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24)
러스트 [RUST]-924
핵융합 발전을 하고 매스 드라이버를 이용해 우주로 진출할 계획을 하는 과학 기술력이 확보된 상황에서 소금으로 괴물을 퇴치하려고 하다니.
마루는 필리핀 민다나오 섬 반군 지역에 있는 작은 싱크홀을 떠올렸다. 분명 싱크홀은 지진, 화산과 연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조건이 더 있겠지.’
단순히 지진과 화산 때문에 그런 싱크홀이 생기고 괴물이 생긴다면, 진작 알려졌을 테니.
‘제단의 파편이 이쪽에 있었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군은 동남아를 장악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침략당한 동남아 국가들 대부분이 일본 제국의 패망 이후 친일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 사실이었다.
당연히 제단의 파편을 이용한 실험실이 동남아에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무엇보다 반군 지역인 민다나오 섬이라면 생체 실험을 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실험체를 확보하는 것도 그렇고 폐기 처분하는 것도 그렇고. 이곳에 도쿄 지하 비밀 실험실처럼 뭔가 있었다고 보는 게 맞겠군.’
그리고 어쩌면 정부군에서 핵을 사용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도쿄에 생긴 거대 싱크홀이 생겼을 때와 비슷한 조건이 됐다.
“필리핀 정부군이 무슨 핵이야.”
“중국이 선제공격하기 전, 남중국해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필리핀 해역을 순회하고 있던 미 해군이 있었잖아. 거기서 확보했을 수도 있지.”
“코드가 없으면 무용지물일 텐데.”
“코드가 없어도 폭파는 가능하지. 아무리 필리핀이 엉망이라고 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고.”
“정부군이 반군 지역에 핵을 터뜨렸다?”
“핵일 가능성이 크고. 핵이 아니더라도 상당한 파괴력을 가진 폭탄을 사용했을 거다.”
마루의 의견을 듣던 기순의 실눈이 씰룩였다.
“그럼 싱크홀은 뭐라고 생각하냐?”
“괴물을 만들어내는 구멍. 제단의 파편이 지진, 화산, 핵과 같은 고에너지에 반응한 것이겠지.”
도쿄의 싱크홀도 그렇고 필리핀 반군 지역에 있는 싱크홀도 그랬다. 이곳 말고도 세계 곳곳에 싱크홀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싱크홀을 없앨 수 없다면. 괴물이라도 없애야 해.”
마루의 단언에 목이 잘렸음에도 펄떡거렸던 천산갑을 떠올린 기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 인근에 있던 괴물도 질겼다.
그런 괴물들이 수천만 단위로 쏟아져 나온다면 그걸 막는 건 불가능하겠지. 심지어 괴물들은 ‘감염’과 ‘침식’까지 하는 바에야 상황은 명백했다.
“저주에도 힘이 실리는 현실이니···. 죽지 않는 불사의 괴물이라는 소문이 믿음을 만들면 위험하겠네. 그런 괴물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핵을 보유한 애들이 패닉에 빠져 핵을 쓸 수도 있겠고.”
“예상도 그래. 그리고 핵을 쓰면 싱크홀이 더 커지거나 그 안에서 괴물들이 더 튀어나오겠지.”
기순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래도 소금으로 되겠냐?”
“반응이 있었으니까 실험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작은 싱크홀부터 해보는 게 맞겠지. 그러니까 반군 거점 인근에 있는 작은 싱크홀과 그 안에 있는 괴물에게 실험해보자는 이야기였다.
‧
‧
‧
4월 중순도 지나 하순이 될 무렵.
캐나다 수복 작전을 추진 중인 김 양과 간호사는 오타와(Ottawa)를 탈환하고 몬트리올(Montreal)까지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실로 놀라울 정도의 진격 속도였지만 김 양의 표정은 불퉁했다.
“느려. 느려. 느려. 지금쯤이면 싹 끝내고 쉬고 있어야 할 시간이라고.”
“어쩔 수 없었잖아요.”
간호사가 불퉁불퉁한 불만으로 폭발하는 김 양을 다독였다. 계획대로라면 몬트리올까지 늦어도 보름 안쪽에 끝내려고 했었는데 기어코 3주가 넘어 버렸다.
빨리 끝내고 휴식하려던 계획이 일주일이나 밀려버린 것. 이래서야 며칠 내로 퀘벡을 밀어버린다고 해도 휴식 시간이 3박 4일에서 4박 5일을 넘긴 어려워 보였다.
“어쩔 수 없긴. 그냥 싹 밀어버리기로 해놓고 딴소리가 나왔으니까 시간 끌린 거지.”
김 양은 분노했다. 폭격과 포격으로 싹 밀어버리고 다시 네이팜으로 태워버리고. 도시는 새로 재건하면 그만이었다.
미시소거와 토론토 밀어버린 것처럼 싹 밀어버리면 그만이었는데, 갑자기 어지간하면 도시를 살렸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 복잡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을 살리라는 게 아니라 도시를 살리라는 것. 김 양은 바로 V의 x와 중성자탄을 사용해 도시에 있는 생명체를 싹 밀어버렸지만, 변이를 일으킨 괴수들이 문제였다.
‘괴물 딱지들.’
고에너지 방사선인 중성자에도 뒈지지 않는 놈이 있을 줄이야. 신경가스도 버티고 방사능도 버티는 괴물은 직접 물리력으로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제일 피곤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바퀴벌레와 같은 벌레들과 설치류였다. 신경가스와 중성자 탄에 죽지 않은 놈들은 3주라는 짧은 시간에도 번식했다.
아직 날씨가 풀리지 않았는데도 알을 까고 새끼를 까더니, 새끼 중에는 신경가스에 내성 가진 개체가 소폭 늘어나 버렸다.
지금이야 소폭 늘어난 것에 그쳤겠지만, 그걸 그냥 두면 개판 날 게 분명했다. 내성 개체끼리 번식을 시작하면 전부 내성 개체로 세대교체가 될 테니까.
“그래도 사람들까지 다 죽일 건 없었잖아요.”
“그게 딴소리라고. 배신한 놈들 사정 봐주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는데 왜 딴소리야.”
확실히 인간은 바퀴벌레만큼이나 질겼다. 변이 괴물들이 득실득실한 망가진 도시에서도 시가전을 걸어오지를 않나. 군수품을 노리고 보급창고를 공격하거나 했다.
당연히 그걸 그냥 둘 김 양이 아니었다. 신경가스와 중성자 탄까지 꺼내 든 이유에 버러지 같은 인간들까지 한꺼번에 쓸어버리기 위함이었으니까.
도시의 원형을 보존하라는 게 명령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중요한 건 병력을 보존하는 일이었고. 김 양은 도시 보존과 병력 보존 가운데 무조건 후자를 우선했다.
당연히 저항군이니 독립 전선이니 하는 자들은 김 양이 도시를 통째로 날려버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항복했다.
문제는 김 양이 항복을 받지 않고 도주도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
“항복했는데도 공격했잖아요.”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필사의 저항뿐. 그러거나 말거나 김 양은 이번 기회에 아주 뿌리 뽑을 작정이었다.
항복을 받아준다고 치자, 그것들이 다시 사회로 나가서 멀쩡한 시민들 물들이면 어쩌려고? 이상한 사상은 곰팡이와 같아서 한 번 퍼지면 전체를 폐기하게 되는 법.
처음 캐나다를 합병했을 때 제대로 검증하고 아닌 놈들 싹 내쫓고 모조리 밀어버렸으면 지금처럼 손 써야 할 일 없었다.
그걸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쉽게 넘어갔더니. 보라. 자유 캐나다 어쩌고 하면서 흡혈귀 백작 끌어들여 병신 짓거리하지 않았나?
김 양은 당시에 싹 밀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식인귀가 된 대가리를 밀었는데도 ‘그럴 리 없다.’면서 싸우자고 한 놈들이 안 되겠다 싶으니까 항복하고 있었다. 그걸 왜 받아주나?
“항복은 무슨 항복. 지랄하다가 뒈지게 생기니까 그제 서야 항복한 걸 왜 받아 줌? 그러니까 바퀴벌레고 쥐새끼고 놓친 건 누구 탓? 응?”
신경가스를 뿌리는 걸 멈춘 것도 생존자랍시고 지랄하는 병신들 때문이었다. 중성자 탄으로 도시 전체를 샤워하는 것도 그놈의 생존자 지랄한 놈들 때문이었고.
“그놈의 인류. 놈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몰라?”
놈들이 원하는 건 마지막까지 캐나다 도시를 지킨 자라는 타이틀이었다. 마지막까지 자유를 위해 저항했던 자라는 명분. 그런 놈들의 항복을 받아서 어쩌라고?
“차라리 변이 괴수가 낫지. 쓰레기 같은 인간보다는 훨씬.”
대형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은 그래도 괜찮았다. 포격이든 폭격이든 덩치가 큰 만큼 때릴 곳도 많았으니까. 그런데 작은 것들과 인간이 문제였다.
3주 넘게 걸린 건 그 작은 것들과 질긴 인간을 찾아 정리하느라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그렇게 김 양은 작전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작은 것들이 큰 것보다 더 위험하다.
인간 새끼는 항복하기 전에 일단 죽인다.
“아니 그게 무슨 교훈이에요. 사람들과 싸우기 전에 협상했으면 어땠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 아니에요? 그리고 바퀴벌레나 쥐는 몰아서 죽였으면 되잖아요.”
그냥 막 융단 폭격하듯 신경가스 막 뿌리지 말고, 모여있을 때만 뿌린다거나 그랬으면 어땠을지 모른다는 간호사의 대꾸에 김 양의 눈초리가 사나워졌다.
“그렇다고요.”
“입. 닫.”
예전 뉴욕에 바퀴벌레랑 쥐새끼 죽일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1년 반에서 2년 사이에 바퀴벌레고 쥐새끼고 적응력이 엄청났다.
“본국에서 쥐를 불러와야겠음.”
“이번에 새로 들어온 쥐떼요?”
마루를 향해 신앙을 바친 1천3백만 마리의 쥐떼를 말하는 간호사였다.
“어. 걔들. 도시에서 괴물들을 밀어버리면 뭐함? 큰 거 밀어버린 공간에 바퀴벌레랑 쥐새끼들이 들어와서 새끼 까면 말짱 도루묵인데. 그러니까 우리가 밀어버린 지역 지하에 자리 잡고 알아서 방어할 애들이 필요해.”
그건 그랬다.
“신앙 강한 쥐를 데려오는 게 맞아.”
밀다 보니 알 수 있었다. 바퀴벌레와 시궁쥐가 아니더라도 빈 곳에 개미나 거미가 들어올 수 있었다. 바퀴벌레 같은 인간도 그렇고.
지금 미리 정리하는 것도 날이 풀리면 개미, 거미 놈들 토벌하려고 그러는 건데, 실컷 싸워서 이겼다 했더니 발밑에 잡것들이 숨어들면 웃기는 일이었다.
“알겠어요.”
‧
찍- 찌이이익! (드디어 우리의 믿음을 보일 때가 왔도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 털을 자랑하듯 앞으로 나선 쥐가 두 팔을 높이 들었다.
찌익- 찌이이익-찍-(가자- 낙원을 만들기 위해-)
신께서 원하신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도시의 지하엔 불신 쥐들과 먹잇감이 가득했다. 죽음의 신을 모르는 불신 쥐를 꼭꼭 씹어 정화하고 고소한 새우 맛 바퀴들을 뱃속으로 치우기를 한참.
몇몇은 원인을 알 수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 털이 빠지고 이빨이 빠지면서 죽어갔다. 그렇게 죽은 동료의 시신은 2세를 위한 양분이 됐다.
모든 것은 죽음의 신이 뜻일 따름.
며칠이 지나고 새로 이주한 곳에서 첫 새끼를 낳았다. 삽시간에 8배가 불어난 입이었지만 새로운 곳에는 먹을 것이 풍부했다.
거대한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의 사체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신을 믿는 인간들이 사냥하고 남긴 것이었다.
검은 쥐를 중심으로 한 쥐떼는 흡족했다. 역시 죽음의 신 휘하에 있는 인간들은 개념이 있었다. 이렇게 알아서 공물을 바치다니.
찌이익- 찌이익!(우리는 죽음의 신이 선택한 존재다!)
쥐떼는 점차 자신들이 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독을 먹어도 죽지 않으며, 병에도 걸리지 않고 상처가 생겨도 금방 낫기 시작했다.
윤기 흐르는 검은 털을 가진 쥐를 중심으로 쥐들은 지하에 인간을 모방한 사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자라난 엄지손가락은 고작 몇 세대 만에 제대로 된 엄지손가락이 됐고. 그것은 인간의 문명을 흉내 낼 수 있는 바탕이 됐다.
‧
‧
‧
기순이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 정부와 필리핀 정부군이 지원을 요청하는데 어쩔 거냐?”
“저주도 사라졌으니까 둘이 합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텐데?”
“우리가 도와주면 쉽게 이길 수 있으니까 그렇지 뭐.”
“대가는?”
“필리핀 정부에서는 영토 할양까지 생각한다고 하네. 크게는 아니지만 적당한 섬을 할양할 의사가 있다고 했어.”
“섬이라. 그쪽은 그렇고 한국 정부는?”
“필리핀과 교역할 때 화폐를 신성 왕국 화폐로 하겠다고 하네.”
“우리 화폐 말고 달리 쓸 화폐는 있고?”
디지털 화폐로 전환한 한국 화폐를 지폐로 바꿔서 유통한다면 필리핀이 인정하지 않을 터, 무역할 때 필요한 화폐가 필요했다.
금‧은 본위인 신성 왕국 화폐가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화폐였으니 당연했음에도 그걸 생색내고 있는 한국 정부였다.
“무리하면 제국 화폐를 기축 통화로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지.”
“흠. 우리가 삼각무역에서 빠지면 거래량이 급감할 텐데?”
한국과 제국은 신성 왕국의 초대형 비행선을 이용해 무역하고 있었다. 여기서 신성 왕국이 빠지면 무역량이 급감할 뿐만 아니라 한국과 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게 뻔했다.
“쩝- 그렇지. 눈 가리고 아웅 하긴데 그래도 우리 화폐를 사용할 명분은 되니까. 그냥 맨입으로 기축 통화 먹지는 말자는 거지.”
“머리 썼네. 덴 아재도 우리 신성 왕국 화폐로 기축 통화를 하는 걸 동의했고?”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도 많이 아쉬워하긴 하더라.”
“기축 통화 맛을 아니까 더 그랬겠지. 그래서?”
“동의했다. 뭐. 지금은 금‧은으로 가능하지만, 경제가 회복되면 감당하기 힘들 거라고 하던데.”
“아재가 걱정은.”
그렇지 않아도 유럽의 금 챙기라고 유럽에 풀어둔 용병대가 있었다. 스위스로 간 뒤, 연락이 끊겼기는 해도 죽지는 않았을 터. 금은 그쪽에서 확보하면 그만.
“우리는 후방에 있는 반군 거점 지역을 공략하겠다고 해.”
필리핀 반군 거점 인근에 있는 싱크홀과 괴물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게 우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