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1)
러스트 [RUST]-91
도난 병원으로 보낸 직원에게서 온 위성 전화를 받고 잠시 멍했다.
지금 자기가 들은 게 사실인가? 꿈은 아니겠지?
“뭐라고요? 다시 말씀해 보세요. 가다마 케이치 참의원을 어떻게 했다고요?”
[치직- 15층에서 던졌습니다.]“정말 그냥 던졌다고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예.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던졌다고 합니다. 말할 틈도 없었고 대화도 없었답니다. 경사 지붕을 타고 미끄러져서 즉사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가다마 의원의 나이를 생각하면 아마 살아있기는 어렵지 싶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지? 대체 왜? 일본 참의원이잖아.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지?
“참의원인 줄 알고 던졌습니까? 아니, 던진 이유가 뭐랍니까?”
[치직- 의원이라는 건 알았다고 합니다. 던진 이유는 듣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의원뿐만 아니라, 병원장을 합해 8명을 던졌다고 합니다.]“잠시만요···. 그러니까 도난 병원 원장도 던졌다고요?”
[삐이익- 예. 원장과 부원장을 비롯한 감염내과, 임상병리과, 혈액암, 뇌신경 쪽 과장들 그리고 가다마 의원의 비서와 경호원도 던졌다고 했습니다.]욕 나오는 상황. 흥분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던진 사람들을 그냥 던진 것 같지는 않았다. 전부 실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도난 병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실험은 딱히 혐오감을 줄 만한 실험도 아니었는데 왜지? 무엇보다 저 사람들이 실험과 관계됐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야마츠키 신약에서 파견된 연구원들은? 보안요원들도 있을 텐데. 그들은 괜찮은 건가?
지끈거리는 두통에 차를 한 모금 마셨지만, 대책이 없었다.
‘친구가 말리지 않았나?’
경험이 좀 부족하긴 해도 정치를 이해할 만한 친구 녀석이라면 대책 없이 주요 인물들을 던지지 못 하게 말렸을 텐데, 수술 때문에 브레이크를 걸 상황이 아니었나?
하긴, 친구가 정신을 차리고 있었어도 그 녀석이 마음먹고 칼 뽑아 들고 설치면 막을 사람이 없긴 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하던가요?”
[치지직- 바로 사장님을 태우러 간다고 했습니다. 사장님 태우고 바로 도쿄 야마츠키 신약으로 간다고.]약속은 지킨다는 건가? 그건 좋기는 한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당장 본사 쪽으로 넘어간 자들이 너무 많았다. 일본에 있던 지지 세력 절반은 날아갔다고 봐야 했다.
‘어쩌면 절반 이상일지도.’
까득-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깨물었다. 상황을 예측하기도 어려운데 통제할 수 없는 자의 도움을 받아야 할 판. 사실상 마루의 참전이 없었다면 전멸이었다.
이런 상황인데 문제가 또 생긴다니, 가다마 가문에서도 난리를 칠 테고 야마츠키 신약 쪽에서도 그럴 거고 본사 놈들도 노릴 거고 배신한 것들까지 날뛸 걸 생각하면, 숨이 갑갑해졌다. 왜 갑자기 사람들을 던져서···. 일을 복잡하게.
“일단 알겠어요.”
[예- 헬기 쪽에서 곧 출발한다는 신호가 들어왔으니, 10분에서 15분 정도 뒤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준비하고 있죠.”
헬기가 생겨 도쿄까지 가는 문제는 해결됐다.
육로나 해상으로 이동했다면 습격도 습격이지만 예상치 못 할 일들이 생길지도 몰랐는데, 한시름 놓였다.
가는 건 됐고 도쿄에 도착해서가 문제였는데, 야마츠기 신약 지하 실험실은 군사용 벙커처럼 완벽한 방호시설이었다. 그곳을 다른 그룹이라든지, 본사 인력이 점령하고 있다면 무력으로라도 탈환해야 했다.
도쿄와는 통신이 끊겼으니 직접 가서 확인해야 할 상황. 지금 데리고 있는 인력으로는 탈환도 어려웠지만, 탈환해서 레시피와 약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지키기 힘들었다. 결국 김 양과 마루의 무력이 필요했다. 설령 가다마 가문이나 야마츠키 신약 쪽과 마찰이 생기더라도. 당장 중요한 건 무력이었다.
어디로 튈지 몰라 통제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지금처럼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라면 통제가 불안한 게 문제겠는가?
‘일이 해결될 때까지는 함께 해야 할 텐데···.’
일본에서 정리할 걸 다 정리할 동안 두 사람이 있어야 했다. 그나마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쪽이다 보니, 줄 것만 확실하다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중화제 카드는 이미 넘겼고, 급속치료제는 넘기기 힘든 카드인지라 고민이 깊어졌다.
“한국에 있는 가족을 인질로 잡는 건 어떨까요?”
일렁이는 그림자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인질이라. 의미 있겠어요? 월드 그룹이랑 척지고 한국 뜬다는 건, 사실상 가족을 포기하고 뜨겠다는 거라고 보이는데 말이죠. 무엇보다 성향상 인질을 잡거나 협박 같은 건 위험해요. 협박하는 순간, 앞뒤 가리지 않고 칼질하면 막을 수 있겠어요?”
“······.”
인질이든 협박이든 말하다가 말고 죽을 거다. 협박? 협박할 능력이 있다면 그냥 그 능력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게 나았다. 영화처럼 인질 잡고 ‘총 버려.’ 하면 버릴 것도 아니고 그냥 돌았다고 칼 들고 설치면 답이 없었다.
“참의원을 그냥 15층에서 던진 사람이에요. 정치적인 권력? 명성? 그런 것도 통할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거기에 대고 협박하거나 인질을 잡는다? 글쎄요.”
“···그래도 친구라면 인질이 되지 않을까요?”
“친구라. 글쎄요 그나마 인질이 될만한 가능성이 크기는 한데, 모험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네요. 인질로 잡는 순간, 기순이라는 대화 창구까지 확실히 잃어버리는 거고 말이죠.”
“······.”
“어쨌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친구를 통해서 조율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김 양이 문제네요?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없는 여자인지라. 돈이나 금에 약하다고 하지만 자기 자신의 안전이 제일 중요한 여자인데 뭐로 설득할까요?”
마루는 기순이를 통해서 설득해 볼 길이 있다고 해도, 김 양은 아니었다. 부산에서 있었던 일을 보면 확실했다. 딱 근처까지만 간다고 하더니 진짜 근처까지만 가서 다 내던지고 바로 빠진 김 양이었다.
“옆에서 봤을 때는 그 마루라는 사람의 말을 이상하게 잘 듣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요? 의외네요.”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일본에 눌러앉게 하려면, 일단 친구인 기순을 설득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기순으로 마루를 설득하고 마루가 김 양을 잡아 놓으면 됐다.
대충 견적이 나오는 상황. 기순이가 원하는 건 뭘까? 배다른 형제에 대한 복수? 그룹의 지분 확보? 샬롯 그룹 장악에 성공한다면 기순을 돕는 건 일도 아니었다. 최소한 말은 통하는 친구니까.
기순을 만나서 둘이 따로 이야기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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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 조종하는 아저씨도 김 양의 무장을 보곤 고개를 돌렸다.
작은 몸에 이런저런 무기랑 장비들이 빼곡하게 달린 모습. 대단하기도 하고 용하기도 했다.
“안 무겁냐?”
“일없음.”
낑낑거리며 짐을 지고 타는 걸 보니. 무거워 보이는데.
“알았지? 경호원 1호에도 말해놨으니까 엘리베이터 마스터키는 너만 가지고 있어. 15층에서 뭐라고 하든지 절대로 열어주지 말고.”
“알았다.”
“알긴 뭘 알아. 15층에서 감염자가 들어왔다고 지랄해도 열어주지 말라고. 알았냐고.”
“아니. 그건 좀 아니지.”
아니라고? 이놈이 그렇게 말을 해줘도. 1층에서 사람들 뇌랑 간 파먹힌 걸 눈으로 봤어야 했나?
“됐어. 키 내놔. 이리 내놔. 내가 가져가게.”
“어이어이 알았다니까. 가져가면 나랑 사람들은 어떻게 치료받으라고. 일주일은 상처 관리하고 약 처방 받아서 먹고 있으라며? 열쇠 잘 관리할게. 알았다고. 진짜.”
“뭔가 일 생길 것 같고 뺏길 거 같으면 그냥 창문 밖으로 던져버려.”
“아이 씨- 그럼 치료는 어떻게 하라고.”
“그냥 빨간약 바르든 연고 바르든 하고 약이나 처방받아서 먹고 있으면 되잖아. 안 되겠다. 열쇠 이리 내. 진짜.”
마루가 내민 손을 기순이 `탁` 쳤다.
“알아서 할 테니까. 빨리 갔다 오기나 해.”
“너 쉽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러다 뭔 일 생기면 알지?”
“아- 씨. 무섭게 또 그런다. 알았다고. 사장 누님이나 잘 챙겨서 갔다 와라. 김 양도 몸 조심히 갔다 오고.”
김 양이 기순의 말에 고개를 끄덕했다. 기순은 그런 김 양을 보고 아빠 미소를 지었다.
휭휭 돌던 프로펠러가 두두두 소리를 내는 엔진음과 함께 맹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짜 잘해라.”
“알았다니까. 잘 갔다 와라.”
닥터 헬기가 밤하늘을 둥실 날아올랐다.
[치- 어떻게 할까요?]“미친 새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고도를 높여서 가죠. 최고 순항 속도로요.”
밤하늘은 이상했다. 한쪽은 별이 쏟아지는데, 저쪽은 완전히 깜깜한 어둠 같은 하늘. 화산이 전부 다 터졌다는데 거기에 쓰나미까지 겹쳤으니, 생난리도 아닐 것이다.
“얼마나 걸릴까요?”
[10분이면 충분합니다.]“통신은 됐습니까?”
[예. 헬기 무전기가 성능이 좋더군요.]“구조 헬기니까. 그 환자 끌어 올리는 것도 있겠지요?”
[호이스트 말입니까? 왼쪽 옆에 있습니다. 근데 호이스트 다룰 줄 아십니까?]“아뇨. 설명서라도 읽어 보려고요.”
[치지직- 아까 보니 왼쪽 문 옆 포켓에 책자가 있더군요. 거기에 있을 겁니다.]책자를 꺼내 들었다. 살펴보니, 헬기에 있는 응급 기자재의 간단한 설명서였다. 중간쯤에 있는 견인기 사용 방법. 간단했다. 속도 조절하는 거, 그리고 올리고 내리고 하는 거 하나. 딱 스위치 둘만 조정하면 됐다. 조심해야 할 건 케이블이 엉키거나 급격하게 꺾이지 않게 해야 하는 것.
‘생각보다 간단하고 쉽네.’
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헬기에 구조용 들 것이라든지 응급 병상이 없었다. 의원과 가족들 관계자들 태우고 오느라 전부 치운 것 같았다.
“여기 구조용 의자나 뭐 그런 게 안 보이는데, 그냥 로프만 내리면 되는 겁니까?”
[치직- 구조용 삼각 벨트가 있을 겁니다. 아까 정비 확인하면서 뒤쪽에 있는 걸 봤습니다.]금방 찾았다. 빨간색 삼각형 보자기 비슷한 것에 벨트가 달린 모양이었다.
[치직- 거의 다 왔습니다. 3분 안쪽에 도착합니다.]멀리 보이는 서치라이트. 메가 요트와 카타마란이 어두운 바다에 둥실 떠 있었다.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는 흰색 요트의 모습은 뭔가 이질적이었다.
두두두두- 헬기가 고도를 낮추자, 바다가 끓기 시작했다.
헬기 프로펠러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물결 사이로 날치처럼 점프하는 물고기들. 뜯기고 뜯고 먹고 먹히고 피에 이끌려 다시 물고기가 몰리고 있었다.
[치직- 호이스트. 내리셨습니까?]“지금 내립니다.”
지이잉
모터 소리와 함께 호이스트에 달린 구조용 삼각 벨트가 내려갔다. 마루는 사장이 삼각 벨트를 채운 것을 확인하고 케이블을 감기 시작했다, 약간 무거운 느낌. 사장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호원이 광학 장비를 켜고 같이 매달린 것 같았다.
헬기 프로펠러 바람으로 출렁이는 바다는 점점 더 심하게 들끓었다. 끓는 기름에 튀김이라도 튀기는 것처럼 피거품과 생선 내장들이 튀었다. 메가 요트와 카타마란이 점점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기들이 죽고 죽이고, 먹고 먹히는 가운데 점점 더 큰 고기들이 모이고 있었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 이 느낌은.
뭔가 찌릿한 느낌. 불안하고 초조한 느낌. 심장이 마구 방망이질했다.
바다를 보니 순간적으로 바다가 살짝 꺼진 것 같았다.
윙윙-머리가 울리고 막 쥐어짜지는 감각. 이건. 그러니까 이건.
파악- 뭔 고긴지 모를 고기가 점프했다.
마치 물 밖으로 탈출하려는 것 같은 움직임. 몇 미터나 점프한 물고기가 바다로 떨어졌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물고기들이 미친 듯이 점프하기 시작했다.
마루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고도 높여요!”
[치- 호이스트로 견인하고 있어서 고도를 변경하는 건 위험합니다.]뭔가 불안했다. 미친 듯이 불안하고 막 벗어나고 싶어졌다.
“지금 당장 무조건 올리라고!”
[삐익- ···고도 서서히 상승합니다. 호이스트 조절 잘하십시오.]서서히 고도가 올라가면서 호이스트에 매달린 사장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은 사장이 뭐라고 고함치고 있었지만, 프로펠러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끼익. 키릭. 호이스트 연결부위에서 쇳소리와 진동이 커졌다.
마루는 그것보다 더 큰 게 느껴졌다. 머리가 달아오르고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 이제 확실히 알겠다.
“요트랑 카다마란에게 쓰나미 경보 울려요. 쓰나미 옵니다.”
마루가 칼을 뽑아 조종석 쪽을 퉁 때렸다.
“당장 경고하고. 계속 고도 높이라고.”
헬기 조종사가 ‘이 새끼 미친 새낀가? 지금 헬기 조종하고 있는데 칼로 이러게?’ 하는 표정으로 마루를 힐끗 보더니, 공용 회신으로 쓰나미 경보를 알렸다.
메가 요트와 카타마란에서 불빛이 분주하게 깜박이더니 먼바다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다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우우우- 우우웅- 거대한 생물이 낼 법한 소리를 내며 바다가 밀려오는 느낌.
가까운 해안가. 이미 한 번 쓰나미에 쓸렸었기 때문인지, 드문드문 불빛이 남아있는 도시와 반파된 마을에는 쓰나미 경보가 울리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고요한 도시와 마을에 재앙이 닥쳤다. 모든 것을 삼킬 것 같은 기세로 덮친 쓰나미에 항구도시와 마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학- 학- 갑자기! 고도를 높이면···.”
깜짝 놀랐는지 헬기 안쪽으로 들어온 사장이 소리치다 말고 쓰나미가 덮치는 광경을 봤다. 사장 곁에서 일렁이는 그림자도 살짝 굳었다.
[-치지-직, 요트와 카타마란 두 척 모두 피해 없다고 합니다.]“바로 도쿄로 가죠.”
[-치- 바로 도쿄로 말입니까?]“예. 최대한 빨리.”
정신을 차린 사장이 구명조끼가 갑갑한지, 구명조끼를 매만지며 헬기 조종사에게 말했다.
“잠시만요. 도난 병원으로, 도난 병원에 들렀다 가지요.”
마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장님 내리고 싶으세요?”
“예?”
“우리 얘기 끝났잖아요. 도쿄로 빨리 가서, 비밀 실험실 돌고 그렇게 하기로 했잖아요? 안 그래요? 그런데 병원에를 왜 갑니까? 네?”
“지금 쓰나미··· 꺄아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