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31)
러스트 [RUST]-931
일본의 지진과 화산폭발은 대재난의 시작이었다.
기순과 함께 일본을 탈출했을 때 터졌던 대지진과 초대형 쓰나미까지만 해도 일본 전역이 휘청거릴 지경이었는데. 연쇄적으로 터진 화산폭발도 모자라 다시 대지진 그리고 쓰나미가 이어졌다.
거기에 변이를 일으킨 바퀴벌레와 쥐 떼, 변이 인간의 세계적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투하된 전략핵까지.
연이은 재난과 변이 괴수 때문에 일본 중앙 정부가 사라졌기 때문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간신히 재정비한 임지 정부마저 사라진 뒤, 각 지방정부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걸었다. 마차 예전 전국시대(戰國時代)처럼.
본래대로라면 일본의 몰락은 전 세계 경제에 끔찍한 여파를 끼쳐야 했다.
어쨌든 세계 3~4위의 경제 대국이었고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최상위 경쟁력을 가진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이미 몰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터진 전쟁, 테러, 갈등으로 자유 무역이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세계 각국은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수출입 루트를 만들고 있었고, 변이 바이러스 사태로 경제가 망한 상황이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멸망의 여파가 적었다.
그렇게 일본 본토가 대재난으로 망해버리자, 일본 기업이 장악하고 있던 시장은 한국과 중국, 대만 기업이 잠식하기 시작했다.
본사를 잃은 일본 지사들은 몸을 숙이고 여력을 보존하기 시작했다. 각국 정치권과 결탁하거나 반군이나 쿠데타 세력을 지원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필리핀도 그렇고 다른 동남아 지역도 마찬가지였군.’
중국과 일본 세력이 동남아 각국 분쟁에 깊이 관여한 정황이 있다는 보고서를 읽던 마루가 창문 밖을 바라봤다.
성층권 초입까지 고도를 높인 비행선 아래, 바다처럼 짙은 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단순한 구름이 아니라 화산재와 먼지로 만들어진 구름.
화산폭발로 성층권까지 치솟았던 화산 분출물은 진작 가라앉았어야 함에도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해안선. 변이를 일으킨 괴수. 지하 실험실에서 기어 올라온 바퀴벌레와 쥐떼. 그리고 검은 부정형 괴물까지.
일본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고 많은 사람이 능력을 각성했다. 그래서 능력자들을 중심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고, 한국 남해안까지 탈출할 수 있었으리라.
[규슈 북부지역에 대규모 생존자 반응이 있습니다.] [현재 변이 괴물과 교전하고 있습니다. 지원할까요?]능력자를 중심으로 상당히 잘 싸우고 있었다.
사람이 살아남기엔 혹독한 환경. 일본엔 생존자들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각지에 제법 많은 사람이 생존해 있었다.
“계획대로 한다.”
[네.]지나가면서 언뜻 확인한 생존자 그룹은 다양했다. 많게는 1만이 넘는 규모의 무리도 있었고, 적게는 수십 단위의 사람들이 버티고 있었다. 실로 놀라울 지경.
‘대난대비 때문인가?’
몇 년이 지나도록 뭘 먹고 어떻게 버텼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작전 구역에 진입했습니다.]그렇게 도착한 도쿄는 마지막으로 김 양이 지나갔을 때와 똑같았다. 마치 종말의 순간을 그대로 박제한 것 같은 풍경.
[통신 중계기 설치 완료.]화산재와 먼지 때문에 센서 오류와 전파 방해가 있었다. 전파 방해뿐만 아니라 전력 공급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대비는 충분했다.
“모듈 원전과 펌프 설치부터 하도록.”
[모듈 원전 설치 시작합니다.]작전이 시작되면 모듈 원전과 펌프에 적들의 공격이 집중될 터. 방어준비를 탄탄하게 해야 했다.
“기갑부대는 위력 정찰한다.”
[명령 전달했습니다.]기갑병과 기갑차량으로 이뤄진 기갑부대의 화력은 확실했다. 죽지 않는 괴물이라고 하더라도 기갑부대의 질량을 견디기는 어려웠다.
“까마귀 부대는 공대공 부대와 폭격 부대로 나눈 뒤 대기시켜.”
[공대공 무장, 폭격 준비 후 대기. 완료했습니다.]예전 김 양의 원정대 비행선은 미세 화산재와 먼지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고 까마귀들이 착용할 마스크도 없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작전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화산재와 먼지 속에서 공중전을 할 정도는 됐다.
[위력 정찰 완료.] [작전 시작합니다.] [모듈 원전 순조롭게 설치 중.]순식간에 모듈 원전과 펌프가 설치됐고 수십 개의 호스가 거대 싱크홀 입구에 늘어졌다.
“펌프 작동.”
[모듈 원전 정상작동.] [전력 공급 안정적입니다.] [펌프 작동 시작합니다.] [모든 펌프 정상작동.]수십 개의 굵직한 호스가 뱉어낸 바닷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아-
얼마나 지났을까. 거대 싱크홀 바닥 안쪽에서 낮은 울림이 시작됐다. 소리와 뒤섞인 진동이 싱크홀 주변을 뒤흔들었다.
[동작 센서 움직임 확인! 싱크홀 방향입니다!] [싱크홀 방향 적 다수 발견!]싱크홀 방향으로 주위가 집중되는 것을 본 마루가 강하 준비를 했다.
[너무 노골적인 움직임이다. 진정해.]로이 스턴이 부대를 진정시켰다. 시기적절한 판단이었다. 싱크홀 방향으로 모든 신경이 쏠린 사이, 적의 공격은 하늘에서 시작됐다.
[삐익- 상공에 새 떼 발견.] [삐이이- 폭탄입니다!]폭탄?
이것 봐라?
[칙- 폭탄을 들고 있는 갈매기떼가 모듈 원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짙은 화산재와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갈매기떼가 싱크홀 방향으로 몰려있는 기갑부대를 향해 날아갔다.
“까마귀 부대 출격.”
[까마귀 부대 출격합니다.]생체 EMP를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의 엉덩이를 보고 앉아있던 까마귀들이 분노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까아아악! (출격이다!)
까악 까아악! (다 죽여버려!)
역병 의사의 마스크처럼 생긴 까마귀 전용 마스크를 장비한 까마귀들이 공중전 장비를 발톱으로 움켜쥔 채 강하했다.
까악! (발사!)
까아악! (죽어!)
까마귀들이 장비한 것은 공대공 미사일 런처였다. 초소형 미사일이 갈매기떼를 향해 쏟아졌다.
미사일 탄두는 변이 괴수 전용으로 만들어진 탄두. 변이 조류 특유의 충격흡수 깃털도 관통력을 극대화한 미사일을 버틸 순 없었다.
뜬금없이 두들겨 맞은 갈매기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추락했다. 졸지에 동료를 잃은 갈매기들이 아무렇게나 폭탄을 던져버리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그걸 그냥 보내줄 까마귀가 아니었다.
까마귀의 집요한 추적 끝에 먼지 구름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적의 비행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놈들이다.’
정체불명의 놈들.
이쪽이 싱크홀을 공략하는 틈을 타, 뒤통수를 치려고 한 게 분명했다. 싱크홀 괴물들이 폭탄 갈매기를 동원했을 리는 없을 테니. 남은 건 정체불명의 세력뿐.
“공격!”
공대공 미사일 런처를 장비한 까마귀 떼가 적 비행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괴수용 미사일 탄두에 숭숭 구멍이 뚫렸지만, 버티는 적 비행선이었다.
[적 미사일 발사했습니다!] [공대공 미사일 접근!] [골키퍼 시스템 가동!] [미사일 3기 격추. 2기 충돌.] [적 미사일 2기, 방어막에 막혔습니다.]까마귀 부대가 적 비행선의 발을 묶는 동안, 신성 왕국의 비행선이 도착했다. 이어진 레일건 포격과 코일건 집중 사격에 적 비행선이 격침됐다.
짙은 먼지의 바닷속으로 침몰하던 적 비행선이 우지끈- 구겨지며 불꽃을 피워올렸다. 짙은 회색의 바다가 일순 밝아지며, 적 비행선의 흔적이 사라졌다.
[탈출선 위치 확인.] [까마귀 부대 적 탈출선 확보.] [적이 대화를 원합니다.]대화는 무슨 얼어 죽을 대화. 뚜껑 열어보면 그만인걸.
“바로 마취시켜.”
[마취 가스 주입합니다.] [적. 몸부림칩니다.]탈출선 속에 마취 가스를 넣자, 안에 타고 있던 적들이 피눈물을 쏟더니 죽어버렸다.
“쯧- 다른 놈들은 마취하지 말고 그냥 가둬.”
[전달했습니다.]‧
‧
‧
정체불명의 세력과 공중전이 벌어지는 동안, 지상에서는 싱크홀에서 올라온 불사의 괴물들과 교전이 벌어졌다.
[일제 포격!]로이 스턴의 신호에 155mm 자주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축구장 2~3개 면적이 깔끔하게 지워졌다가 서서히 괴물들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최소한 2만 마리는 넘게 죽인 것 같은데도 괴물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14km 선에서 밀리지 않고 전부 죽였는데. 지금은 벌써 12km 선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조금씩 전진하더니 2km나 가까이 다가온 것이었다. 로이 스턴은 화력을 집중했다.
[자주포 포대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인가?]120mm 자주 박격포와 155mm 자주포를 동시에 운용하며 적을 분쇄하고 있었는데 자주포가 문제라니.
[화산재와 먼지 때문인지 포에 찌꺼기가 많이 꼈습니다.] [알았다. 뒤로 빠져서 정비하도록.]155mm 포를 정비하는 동안 120mm 박격포를 최대한 활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120mm와 155mm로 동시에 포격했을 때는 밀고 내려오지 못했던 괴물들이 다시 조금씩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기갑병과 30mm 기관포로 무장한 장갑차는 8km 전방에 집결한다.]화력이 약해진 틈을 타, 불사의 괴물들의 움직임을 바꿨다.
[괴물 군세 둘로 나뉘었습니다.] [싱크홀에서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모듈 원전을 향한 괴물. 추정치 20만 이상.] [방어선으로 밀고 오는 괴물 숫자 15만 이상.] [싱크홀에서 나온 괴물의 숫자 최소 20만 이상.]문제는 놈들이 잘 죽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작열탄에 맞았으면 뒈져야 할 텐데 죽지 않았다. 몸통을 완전히 날려버리지 않는 이상. 꾸역꾸역 움직이는 괴물들.
팔이 한쪽만 남아도, 상체와 하체가 분리됐음에도 기어 오는 놈들이었다.
‘빌어먹을···.’
로이 스턴의 시선은 전선을 향했다.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았다. 짙은 화산재와 먼지 때문에 총화기가 순식간에 고장 나는 상황.
레일건, 코일건도 빌어먹을 화산재와 먼지 때문에 제대로 쓸 수 없었다. 고출력 레이저도 짙은 안개처럼 가득한 먼지 구덩이를 꿰뚫기엔 부족했다.
[항공지원 요청해.] [항공지원 요청했습니다. 3분 뒤 폭격 지원 도착합니다.]로이 스턴은 기갑병 부대를 이끌고 직접 전선으로 향했다. 그 짧은 순간에 벌써 8km 앞까지 밀려든 괴물들이었다.
[장갑차 전열. 기갑병 후열. 방패 고정.] [방패 고정.] [정확하게 몸통을 조준해 쏜다.] [몸통. 조준사격실시.]HUD(Head-Up Display)에 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짐승부터 인간 형태에 이르기까지 태반이 여기저기 꺾이고 몸통에 파편이 박힌 모습이었다.
죽지 않는 괴물이라고 브리핑(briefing)받았지만, 실제로 보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로이 스턴은 부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중앙에 돌출된 채 다가오는 괴물을 공격했다.
30mm 탄이 중앙에서 거드럭거리며 전진하는 괴물의 몸통을 터뜨려버렸다. 단단하게 변이를 일으킨 괴물도 축성한 특수탄을 버티지 못했다.
오—
와아아-
가라앉았던 사기가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광경. 그리고 기다렸던 까마귀 폭격이 시작됐다.
까아아악! (우리가 왔다!)
까아아악! (뒤로 비켜!)
팝콘 튀기듯 사방에서 터지기 시작한 작은 핵.
로이 스턴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사격 개시!]축성된 탄환이 귀여운 버섯구름 사이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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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 인공지능이 모니터에 화면을 띄웠다.
[생포한 자들 전원 사망했습니다.] [생포되는 즉시 정보 보안 시스템이 작동한 것으로 보입니다.]마루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마취제도 쓸 수 없고, 포로로 잡는 것도 안 됐다.
어쩌라는 거지?
저온수면 장치에 넣으려고 해도 일단 잡아야 할 것 아닌가?
“블랙박스를 찾아봐.”
사람에게서 정보를 찾을 수 없다면 기계에서 정보를 찾으면 되겠지. 어디에 있는지 장소만 찾을 수 있다면 직접 갈 요량이었다.
부하들에게 자폭장치 심어놓은 것들이, 자기들 머리통에도 그런 거 달아놨는지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