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13)
러스트 [RUST]-913
마루가 뜯어낼 걸 생각해 보라고 하기는 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뜯어낼 게 없었다.
[진짜 거지더라. 반도체 생산분 더 떼어달라고 해도 의미 없고 한국에 흔한 건 인력인데, 한국에서 젊은 인력 백만 단위로 빼간다고 하면 망하라는 소리니까. 그것도 어렵잖아.]한국 사람을 뜯어가는 건 기각이었고, 그렇다고 일본인이나 중국인을 데려가는 것도 아니었다.
마루를 믿는다고 한다면야 신앙 핑계로 국적 불문하고 데려갈 수도 있겠지만, 일본 난민이나 중국 난민 데려가는 걸 한국 정부에서 뜯어냈다고 할 것 아니었으니 논외.
뻘쭘함을 감춘 기순이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금은 어떠냐?]“금? 한국에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한 일에 대한 대가로는 턱없이 부족할 텐데?”
[아무리 부족해도 한국은 전자화폐를 쓰니까 금이 필요 없잖아. 양이 얼마가 됐든 금이나 은을 달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쪽이고]신성 왕국은 금, 은, 동을 기반으로 한 화폐를 사용하고 있었다. 신기술로 위조 방지, 손상 방지를 한 주화지만 어디까지나 귀금속을 기반으로 한 실물 화폐 체계였다.
그 주화에 지폐와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연동해, 지폐를 가져오면 바로 실물 주화로 언제든 바꿀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폐와 실물 주화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고.
금화나 백금화 같은 고액권에는 초소형 위치 추적 장치가 박혀있어. 자금 탈세나 자금 세탁, 은닉 같은 걸 언제든 파악할 수 있게 했다.
“벌써 금이 부족하냐?”
[아직은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우리 같은 경우엔 여유가 있을수록 좋으니까.]사실 금, 은을 기반으로 한 이유는 신성 왕국 건국 초기 화폐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고육책에 가까웠다.
솔직히 건국 초기 신성 왕국이 이렇게 잘 성장(?)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금과 은, 동을 기반으로 한 화폐를 만들었던 것.
만에 하나 신성 왕국이 망하거나 경제가 무너지더라도 귀금속은 가치가 있었다. 제국으로 가거나, 완전히 무법지대가 된 다른 주로 넘어가더라도 실물이라는 안정감을 준 것이 유효했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더한 욕심이 있다면, 인플레이션에 조금이나마 대응할 수 있는 화폐를 만들고자 했던 것도 효과가 있었고.
이유야 어쨌든 인플레이션 때문에 금값이 상승한다면 물가 상승에 대응하는 효과를 낼 테니.
번거롭기 그지없어도 금, 은 실물 화폐를 추진한 덕에 순식간에 신성 왕국 화폐가 자리를 잡게 됐다.
“그래. 그럼 한국 정부에 금, 은 위주로 달라고 하고, 모자른 부분은 강원도로 받자.”
[뭐? 강원도?]무슨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사탕 달라는 듯, 편안하고도 당연하게 강원도를 내놓으라는 마루의 말에 기순의 실눈이 살짝 벌어졌다.
[갑자기 강원도? 강원도는 뭐하게? 강원도는 변이 괴수 때문에 버려진 동네잖아. 거기 강릉, 양양, 속초는 일본 대지진 때 생긴 쓰나미와 화재로 전부 개판 나서 버려졌고. 춘천이랑 원주는 변이 괴수들 때문에 박살 났잖아. 아 맞다 작년에···.]그러고 보니 작년에 신생아들 데려올 때, 춘천과 원주를 탈환해 두 도시를 거점으로 삼아 이민을 선택한 병사들과 산모들을 관리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 만들었던 방어시스템과 모듈 원전을 인공지능이 관리하고 있었을 테니, 강원도를 달라고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국 정부에서 받아들일까?]“어차피 강원도는 지금 한국군으로는 방어하는 게 최선이야. 강원도를 수복할 수 있었다면, 진작 강원도에 알 박고 있었겠지. 당장 지리산, 소백산맥 라인도 정리하지 못하는 판에 강원도를 신경 쓸 여력이 없지. 없어.”
마루의 냉정한 분석에 기순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럼 일단 금과 은으로 받기로 하고 모자란 부분은 강원도 할양으로 해서 협상해 볼게]“금광의 경우엔 강원도가 아니더라도 찾아봐라. 현재 폐광이라고 해도 탄광 로봇을 쓰면 남은 게 얼마가 됐든 전부 긁어모을 수 있을 테니까.”
기순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니 거지라니까. 금, 은에 강원도 뜯고 거기에 다른 금광 있으면 폐광이라고 해도 상관없으니까 광산까지 내놓으라고 하라고?]“말했잖아. 한국은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 발행 전자화폐) 사용하면서 금본위, 은본위 들어가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박박 긁어가도 괜찮아.”
[금반지, 금목걸이, 황금 열쇠에 금두꺼비, 금시계 같은 것도 잘 팔리는 한국인데 금본위 은본위가 아니더라도 수요는 넘치지. 아- 씨- 진짜 폐광산까지 뜯어? 강원도도 뜯었는데?““뜯어. 지금 일본 난민 준동에 불사 괴물 사태 막아줬지, 시흥-평택 지켜줬지. 부평-부천 라인 뚫어줬지. 지금 중국 난민들이 대규모 무리를 지은 곳은 태안반도와 목포항 인근 그리고 인천이 대표적이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마루가 말을 붙였다.
“그리고 무장 세력이 가지고 있던 무기와 보급품을 한국군에 넘긴다고 해.”
[오- 그럼 이야기가 쉽겠다.]예비군 포함 280 이상을 뽑았던 한국군이었지만, 절반은 30~40년도 더 된 소총과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다.
중국제라고 하더라도 최신 장비와 보급품이라면 군수공장 돌려서 재무장할 때까지 쓰기엔 충분했다.
“한국 정부도 어지간하면 강원도를 넘겨줄 거다. 어차피 춘천과 원주는 작년부터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었고. 동해 쪽은 쓰나미에 쓸리고 불탔고, 그 외에 다른 도시들은 변이 괴수가 장악했으니까. 네가 가서 말만 잘하면 문제없을 거야.”
당장 중국 무장 단체와 불법 점거 난민 합해서 200만을 비료로 만들었는데,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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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신성 왕국의 요구를 듣곤 화들짝 놀랐다. 달라고 하면 줄 건 줘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여러모로 곤란했다.
우선 귀금속을 달라는 것부터 그랬다. 금, 은을 딱 잘라서 얼마만큼 달라는 것도 아니고, 있는 대로 달라는 것도 애매했고. 금광이라면 폐광도 좋으니 광산을 통째로 내놓으라고 하는 것도 그랬다.
‘금에 환장했네.’
‘그냥 미쳤구나.’
‘그렇게 금이 좋으면 비행선 타고 돌아다니며 금을 챙기면 될 거 아닌가.’
어차피 군사력 깡팬데.
마루와 김 양이 사태 초기부터 금을 챙겼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과 프랑스까지 한 번 훑었다는 걸 몰라서 하는 생각이었다.
어찌 됐건. 신성 왕국의 요구는 대담했다.
금이랑 은도 그렇지만 광산도 모자라 강원도를 통째로 넘기라니. 한국 정부와 의회가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난장판으로 변했다.
“강원도를 넘기라니요.”
“신성 왕국이 우리나라의 영토를 노골적으로 노리고 있는 겁니다.”
“강원도라잖아요. 강원도.”
“거긴 인구도 거의 없죠.”
“까놓고 우리가 관리하기 불가능한 지역입니다.”
강원도는 사실상 변이 괴수가 점령한 곳이었다. 산에 있는 변이 괴수들이 주변 도시와 마을로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것도 벅찬 현실.
그마저도 경상북도와 경기도 경계 도시와 마을이 뚫리지 않도록 막고 있었지, 강원도는 이미 끝나버린 상황이었다.
애초에 강원도의 인구는 고작 200만을 밑돌고 있었다.
변이 바이러스 사태와 일본발 쓰나미까지 덮친 뒤론 60만은 고사하고 30만 선도 깨졌고. 변이 괴수에게 털린 뒤론 사실상 변이 괴수에게 넘어간 곳이라고 봐야 했다.
“오히려 강원도에 신성 왕국 군대가 주둔하는 게 낫습니다. 그럼 변이 괴수들이 그쪽으로 몰릴 테고 다른 인접 지역이 안전해질 테니까요.”
“다른 것도 아니라 영토입니다.”
“땅을 넘기자는 말을 그리 쉽게 합니까?”
“아니. 강원도가 영토인지 여기 누가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당장 춘천과 원주를 작년에 내주지 않았습니까?”
“강원도 중심도시를 넘겨놓고 이제야 영토 찾고 땅을 찾는 건 참.”
“작년입니다. 작년. 지난 식인귀 정부나 지지난 정권 탓할 게 없어요.”
“다들 진정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해 봅시다.”
“우리가 강원도를 할양하지 않는다고 해도, 신성 왕국이 춘천과 원주라는 핵심 도시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장 우리는 강원도에서 밀려 나오는 변이 괴수 막는데, 인적 물적 자원을 쏟아붓고도 통제하는 데 실패한 상황입니다.”
“아니 다들 미쳤습니까? 강원도입니다. 강원도. 강원도에 있는 다양한 광산과 시멘트 공장만 따져도 그리 쉽게 넘긴다는 소리를 할 수 있습니까?”
“아니. 현실을 보자니까요. 강원도는 변이 괴수에게 넘어갔어요.”
“벌써 3년이 넘었는데 3~4년 동안 한 번도 파지 않은 광산에 시멘트 공장 때문에 반대하신다?”
“좋습니다. 우리가 신성 왕국의 요구를 거절해서, 국왕이 돌아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중국 난민 사태를 마무리하지 않고 돌아간다니요. 그건 조약 위반입니다.”
“우리가 신성 왕국과 상호방위조약이라도 맺었답니까?”
“그럼 작년에 맺은 건 뭐였습니까?”
“춘천과 원주 주고 맺은 건 뭐란 말입니까?”
“뭐긴 뭡니까? 식인귀 정권 몰아내고 해방해 준 대가로 준 거지.”
“상호통상 조약을 가지고 무슨 혈맹 조약으로 착각하지는 맙시다.”
“그만합시다.”
한국 대통령이 상황을 정리했다.
“신성 왕국이 없다면, 시흥-평택을 비롯한 생산기지와 수도 서울을 지키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처음 시작부터 잘못했다. 전 정권인 식인귀 정권도 그랬고, 지지난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난민이 넘어왔을 때, 강경하게 대응해서 서해안 섬에 쳐넣었거나. 북한으로 밀어 넣었어야 했다.
일본에서 넘어온 난민들도 마찬가지. 남쪽 섬에 넣거나 북한으로 보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다.
2백만 가까이 줄었음에도 2천3백만이 넘게 남은 중국 난민이나, 1천5백만에 육박하는 일본 난민을 통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중국 난민 쪽은 4개의 중국에서 끝없이 무기와 보급품, 특수부대와 간첩을 밀어 넣고 있었고 일본 난민은 엄청난 숫자의 능력자들이 있었다. 한국군은 그들이 난민촌을 떠나 퍼지지 않게 막는 것만도 벅찼다.
이번 사태도 중국 무장 단체가 인천을 벗어나 부평-부천 라인을 뚫고 수도 서울까지 진격해서 부랴부랴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다.
반도체 관련 공장들이 모여있는 시흥과 평택도 마찬가지로 넘어가기 직전이라 엉덩이에 불붙은 것처럼 위기였다.
만약 당장 신성 왕국이 떠난다면? 아마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처음처럼 수도 서울과 시흥-평택 생산기지가 위기에 빠질 게 분명했다.
“현재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장비와 군수 산업을 돌리는 길밖에 없습니다. 제국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를 수출하고, 자원과 식량을 받고 힘을 기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대재난으로 일본의 산업시설이 완전히 무너졌고, 미‧중 전쟁으로 중국의 산업시설도 대규모로 파괴됐다. 중국 남부 군벌의 대만 침공으로 대만의 반도체 단지와 전자부품 공장이 끝장난 상황이었다.
태평양 건너 미국도 마찬가지. 중국의 핵 선제 타격과 서부지역 연쇄 대지진으로 인해 워싱턴, 오리건, 캘리포니아 주에 있던 첨단 산업단지가 초토화됐다.
텍사스는 신성 왕국의 수소 폭탄 소독과 식인귀 청소로 박살 났고 뉴욕은 식인귀와 시궁쥐 창궐에, 바퀴벌레와 개미의 습격도 모자라 수소 폭탄까지 터지면서 완전히 폐허가 됐다.
이제 반도체, 전자 제품, 군수물자를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 몇 남지 않았다. 그마저도 대량 생산이 가능한 건 아시아를 통틀어 한국이 유일하지 싶었다.
그렇기에 한국 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신성 왕국으로 중국, 일본 난민의 목줄을 잡아 통제하는 동안, 전력을 다해 국력을 회복해야 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내전에 빠진 중국이 한국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수입, 수출라인을 다각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4개의 중국이 저마다 시흥-평택을 노리는 이유는 반도체를 비롯한 기술을 가져가려는 것일 터. 대량 생산해서 합리적인 대가로 소비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소모를 계속하기보다 사서 쓰려고 할 것이다.
7개의 중국과 무역을 재개하는 데 성공한다면. 끊어졌던 국제무역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제무역을 할 수 있어야만, 한국이 더욱 강해질 수 있었다.
“따라서. 신성 왕국의 요청을 수용하겠습니다.”
한국 대통령은 신성 왕국의 요청을 직권으로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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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첩보부대와 까마귀 정찰대로 한국 정부와 국회의 난상토론을 생중계로 보던 기순이 작게 감탄했다.
“그런데 토론 듣다 보니 좀 그래서 그런데, 한국을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이유가 뭐냐?”
[전에 말했잖아. 아- 그땐 김 양에게 했었나? 한국이 있어야 7개의 중국이 지랄해도 한 번 걸러지는 효과가 생기고, 일본에서 이상한 일이 터져도 한국이 먼저 걸리면 우리가 대비할 시간이 생기잖아.]마루의 대답에도 기순은 좀 그랬다.
“상황 분석이라면 성층권에 비행선 깔아놨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어서 그렇지. 강원도를 뜯은 건 좋다만, 저쪽에서 마음에 담아뒀을 것 같거든.”
[상관없다. 그리고 이제는 기존의 법칙이 뒤틀리고 있잖아. 성층권 비행선 감시만으로 법칙이 뒤틀린 걸 포착할 수 있겠냐?]“뒤틀린 법칙은 그렇겠네.”
[능력을 각성하고 신앙 흡수한 놈들을 떠올려봐라. 한국을 버리는 게 좋을까. 아니면 한국을 도와서 한국이 유지되도록 하는 게 나을까.]따져보면 마루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기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핏 보면 무적처럼 보이지만, 무적은 아니야.’
조건없는 무적이었다면. 중국, 일본 난민과 무장 단체를 단번에 쓸어버렸을 거다.
죽음의 정원으로 모조리 단숨에 쓸어버리지 못한 이유는 하나였다. 죽음의 정원을 통제하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
생명을 수확하면 할수록 죽음도 성장한다는 것이 그것인데. 죽음이 성장하고 강해지는 것을 마냥 좋게 볼 수 없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원인이야 어떻든 죽음이 통제력을 잃고 사방으로 퍼진다면, 그것만으로 지옥도 예정인 만큼. 죽음의 정원에 휘둘리지 않게 철저히 관리‧통제해야 했다.
[일본 난민들이 보낸 신앙을 흡수하지 못했다면, 시흥-평택 전투에서 그렇게 깔끔하게 처리하진 못했을 거다. 정말 아슬아슬했어.]“······.”
[그리고 봄에 한바탕이 예정됐으니, 죽음의 정원 다루는 건 최대한 많이 해보는 게 좋지 않겠냐? 솔직히 받을 거 받으면서 실전 들어갈 기횐데, 돕지 않을 이유가 없지.]“······.”
마루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