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19)
러스트 [RUST]-919
한국은 동남아에서 패권국이 되고 신성 왕국은 여러 나라가 무역하는 데 사용하는 기축 화폐 발권국이 된다면 진짜 패권국은 어디?
한국이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를 철폐하고 다시 일반 화폐를 만든다고 해도, 새로 발행한 화폐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공신력을 갖기란 쉽지 않았다.
제국과의 거래, 신성 왕국과의 무역에서 한국 화폐로 결제할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결국 돌고 돌아서 화폐의 실제 가치, 안정성, 공신력이 문제.
현재 제일 큰 거래처인 제국과 신성 왕국 모두 사용하면서, 동시에 동남아 각국이 모두 안심하고 쓸 수 있는 돈은 오직 신성 왕국의 화폐였다.
“그러니까 우리 왕님. 황제는 어떠신지? 발권국 가는 김에 신성 제국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모두가 인정하는 제국 금화. 기축 통화. 멋진 울림이지 않냐?”
“···지랄.”
기순도 신성 제국까지 갈 계획은 없었지만···. 이렇게 판이 깔렸는데 안 가는 것도 문제였다. 심지어 기축 통화가 가능한 상황 아닌가?
“지랄은 무슨. 기회가 굴러들어 왔는데 추진해야지. 한국이 자기 발로 들어간다는데.”
한국이 동남아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기순의 말에 마루의 미간에 살짝 홈이 파였다.
“솔직하게 말해봐. PD랑 짰냐?”
건국할 때 PD는 성국이나 성황국을 노렸다. 황제이자 신이라는 개념은 서양에서는 제법 역사 깊은 개념이었고.
신이라는 소리 듣는 판에 왕보다는 여러모로 황제가 낫긴 했지만, 이게 전부 큰 그림이면 곤란했다.
두 사람이 신성 왕국과 자신에 해가 될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랬다. 어쨌든 마루 자신에게 자세한 이야기 없이 추진된 일이라는 이야기니까.
“······.”
“왜 말이 없어. 응? 그리고 한국 정부에 인도랑 동남아 정찰한 정보는 왜 알려주지 않았는데? 너 설마···.”
마루가 ‘혹시’하는 표정을 짓자 기순이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그건 아니야.”
“그게 뭔데?”
“······.”
“쯧- 됐다. 예전에 동남아와 인도가 난리 났다며 정찰 비행선이 확인한 거 보고했었잖아. 토속 신앙이 넘쳐서 코끼리 믿는 놈들도 있고 원숭이 믿는 놈들도 있고. 별걸 다 믿는다고 하면서.”
분명히 그랬었다. 동남아를 비롯해 인도까지 난리도 생난리가 아니라고 했었다.
“······.”
“동남아에 한국군이 들어가면 대참사가 나겠지. 모른 건 아닐 테고.”
식인귀 전 정권에서 한국의 능력자들은 폭발 목걸이로 목줄이 잡혀 수족 노릇을 했거나 아니면 특권층이 되겠다고 자발적으로 수족 노릇을 했거나 그랬다.
이유야 어쨌건 식인귀 정권 편에 서서 싸운 건 사실. 그 결과 신성 왕국이 식인귀 정권을 무너뜨릴 때 같이 밀려버렸다. 한국군에 능력자 부대가 따로 없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동남아에 능력자들이 있고 변이 괴수든 능력자든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는 뭔가가 있다면 일반 한국군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터.
그런 존재가 없다고 하더라도 식인귀 세력이 있는 건 확실했다. 한국군의 화력이 강하니까 치열하게 싸우긴 하겠지만, 엄청난 희생이 따를 게 분명했다.
“그럼 결국 내가 가야 일이 풀린다는 건데. 내가 가서 싹 쓸어버리면 그쪽 사람들이 날 믿겠지. 대참사 난 한국군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날 찾고 부르짖을 테고. 그걸 노린 거냐? 신앙 때문에 한국 정부에 동남아 정보를 주지 않은 거고?”
“······.”
‘이 새끼. PD 아재랑 떼놔야겠군.’ 마루는 기순이 신앙에 집착하는 원인이 PD에 있다고 봤다. 그러고 보니 지금도 그랬다.
PD를 한국까지 불러서 확인시켰고 연설도 PD가 했다. 부산에 있는 일본 난민들 관리하는 것도 PD가 했고. 그 행보 전부가 신앙과 관련됐었다.
“PD 아재랑 무슨 소릴 했길래 그러냐?”
“그 아재는 상관없어. 솔직히 좀 모순적이기도 하고 이율배반적이기는 한데.”
기순이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말했잖아. 난 왕이든 신이든 신왕이든 상관없다고.”
“···그랬지.”
“근데 일반 시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상황도 계속 어긋나더라.”
“그래서 그랬냐?”
한국이 자기 발로 동남아를 선택하도록?
아니.
거기까지는 아니었다.
기순의 말대로 한국 정부와 의회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까.
“······.”
“······.”
어쩌면.
한국 정부와 의회가 그런 결정을 하도록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일지도 몰랐다.
북미 정보는 서부지역 지진으로 망한 것만 알려준 것도 그래서 그랬던 거고?
“······.”
“······.”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기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신성 얻는 건 너도 동의했잖아. 한국에서 신앙이 들어오지 않은 걸 보면 그랬거든.”
한국인이 신앙을 보냈을 때는 힘들었을 때만이었다.
동남아 난장판에 기어들어가, 전우들이 갈리고 뭉개지는 현실을 마주하면 누가 생각날까?
누가 그 지옥에서 건져줄 수 있으리라 생각할까?
경제를 살리겠다며 동남아 지옥으로 밀어버린 한국 정부와 의회?
아니면 중국 무장 단체와 폭력 난민들을 깨끗하게 지워버린 존재?
누굴 믿고.
누구에게 기도하고.
누구에게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을까?
이야기를 듣던 마루가 중간에 끊었다.
“너- 시발-”
‘왜 그러냐?’는 말을 삼킨 마루였다.
캐나다 총독을 하면서 많이 상처받았나?
“하- 내 성격 알면서 그러냐?”
“네 성격을 아니까 그러는 거다.”
“아- 진짜-”
“평안한 생존을 위해서라면. 동남아, 호주, 인도, 중동에서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세계 어디든 한 번은 돌아다녀야 한다고 본다. 아니냐?”
혹시라도 신앙을 먹고 커지는 놈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했다. 그러니 지금 상황도 일석삼조(一石三鳥)라는 이야기.
한국군과 한국인에게 신앙을 얻고.
동시에 동남아에서 우후죽순 생기는 떨거지들도 조지고.
마지막으로 그 떨거지들이 가져가던 동남아 신앙까지 확보할 기회.
“어차피 일어날 일이니까 내가 순회공연 한번 돌았으면 좋겠다는 거네?”
“공연까지는 아니고. 싫으면 안 가도 괜찮지. 김 양과 간호사가 엄청난 속도로 캐나다 지역 회복하고 있다는데, 돌아가서 우리 집구석 관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물론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신앙을 먹고 성장한 놈들에게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길게 말한 기순의 실눈이 가늘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는 듯한 시선이었다.
마루는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
인간 불신도 아니고.
관계없는 사람들은 그냥 신앙 뽑아내는 것으로 보게 된 건가?
“감정 보는 것 때문에 그러냐? 그거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보인다며.”
ON, OFF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상 보고 다니지 않을 정도는 됐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패시브처럼 계속 상대방의 감정을 보게 됐다면 진짜 맛이 갔을지도 몰랐다.
‘맛이 가지 않았는데도 이러니. 맛이 갔으면 답이 없었겠는걸.’
감정을 보는 능력 때문이냐는 질문에, 어떻게 할 건지부터 말하라는 듯한 기순의 가느다란 눈빛.
“정말 전 세계를 한 바퀴 돌아야겠냐?”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마루였다.
“네가 진심으로 원하는 게 생존과 평안이라면.”
기순은 단언했다.
그리스 같은 곳에 전기 능력자가 생긴다고 생각해 보자. 그 능력자가 사람들을 규합해 ‘뇌신의 아들’이니 그런 평가를 받다가 믿음과 신앙을 먹고 갑자기 ‘제우스의 화신.’, ‘천공의 신.’ 이렇게 넘어간다면?
그렇게 신격화되고 신앙을 먹을수록 능력이 강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자가 그리스에서 얌전히 있을까?
당연히 더 많은 신앙을 먹기 위해, 신성을 쌓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발칸반도(Balkan Peninsula)를 장악하려고 할 것이고 튀르키예(Türkiye-터키)를 밀어버리려 하겠지.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굳이 그리스가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능력자가, 영웅으로 추대되고 믿음을 얻어 ‘승리의 신’ 같은 평가를 받는다면? 유럽의 믿음과 신앙을 한몸에 받은 자가 탄생한다면?
인도에서 신앙을 독식한 자가 나온다면? 전쟁의 혼란 속에 인간을 마음껏 섭취한 식인귀, 흡혈귀들이 생긴다면?
신적 존재로 평가받는 자들이 생겨도 문제없을까?
언제까지 북미가. 신성 왕국이 안전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마루의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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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대만에 거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항구도시를 재건하도록 하지요.”
한국군은 대만을 중간 방어지역으로 설정하고 항구 몇 개를 개축, 방어시설을 설치했다. 남부 군벌을 견제하는 요새화였기에 중국 난민과 기존 대만인 모두 환영하는지라 큰 문제가 없었다.
물론 남부 군벌이 발작했지만, 딱히 실질적으로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날이 조금씩 풀리면서 중국의 내전은 점점 더 치열해졌기 때문이었다.
“
7개의 중국 가운데 티베트, 위구르, 몽골은 각기 본래대로 떨어져 나간 뒤, 직접적인 교전을 피하는 쪽으로 돌아선 데 반해. 나머지 4개의 중국은 아니었다.
소수 민족이 뒤섞인 불안한 지역을 포함해 동서남북으로 분할된 4개의 중국. 중심이 되는 군벌에 따라 쪼개진 4개의 중국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중국을 통일한다는 것은 중국의 지배자가 탄생한다는 뜻. 중국에서 절대자가 된다면 식인귀들을 전부 지배할 수 있었다.
이는 곧 천명이 내렸다는 이야기였고 천자(황제)가 부활한다는 의미였다. 그 자리에 앉을 기회가 생겼는데 포기하겠는가? 군부의 우두머리 넷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중국 내전이 점점 더 격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난민이 대폭 줄어서 다행입니다.”
“그랬겠죠. 이쪽으로 난민을 보내다가는 대만의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까요.”
“신성 왕국 국왕에 대한 정보도 넘어갔다고 봐야겠지요?”
압도적인 살상력을 보여준 신성 왕국 국왕이었다. 그가 있다면 함부로 도발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니 용기가 나는 사람들이었다.
“동남아 진출은 어디부터 하기로 했습니까?”
“베트남입니다.”
“인도네시아가 아니고요?”
“인도네시아는 문제가 많아서요.”
“그건 베트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대재난과 변이 바이러스 사태. 그리고 식인귀 창궐을 거치면서. 베트남은 어느 순간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갈라졌다.
남부와 북부의 경제발전 차이와 지역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한 식인귀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 찬동한 정치인들도 있었고.
왜 분열에 찬성했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멀쩡한 하나를 둘로 쪼개면 머리가 두 개가 됐기 때문.
하나의 공기업을 여럿으로 쪼개 민영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유. 사장도 여럿으로 늘고 임직원도 몇 배로 뻥튀기되고. 그렇게 베트남은 사실상 둘로 쪼개진 것과 마찬가지가 됐다.
“그래서 어디에 거점을 만들기로 했습니까?”
“재계에서는 베트남 북부에 거점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무려 9,000곳이 넘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하노이와 하이퐁 같은 북부 도시 인근을 중심으로 진출해 있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베트남 북부에 한국군이 진출해 달라는 것이 재계의 요청.
“군부에서는 남베트남에 거점을 두는 것이, 동남아 전역을 통제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항행의 자유’를 지키고 동남아 전체로 세력을 투사하려면 남베트남에 거점을 설치하는 게 유리하다는 것.
“남베트남에 거점을 만든다면 인도네시아가 자극받지 않을까요?”
“인도네시아에도 우리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습니다.”
“베트남에 거점을 둔다면 사실상 남/북으로 갈라진 베트남 가운데 한쪽 손을 들어주는 결과가 될 겁니다.”
“베트남은 둘로 쪼개진 것과 마찬가지인데, 완전히 분열되고 둘 사이에 전쟁이 터진다면 베트남전의 재현이 될 겁니다.”
이미 그렇게 내전이 터진 나라들이 있었다. 필리핀은 본격적으로 내전에 돌입했고. 미얀마와 라오스가 그랬다.
“그런데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신이 나타났다는 소문입니다.”
필리핀에서 성자와 성모가 나타났다는 소문이었다.
“설마··· 그 성자와 성모입니까? 성부, 성자, 성모 할 때 그 성자와 성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