신인류. 그 가운데서도 특수부대원들. 인간 따위는 가축으로 보며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그들이었다.
혹독한 내전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이었지만, 손바닥 반절 크기의 작은 쥐새끼가 사람의 안구와 목젖을 생으로 뚫고 들어가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어지간한 팔뚝보다 큰 쥐도 봤었다. 성인 남성의 신발보다 더 큰 바퀴벌레도 흔했다. 길이가 10m가 넘는 독사와 호랑이보다 큰 고양이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죽여봤다. 그것들은 당연히 시체가 남았었다. 아무리 큰 설치류, 곤충, 고양잇과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죽으면 시체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저건 뭐지?
총에 맞더니 검은 입자로 변해 허공으로 사라져?
남은 것이라고는 눈이 파먹히다 못해 회백질이 흘러내린 인간의 시체만 남았다. 검은 쥐새끼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괴이한 현상.
투다다다다닥!
수십 마리를 죽였더니 수백 마리가 밀려들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주- 죽여!”
“쏴!”
투다다다다닥!!!
철컥. 철컥.
“정신 차려!”
“화염방사기!”
“화염방사기 있는 새끼 어딨어?”
“밖에 쏴!”
“저리 비켜. 병신 새끼들 쫄기는.”
파란 불꽃이 켜진 화염방사기가 문밖을 향해 겨눠졌다.
“발화!”
푸화아아아아악!
철근콘크리트 벽까지 통째로 구워버릴 정도로 뜨거운 불길이 검은 쥐떼를 덮쳤다.
“봤어?”
“저거 시체 없어지는 거 맞지?”
“흔적 없어지는 거?”
“봤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검은 입자로 변해 사라지는 쥐떼들.
“검은 쥐떼를 소환하는 능력인가?”
“저딴 괴물을 소환하는 능력이라고?”
“그런 능력이 있으면 어째서 지금까지 쓰지 않은 거지?”
“한국에 소환 능력자가 있었다면 진작 썼을 거다.”
“그래. 그렇겠지.”
그렇다는 건 신성 왕국에서 데려온 능력자라는 뜻이었다.
“병신 같은 새끼들 정보 하나 제대로 물어오지 못하나?”
“제기랄.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어떤 병신이 장소 흘렸어?”
“닥치고 다시 쏴!”
아직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았음에도 다시 밀려드는 검은 물결들.
푸화아아아아아악-
찍- 찌이이익-
화염방사기를 쏘아내던 남자가 외쳤다.
“이상해! 이것들 이상하다고!”
다른 것도 아니고 불이었다. 그것도 일반 불꽃이 아니라 지독한 화염방사기의 불꽃. 당연한 소리겠지만, 화염방사기의 불꽃에 맞으면 사람이건 동물이건 고통에 몸부림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지금 검은 입자로 변해 사라지는 괴물 쥐떼엔 불꽃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었다. 불꽃에 타는 고통도 보이지 않았고, 생명체라면 응당 있는 불길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화염방사기 연료와 탄약이 떨어지기 전에 빠져나간다.”
“빌어먹을!”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해.”
“탈출로는 어디야?”
“뒤쪽 출입구를 따라서 쭉 가면···.”
쿠직-
뒤쪽 출입구로 위의 천장이 무너지며 검은 쥐떼가 쏟아져 내리는 모습에 식인귀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샤오시바(小西八 [xiǎo xībā])
시바- 망했네.
‧
‧
‧
마루는 정신을 집중했다.
‘제어할 수 있다. 통제할 수 있어.’
활짝 펼쳐지려는 죽음의 정원을 통제하는 마루.
백작급 흡혈귀 세력의 생명을 먹고 소화해서인지, 죽음의 정원을 포함해 쥐들이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이 훌쩍 늘어났다. 쥐만 따진다면 이제는 5km가 넘게 보낼 수 있었다.
사실상 부천시청에서 부평구청을 공략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인지라, 전선에 있는 것들부터 지휘부까지 단번에 쓸어 버리는 것도 가능했다.
■■■■■■■■■■!!!
발끝에 작게 펼쳐진 죽음의 정원 속에서 미니어처 크기의 조그만 넝쿨들이 꾸물거리는 모습이 생생했다.
마치 자신들도 가고 싶다고, 잘할 수 있다며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모습에도 마루는 통제력을 잃지 않았다.
팍-
파치직-
파파팟-
워낙 작게 펼쳐진 터라 커다란 대접 정도로 귀여운 크기의 정원이었지만, 그 속에 꿈틀거리는 거대한 죽음이 근처에 있는 전자장비를 전부 먹통으로 만들었다.
귀여운 정원 속을 다니는 검은 쥐를 향해 마루가 명령했다.
(무기를 가진 자만 공격하라.)
찌이이익!
자유를 허락받은 조그만 죽음이 검은 정원에서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놈들의 지휘부를 공격해.)
죽음의 정원에서 흘러넘치듯 솟아나는 쥐들의 숫자는 순식간에 10만이 넘고 20만이 넘어 30만에 육박했다.
무려 30만 마리의 죽음이 난민 무장 단체가 모인 곳을 향해 밀물처럼 달려들었다. 잠시 뒤 뽁뽁이 터지는 느낌과 함께 수십 마리의 죽음이 사라지는 감각이 들었다.
지휘부로 추정되는 곳이 발견되는 것과 동시에, 주변을 수색하던 죽음의 쥐들이 전부 그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 마리가 순식간에 죽어 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천 단위의 쥐 떼가 몰려들었다. 특수부대 식인귀들이 간신히 천 단위를 죽이자, 그 뒤로 몰려가는 만 단위의 검은 죽음.
마루는 천천히 걸으며 감각에 집중했다.
비눗방울 터지듯 퐁퐁 사라지는 느낌은 쥐들이 역소환 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중간중간 간질간질 미약하게 느껴지는 충족감은 생명을 수확할 때의 느낌인 걸까?
‘만 단위에서도 1분 넘게 버티네. 식인귀 주제에 특수부대는 특수부대란 말인가?’
하지만 그뿐. 개미와 거미를 잡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하나. 끝없는 물량에는 장사 없다는 것이었다.
마루 자신도 죽음의 정원 없었다면 결과는 명확했다. 만약 기존의 살기만 가지고 있었다면, 정신력과 체력이 고갈되는 순간 물량에 휩쓸려 끝났겠지.
자신도 그럴진대. 중국에서 넘어온 식인귀들이 아무리 베테랑 식인귀라고 한들 끝없는 죽음의 쥐떼를 벗어날 수 없었다.
퐁퐁 튀던 감각이 점점 줄어들며 미약하게 성장하는 죽음의 느낌. 결국. 특수부대 식인귀 수십 마리가 3분을 버티지 못하고 지워졌다.
‘끝났나? 음?’
뭐지 이 작은 느낌은?
특수부대 쪽에 신경 쓰다가 미세한 감각을 놓치고 있었나?
마루가 통제력을 집중하자 현재 상황이 느껴졌다.
특수부대 식인귀를 잡는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상황이 끝나버려서 생긴 현상이었다. 갈 곳을 잃은 쥐떼가 무기를 든 무장 난민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
‘무기를 든 자만 공격하라.’고 했던 마루의 명령대로 죽음의 쥐떼는 무기를 든 자들을 수확하고 있었다.
시가전을 펼치던 무장 난민들을 휩쓸어 버린 죽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맑은 물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 물 전체를 시커멓게 만드는 것처럼 확산하는 죽음의 쥐떼.
찌이-■-
■■-익-
30만 마리의 쥐떼는 순식간에 40만 마리가 훌쩍 넘어 버렸다. 초 단위로 수천씩 불어나는 쥐떼에 마루의 미간에 작게 주름이 잡혔다.
‘그만. 거기까지-’
도시를 잠식한 죽음의 쥐떼가 검은 입자로 변해 서서히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 대신이라도 하듯 작게 펼쳐져 있던 죽음의 정원이 넝쿨과 함께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
‧
‧
기순과 PD는 성층권 정찰 비행선과 원거리에서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보곤 할 말을 잃었다. 마루의 발밑에 펼쳐진 작은 정원에서 나오는 검은 쥐떼가 분열하는 모습.
“······.”
“······.”
1마리가 3~4마리로, 2마리가 10여 마리로, 4마리는 20마리가 넘게. 규칙도 뭣도 없이 마구 복사되는 것처럼 늘어났다.
“······.”
“······.”
순식간에 10만이 넘어 버리고 20만이 넘어갔다. 그렇게 마지막에는 40만이 훌쩍 넘는 죽음의 쥐떼가 추정치 20만이 넘는 무장 난민들을 삽시간에 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시가전? 은폐, 엄폐? 문을 잠그고 버틴다? 그럴 시간을 주지 않고 휩쓸어 버리는 검은 물결. 그건 분명 쥐의 모습을 한 죽음이었다.
“12번 드론이 촬영한 영상부터 뽑아.”
“여기는 지금 신성 왕국 블라디마루 칼린 국왕이 직접···.”
“현장 상황 연결하겠습니다.”
“근접 촬영이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재. 부평에 있던 무장 단체가···.”
방송국 카메라와 기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생방송으로 송출하기로 했었기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다들 알아볼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노약자 임산부, 청소년 관람 불가로 해야 했었나?’
기순이 PD와 함께온 홀리교 중진들을 힐끗 바라봤다. 홀리교도들은 영상을 보곤 당황하고 있었다.
죽음의 쥐떼를 부리는 인류의 수호자?
증식하는 쥐떼를 소환해 무장 난민을 파먹는 구원자?
머리에 렉(lag)이라도 걸린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홀리교도들.
“······.”
“······.”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한국 정부 인사들도 단독으로 무장 난민을 정리하러 갔다는 마루의 위엄을 관전하기 위해 함께했었는데, 생중계를 본 사람들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
“······.”
기순은 그들의 감정이 빠르게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걱정.
중간에는 기대.
그리고 마루가 본격적으로 죽음의 쥐떼를 소환하자 경악하는 사람들.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뚫고 들어가는 쥐떼. 자동차의 철판을 갉아먹는 것도 모자라 장갑차까지 파먹는 건 분명 쥐의 모양을 한 죽음.
맙소사.
사람들에게 남은 감정은 그저 경악과 공포였다.
“······.”
“······.”
기순의 가느다란 실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이대로 간다면 죽음의 신이 아닌, 공포의 신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죽음 쪽으로 유도해야 하나?’
아니.
어쩌면 차라리 잘된 건지 몰랐다.
‘죽음과 공포의 신이라.’
그래. 영역을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짙은 공포로 가득한 감정들을 확인한 기순의 시선이 PD를 향했다. PD의 감정은 변함없는 믿음이었다.
‘그런데 PD 아재 눈동자가 왜 떨리고 있지?’
기순은 감정과 몸의 반응이 어긋난 PD를 보곤, PD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박혀있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 시-’
모니터 속에는 죽음의 정원을 펼친 마루가 있었다. 억제했던 걸 풀어줘서 기쁜 것처럼 넝쿨과 강철 풀잎이 하늘하늘 위로 치솟아 경배하고 있었다.
쉬리리■■–리리릭!
■■파르르–■-르-
[죽여!] [괴물이다!] [아- 악마!] [쏴!]중국제 대전차 미사일과 중기관총 탄알이 마루를 향해 쏟아졌지만 아무 의미 없었다. 대전차 미사일도 중기관총도 마루를 경배하는 죽음의 넝쿨과 칼날 풀잎을 뚫지 못했다.
저벅-저벅-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서서히 다가서는 마루의 모습은 그 자체로 불가해였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쏘아지는 죽음의 넝쿨.
끔찍한 비명을 끝으로 생명이 빨리는 자들. 한 줌 비료로 변하는 무장 단체 사람들. 인간들의 단말마가 지옥의 한복판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생기가 빨려 미라처럼 변했다가, 결국엔 가루로 변해버리는 광경. 사방에서 뻗은 죽음의 넝쿨에 감기는 순간. 고통의 절규로 몸부림치다 비료가 되는 결말.
저벅-저벅-
한걸음마다 메아리치는 죽음 속에서 사람들을 헤집고 다니는 검은 쥐떼까지. 순식간에 10만이 넘는 무장 단체가 거름으로 변하는 모습에 누군가 중얼거렸다.
“악마-”
누군가 시작한 독백 한 마디가 웅성웅성 늘어났다.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구원하옵시고.”
“마하반야바라밀다-”
마루를 믿는 게 아니라, 마루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에 뭔 불경(?)을 읊는 사람까지 있었다.
기순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공포의 신도 있고 죽음의 신도 있는데 이 반응은 뭐지?
마치 인간을 멸종시키러 강림한 뭔가처럼 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감정은 짙은 공포 그리고 공포뿐이었다.
그럼 공포의 신이라고 해야 할 거 아닌가?
‘시바- 이게 아닌데.’
심지어 지금은 전국에 생중계 중이었다. 한국 사람들의 신앙을 모으는 것과 동시에 무장 난민들도 와해시키려는 계획으로 생중계를 밀어붙였다.
난민들에게 경고하면서 난민들의 신앙까지 챙겨보려는 발상이었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악마라거나 이상한 믿음이 생길 것 같았다.
‘까마귀나 쥐, 늑대들은 바로 죽음의 신을 떠올렸잖아. 아니면 공포의 신이라도 떠올리라고.’
그저 공포라니.
끝까지 공포의 신을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인간은 대체.
믿을 것은 미리 이야기를 나눴던 PD 아재뿐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신실한 믿음이 있는 PD 아재라면 이상하게 변하고 있는 분위기를 반전시켜 주겠지.
지금이라고.
늦기 전에 한마디 하라고.
PD 아재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기순이었지만, PD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실눈을 꾹 감은 기순이 PD의 옆구리를 쿡 찌르자, 반사적으로 번쩍- 두 손을 Y자로 펼친 PD가 외쳤다.
“경배하라! 죽음의 신을!”
그 강렬한 외침에 생중계하고 있던 언론사 카메라들이 전부 PD를 향했다.
“보라! 공포의 주인이 강림하셨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