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21)
러스트 [RUST]-921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고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 죽음이라는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 어떤 이유가 있을까?
죽음과 연관된 능력이 믿음, 신앙과 섞여 죽음의 정원이 됐을 것이라는 가설이 나온 뒤로, 한국 정부의 생각이 변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았다. 사이비를 왜 죽였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당연히 남방 작전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도 없었고.
기순은 제대로 꼬였다는 걸 직감했다. 한국 정부에서 신앙과 능력의 진화, 강화를 이렇게 빨리 실험하리라 예측하긴 어려웠다.
당장 신성 왕국에서 신앙과 능력의 진화, 강화를 알아차린 것도 여러 사건과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런데 고작 며칠 사이에 한국에서는 실증 실험까지 돌입한 것.
‘한국이 이렇게 실천력이 높았나?’
보통 뭐 하나 하려면 갈라져서 치고받고 싸우는 거 아니었어? 전투기 개발할 때도 한국 전투기 개발해도 사업성(이익) 없으니 개발 포기하고 수입하자고 하는 곳이 한국이었다.
개발에 성공하자, 그래도 사업성 없으니 생산 대수 줄이고 수입하자고 하는 곳이 한국 어쩌고 하는 곳이었고.
‘그런데 뭘 믿고 실증 실험까지 며칠 만에 밀어붙인 거지?’
실증 실험이라면 분명 생체 실험일 텐데? 그걸 그냥 밀어붙이고 성공까지 했다고? 기순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이 변했나 싶었다. 그런 기순의 중얼거림에 마루가 대답했다.
“변할 수밖에 없지.”
마루는 신앙을 알아차린 한국 정부의 태도가 변했다는 소리에도 태연했다.
“식인귀 정부에서 한 번 쓸어버렸고, 식인귀가 된 작자들을 우리가 또 지워버렸으니까.”
두 번이나 물리적으로 갈아엎었으니, 남은 자들은 본래 정치나 권력과는 거리가 있던 자들밖에 없었다.
그들 가운데 선거를 통해 뽑힌 자들이었으니, 기존의 역학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정부와 의회를 구성한 것.
“그래도 이렇게···. 하- 그럴 수 있겠네.”
당장 마루만 보더라도 급격히 변했다. 막일하고 도축장에서 일하던 사람이 변했는데, 국가의 안위가 달린 사태에서 지도부가 바뀐 상황. 새로운 지도부가 어떤 파격적인 선택을 하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한국 정부에서 인구와 신앙을 자원으로 판단했을 경우였다. 그렇지 않아도 인구 유출에 민감한 신정부인데, 거기에 사람들이 믿는 믿음이 신앙으로 치환되고 그게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마루가 믿음의 대상이 되거나, 신앙을 보내는 걸 피하려고 하겠지.’
“특집 방송하던 거. 계속하고 있는지 확인해봐.”
한국 정부에서는 남방 작전에 마루가 돕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마루가 신성 왕국의 국왕이고 블라디마루 칼린이라고 개명(?)을 했어도 뿌리는 한국인 ‘하마루’라는 것을 알렸다.
중국 불법 난민 사태. 무장 난민 사태를 처리했던 것을 특집 방송으로 내보냈고, 일본 불법 무장 단체 신 일본 재건회가 계획하던 괴물 테러를 막은 것도 자세히 보도하고 있었다.
[특집 방송이 전부 대체 방송으로 전환됐습니다.]공중파 방송도 그랬고, 종편과 뉴튜브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 포털 사이트에서도 마루 관련된 내용이 사라지고 있었다.
“하- 참-”
신앙을 얻으려고 했더니, 신앙은 고사하고 피곤해졌다.
“좋게 생각하자.”
“좋게? 지금 상황을?”
좋게 생각하자는 마루의 말에 기순은 조금 허탈했다. 지금 이게 좋은 상황인가?
스르르릉-
마루가 뉴클립스를 뽑았다.
‘나는 칼이오.’,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저 칼이오.’, ‘한 자루의 칼일 뿐이오.’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뉴클립스의 칼날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마루.
띠이이이이-
청량한 울림이 아니었다. 무언가 묵직한 금속 덩어리가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우웅- 왜 때리냐는 듯한 울림을 들던 마루가 입을 뗐다.
“신앙이 힘이 된다면 좋지. 그런데 만들어진 신앙이 얼마나 갈까?”
주어진 해방. 포장된 은혜. 눈치 보는 믿음 그리고 도구가 된 신.
신을 믿는 이유가 고가의 아파트에서 비싼 수입차를 타며, 프랑스산 와인에 야들야들한 꽃등심을 먹기 위해서라면 그게 신앙일까?
살아남기 위해 기도하고 이기기 위해 신을 부르짖는 신앙이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생존을 위한 도구로 신을 믿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도구는 더 단단하고 날카로운 도구가 생기면 버려질 뿐. 버려진 믿음, 바뀌는 신앙이 이상할 것 없었다.
인간 대부분이 그랬으니까. 그런 삶의 태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순이 말한 것처럼 죽음의 끝에서 마루 자신을 찾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마루 자신이 잘하는 건 써는 것이었다.
결을 파악해 쉽게 죽이고 잘 해체하는 것. 그리고 무언가 좋지 않은 상황을 감지하는 감이라고 할까? 그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신으로 추대되는 게 껄끄러웠다.”
누군가의 신이 된다는 건, 누군가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래도 신앙을 얻는다는 걸 거부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신앙을 얻어 강해진다면. 안전하게 생존할 가능성이 커지니까. 거부하지 않기로 한 것일 뿐이다.”
신앙이든 믿음이든 뭐든 힘이 될 수 있다면, 그 힘으로 자신을 믿어준 자들을 지킬 수 있고. 터전을 지키는 것이 다시 생존과 안전의 힘이 되는 선순환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한국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가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믿음과 신앙을 가지고 뭘 어떻게 하든. 그건 그들의 선택이었으니까.
“그리고 동남아에서 생긴 신성 능력자는 내가 직접 확인해 보는 거로 하자.”
종말의 시대. 강한 신앙을 얻었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사이비들처럼 신도를 세뇌했거나 아니면 신망을 얻었다는 이야기겠지.
사람을 세뇌하는 쪽이라면 치워버리고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고 그게 커져 신앙까지 이른 자를 죽이는 건 오히려 마이너스가 아닐까.
신앙이 힘이 되는 것처럼 저주도 힘을 얻는 시대. 그렇기에 무턱대고 죽이는 건 언제든 양날이 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루였다.
할 말이 많았지만, 기순은 마루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알았다.”
기순도 마루가 이야기한 부분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일단 한국 쪽은 동태를 살피는 거로 할게.”
그랬음에도 신앙을 얻는 자들을 정리하고 신앙이 함부로 쌓이지 못하게 하자고 했던 이유는. 지금이 종말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대만에도 우리 비행장과 항구 하나 정도는 있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거기까지만 협상하고 우리는 빠지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 그럼 되겠냐?”
“그래.”
기순은 바로 한국 정부와 협상을 시작했다. 이야기는 순조롭게 끝났다. 한국 정부도 신성 왕국과 마루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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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와 의회는 신성 왕국의 태도가 의심스러웠다.
“남방 작전이 시작될 때까지 비비고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군이 타격을 입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군요.”
믿음과 신앙의 힘을 확인한 한국 정부는 신성 왕국 국왕이 남방 작전에 따라오리라 생각했다.
“우리 예상이 틀린 것일까요?”
엉망이 된 동남아 전선에 한국군이 투입되면 사상자가 폭증할 것이고. 신성 왕국 국왕의 능력을 알고 있는 장병들은 그를 찾을 터.
그들의 기도와 요청이 신앙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일 것이고. 그렇게 신앙을 듬뿍 먹은 신성 왕국 국왕이 전선을 밀어버리면 살아남은 병사들의 신앙을 전부 신성 왕국이 독식하게 될 테니.
“신앙을 쉽게 얻을 수 있는데, 그걸 이렇게 쉽게 포기할 리 없지 않습니까?”
“어쩌면 동남아의 상황이 우리 생각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르겠군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신성 왕국은 성층권 비행선으로 세계 곳곳을 정찰하고 있다고 하니까요.”
“우리 군이 동남아에 진출하면 결국 신성 왕국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을 거라 판단해.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결국. 우리 군이 신성 왕국에 지원을 요청할 거라 판단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쉽게 신앙을 확보할 기회를 그냥 넘기겠습니까?”
“우리도 빨리 능력자를 양성해야 합니다.”
“믿음과 신앙이 능력을 진화, 강화한다는 게 실험으로 증명됐으니. 최대한 빨리 강력한 능력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능력 각성 관련해서 추가 연구결과도 주목할 만합니다.”
“어떤 결과인가요?”
“목숨의 위기를 겪으면 능력이 각성할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인귀 정권에서 군을 그렇게 운용했던 것이군요.”
식인귀 정권은 교전을 경험한 병사들만 계속 위험한 전선으로 내보냈다. 새로 소집한 예비대는 농사와 공사, 치안 유지에 넣었고.
죽음의 위기가 능력 각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남방 작전을 뒤로 미룰 이유가 없어졌다.
“필리핀에는 ‘저주’와 ‘축복’의 단서가 있습니다.”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고, 동남아 기후와 능력자 각성 기회가 될 것입니다.”
동남아 특유의 기후 적응 문제도 그렇고 병사들 가운데 능력을 각성한 사람이 생긴다면 그를 중심으로 믿음과 신앙이 쌓일 가능성도 있었다.
“당장 필리핀에 군을 투입하는 건 반대입니다.”
“이미 늦은 능력자 양성보다. 과학 기술로 한계를 극복하는 게 더 유리합니다.”
“동의합니다. 능력자에게 신앙을 몰아주는 방법은 위험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과학 기술로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겨내야 합니다.”
신앙을 몰아받은 능력자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정부에서 신앙을 몰아준 능력자가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능력자들 사이에서 누가 신앙을 흡수할 것인지에 따른 갈등이 생겨, 서로 신앙을 먹겠다고 무력 투쟁이 벌어진다면.
초기에야 정부에서 신앙의 분배를 이용해 능력자를 관리할 수 있겠다지만, 강해진 능력자들이 신앙을 나눠 먹기로 자기들끼리 협상하고 정부를 배제하는 쪽으로 간다면?
어떻게 생각하든 능력자의 능력 강화에 나라의 명운을 거는 건 위험해 보였다. 어느 쪽으로 가건 민주주의가 끝장나는 결과만 보였으니까.
당장 신성 왕국만 보더라도 왕정이 아닌가?
강력한 능력자가 자신의 힘을 민주주의로 선출된 정부의 통제 아래 둘 것이라는 건 환상에 가까웠다. 특히 지금처럼 위험한 세상에서는 더욱.
“제국산 엑소슈트의 분석이 끝났다고 합니다.”
“역설계에 성공했고 대량 생산과 성능 개량 준비가 곧 끝납니다.”
신성 왕국에 수수료를 떼주면서도 무역한 보람이 있었다.
대회의장은 바로 필리핀에 병력을 투입해 빠른 능력자 확보와 동남아에 적응한 군대를 만들자는 쪽과 엑소슈트를 양산한 뒤 동남아에 진출하자는 의견이 팽팽했다.
“투표로 결정합시다.”
팽팽했던 논쟁과는 달리 바로 군을 투입해 실전 경험을 쌓고 능력자를 확보하자는 쪽이 압승했다.
명분은 내전 종식을 통한 질서의 회복이었지만, 동남아 지형과 기후 적응. ‘저주’와 ‘축복’의 샘플 확보 그리고 능력 각성자 양성이 목표였다.
그렇게 한국군의 필리핀 파병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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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의 낮은 무더위로 찜통 같았다.
4월 필리핀의 평균 최저기온은 26.2도 최고기온은 33.5도였지만 이건 예전 기록. 한국군이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는 최저기온 12.8도에 최고기온이 37.1도에 육박하는 미친 일교차를 보여주고 있었다.
“4월 초인데 37도가 넘는다? 곤란하군. 작년 5월 기온이 40도를 넘었다고 하니, 7~8월 기온은 거의 확실히 45도 이상이 될 가능성이 있어.”
바다에 둘러싸인 섬인데 45도 이상이라면 사실상 찜통이라고 봐야 했다. 반군 세력과 접경지에 거점을 잡게 된 중대장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중대장님. 질문이 있습니다.”
“뭔가?”
“필리핀 반군이면 이슬람 세력 아닙니까?”
“그렇지.”
한차례 반군과 교전한 중대는 압승을 거뒀다.
“그런데 무슨 중국산 무기가 이렇게 많이 나옵니까?”
“필리핀 정부가 반중국 쪽이라고 하더군.”
인도네시아와 중국이 필리핀 반군을 지원하는 상황이었다. 중국은 내전 중이라 무기 지원이 대폭 감소했었는데, 대만 사태로 다시 지원이 많아졌다고 했다.
“반군은 이슬람교 쪽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성자입니까?”
“정보가 와전됐겠지.”
성부, 성자, 성모 이런 쪽은 가톨릭이었다. 성인이야 이슬람과 가톨릭 모두 있는 개념이고.
“원숭이 저주가 진짜로 있을까요?”
“없으면 샘플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했을까?”
“아. 네.”
“중대장님! 저주입니다. 그! 원숭이 손 저주입니다!”
중대장이 궁금한 게 많은 통신병과 함께 막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들것에 실려 가는 병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다섯? 다섯 명이나 저주에 걸렸다고?”
“예. 정찰분대 전부 손바닥 자국이 생겼습니다.”
원숭이 저주라면서? 근처에는 원숭이 따윈 없었는데.
“중대장님! 초소에서 비상입니다. 경계병이 저주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