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02)
러스트 [RUST]-902
지독한 적막이 무겁게 이어진 끝에 누군가 중얼거렸다.
“노스트라다무스?”
“앙골무아?”
“공포의 대왕?”
그러고 보니 왕이잖아.
신성 왕국의 왕.
저런 게 신성?
종말을 부르는 왕이었던 건가?
한국 대통령은 말 그대로 넋이 나간 표정으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취리■리릭-■
찌■-■■익-■■-
대체 내가 뭘 부른 거지? 하는 표정.
자기 손으로 종말을 부른 어떤 소환사처럼 하얗게 질린 대통령 시선과 기순의 실눈과 마주쳤다.
(끄아아악!)
(살려줘!)
(제발!)
(도망쳐!)
죽음의 쥐떼를 피해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린 무장한 사람을 외벽을 타고 올라가던 검은 넝쿨이 카멜레온 혓바닥처럼 취릭- 휘감았다.
(아아아악!)
퍼석-
비료로 변한 사람이 허공중에 흩날리는 모습.
거대한 화면 속엔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도 꿋꿋하게 Y자 자세를 했던 PD가 서서히 팔을 내렸다. 마치 광신도를 보는 듯한 사람들의 눈빛에도 PD는 태연했다.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갱단에게 잡혀 산채로 불태워질 뻔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은 그분이었다.
갱단에게 그분은 사신이었고 그들의 죽음이 자신에겐 삶이 됐다. 그렇다면 그분께서는 사신인가? 아니면 구원자인가?
‘인간이란 어찌도 이리 우매한 존재란 말인가.’
식인귀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를 구할 방법은 식인귀를 죽이는 것뿐이라고 한다면.
식인귀를 죽이는 것은 구원인가? 구원이 아닌가?
식인귀를 죽이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인간을 구하는 행위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영상 속 무장 난민 단체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잔혹하고 말고를 떠나서 결과만 본다면
[그분께서···]PD의 말을 보조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통역했다. PD의 음색으로 통역됐기에 마치 PD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하는 것처럼 들렸다.
[안식을 준 무장 난민의 숫자가 지금까지 30만이 넘습니다. 부천에서 부평까지 5km 남짓한 거리에 30만이라는 병력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들과 시가전을 벌이고 적의 지휘부를 공략하려고 했다면 한국군이 몇 명이나 희생됐을까요?]방송국 카메라가 PD와 한국 정부부처 관계자들을 번갈아가며 촬영했다.
PD의 목소리는 낮고도 낮았다. 영혼의 밑바닥에서 올라온 듯한 소리에 광신도 취급하던 사람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분께서 죽인 30만 때문에 한국군 수만 명과 한국인 수십만이 구원을 받았는데. 그분이 악마라고요? 인류의 구원자가 아니라고요?]“······.”
“······.”
[종말의 시대에서 당신들은 뭘 생각하는 겁니까? 뭘 믿는 겁니까? 그분께서 악마라면, 당신들은 악마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악마에게 구원받은 겁니까?]“······.”
“······.”
지독한 침묵 속에서 수십 대의 카메라가 PD를 향했다. 그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진심을 담았다.
[전쟁에서··· 적이 죽는다는 것은 아군이 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들이 본 건 아군의 죽음입니까? 아니면 적의 죽음입니까?]PD가 다시 경건하게 Y자로 손을 펼치며 말했다.
[경배하라! 죽음의 신을! 그분이 적을 죽이시매 우리가 삶을 받았도다!] [찬양하라! 공포의 주를! 그분께서 공포로 적을 깨뜨리시매 적들이 항복하리니!]하얗게 질린 한국 대통령이 힘겹게 손을 들었다. 생방송을 중지하라는 신호였다.
‧
‧
‧
죽음을 통제하는 게 한계에 이를 때까지 마루는 전진했다.
5km 반경으로 그려진 죽음의 영역이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했다. 무기를 들고 있는 자만 공격하라는 명령에 따라 죽음의 쥐들은 사람들을 구분해서 달려들었다.
아악! 쥐가 물었어.
방으로 들어가. 문 닫아!
밟아! 고작 쥐새끼다.
망치 어딨어? 망치!
무장했다는 기준을 자연스럽게 죽음의 판단에 맡긴 것이다. 과도나 식칼로 무기로 삼을 수 있었고, 맥주병이나 프라이팬 심지어 벽돌도 둔기로 사용 가능했다.
스마트폰 모서리로 할아버지의 머리통을 깰 수 있으며, 젓가락과 꼬치로 생명을 끊을 수 있었다.
작은 검은 생쥐는 사람이 책으로 때리거나, 걷어차거나, 짓밟기만 해도 죽었다. 그리고 죽음은 죽음을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무기라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총으로 무장한 인간을 죽이고, 다음에는 날붙이와 둔기를 든 인간을 공격했다. 마지막으로는 사지 멀쩡하게 휘두르는 인간이면 전부 거름으로 만들었다.
30만의 무장 세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사지가 멀쩡해 죽음의 쥐를 공격한 난민들이 거둬지기 시작했다.
30만에서 순식간에 100만이 넘는 숫자가 죽음에 흡수되자, 마루의 통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쥐떼가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30만+100만을 없애는 데 걸린 시간만 따진다면 고작 10분이 넘게 걸리지 않았다.
반경 5km를 싹 밀어버린 마루가 죽음을 역소환했다.
사방으로 흩어진 쥐들이 먼저 허공으로 녹아들었고. 건물을 휘감고 올라간 넝쿨과 장검처럼 빳빳하게 펼쳐진 풀잎도 검은색으로 빛나는 입자로 변해 허공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마치 신기루가 흩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특수부대 식인귀들이 화염방사기로 저항했던 건물을 제외하면 화재가 일어난 곳은 몇 군데 없었다.
마루가 펼쳤던 죽음의 정원이 전부 사라지자, 끊겼던 통신이 다시 복구됐다.
“오늘은 여기까진 거 같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드론들이 빠르게 주변을 살피며 현장을 촬영하는 모습에 마루도 전용 비행선을 타기 위해 4차선 도로로 나왔다.
자동차를 옆으로 세워 막은 바리케이드와 모래주머니를 쌓아 만든 기관총 진지에는 인간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된 시가지. 무장 단체를 제외하고도 100만이 넘는 난민들로 바글바글했던 곳에 인기척 하나 보이지 않다니. 그래서 더 기괴했다.
“왜 말이 없어? 확실히 보여주라며.”
뭐냐? 꼬냐?
마루는 기순의 딴죽을 무시했다.
“중국 난민들이 대충 2천만이 넘는다고 했었지? 무장 단체인 애들만 2백만이 넘고.”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시기가 대충 130만 언저리였으니까, 여유 좀 잡으면 120만까지는 괜찮을 것 같은데?
생명을 흡수해서 소화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4일은 좀 빡빡하고 5일에 한 번 정도씩 쓸어버리는 건 가능할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이냐?]“이왕 손을 댔으면 끝을 봐야지.”
마루는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끝까지 갔다.
도망치는 것도 끝까지 도망쳐서 미국까지 갔고.
개미 제국을 처리해야겠다. 그렇게 결정한 순간. 개미 제국 상층부를 끝장내, 개미 제국이 무너질 때까지 밀어붙였다.
거미와의 전쟁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과 동시에 끝을 볼 준비를 시작한 것처럼.
따지고 보면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수소 폭탄으로 소독해 버린 것도 마찬가지였고 한국을 장악했던 식인귀 정부와 부역자들을 끝까지 쓸어버린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마루가 한국의 난민 사태에 끝을 보겠다는 운을 넌지시 띄우자, 기순이 화들짝 말렸다.
[아- 왕님. 제발 진정합시다. 여기 사람들 그렇지 않아도 다들 하얗고 파랗게 질렸다고.]“제대로 보여주라며? 보여주기만 하면 알아서 잘 될 거라더니.”
[아니. 잘···하시긴 하셨는데. 하아- 그 이야기는 이따 하자.]“무슨 복잡한 상황이라도 생겼냐?”
기순은 말을 아꼈다.
[일단 와.]“그래.”
백색의 비행선이 적막에 잠긴 도시의 하늘 위로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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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이 근접해서 촬영한 영상이 속속 공개되면서 한국 정부는 다시 한 번 충격에 빠졌다.
“해당 지역에 있던 난민들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겁니까?”
“드론으로 근접 촬영한 결과···. 생방송에서 봤던 그 현상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그 현상.
쥐가 사람을 파먹어 시체조차 남기지 않는 현상.
죽음의 넝쿨이 인간의 생기를 빨아 먹어, 시체가 한 줌 먼지로 변하는 현상.
차마 입에 담기에도 껄끄러운 일이었다.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부평 군청까지 이어진 도로를 중심으로 본다면 족히 100만은 넘는 인구가 몰려있었다.
어쩌면 그 이상이 있었을지도 몰랐지만 이젠 아무런 의미 없었다. 전부 비료가 됐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한국 대통령의 얼굴은 초췌했다. 처음 계획은 신성 왕국의 지원을 받아 무장 난민 세력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4개의 중국에서 보낸 특수부대 식인귀를 없애는 것을 시작으로 무장 단체를 쓸어버리기만 한다면, 일반 난민들이야 한국군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성 왕국에 지원을 요청하자, 국왕과 전 캐나다 총리였던 자가 직접 왔다. 그래서 한국 대통령은 솔직하게 말했다.
‘중재가 아닙니다. 난민 세력을 와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따지고 보면 원한과 오물은 신성 왕국이 떠맡고 과실만 한국이 따먹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에 대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식인귀 정권을 무너뜨리고, 사실상 한국을 통째로 장악할 수 있었으면서도 한국인들에게 권력을 돌려준 신성 왕국이었기 때문이었다.
영토를 99년간 할양한다거나, 주력으로 수출하고 있는 부품 가격의 할인, 신성 왕국의 인구가 적으니 그를 쉽게 충당할 수 있도록 한국에서 신성 왕국으로 가는 이민 제도의 정비 같은 부분 등을 전부 고려하고 있었다.
그랬더니 난민 세력을 와해하는 게 아니라 통째로 지워버리고 있었다.
심지어 신성 왕국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Y자 자세로 경배하고 있었다. 죽음의 신이 곧 구원의 신이라면서.
충격과 공포와 경악이 뒤섞인 혼돈 그 자체였다. 이걸 무슨 수로 정리한단 말인가? 심지어 생방송으로 나갔다. 그 모든 것이.
“우선 무장 난민 단체만 선택적으로 없애달라고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모조리 쓸어버리는 건 위험했다.
“어째서입니까?”
“한계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보국장이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
“한계요?”
그 무시무시한 능력에 한계?
“예. 한계가 없었다면 당일 바로 인천까지 밀어버렸을 겁니다. 그러지 않고 멈췄다는 건. 그 능력에도 제약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보입니다.”
“한계라. 그게 어째서 무장 단체만 없애달라는 근거가 되는 겁니까?”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중국에서 넘어온 난민의 숫자가 2천만이 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무장 단체뿐만 아니라 일반 난민까지 쓸어버린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2천만 난민들이 앉아서 죽을 시간만 바라지는 않을 테니, 천만 단위의 무장 세력이 생길 것입니다.”
인간 같지 않은 능력이 무제한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예상대로 제한이 있는 능력이라면 천만 단위의 병력에 두들겨 맞는 건 한국이었다.
그 존재가 하루에 백만 난민을 잡는다고 한들, 살아남은 구백만 무장 난민이 달려들어 10:1 교환비를 찍어도 수도방위군은 전멸이었다.
“이해했습니다. 그리고요?”
정보국장이 입을 열기 전, 국회의원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다.
“중국 군부를 없애 달라고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미쳤습니까?”
“그래요. 이래라저래라 했다가 수틀려서 여기에 그걸 펼쳐버리면 감당할 수 있습니까?”
“다 죽는 겁니다.”
다른 건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수틀리면 죽을 수 있다는 것. 한국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탄식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자신이 신성 왕국으로 가겠다고 했으면 했지. 신성 왕국 국왕이 직접 오겠다는 건 무슨 핑계를 대건 거절했을 거다.
[각하. 일본 난민 단체 수장이 긴급 회선으로 통화를 요청하고 있습니다.]“일본 난민 단체 수장이?”
생방송으로 죽음을 봤으니 똥줄이 탔겠지.
“연결해 보세요.”
[칙- 신(新) 일본 재건회 가다마 케이치라고 합니다.]꿈틀. 한국 대통령의 눈썹이 살짝 치솟았다. 뭐라고 답하기도 전 가다마 케이치가 먼저 말했다.
[본토. 일본에서 괴물이 넘어오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