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22)
러스트 [RUST]-922
중대장은 들것에 실려 가는 병사의 몸을 확인했다.
“원숭이···.”
붉은 손자국이 목에 선명한 모습. 인간의 손자국과 비슷하지만, 인간의 것이 아님이 느껴지는 흔적.
“원숭이 소리는? 흔적은?”
목에 자국이 남은 병사가 입술을 힘겹게 달싹거렸다. 무언가 말하려다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지는 병사.
“원···아···. 크으윽-”
병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 기절하자, 잠시 멈췄던 의무병이 다급하게 산소마스크를 씌우곤 들것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
중대장은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병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목에 있는 붉은 손자국이 움직인 것···. 아니. 움직였다. 목을 조르듯.
‘너무 긴장해서 잘못 본 건가?’
그럴 리 없었다. 분명히 손자국이 목덜미를 움켜쥐는 것처럼.
“초소! 초소에 교대 인원 올려보내!”
고개를 좌우로 빠르게 흔든 중대장이 이어서 명령했다.
“시야를 더 멀리 확보한다. 100m 반경으로 벌목하고 화염방사기로 태워!”
기계톱을 든 중대원 몇몇이 벌목을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날카로운 기계톱의 소리 끝에 이어진 화염방사기의 불꽃이 전방을 휩쓸자, 밀림이 검은 연기를 토하기 시작했다.
불타오르는 밀림 어디서도 원숭이의 모습도 소리도 없었다. 그저 하나둘씩 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중대원들이 생길 뿐.
“통신병! 대대에 연결해! 당장!”
정면을 보고 외친 중대장이 대답 없는 통신병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목에 붉은 손자국을 남긴 채 기절한 통신병이 보였다.
“···의무병!”
‧
‧
‧
한국군의 통신을 낚은 기순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이거 이상한데?”
“저주 말이지?”
마루와 기순의 생각이 일치했다.
“그렇지? 너도 느꼈지? 촉은 어때? 아. 그쪽으로 촉은 없어졌다고 했었지.”
“어쨌든 촉이 아니어도 조금 전 그 통신은 좀 이상한 거 같아. 순식간에 소대 병력에서 중대 병력까지 와해시킬 정도면 반군이고 정부군이고 저주받은 지역엔 접근할 수 없어야 하니까.”
역시 마루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기순이 말을 덧붙였다.
“이상한 점은 또 있어. 바로 앞에 반군 점령지도 있고, 근처에 정부군 진지도 있지. 그 둘 사이 빈터에 한국군이 들어간 건데. 양쪽에서는 저주에 걸렸다는 소리가 없다는 거야.”
기순이 반군과 정부군의 통신을 도청한 내용을 살펴보며 확인했다
“그러니까 반군과 정부군 쪽은 멀쩡한데 한국군만 저주받고 있다고?”
“그래. 원숭이가 한국군만 골라서 저주했다는 이야기다. 이상한 일이지? 까마귀도 똑똑해졌으니까 원숭이도 똑똑해져서 한국군 얼굴이나 군복을 보고 구분했다고 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시야 확보를 위해 벌목하고 불태우고 있었는데, 벌목하던 병사들을 저주한 것도 모자라 진지 안에 있는 병사까지 그랬다? 아무리 똑똑한 원숭이라고 하더라도 불타는 밀림을 뚫고 진지로 들어오지는 않았을 텐데?”
기순의 실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원숭이 저주는 아무래도 걸리는 게 있었다. 통신 기록만 보면 중무장한 중대 하나가 순식간에 전멸한 것이나 마찬가지.
“무엇보다 원숭이를 본 사람이 없어. 원숭이 특유의 소리를 들은 사람도 없고.”
순식간에 중대 병력을 몰살시킬 수 있는 괴물이 있는 밀림에서 반군과 정부군이 드잡이질하고 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 지랄이 났는데도 반군과 정부군은 움직임이 없었지. 특히 근처에 주둔하고 있는 정부군은 한국군 진지 방면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는데도 연락 한 번 하지 않았어.”
마루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여러모로 기분 더럽게 하는 새끼네.”
처음에는 붉게 찍힌 손자국으로 시작해, 다섯 손가락이 하나씩 검게 물들면서 5일에 걸쳐 죽음으로 향하는 저주라니. 악질적이었다.
“병사들에게 목을 움켜쥔 것 같은 손자국이 생겼고 바로 무력화됐다고 했지. 그렇다는 건 바로 목을 졸라 죽일 수 있었다는 걸 의미해. 그런데 저주랍시고 시간을 끌고 있어.”
그런데 바로 죽이지 않고 5일이라는 시간을 뒀다. 손가락 하나가 검게 변하면서 하루가 줄고. 또 하나가 변하면서 하루가 줄고. 그렇게 먼저 손자국이 난 사람이 기어코 죽게 되면 어떤 감정을 갖게 될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커지겠지···. 설마?”
마루의 이야길 바로 이해한 기순이었다.
“저주를 건 새끼는 5일이라는 시간을 둬서 죽음 공포를 극대화하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감을 피해자와 주변에 퍼뜨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하나씩 검게 변하는 것을 통해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친히 알려주면서.
기순이 마루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저주가 죽음과 공포를 키울수록 그 저주를 없앴다는 성자라는 작자에게 사람들이 더 열광하겠고···. 마루야 이거.”
“그래. 아무래도 저주도 그렇고 반군의 성자도 걸린다.”
기순의 실눈이 서늘하게 변했다.
저주를 걸고 다니는 게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알 수 없지만, 놈은 독특한 저주를 통해 죽음과 공포를 극대화하고 있었다. 마루가 신앙을 모으고 있는 영역과 정면으로 겹치는 ‘죽음과 공포.’
“반군의 성자는 왜?”
“너무 공교롭잖아. 죽음과 공포.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구원의 성자.”
마루의 대답에 기순도 동의했다.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그렇기는 하네.”
“그런지 어쩐지 확인해봐야겠지.”
마루가 뉴클립스를 들고 일어났다.
‧
‧
‧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불의 고리가 지나가는지라 지진과 화산 폭발이 빈번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여러 화산이 동시에 터진 일본처럼 여파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성층권 비행선과 드론으로 정찰하는 데는 확실히 한계가 있었다.
[거기까지가 정찰 한계다.] [알았다.]오래간만에 리퍼 슈트로 무장한 마루가 밀림을 파고들었다. 그동안 죽음의 정원을 펼칠 때마다 전자기기가 먹통이 돼 리퍼 슈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새로 개량된 리퍼 슈트는 반복되는 먹통에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하니,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안개처럼 칙칙한 먼지가 짙어지자, 통신 감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이군.’
백업과 정찰, 통신 없이 움직이는 건 오랜만인지라 심장이 두근거릴 법도 하건만, 고동 소리는 잔잔하고 규칙적이었다.
역시. 심장의 경고는 없었다.
짙은 녹색의 밀림은 화산재와 먼지에 뒤덮여 마치 콘크리트로 만든 조형물처럼 변해있었다. 분위기만 보면 바짝 긴장해야 할 분위기인데도 아무런 위기감이 들지 않았기에, 마루는 의식적으로라도 날카롭게 감각을 벼렸다.
‘이런 곳에 반군 거점이 있다고?’
고도로 발달한 신성 왕국의 기술로 만든 정화통도 고작 6시간 전후를 버틸 정도였다. 그만큼 화산재와 미세 먼지가 지독한데 이곳이 반군 거점이라니.
‘호흡기가 엉망이 될 텐데?’
그렇게 계속 안으로 들어서자, 가시거리가 줄어들며 다양한 부비트랩이 마루를 반겼다. 전부 기계식 부비트랩으로 전자 센서가 필요 없는 것들이지만, 마루의 예민한 감각을 벗어날 순 없었다.
‘함정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거의 다 왔군.’
그렇게 1시간을 더 지나서 드디어 반군 거점이 드러났다. 방독면을 쓰고 다니는 반군들 사이로 방독면 없이 다니는 자들이 있었다.
가시거리가 20m~30m 내외인 관계로 방독면 없이 다니는 자들을 확인하려면 더 가까이 가야할 듯 싶었다.
‘나무를 타고 접근할까? 아니. 좋지 않아.’
시멘트에 버무려진 수풀을 밟는 건 꺼려졌다. 밟는 순간 부서질 수도 있었고, 부서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위치가 발각될 위험성이 컸다.
‘여기서 죽음의 정원을 펼친다면.’
이럴 줄 알았다면 죽음을 전부 소모하지 않았을 텐데. 통제력의 끝을 알아보기 위해 한계까지 소모해 버린 것이 아까웠다.
‘체력과 정신력을 유지하면서 펼칠 수 있는 범위는 반경 50m겠군.’
그 안에 생명을 넉넉하게 거둘 수 있다면 죽음의 정원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을 터. 그렇다면 더 깊숙하게 들어가 죽음의 정원 범위에 많은 적이 들어가도록 해야 했다.
“오오오- 침략자를 벌하시고 오셨도다!”
“죽음에서 생명을!”
“적들에게 죽음을!”
“우리에게 생명을!”
“알라!”
“알라!”
“알라!”
짙은 먼지 너머 들리는 외침.
‘이건 능력인가?’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먹먹한 외침은 단순한 외침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증폭되고 서로 얽혀 마치 정신파처럼 작용하고 있었다.
“죽음에서 생명을!”
“적들에게 죽음을!”
“우리에게 생명을!”
마치 주문처럼 반복되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지금이다.’
안쪽으로 다가설 때는 지금이었다.
“알라!”
“알라!”
“알라!”
마루는 그 소란을 틈타 공터 안으로 뛰어들었다.
파각-
한 번에 12m~15m를 좁히던 마루의 발걸음에 짓밟힌 작은 소리. 그 조그만 소리가 크게 외치던 사람들의 소리를 지워버렸다.
“······.”
“······.”
“······.”
‘젠장.’
마루가 그대로 죽음의 정원을 펼쳤다. 반경 50m에 달하는 죽음이 펼쳐지며 영역 안에 있는 반군을 향해 칼날 풀잎과 넝쿨이 치솟아 올랐다.
!!!
!!!
칼날 풀잎에 사지가 꿰뚫리고 죽음의 넝쿨에 쥐어 짜였음에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생명을 수확했어도 일반인들보다 훨씬 적은 생명력만 있었고.
‘뭐지?’
인간이 아닌 건가?
아니.
인간은 맞아.
근데 사람이 이렇게 생명력이 적다고?
반쯤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생명을 거두고도 확장하지 못하는 죽음의 정원.
휘릭-
마루의 발밑에서 넝쿨이 치솟아 무언가를 가로막았다.
쿠직-
굵게 솟아오른 넝쿨에 선명하게 찍히는 손자국.
쿠직-
콰직- 콰지직-
순식간에 열 번이 넘는 소리가 반원을 그리며 동시에 터졌다.
◘▪◘▪◘▪◘▪◘▪◘▪◘▪◘▪◘▪◘▪◘▪▬—-
보이지 않는 손을 중간에서 가로막은 넝쿨이 검은 입자로 변해 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 속으로 다시 이어지는 저주.
팍- 파팍-
쿠직-쿠직- 쿠지직-
◘▪◘▪◘▪◘▪◘▪◘▪◘▪◘▪◘▪◘▪◘▪▬—-
‘이 새끼가···.’
마루의 의지에 따라 등 뒤로 이어진 넝쿨들이 단검을 뽑아 들었다. 제단의 파편이 함유된 단검 스무 자루가 마루의 등 뒤에서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거기냐!’
차갑게 가라앉은 마루의 시선이 정면을 향하는 순간. 연속해서 터지는 보이지 않는 손길.
푹-퍽- 파악-
촤리리릭- 콰지지직-
마루의 등 뒤에서 하늘거리던 넝쿨들이 앞으로 쏘아지며 보이지 않는 손길을 향해 단검을 찔러 넣었다.
허공에서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 것과 동시에 저 멀리서 무언가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마루는 발걸음마다 죽음의 정원을 펼치며 뛰기 시작했다. 반경 50m짜리 소박한 죽음의 정원이 알알이 펼쳐지며 검은 선을 이뤘다.
동시에 필사적으로 몰려드는 반군들.
특유의 구호를 외치며 죽음을 도외시한 자들이 검은 정원에 뛰어들었다.
투다다다-
탕-타다다당-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탄이 마루를 노렸지만, 넝쿨과 칼날 풀잎이 전부 가로막혔다. 그래도 온몸을 던져 마루의 앞을 막으려는 반군.
처음에는 무장한 반군이었지만, 앞을 가로막는 사람들이 행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하나둘 비무장인 자들이 듬성듬성 섞이는가 싶더니. 조금 지나자 비무장인 사람들이 서로 팔짱을 끼고 스크럼을 이뤄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
마루는 상관하지 않았다. 마루의 시선은 오직 사람들 건너로 도망치고 있는 놈의 등판이었다.
“비켜-”
달리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검은 죽음이 퍼지는 속도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반경 50m였던 죽음의 정원이 조금씩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50m에서 70m, 80m, 100m, 120m 죽음의 영역이 다시 확장될수록 민간인으로 이뤄진 장벽이 순식간에 죽음 속으로 녹아버리는 모습.
노인과 여자, 아이를 앞으로 내밀며 마루의 앞을 가로막는 자들의 눈빛에 담긴 의미에도 마루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한 걸음.
■■■■■■■■■■■■■■■■
드디어 도망치던 놈의 발밑까지 죽음의 정원이 확장됐다.
콰득-
놈의 발목을 꿰뚫은 칼날 풀잎이 빙글 회전하며, 올가미처럼 다리를 엮었다. 조용히 죽어가던 민간인들과 다르게 커다랗게 울부짖는 놈.
보이지 않는 손이 다리를 엮은 칼날 풀잎을 치우자, 맞서 싸울 태세를 취하는 놈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판단이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넝쿨과 쥐 떼, 칼날 풀잎을 죽음의 손으로 쳐내며 전의를 불태웠건만 그뿐.
스무 자루의 단검이 보이지 않는 손을 동시에 꿰뚫고
???
그 틈으로 들어간 이클립스가 새로 뽑아낸 보이지 않는 손을 공간째 씹어버렸다.
콰즉-
그렇게 이어진 이격에 놈의 상반신이 지워졌다.
‧
‧
‧
그리고 그 후로.
원숭이의 저주도, 저주를 해제하는 성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