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25)
러스트 [RUST]-925
마루가 싱크홀과 괴물을 우선 정리하고자 한 이유는 안전과 생존 때문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가 인류의 생존과 안전에까지 연결됐을 뿐. 그렇기에 누구에게 칭찬받거나, 감사받을 생각은 없었다.
“어이가 없군.”
싱크홀을 없애겠다는 마루의 말에 필리핀 반군과 정부군 심지어 한국 정부까지 반대할 줄은 몰랐다. 칭찬이나 감사는 아니더라도 반대라니. 이게 반대할 일인가?
반군은 싱크홀이 없어질 경우, 화산재와 먼지가 유지되는 효과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화산재와 먼지를 안개처럼 이용한 게릴라전을 했기 때문이었다. 대놓고 그렇게 주장하지는 않고 민간인이 위험할 수 있다는 핑계로 반대했다.
정부군은 싱크홀에 있다는 괴물에 집중했다. 천산갑의 목을 잘라도 살아 움직이는 모습에 놀라면서도 이제까지 그런 괴물들이 밖으로 나돌아다닌 적이 없다며, 굳이 싱크홀을 없애려고 자극하다 괴물들이 들끓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주장이었다.
필리핀 정부군의 손을 들어준 한국 정부의 이야긴 간단했다. 필리핀 땅이고 필리핀 정부가 반대하는 걸 굳이 들쑤실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
“이야기는 다들 그럴— 싸-하네. 졸라. 싸-해.”
마루와 기순의 표정이 하나같이 썩었다.
“어쩔 거냐?”
“이야기를 해봐야지.”
싱크홀을 잡아보기 지금처럼 좋은 환경과 기회가 또 있을까?
최악의 상황이 터진다고 가정해도 그랬다. 싱크홀이 폭주해 속에 있던 괴물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하더라도 민다나오 섬 하나로 끝나는 문제.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마루가 밖으로 나온 괴물을 잡아주면 그만이었다. 시간이야 좀 들겠지만 결국은 해결될 일이었다.
민간인 대피 문제?
신성 왕국의 대형 비행선과 한국에서 컨테이너선 몇 척만 동원하면 민다나오 섬에 있는 민간을 전부 인근 섬으로 대피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고.
식량과 보급품도 마찬가지. 지금도 어차피 굶어 죽기 직전까지 몰려 간신히 먹고살고 있지 않았나? 굶주리지 않을 정도로 보급하는 건 신성 왕국의 생산력으로 충분히 감당 가능했다.
신성 왕국이 단독으로 싱크홀과 괴물을 처리하겠다고 하자, 각 세력이 하나같이 강하게 반발했다.
“알아듣게 설명했는데 왜 반대하는 거지?”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고 하자.”
“감정을 쓰게?”
“그래.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무슨 감정인지는 알 수 있을 테니까.”
각 세력의 대표를 모아 싱크홀과 괴물 사태에 대해 논의한 결과도 같았다. 하나같이 각자의 명분으로 반대하기 시작했다.
“이슬람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자유 이슬람 연맹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어떠한 타협도 없습니다. 또한. 이슬람 신도들이 위험할지 모르는 싱크홀 작전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반군이 점령했다지만, 민다나오는 엄연히 필리핀의 영토입니다. 필리핀 정부는 싱크홀이 터지거나 괴물이 범람해, 민다나오 섬이 불모지가 될 위험을 감수할 순 없습니다.”
“민다나오 섬은 필리핀의 영토입니다. 신성 왕국이 인류의 안전을 명분으로 독단적으로 작전한다는 것은 필리핀의 주권을 모독하는 행위가 됩니다. 무엇보다 이제껏 아무런 위험이 없었던 싱크홀입니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확증 없이 싱크홀을 건드리는 것이야말로,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순은 각 대표의 감정을 확인했다.
“다들 감정이 이상한데? 싱크홀과 괴물을 말할 때는 탐욕에 가까운 색이 나온다.”
“싱크홀과 괴물을 노리고 있군.”
“하- 미쳤네. 미쳤어.”
“역효과였나?”
목이 잘려도 사지를 움직이는 천산갑 영상과 부산에서 벌어졌던 괴물 사태를 녹화한 것을 보여줘 위험성을 알리고자 했는데, 그게 역효과였다.
기순의 감정 분석과 정밀한 감시, 도청의 결과 각 세력의 속내가 속속들이 드러났다.
반군은 싱크홀과 괴물을 알라의 천벌, 알라의 무기로 만들 생각이었고.
필리핀 정부는 한국군의 화력 지원이 있으면 반군을 몰아내는 건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라고 판단. 싱크홀과 괴물이 필리핀 정부의 자산이라고 보고 있었으며.
한국 정부는 필리핀 정부를 지원하고 있으니, 싱크홀과 괴물을 공동소유, 공동연구하는 쪽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신성 왕국이 단독으로 싱크홀을 박살 낸다고 하자, 셋 모두 화들짝 반발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쩔 거냐?”
“지랄이 풍년인데 알 바냐?”
마루는 단독으로라도 일을 벌일 생각이었다.
“민간인들은? 거기 있는 민간인들은 반군 쪽이잖아. 네가 간다고 대피 경고하면 반군이 먼저 움직일지도 몰라. 반군 애들 통신 들었잖아. 그쪽에서 싱크홀과 괴물을 무기화하려는 것 같던데 네 핑계 대고 지랄할지 몰라.”
“그러든지.”
대피하라고 할 뿐. 그 뒤는 각자의 판단과 선택의 문제 아니겠는가?
“네가 하겠다고 하면 하는 건데. 민간인에게 선택의 기회가 있는 건 아니야.”
기순이 씁쓸하게 말했다.
“캐나다랑은 달라. 그쪽은 어쨌거나 교육 수준이 높았잖아. 판단할 정보도 가지고 있었고. 하지만 이 동네는 아니지.”
민다나오 섬은 이미 오래전부터 반군과 정부군이 교전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제대로 된 교육은커녕 스마트폰도 없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나마 무선 인터넷이 돌고 저가 스마트폰이 좀 돈다 싶을 즈음 대재난이 터졌다. 교육은 고사하고 섬 외부가 어떻게 변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동네.
“우리가 대피하라고 한다고 해도 믿지 못할 거다. 게다가 반군 쪽에서는 너를 악마라고 한다며? 악마가 피하라고 하는 걸 믿을 사람이 있을까?”
무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환경의 문제고 교육의 문제였으며 그 끝에는 도덕과 양심에 닿아있는 것이라는 이야기.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중국 불법 난민들 정리한 것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경고했으면 한다.’, ‘한다고 했으면 한다.’ 그뿐이었다. 몰라서 믿지 않았건, 교육을 받지 않아서 그랬건, 적이 하는 말이라서 무시했건. 그 모든 것을 다 따져야 한다고?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중국 불법 난민 사태에서 가감 없이 힘을 썼던 것이고. 그러니 지금도 원칙은 같았다.
“반군이 먼저 싱크홀을 건드리건, 정부군과 한국군이 반발하건 상관없다.”
민다나오 섬에 대피하라는 방송과 삐라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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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연은 웅장한 장벽과 겨울에도 새파란 넝쿨로 둘러싸인 도시를 내려다봤다.
‘생각할수록 디트로이트를 선택한 건 놀랍군요.’
알고 찍었는지는 불분명했지만,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디트로이트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생산성이 떨어진다지만 석탄, 철광이 남아있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무려 소금 광산이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매장량이.
석탄, 철광과 마찬가지로 채굴 비용이 올라가 닫은 소금 광산이지만 신성 왕국이 여러 폐광을 다시 살리면서 소금 광산도 다시 가동하고 있었다.
‘작년 겨울에는 운영을 중단했었는데 말이죠. 대단하네요.’
블라디 아크 타워에서 실험하는 게 원칙이더라도, 위험할지 모르는 실험에 대해서는 도시 밖에 만든 비밀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전용 비행선에서 내린 나주연이 철통 같은 방어벽 사이로 들어가자 인공지능이 신원을 확인했다. 여러 가지 불빛과 소리가 그녀를 스캔하더니 바닥이 움직였다.
[나주연님 확인됐습니다. S1 연구센터로 이동합니다.]아래로 훅 추락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깊은 땅속으로 꺼지는 바닥. 유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즉각 폐기, 폐쇄해야 할 연구가 행해지는 실험실인지라 땅속 깊은 곳에 있었던 것.
[연구센터에 도착했습니다.]다시 검사와 방역이 이뤄진 뒤에야 연구센터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자료부터 보지요.”
연구실 중앙에는 투명한 특수용기 속에는 머리가 잘린 천산갑이 하얀 가루를 묻힌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극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전신에 회색빛 시멘트 딱지를 붙인 채 둥둥 떠 있다가 갑자기 사지를 벌벌 떨어대는 풍경.
중간중간 붉은 경고등과 높은 경고음이 뜸에도 연구원과 나주연의 시선은 태블릿에 고정됐다.
“천일염과 암염의 차이가 있나요?”
“천일염 쪽이 조금 더 즉효성이 있는 것으로 데이터가 뽑힙니다.”
“원인은 알 수 없고요?”
“네. 객관적으로 본다면 최근 생산한 천일염보다 수십만 년 전에 생성된 암염이 더 좋을 텐데.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연구원이 골치 아프다는 듯 대답했다. 나주연이 자료를 살펴봐도 그랬다. 현재 실험을 위해 확보한 천일염의 반은 한국산이었고 절반은 미 서부 해안에서 급히 만든 소금이었다.
한국산 소금이나 서부산 소금이나, 수십만 년 혹은 그 이상 오래된 지질변화로 만들어진 암염에 비해 더 깨끗하긴 어려웠다.
“원산지도 그렇고요?”
“네. 한국산 소금과 서부산 소금의 차이는 크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의 암염과 디트로이트의 암염도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직 천일염이냐? 암염이냐? 그 차이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깨끗한 옛날의 소금보다 현대의 천일염이 괴물에게 효과적이라니.
나주연의 시선이 벌벌 떨고 있는 샘플을 향했다.
해체되고 분해된 채로도 움직이는 샘플의 모습. 기존의 생명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애초에 저걸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살아있다는 건 뭔가?
나주연은 과학적인 질문이 형이상학적으로 넘어가기 전에 멈췄다.
“국왕 폐하께서 저것을 없앨 방법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연구는 저것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는 쪽으로 돌리도록 하세요.”
가상현실과 양자컴퓨터, 슈퍼컴퓨터에 인공지능까지 총동원된 연구가 이뤄졌다. 수천, 수만 번의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
이유고 원인이고 전부 무시하고 괴물을 없애는 방법만 찾은 연구진은 기어코 괴물을 죽일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거대한 태양광 반사판으로 모은 빛이 한점으로 응축되는 모습. 그렇게 모인 집광기에서 뿜어진 강렬한 빛이 순식간에 괴물을 불사르고 있었다.
‘어째서일까요.’
고출력 레이저와 이온 입자포로도 태우는 데 시간이 걸렸는데, 태양 빛을 모았다고 저렇게 쉽게 타버리다니.
나주연은 고대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거대 태양광 무기 전설처럼, 수상 도시에도 태양광 장치를 달아야 하나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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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가 있다면 달아야지.
“달라고 해.”
나주연의 보고서를 확인한 마루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이거 우연한 현상이 아닌 것 같은데.”
기순의 실눈이 성층권 비행선이 찍은 사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연이라면 일본도 그렇고 필리핀이랑 인도네시아까지 똑같이 그럴 리는 없으니까.”
사실 따지자면 더 있었다. 러시아 사할린에서 터진 화산 분화도 그렇고 백두산 분화도 마찬가지였다.
김 양의 원정대가 확인했던 곳은 분명 화산재와 먼지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모든 화산이 처음에는 일반 화산 분출처럼 사방으로 화산재와 먼지를 퍼뜨린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점이 있었으니, 화산재와 먼지가 태풍과 비바람에도 날려가거나 씻겨 내려가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이거 뭐냐? 알 수 없는 힘이 있어서 화산재와 먼지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데···.”
힘이라는 것은 원인과 결과가 있는 법. 원인은 알기 어렵지만, 결과는 알 수 있었다.
“하늘을 가리는 것이지.”
그건 곧 태양을 가린다는 말이고.
“괴물들 낮에도 움직이지 않았어?”
“그냥 태양 빛은 괜찮을지 몰라도 태양광을 응집한 것에는 약하다고 하잖아.”
낮에도 돌아다니는 것들이 태양 빛에 약하다고 누가 상상할까? 그렇게 따져보면 놈들의 움직임은 어쩌면 전술, 전략적인 움직임일지 몰랐다.
“확실히 이상하네.”
“그렇지? 역시 싱크홀과 놈들을 치워야겠어.”
놈들의 약점을 알았어도 문제가 그대로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응집한 태양광으로 놈들을 공격하려고 해도 놈들이 있는 곳은 화산재와 먼지가 짙은 안개처럼 뿌려진 공간이었다.
태양광 공격을 막는 환경도 모자라 놈들은 싱크홀에 들어가 있었다. 이걸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놈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마루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우고 싶을 뿐.
“태양광 장치 비행선에 설치하고. 설치가 끝나는 대로 바로 시작하자.”
먼저 작은 싱크홀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