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23)
러스트 [RUST]-923
반군의 성자가 죽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성자가 정부군의 악마에 살해됐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쏟아지는 가운데, 민간인 학살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정부군은 성명을 통해. 정부는 반군 지도부를 암살하기 위한 작전을 펼친 적 없으며 민간인 학살은 반군의 조작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반군은 정부군이 한국군을 끌어들였으며, EMP(Electro-Magnetic Pulse. 전자기 펄스)탄을 사용해 전자기기를 무력화한 뒤, 악마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증거라며 보인 사진에는 민간인들의 시체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그 사진을 본 기순이 코웃음 쳤다.
“죽음의 정원에 당하면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비료가 되는데 시체는 무슨 시체.”
“······.”
사진 속 시체들은 딱히 외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힐 정도로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이 너무나 생생했다. 마치 산 채로 서서히 질식사한 듯한 모습.
“질식인가?”
화산재와 먼지가 짙은 곳에 반군 거점이 있었던 것이 떠오른 마루였다.
만약 그 성자라는 놈이 화산재와 먼지 속에서도 사람들이 호흡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면? 그놈이 아니더라도 호흡과 관련된 능력자가 있었는데 같이 쓸려버린 것이라면?
그렇다고 해도 바로 질식하지는 않았을 터, 도망치면 될 일이었다. 조금만 벗어나도 화산재와 먼지가 확 줄어들었으니까.
“질식하기 전에 마스크라도 쓰고 이동했으면 됐을 텐데.”
“맞다. 그러네. 아 그리고 좀 이상하긴 하더라.”
기순이 이상한 것을 찾았다는 듯 영상을 틀었다. 성층권 비행선에서 찍은 기상 자료였다. 동아시아도 그렇고 동남아시아도 그렇고 비가 올 때는 상당히 많은 비가 내렸다.
필리핀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열대강우가 쏟아졌음에도 화산재와 먼지가 사라지지 않는 구역이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 보면 일본 도쿄 인근과 비슷하지?”
기순이 일본 혼슈 도쿄 주변과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반군 거점 지역은 확실히 비슷했다. 규모야 일본이 월등하게 컸지만, 화산재와 먼지가 유지되는 현상은 확실히 닮은 구석이 있었다.
“일본이라···.”
따지고 보면 일본은 이상했다. 화산재와 먼지가 짙다고 해도 2~3년 동안 태풍과 비바람이 불어닥치면 씻겨 내려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화산재와 먼지가 짙은 곳이 대부분.
“주기적으로 화산재와 먼지가 분출된다고 해도 이렇게 짙은 건 이상 현상이지.”
김 양의 원정대가 일본 도쿄 싱크홀을 확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화산재와 먼지가 짙은 안개처럼 끼어있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이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도 있다는 건 우연일까?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어.”
“지금 바로 가게? 그거 죽여서 벌통을 쑤신 것처럼 난리라던데?”
“그러니까 지금 가야지. 싸울 생각은 없고 근처를 살펴보려는 것뿐이니까.”
어차피 리퍼 슈트의 은신으로 근방을 정찰할 생각이었다. 죽음만 펼치지 않는다면 소란을 틈타 화산재와 먼지가 가득한 중심 부분만 살피고 올 생각이었다.
만약 필리핀에도 싱크홀이 있다면? 싱크홀이 화산재와 먼지가 흩어지지 않게 하는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무엇이라면.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괴물에까지 생각이 닿은 마루가 머리를 흔들었다.
“싱크홀이 있나 싶어서 그것만 확인하고 올 테니까.”
“싱크홀? 여기에도? 싱크홀 생긴 이유가 핵 때문일 거라고 하지 않았어?”
“정부군이 반군 정리하겠다고 핵을 떨궜을지도 모르잖아. 우리는 이쪽 상황을 모르니까.”
“핵도 그렇고 제단이나 제단의 파편이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며?”
“그러니까 직접 가보려고. 싱크홀이 있는지.”
“···그래.”
리퍼 슈트를 갈아입은 마루가 바로 반군 장악 지역 중심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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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군 장교들은 지금이야말로 반군을 밀어버릴 기회라고 생각했다.
“반군 놈들의 가짜 성자가 죽은 게 확실합니다.”
“놈이 전선에서 자취를 감춘 지 벌써 나흘입니다.”
반군의 거짓된 성자는 원숭이의 저주에 걸린 자라면 정부군도 없애 주겠다며 심리전을 걸었었다.
그 선전에 저주에 정부군이 반군으로 넘어간 사례가 제법 많았고. 그렇게 원숭이 저주로 기세가 등등했던 가짜 성자가 며칠 동안 조용한 것을 보니 죽은 게 분명했다.
“놈이 죽었어도 저 밀림 속에는 원숭이의 저주가 있어. 교전을 시작했다가 저번처럼 저주가 퍼지면 어떻게 할 건가?”
정부군은 골칫거리인 성자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에도 군을 움직이지 않았다. 반군의 정신적인 지주인 성자가 죽었어도 밀림에는 원숭이의 저주가 있기 때문이었다.
“장군님. 저주 때문에 도망친 한국군이 살았다고 합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예. 선명했던 저주의 흔적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합니다.”
“당장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봐.”
그리고 원숭이의 저주에 걸려 몰살됐어야 할 한국군이 회생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필리핀 정부군은 그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분명 저주에 걸려 죽었어야 할 한국군이 5일이 지나도록 살아있었다. 마루가 그놈을 처리하면서 생긴 일. 저주를 건 존재가 죽으면서 자연스럽게 저주가 사라졌던 것.
그 상관관계를 한국군과 필리핀 정부군은 알지 못했지만, 확실한 건 하나. 원숭이의 저주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저주가 사라졌다면 반군을 쓸어버릴 기회다.”
원숭이의 저주 때문에 대치 상태에 있던 전선이 포화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저주는 없다. 돌격!”
“악마를 부른 놈들이다. 복수를!”
정부군의 화력이 약간 우세했지만, 정신적인 지주를 암살당한 반군의 복수심이 부족한 화력을 채웠다.
전선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쿵- 쿵- 쿠쿵-
포격과 총성이 밀림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 치열한 교전을 틈타, 반군이 장악한 전선을 돌파한 마루는 화산재와 먼지로 가득한 중심부로 진입했다.
확 달라진 풍경. 짙푸른 녹색이어야 할 밀림은 어느새 짙은 회색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밀림으로 변해있었다.
서걱서걱-
발을 디딜 때마다 들리는 얇은 콘크리트 조각이 부서지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포성에 녹아들었다.
‘마을을 비웠나?’
놈이 죽은 뒤로 반군이 빠져나갔는지, 텅 빈 마을. 길바닥에는 버려진 살림살이와 마네킹 같은 게 널브러져 있었다.
‘하긴. 공기가 이런데 사람들이 자리 잡은 것 자체가 이상했지.’
마루의 시선이 마네킹으로 향했다.
‘······.’
마네킹이 아니었다. 죽은 지 오래되지 않았으련만 시체가 마네킹처럼 변해있었다. 시체에 내려앉은 화산재와 먼지가 무슨 작용을 했는지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이었다.
‘돌아갈 때, 샘플로 하나 가져가 봐야겠군.’
반군 거점이었던 지역을 지나 중심부로 지나갈수록 밀림은 더욱 기괴해졌다. 시멘트로 만든 것 같았던 수풀은 전위적인 예술 작품을 지나,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외계 행성의 풍경 같았다.
무엇보다 이질적인 것은 표면의 느낌이었다. 거친 질감이 아닌 매끄러운 질감은 화산재와 먼지로 만들어졌다기보다, 마치 싱싱한 내장으로 만든 것처럼 촉촉하고 야들야들한 것처럼 보였다.
‘죽음을 펼치는 건 의미 없어.’
한국에서의 대량 살상 경험과 필리핀에서의 교전 경험에서 죽음의 정원이 가진 취약점이 드러났다. 생명을 수확할 수 있을 때는 강하지만, 반대로 생명이 없다면 유지하기 힘들다는 약점.
생명이 강할수록 강해지는 죽음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죽음이 많다는 건 그만큼 많은 생명이 있다는 이야기니까. 반대로 지금처럼 생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죽음의 정원은 오래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콰지직- 콰직-
매끄러운 바닥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살얼음 깨지는 것처럼 깨졌다. 그렇게 걷기를 얼마나 했을까?
마루는 작은 싱크홀 여러 개가 모여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큰 곳은 지름 5m 정도 작은 곳은 지름 2m 정도인 싱크홀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얼핏 보면 구멍 뚫린 치즈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김 양이 도쿄에서 발견한 엄청난 크기의 싱크홀은 아니었지만, 싱크홀은 싱크홀이었다. 마루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폈다.
‘역시 이 근방이 유독 화산재와 먼지가 짙어.’
가시거리도 그렇고 센서 범위도 그랬다.
‘도쿄의 싱크홀처럼 이 밑에도 괴물이 있을까?’
마루는 맨 가장자리에 있는 지름 2m 남짓한 싱크홀에 수류탄을 까 넣었다. 폭음이 작게 들리는 것을 보니 엄청나게 깊은 곳에서 수류탄이 터진 듯했다.
‘···흠. 도쿄에 있는 것과는 다른가? 규모도 그렇고 싱크홀 숫자도 워낙 다르기는 했으니.’
10분 넘게 기다렸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싱크홀이었다. 마루가 몸을 돌려 돌아가려는데 2m짜리 싱크홀에서 뭔가 올라왔다.
‘천산갑?’
필리핀 천산갑(Manis culionensis)으로 불리는 동물이었다.
‘죽은 건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고름과 진물이 흘러내리는 일본 괴물과는 약간 달랐어도. 갈라진 껍데기 하며 껍질이 까진 자리를 대체하듯 달라붙은 회백질 시멘트 조각을 보면 죽은 건 확실했다.
그랬음에도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주변을 살피더니, 마루가 은신한 방향으로 죽은 시선을 고정했다.
동시에 마루가 뉴클립스로 천산갑의 머리를 찔렀다. 콰직- 공간이 씹히면서 천산갑의 머리 부분이 통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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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갑의 머리가 지워지는 것과 동시에 숭숭 구멍 뚫린 여러 곳의 싱크홀에서 공기가 치솟았다. 마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으로 변한 것처럼 울려 퍼지는 소리와 진동.
무언가가 저 밑에서 우글우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루는 머리가 사라진 천산갑의 남은 몸통을 보관 용기에 넣곤 바로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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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순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 했더니. 저주를 건 놈이 성자인 척 저주를 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
“와. 알고 있었냐? 저주를 푼다던 반군 성자가 없어지니까 며칠 전에 저주에 걸렸던 한국군 저주도 풀어졌다고 하더라. 인성 쩔지 않냐? 자기가 저주를 걸어서 공포심 맥스 찍게 만들고, 그걸 풀어주면서 두 배로 신앙을 먹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거 네가 하자고 했던 거 아니냐?”
싱크홀을 확인하고 온 마루는 그쪽이 더 신경 쓰인지라 건성으로 말했다. 그런 마루의 대답에 기순의 실눈이 가늘어졌다.
“다르지. 그게 어떻게 같아.”
“그래. 다르다고 하자.”
그런 마루의 반응에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싱크홀은 확인했냐? 반군 점령지 간 김에 반군 정리 좀 했고?”
“아니. 싱크홀만 확인하고 왔다.”
“있었다는 거네. 싱크홀.”
“괴물도 있었다.”
“뭐? 그 죽지 않는 괴물이 여기에도 있었다고?”
“사람이 아니라 천산갑(?) 그런 거였는데. 비슷했어.”
마루가 보존 용기에 담긴 샘플을 꺼내며 말했다. 샘플 하나는 머리가 사라진 천산갑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시멘트로 만든 조각상? 마네킹처럼 변한 시체였다.
기순이 몸통만 남은 작은(?) 천산갑이 담긴 보존 용기를 들었다. 머리통이 우악스럽게 뜯겨나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절단면에 핏자국이 잘 안 보이네.”
이리저리 통을 돌려가며 보고 있는데, 갑자기 톽- 소리를 내며 기순의 머리를 향해 사지를 펼쳐 달려든 천산갑.
퍽-
머리가 없는 천산갑의 몸통이 투명한 용기 벽을 들이받았다.
퍽- 퍽- 뻐억-
이어진 반복된 동작.
“으익- 아. 시바 간 떨어질 뻔했네. 이거 머리 없어도 움직이는 거였냐? 머리 없어지면 못 움직이는 거 아니었어?”
“···그거 내려놔라.”
치이이익-
강하게 부딪쳤는지, 잘린 목에서 튄 살점과 피딱지가 용기를 조금씩 녹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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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은 바로 나주연에게 보내졌다.
[천산갑만 혈액과 세포조직의 변화가 있고요. 인간형 괴물은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어요.]“아직? 그렇다는 건 변하고 있다는 건가?”
[천산갑처럼 변하고 있는지 어쩐지는 샘플이 부족해서 확답하긴 어렵지만. 기존의 샘플과 비교하면 변화가 있는 건 확실해요.]“괴물이 소금에 약하다는 건 확실하고?”
[예. 그냥 정제 소금이 아니고 바다에서 뽑은 소금이요. 그것도 태양 빛과 해풍을 이용해 만든 소금이 효과가 좋았어요.]햇빛과 해풍으로 만든 천일염이 효과 있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