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04)
러스트 [RUST]-904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용 비행선으로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마루는 한국 정부에서 보내온 영상과 자료를 꼼꼼히 훑어봤다.
‘비슷한 놈일 수도 있겠지만.’
김 양이 도쿄 싱크홀에서 봤던 그 괴물이 확실하다면 위험했다. 놈들은 분명 김 양과 같이 갔던 친위대 2명을 ‘침식’했으니까.
엑소슈트를 입고 있던 친위대를 분명 침식했었다. 감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변화. 본질 자체가 일그러지는 것처럼 두 사람의 속은 그것으로 변해있었다.
냉정한 김 양이 아니었다면 순식간에 피해가 늘어났을 터. 두 사람에게 안식을 주고 재빨리 퇴각하기를 선택한 건 분명 최선의 판단이었다.
마루는 영상을 다시 돌려봤다. 디지털 줌으로 확대한 영상이 어쩐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마루는 즉시 보조 인공지능을 이용해 인공지능 보정 화면으로 더 자세하게 확인했다.
일그러진 화상 자국과 줄줄 흘러내리는 피고름 그리고 잿빛 껍질처럼 보이는 덩어리들이 머리와 가슴 팔다리 등의 주요 부위를 가리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영하 35도 40도에도 얼어붙지 않고 줄줄 흘러내리는 피고름이라.’
정상이 아니었다.
홀딱 벗은 나체로 저렇게 멀쩡하게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확실하군.’
그러니 확실했다.
놈은 김 양이 도쿄 싱크홀에서 마주한 그 괴물이라고 봐야 했다. 당시에 김 양은 놈들을 이렇게 분석했었다.
‘이미 죽어 있는 것 같다.’
시체가 움직이는 것 같다는 이상한 평가. 이건 침식된 친위대도 마찬가지였다. 침식됐기에 죽은 건지, 죽어서 침식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의 정원으로 놈들을 잡기 힘들지 몰랐다. 그렇기에 마루는 뉴클립스를 챙겨 나왔다. 죽음의 정원이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해도 뉴클립스의 공간 파먹기라면 충분히 정리할 수 있을 테니.
“잡을 수 있겠냐?”
마루의 질문에 뉴클립스는 ‘나는 눈이 없소.’,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칼이오.’, ‘그저 칼일 뿐이오.’하는 자세로 모르쇠 했다.
이것 보게?
마루는 웃고 넘어갔다. 뉴클립스가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매우 아깝고도 안타깝겠지만 죽음에 던져주는 수밖에···.
매번 칼과 기 싸움할 것도 아니고 어르고 달래서 쓰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이따위면 진짜 위급할 때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죽음의 정원이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 뉴클립스까지 태업한다면?
죽음의 정원을 사용할 때는 리퍼 슈트와 노심 아머를 비롯해 장비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뉴클립스가 ‘나는 칼이오.’, ‘나는 모르오.’ 이딴 짓을 한다?
그럴 바에야 뉴클립스를 죽음의 정원에 먹이고, 뉴클립스의 특유의 공간잠식. 공간 찢기가 죽음의 정원에 적용되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게 더 나았다. 당장 쓸 칼은 제단의 파편 조각을 넣어 만든 단단한 직도로 대체하고.
마루는 검집에서 쥐죽은 듯 있는 뉴클립스를 한 번 보곤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영상 속에는 일본인 능력자가 얼어붙은 바다를 깨, 괴물을 물속에 수장시키는 장면이 떠올라있었다.
‘죽지 않는 괴물이라면. 저렇게 하는 건 단순히 시간을 끄는 것일 텐데···. 죽일 방법이 없으니까 일단 끊어내겠다는 건가?’
아니면 바닷물이 놈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는 걸까?
‘김 양에게 연락해 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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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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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미시소거(Mississauga)를 탈환한 김 양과 간호사는 바로 토론토(Toronto)로 밀고 들어갔다.
살아있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수는 극소수.
다양한 변이 괴수의 사냥터가 된 도시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폭탄이 터져도 알아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용자들만 남았다고 봐야겠지.
“에에에에? 그래서 까마귀 폭격부터 하겠다고요?”
“못 들었음? 생존자 대피, 구조 그딴 거 언제까지 하려고.”
경고 방송 종일 했으면 그만이지. 사실 그것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 김 양이었다.
“경고 방송 알아듣고 괴수들이 피한 거 같으면, 다음부터는 그냥 먼저 폭격할 테니까 입 닫음.”
“그렇지 않아도 캐나다 사람들과 감정이 좋지 않은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요?”
신성 왕국의 인구 구조는 미시간 주민과 캐나다 연방인 그리고 한국에서 데려온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캐나다 연방의 인구가 제일 많았겠지만, 자유 캐나다 어쩌고 하면서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갔었다.
지금 폐허가 된 도시에 남아있는 자들은 자유 캐나다 저쩌고 했던 자들이었다. 정치적인 구심력도 없고 군사적인 세력도 없으며 그저 하루하루 변이 괴수를 피해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 병사들 가운데도 캐나다 출신 병사들이 있어요. 그 병사들을 생각해서라도 최소한 인도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구조활동을 해야 한다? 무슨 개소리니?”
김 양의 흐릿한 눈동자가 간호사를 가만히 바라봤다. 간호사의 투명한 동공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일호기 따위가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고 있어. 눈깔에서 먹물을 쪽 빼버릴라. 눈깔아-’ 라고 하고 눈물을 쪽 빼놨겠지만. 이제는 많이 성장한 김 양이었다.
“그래서 구해줬더니 걔들이 어떻게 했지? 캐나다 북부 지역에 요새 만들고 우리 애들이랑 인공지능 갈아 넣어서 방어선 만들고, 없는 살림에 캐나다 인프라 굴러가게 해주고 그랬는데 결과가 뭐였지?”
“······.”
“통수 아니었나? 그런데 통수친 것들 살리기 위해서 우리 애들 뒈지든 말든 위험해지건 말건 그래야 한다고? 제정신임?”
“그. 그게 아니고요.”
간호사의 항변에도 김 양의 눈빛은 칙칙했다.
“그게 아니면? 우리 까마귀와 늑대. 쥐새끼들도 인간 말 알아듣는데, 변이 괴수 가운데 인간 말 알아듣는 것들이 없을까? 없으면 모르겠지만, 있다면? 기습 폭격 기회 날려 먹는 건데. 그래도 통수친 캐나다 년들이 중요해?”
“아니···. 그게 아니고요.”
캐나다 년들 살리겠다고 기습 폭격의 이점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아군이 위험해질 확률이 올라간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런 년들을 대피시키고 구조하자? 그것도 통수친 년들을?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으면 그딴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인가? 정신이 가출이라도 했음? 정신 못 차릴 것 같으면 입 다물어.”
“···시. 신앙을 위해서라도 구조활동은 필요해요.”
신앙? 김 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구. 군인들에게 필요한 건 자긍심이라고 들었어요.”
변이 괴수를 몰아내기 위해서라며 민간인까지 같이 죽인다면, 군인들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입 다물어. 생각 좀 해보게.”
총사령관은 김 양이었다. 간호사가 무슨 의견을 내든 결정하는 건 그녀 자신이었다.
“······.”
솔직히 김 양은 간호사가 하는 이야기가 입바른 말로 들렸다. 그녀의 삶에는 그런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먹고 살겠다고 죽고 죽이는 마당에 자부심이니 자긍심이니 그딴 게 있을 리가. 오직 산 사람과 죽은 자만 있을 뿐이었다.
“······.”
하지만 김 양은 바로 답하지 않고 생각했다.
[국왕 폐하께서 연락하셨습니다. 연결해 드릴까요?]침묵에 잠긴 김 양에게 통신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보조 인공지능.
“연결해.”
바로 들리는 마루의 목소리.
[상황은 어때?]“괜찮음.”
어쩐지 복잡했던 생각이 마루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깨끗하게 풀리는 느낌에 김 양의 목소리에 활기가 돌았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알겠음.”
[저번 일본 도쿄 인근에 갔었을 때 말이야.]“응.”
[그 괴물들 죽은 것 같다고 했었지?]“그랬었음. 생체 반응도 없었고. 그런데 갑자기 도쿄 괴물은 왜?”
마루는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부산으로 도망친 일본 난민들을 따라 괴물들이 몰려와서 그쪽으로 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상하네. 그것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니까 더 쫓아오지 않았었는데.”
김 양의 이야기에 마루는 직감할 수 있었다. 난민 무장 세력 새끼. 뭔가 숨기는 게 있었다. 김 양도 뭔가를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싱크홀 속에 있던 애들이 거기까지 추격했다면 아무래도 이상함. 응. 뭔가 이상함.”
[신 일본 재건회가 난민 무장 세력 대표라고 하더라. 가마다 게이치가 대표라고 가마다가 아니라 가다마.]“가다마? 그때 그거 아님? 일본 대형병원에서 헬기 타고 갑질하다. 어- 그렇게 됐던 그 할배.”
일본 국회의원에 지역 유력자라고 갑질하다가 마루가 시원하게 던져버렸던 그 할배 성이 가다마였다.
샬롯 회장이 깜짝 놀랐을 정도로 유력자였다고 했었다. 그거 건드렸다고 관련된 뭔가가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이어졌었지.
응.
칼질하는 아재가 하나 튀어나오기도 했고 뭔가 악쓰던 년도 하나 있었지. 걔들이 전부 가다마라고 했었는데.
‘아? 맞다.’
샬롯 그룹 하니까 생각이 떠오른 김 양이었다.
“그거 일본 도쿄에 있던 비밀 연구소. 거기에 투자한 애들이 가다마 그쪽이랑 샬롯 그룹이라고 했었음.”
[그렇지? 긴가민가해서 찝찝했다 싶었는데. 오케이. 생큐. 고마워.]고맙다는 말에 김 양의 복잡했던 기분이 싹 풀렸다.
“그거 괴물들 이상하니까 조심하심.”
[그래. 너도 수고해라.]흐으으응-
어딘가 미묘한 콧소리를 낸 김 양이 결정을 내렸다.
“폭격 개시.”
“에? 에에엣- 생각해 본다고 한 거 아니었어요?”
마루의 목소리를 듣고 머릿속이 깔끔해진 결론이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였다. 실수를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람을 없애는 것. 인간이 없으면 실수도 없었다.
회사 생활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면, 언제나 살아있는 목표가 말썽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죽은 자는 문제가 없었다.
“경고했는데도 도시 밖으로 탈출하려는 사람이 없었어.”
“그. 그건. 밖에는 변이 괴수가 있어서.”
“변이 괴수는 무섭고 폭격은 안 무서움?”
“그.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 설마 폭격하겠어? 안 나가면, 폭격하지 않고 병사들 갈아서 구조하겠지. 이딴 생각하고 버티는 거 아닌가? 씹련들이. 뒈지려고.”
김 양의 흐릿한 눈빛에 떠오른 건 무정함이었다.
“그런 년들을 캐나다 출신 병사들의 사기 때문에 구조해야 한다?”
“······.”
웃기는 소리였다.
“군은 자긍심이 중요하다? 좋은 말임. 응. 인정. 근데 그 말 누가 했지?”
“······.”
캐나다 출신 병사들이 진심으로 구조활동을 원했다면 장교를 통하건, 목소리 함을 이용하건 직접 의사 표시를 했겠지.
자기들을 보내달라고. 자신들이 먼저 구조활동에 들어갈 테니 잠시 폭격을 멈춰달라고 그렇게 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안 그랬잖아. 진짜 구조활동을 원했다면 그랬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간호사를 움직여서 수작을 부려?
“그러니까 누구야? 누가 너한테 바람 넣었어?”
“······.”
“대답하지 않을 거면 닥치셈.”
김 양의 흐릿한 눈빛이 현황판을 향했다.
“까마귀 폭격대 출동. 전 지역을 폭격한다.”
“······.”
간호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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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비행선이 부산 상공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빼곡하게 세워진 거대한 천막과 산봉우리가 칙칙한 눈에 덮여 있었다.
‘작년 10월보다 더 추운 것 같은데?’
3월 하순임에도 영하 10도 15도 선을 유지하고 있다니 확실히 이상했다. 내륙이라면 그럴 법했지만, 이곳은 바닷가에 닿아있는 부산이었다.
‘대비해야 할 것 같군.’
부산이 이런 꼴이니, 신성 왕국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기술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알았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겠지.
저벅- 저벅-
전용 비행선에서 마루 홀로 내려서자, 대표라는 자가 마중 나왔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신 일본 재건회 회장 가다마 게이치라고 합니다.”
“너희. 뭔 짓을 했냐?”
“예?”
“일본에서 뭔 짓을 했길래 괴물이 여기까지 온 건데?”
마루의 직설적인 물음에 가다마 게이치의 비서와 호위가 발끈했다.
“말조심하시오.”
“한 나라의 국왕이라는 사람이 이리 무도할 수가 있나.”
순식간에 살벌해진 분위기에도 마루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리고 너는 뭐지? 가다마 게이치는 뒈진 거로 기억하는데.”
“······.”
■■-취리리릭-■-
마루의 발밑에서 뻗어 나온 죽음의 넝쿨이 단검을 뽑아 들고 흔들렸다.
“비상. 비상! 회장님이 위험하다!”
“대기반 바로 돌입해!”
“통신기가 먹통이야!”
“회장님 뒤로 피하십시오.”
경호원이 마루와 게이치 사이를 끼어들려고 하자, 단검을 든 촉수가 쏘아졌다.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경호원이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분리됐다.
쫘아아아아악!!!
가다마 게이치의 몸을 숙인 경호원들이 무기를 뽑는 것과 동시에
■-취리리릭■■—
■■□■-리리릭—
순식간에 피어오른 죽음의 넝쿨이 공간을 장악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