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28)
러스트 [RUST]-928
작열(灼熱)하는 태양광은 햇빛을 응축시킨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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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밝은 나머지 주변까지 전부 하얗게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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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어오르는 빛이란 이런 걸까?
삑-
센서 하나가 고장 났다.
[광학 센서 차단합니다.] [시력보호 시스템 시작합니다.]리퍼 슈트의 광학 센서가 엄청난 밝기를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 태양광 폭격이 무서운 점은 가로막히는 게 없다면 해가 질 때까지 계속 쏟아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태양광에 불사의 괴물이 정화(淨化)되기 시작했다.
탄다는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광경. 그건 분명 정화라고 불릴 마지막.
[현재까지 22.17% 소각 완료.]화염방사기가 뿜어낸 불길 속에서도 움직였던 괴물들이, 응축된 태양광선 앞에서는 그저 숯처럼 불타올랐다.
[적. 태양광선을 피해 우회하고 있습니다.]“우회?”
[네. 두 그룹으로 나뉘어 태양광선이 내리쬐는 곳을 피하고 있습니다.]“먼지 안갯속으로 도망치기 전 최대한 줄여.”
[명령 확인. 태양광선 위치 조정합니다.]우회하던 괴물들을 따라 이동하는 태양광선은 폭력적이었다.
지름 30m 크기의 햇빛이 쏟아지면, 몇 초 버티지 못하고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리는 모습은 영화 속 장면 같았다.
‘죽음의 정원이 비료로 만들어 버리는 것과 비슷한데.’
과정은 달라도 결과만 보면 놀랍도록 유사했다.
잿더미로 변하는 거나 비료로 변하는 거나 비슷한 종말이었으니까.
‘놈들을 유인하길 잘했군.’
반군과 정부군이 대치하고 있는 곳까지 유인하길 잘했다. 아무리 강렬한 태양광이라고 해도 짙은 먼지를 뚫고 괴물을 타격하긴 어려웠을 테니까.
‘효과가 없진 않았더라도 이렇게까지는 쓸어버리긴 힘들었겠지.’
하늘에서 쏟아진 빛기둥에 가루가 되는 괴물들을 본 반군과 정부군은 힘이 풀렸는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정부군은 성호를 긋곤 하늘을 향해 기도했고, 반군은 메카를 향해 무릎을 꿇기 시작하는 모습이 멀리 보였다.
괴물들이 후퇴하자, 샘플이라도 확보하라는 명령을 받은 자들이었다. 반군과 정부군이 밀림에서 만났는데 사이좋게 괴물 꽁무니를 따랐다니. 시트콤도 아니고.
[반군. 정부군. 태양광 유도 범위에 들어왔습니다.] [됐어. 그냥 둬. 괴물 소탕에 집중해.] [명령 확인.]조금은 딱딱한 반응에 마루는 문득 예전에 있던 보조 인공지능이 떠올랐다.
‘제법 살갑게 굴었었는데.’
리퍼 슈트에 딸린 보조 인공지능은 아쉽게도 매번 바꾸는 쪽으로 했다. 죽음의 정원이 펼쳐지면서 생기는 EMP(Electro-Magnetic Pulse. 전자기 펄스) 효과에 보조 인공지능이 버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학습한 시간, 경험한 사건에 따라 인공지능이 발전한다는 것을 떠올려보자면, 현재 마루가 사용하는 리퍼 슈트에 딸린 보조 인공지능들은 극한 상황에 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기 보존권’을 확보한 인공지능에 있어 그다음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 ‘업그레이드(자기발전)권’이었다.
당연히 작업의 연속성과 전문성의 유무는 인공지능을 업그레이드할 때 기준이 됐으니. 마루가 사용하는 리퍼 슈트나 노심 아머에 들어가는 인공지능은 그런 기회가 박탈된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마루를 담당하던 보조 인공지능이 죽음에 여러 번 노출된 뒤로 복구 불가능한 오류에 빠지면서, 인공지능마저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마루도 이를 알고 난 후에는 인공지능이 없는 구형 버전의 리퍼 슈트를 사용했었지만, 작전에 한계가 있어 다시 보조 인공지능이 있는 리퍼 슈트를 사용하기로 한 것.
대신 죽음을 접한 보조 인공지능은 최대 3회를 넘지 않고 교체하기로 했다. 최대 3회라는 제한이 있지만, 마루는 매번 리퍼 슈트를 갈아입었다.
그럴 때마다 미세하게 다른 보조 인공지능의 반응.
‘인공지능도 인간처럼 반응이 다르다니.’
마루는 벌써 세 번째로 교체한 보조 인공지능의 반응에 신선함을 느꼈다.
‘다른 게 아니라, 달라졌다는 건가?’
디아나와 사만다, 예전 트리아는 단순한 인공지능이라기보다 인공의식, 인공인격에 가까웠다.
트리아가 마루와 한 계약을 어긴 것도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고. 사만다가 후드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도 그랬다. 디아나가 마루를 조금 더 신경 쓰는 것도 마찬가지.
이들은 특수한 슈퍼컴퓨터가 본체였기에 방대한 연산력을 바탕으로 인공의식, 인공인격에 도달했다면, 지금 보조 인공지능들은 어떻게 개성을 갖게 됐을까?
‘인공지능이 다른 인공지능을 프로그래밍하면서 성격적인 부분까지 만든 건가? 그러기엔 보조 인공지능이 활용할 수 있는 연산력의 한계가 뚜렷할 텐데. 어떻게 한 거지?’
태양광선에 하얗게 녹아버리는 괴물들을 바라보며 마루가 물었다.
[내가 무섭지는 않나?]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죽음을 펼치면 기능이 정지되고 복구 불가능한 치명적인 오류가 생길지 모르니까.] [잘 모르겠습니다.]작동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보조 인공지능이라서 그런가?
[그래? 나중에 이야기하지.] [명령 확인했습니다.]어쩐지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보조 인공지능이었다.
[통신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연결할까요?]기순이 통신 요청을 하고 있었다.
[연결해.] [지금 실화냐? 괴물 유인해서 반군과 정부군 전부 쓸었다는 게 사실이야?] [증거가 없을 텐데.] [아니. 시- 아- 능력자가 있잖아. 반군이랑 정부군이랑 왜 대치하고 있었겠냐? 서로의 움직임을 알아채는 능력자가 있어서 섣부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고.]영상 속 기순의 실눈이 구겨진 걸 보니, 상황이 복잡해진 것 같았다.
[탐지 능력자가 내가 범인이라고 콕 집었대?]태연한 마루의 질문에 기순의 실눈이 살짝 풀렸다.
[아니지. 아닌 거지? 왕님이 그랬을 리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니지?] [탐지 능력자가 나라고 콕 집어서 말했냐니까? 리퍼 슈트의 은신도 파악하고 헬멧도 꿰뚫어보고 그랬다는 거냐? 그런 능력자가 반군에도 있고 정부군에도 있다는 거야?] [진짜냐? 정말 괴물 끌고···?] [반군과 정부군이 놈들하고 연결됐더라. 반군 놈들 ‘알라’를 찾고 ‘생체 병기.’ 찾으면서 뒤로는 비밀 실험실 굴리는 놈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정부군도 마찬가지였고. 솔직히 뭔 깡으로 싱크홀과 괴물을 자산처럼 여기나 했더니, 놈들에게 팔아먹을 생각이었더라.]마루의 설명에 기순의 실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늘어진 모양을 보니. 제대로 꼴 받은 것 같았다.
[······.]뭐에 꼴 받았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가져다준 머리통에서 정보를 뽑았으면 그런 내용이 있었을 텐데.
[머리통에서 정보 뽑지 않았어? 거기에 다 들어있을 텐데?] [···정보가 없었다.] [무슨 소리야? 머리통에 정보가 없다니.] [예전에 정보 뽑으려고 했더니 뇌가 이미 녹아버려서 정보 추출하지 못했던 일 있었지? 그때처럼 머리통 속이 전부 곤죽이라 정보가 뽑히지 않았다.]기순의 이야기에 이번에는 마루의 표정이 구겨졌다.
[···죽음의 정원을 썼으니까. EMP 효과로 머릿속에 칩이 작동 불가능해졌을 텐데?] [모르겠다. 그래서 속이 곤죽 된 것과 정보추출기 꽂지 않은 머리통 전부 연구소로 보냈어.]미국, 중국, 일본 어쩌면 세계적인 규모로 퍼진 정체불명의 집단은 만만하지 않았다. 잠깐 이어진 침묵 끝에 기순이 입을 열었다.
[놈들이 지금 이 사태의 원흉일까?]버지니아 랭리 컴퍼니,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중국의 특수작전국이 전부 엮여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뉴욕의 경제인들, 일본과 중국의 유력자들이 관련됐을 가능성이 컸다.
라이저 제약의 기스 라이저 회장이 준비한 설비만 보더라도 상류층에서는 뭔가 일어날 것이라는 정보가 돌았던 게 확실했다.
[일단 잡아서 뚜껑을 열어보면 알겠지.] [어떻게 잡게? 잡히면 뇌가 곤죽이 되는 것 같은데.] [놈들은 정보에 한계가 있어. 괴물에 대해서 제대로 알았다면 일본에서 샘플을 구했겠지. 그러니까 필리핀 싱크홀을 틀어막는다면 놈들은 반드시 일본 도쿄에 있는 싱크홀로 갈 거다.] [일본 거대 싱크홀은 위험하지 않겠냐? 김 양 원정대 보고서를 보면 장난 아니던데.] [그건 놈들도 마찬가지겠지.] [일본부터 갈 생각이냐? 필리핀은 어떻게 하고? 필리핀도 그렇고 동남아에서 신앙 모으고 있는 능력자들은?] [동남아는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하라고 해. 기존 시스템으로 살아남으려면 동남아 시장이 필요할 테니 알아서 하겠지. 최소한 시간이라도 벌어 줄 거다.] [하- 알았다.]기순은 반군과 정부군이 하나같이 이쪽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를 알 법했다.
정체불명의 놈들과 연결됐기 때문이라는 마루의 예상대로라면, 반군과 정부군을 이용해 마루를 필리핀에 묶어두려고 할 테니.
[태양광선의 효과는 확인됐다. 영상 첨부했으니까 확인하고. 천일염과 소형 싱크홀 정리하는 대로 일본 도쿄로 갈 테니까. 너도 보급 챙겨서 일본으로 와라.] [보급만? 김 양과 친위대는?] [내 예상대로 놈들이 일본 싱크홀로 온다면 놈들 잡을 때까지 있어야 할지 모르잖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김 양과 친위대는 집 지켜야지. 수상 도시로 이사할 때 경계도 서야 하고.] [그럼?]일본에서 정체불명의 놈들과 교전이 벌어졌을 때를 가정한 마루가 인선을 결정했다.
[로이 스턴의 기갑병 부대와 까마귀 부대를 데려와.] [기갑병과 까마귀? 알았다.]쯧-
마루가 속으로 혀를 찼다. 놈들을 생각했다면 죽음의 정원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았을 텐데, 한국에서 불법 난민들 정리한 생방송 자료를 놈들이 본다면 어떤 방식이건 대비할 터.
질량과 화력으로 밀어버리는 기갑병. 그것도 일본에서 단련된 기갑병 부대라면 놈들의 허를 찌를 수 있으리라.
[근데 까마귀는 힘들지 않겠냐? 일본이 화산재와 먼지가 더 짙던데.] [까마귀용 마스크가 있으니 괜찮을 거다. 어차피 위험할 때만 잠깐 출격시킬 거고.]이야기를 끝낸 마루가 통신을 끊었다.
[괴물들은 어떻게 됐지?] [72.58% 소각했습니다. 좌측으로 우회한 적들은 대부분 소각했고. 우측으로 돌아간 적들이 흩어져 먼지 안개를 향하고 있습니다.]보조 인공지능이 HUD(Head-Up Display)에 실시간 현황을 올렸다. 처음에는 태양광선에 속절없이 녹아내렸던 놈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변하는 과정이 떠올랐다.
둘로 나뉘어 회피하더니, 이제는 한쪽이 공격당하는 순간, 반대쪽이 흩어져 싱크홀로 귀환하려고 하고 있었다.
마루는 직감적으로 놈들을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부산. 얼어붙은 앞바다. 컨테이너선에 있던 괴물들도 그랬다.
맹추위 속에서도 점차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놈들. 싸울수록 점차 몸놀림이 익숙해졌었다.
만약. 이놈들이 지금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면? 놈들에게 ‘감염’되고 ‘침식’된 경비대가 총기를 사용한 ‘경험’이 ‘공유’된다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남길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차피 해봐야 할 게 남아있었고.
천일염을 가득 실은 로봇부대가 뿔뿔이 흩어진 괴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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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염의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고름과 체액을 흘리는 괴물에 천일염이 닿으면 놈들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둔화(鈍化)했기 때문이었다.
움직임이 느려진 것뿐만 아니라, ‘감염력’도 약해졌고 감염력이 약해지다 보니, ‘침식’도 잘되지 않았다.
[천일염의 효과인가?] [네. 천일염 공격을 받지 않은 괴물의 ‘감염’과 ‘침식’ 능력은 그대로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소금물은 어떻지?] [소금물의 효과도 나쁘지 않지만, 부피, 무게 대비 효과는 천일염이 월등히 좋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마루의 시선이 HUD에 떠오른 영상으로 향했다. 짙은 먼지 안개를 뚫고 강하하는 비행선의 선체가 요동치고 있었다.
[비행선은 어때?] [화산재와 먼지 때문에 추진기 절반이 고장 났습니다.] [목표로 한 싱크홀에 도착할 수는 있겠나?] [도착 가능성은 크지만,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 [싱크홀을 없앨 수 있으면 나중에 다시 회수하면 돼. 전속력으로 강하시켜.] [명령 확인.]급가속한 비행선이 작은 싱크홀을 향해 바닷물과 천일염을 쏟아 버렸다.
촤아아아아악—–
싱크홀이 커다란 목구멍이라도 된 것처럼 벌컥벌컥 와사삭. 바닷물과 천일염을 삼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뒤.
동그란 싱크홀이 일그러졌다.
쿠아아아아악—–
마치 구토라도 하는 것처럼 울컥 쏟아내는 시체들의 전신엔 굵직한 천일염이 반쯤 녹아 붙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