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40)
러스트 [RUST]-940
그렇지 않아도 실눈인 기순의 눈이 떴는지 감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가늘어졌다.
“눈이다. 그 새끼 능력. 까다롭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예상보다 더 까다롭네.”
확실히 그간 신성 왕국의 피해가 거의 없었던 이유는 압도적인 정보 우위 덕이었다. 인공위성과의 교신이 끊기고 고고도 장거리 드론을 운영하기 어려워진 지금. 오직 신성 왕국만이 성층권 다목적 정찰 비행선을 띄워 일방적으로 정찰할 수 있었다.
성층권 비행선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곳은 까마귀 정찰대를 다수 투입했고, 전파 방해나 생체 EMP (Electro-Magnetic Pulse)가 없는 곳에서는 정찰 드론과 로봇을 밀어 넣어 정보 우위를 점했다.
적은 보지 못하고, 우리는 보는 일방적인 상황. 적은 공격하지 못하고 이쪽은 두들겨 패는 상황으로 유도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수증기와 연막, 전파 방해를 받아 가시거리도 제한되는 상황. 거기에 적의 천리안 능력에 이쪽의 움직임이 속속들이 까발려져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눈을 먼저 잡자.”
“잠수함을 먼저 치자.”
기순과 마루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눈을 먼저 잡아야지.”
“그 눈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강하부대가 있는 비행장 인근에 있을 거다.”
강하부대를 공격한 패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비행장에 매설해 놓은 폭탄, 다연장포 공격 그리고 전차로 압박까지. 기순의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마루는 다른 관점이었다.
“놈이 천리안이라면 자기를 찾는다는 걸 알아챌 텐데? 까마귀들이 이상행동을 일으켰다는 것도 그래. 까마귀에게 간섭할 수 있는 특수 무기가 있거나, 까마귀를 흔들 수 있을 정도의 능력자가 있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그런 변수 없이 잡을 수 있는 건 잠수함이야.”
마루의 생각에 기순이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서 70km가 넘는 거리에서 쏘고 잠항한 잠수함을 어떻게 찾아.”
“극초음속 미사일을 쏘기 위해 수면 위로 떠올랐겠지. 그리고 짧은 거리에서 가속 가능한 기술이 있었다면 항구에서도 미사일을 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 도망치기 바빴다며?”
기순이 시간을 끌지 않고 정리했다.
“일단 까마귀를 풀어서 비행장 인근을 수색하자. 그리고 비행선과 드론은 태평양 방향 수색하고. 둘 가운데 먼저 찾는 것부터 정리하는 거로.”
“오케이. 그럼 난 그동안 불꽃 년을 찾지.”
‘그건 또 어떻게 찾으려고?’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기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깔이랑 같이 있을 가능성 있다.”
“그럴지도.”
마루는 노심 아머를 갈아입었다. 여기저기 상처가 가득한 노심 아머에 기순의 실눈을 찡그렸다. 마루 전용 노심 아머는 일반 양산형보다 몇 배의 비용을 들인 역작.
그런 기체가 저렇게 엉망이 됐다니. 심지어 고출력 방어막까지 있는데도 저 지경이라면 일반 노심 아머 부대가 버티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난 바로 후퇴 지원 갈게.”
“미사일 맞을 수도 있는데?”
“놈들이 원하는 게 그거니까.”
“쯧- 알았다.”
기순이 미끼가 되겠다는 말에 마루가 혀를 차곤 노심 아머를 다시 벗었다.
기함이 미끼가 된다면 놈들은 반드시 반응할 터. 그렇다면 노심 아머로 움직이는 것보다 은신을 이용해 파고든 일격이 더 효과적이겠지.
‘천리안 능력이라고 하더라도 직접 보이지 않으면 반응하기 어려울 테니까.’
레이더에 드러났다고 해도 직접 눈으로 보이는 게 없으면 즉각 반응하긴 어려운 법이었다. 근거리에서는 더욱.
마루는 리퍼 슈트로 장비를 바꾸곤 몸을 날렸다. 착륙 위치는 강하부대가 공격받는 비행장 북쪽 낮은 언덕이었다.
마루가 출발한 것을 확인한 기순이 선단을 지휘했다.
“2번 함, 5번 함은 태평양 방면으로 이동. 적 잠수함을 수색 공격한다.”
[2번 함, 5번 함 이동 시작합니다.] [수색-공격 명령 전달했습니다.]“다목적 정찰 비행선. 태평양 방향으로 정찰 위치를 바꿔. 그리고 본 함과 6번 함은 아군의 후퇴를 지원한다.”
어차피 일본 본토는 화산재와 먼지 때문에 정찰 불가능. 도고 섬도 수증기와 연막 때문에 정찰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태평양 방향에서 잠수함 찾고 극초음속 미사일 궤적 확인하는 게 효과적이겠지.
“작전 개시.”
제일 좋은 작전은 신속한 작전인 법. 바로 작전을 시작한 기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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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빠르군.’
지끈거리는 두통에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말로이가 눈을 찌푸렸다. 적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능력을 자주 사용한 부작용이었다.
“괜찮겠어? 무리한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놈들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했으니 부작용을 감수해야 했다. 문제는 우회해서 동쪽으로 간 비행선.
비행장에 갇힌 부대를 지원하러 가는 것이면 상관없었지만, 만약 태평양 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잠수함 부대를 노리고 가는 것이라면?
“기함이 비행장 방면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기함을 미끼로 쓴단 말이야?”
“함대를 둘로 나눈 것도 그렇고 아직 확실하지 않아.”
올백으로 머리를 넘기며 확실하지 않다고 대답하는 말로이. 그 조심스러운 반응에 불꽃을 피워올리듯 눈을 빛낸 스칼렛이 주장했다.
“확실하지 않더라도 기함이 비행장 쪽으로 오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 그럼 기함을 잡자.”
“기함이 미끼라면 둘로 나뉜 부대가 태평양 쪽으로 간다는 이야기야. 잠수함대가 위험할 수 있다.”
말로이의 이야기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스칼렛이 말했다.
“나이트를 퀸과 바꿀 기회가 온다면 바꿔야지. 안 바꾸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
말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함을 잡는다면, 잠수함대를 잃는다고 해도 이득인 건 사실. 게다가 이쪽에는 ‘합창단’도 대기하고 있었다.
적 까마귀 폭격대를 단숨에 무력화한 ‘합창단’. 블라디마루 칼린의 살상력은 근접전 그리고 검은 정원을 펼치는 것에 있었다.
그가 접근하기 전, 검은 정원을 펼치지 못하게 ‘선공’할 수 있다면?
놈을 잡을 수 있었다.
신성 왕국 놈들이 기함을 미끼로 내걸었다면 놈들의 목표는 천리안인 자신을 잡는 것이겠지. 그에 대한 대비로 ‘합창단’에 스칼렛까지 챙겼으니···.
지끈거리는 두통을 참은 말로이가 태평양 방면 잠수함대를 향해 통신을 보냈다.
“그래. 치자. 적 기함 좌표 전달.”
이쪽이 선공이다.
“혈액팩 뜯어!”
스칼렛이 부하들을 시켜 피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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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해라. 공격해.’
마루처럼 이상한 촉이 있는 놈이 있다면 꼭꼭 숨을 테니 그게 제일 걱정. 숨어서 좌표 찍어대면 그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최악은 천리안 놈이 숨어서 지랄하는 것. 그러지 않게 기함을 미끼로 삼았으니 물어라. 물어.
태평양 방면으로 전개한 비행선과 성층권 정찰 비행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수천 개의 드론이 예상 해역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고.
부상해서 미사일을 쏘건 물속에서 쏘건 놈들이 쏘는 순간 위치를 잡을 수 있을 터. 극초음속 미사일 몇 발만 견디면 그걸로 놈들의 창을 꺾을 수 있었다.
[치이익- 적 잠수함대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확인-칙] [적 잠수함 위치 파악 완료.] [적 잠수함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후 도주합니다.] [적 잠수함 한 척 격침.] [두 척 근접 신관 어뢰에 충격. 침몰 중.] [한 척 한계 심도 이하로 잠항.] [드론 어뢰정이 추격 개시.]한 척을 격침했고 2척이 반파 침몰 중이고 1척이 도망치고 있다는 보고와 동시에 적의 공격이 확인됐다.
[극초음속 미사일 16발!] [3발 요격 성공! 13발 요격 실패!] [가속합니다.]가속한다는 말과 동시에 기순이 외쳤다.
“6번 함 전원 대피! 인공지능 조종으로 전환!”
6번 함에서 탈출하는 까마귀 떼와 승무원들이 허공에 늘어졌다.
“6번 함 방어막 최대. 속도 높여!”
방어막이 새파랗게 빛나며 가속을 시작한 6번 함이 기함의 옆을 가로막았다. 그와 동시에 꽂히기 시작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연달아 울려 퍼지는 굉음에 이어 새파랗게 빛나던 6번 함의 방어막이 급속도로 흐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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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넷. 다섯. 여섯-
여섯 발을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는 6번 함.
[충격 대비.]보조 인공지능의 경고와 함께 기함에도 극초음속 미사일이 꽂히기 시작했다. 파랗게 빛나는 방어막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급속 상승!”
[고도 상승.]중앙에서 느껴지던 충격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세 발을 버틴 방어막이 네 번을 견디지 못하고 깨지고. 다섯 번째 미사일이 기함의 하부를 긁고 지나갔다.
여섯 번째 미사일은 회피하는 데 성공했어야 하는데. 급속 상승하는 기함을 따라 살짝 방향을 트는 극초음속 미사일.
[미사일 궤적 변합니다.]“놈이다···.”
눈이다.
눈깔 새끼가 비행장 근처에서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놈이 미끼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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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말로이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태평양 방향에 대기하고 있던 잠수함대가 공격받았다는 보고.
우회한 비행선은 미끼였다. 그래도 적의 기함을 잡을 수 있으면 남는 장사였다. 그런데 기함을 노린 미사일을 옆에 있던 비행선이 몸통으로 가로막았다.
“FU-C–K—-”
기함을 지키기 위해 호위함이 몸을 던지는 건 당연한 일. 문제는 호위함에서 탈출한 승무원과 까마귀 떼였다.
그렇지 않아도 능력을 풀로 사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처리할 신호량이 폭증해 버린 것. 머릿속에 거품이 낀 것처럼 뿌옇게 변하며 머리를 헤집는 듯한 두통에 말로이가 이를 갈았다.
“도망친다.”
스켈렛의 중얼거림.
“뭐?”
두통을 참고 눈을 뜬 말로이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필사적으로 고도를 높이는 신성 왕국의 기함이었다.
“각도 높여!”
마하 8이 넘는 속도인 극초음속 미사일인지라 급선회는 불가능했지만. 그래도 살짝 각도를 바꾸는 건 가능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콕콕 찌르는 감각. 하늘에 떠 있는 까마귀와 승무원들과는 다른 무엇이 급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흐릿한 신호인지라 올백은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전차 부대가 있는 방향. 보이는 건 대기하고 있는 전차 부대와 부산히 움직이는 부하들이었다.
착각했나?
찰박-
찰박?
스칼렛이 편집증적으로 뿌려댄 피 때문에 주변은 검붉은 진창으로 변해있었다. 말로이의 시선이 단 한 번 ‘찰박’ 소리를 낸 방향으로 옮겨졌다.
“말로이!”
스칼렛의 비명에 그냥 냅다 뒤로 뻗어버린 말로이가 두통으로 몸을 웅크렸다. 무언가. 뭔가가 공간을 헤집고 지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르르르륵!
그 무언가가 말로이를 향해 접근하지 못하게 하듯 불꽃이 바닥에서 치솟았다.
“타올라라!”
피가 뒤섞인 진창에서 화염 장벽이 피어올랐다.
화르르르륵!
팔을 쭉 내민 스칼렛의 손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손끝과는 달리 앙칼진 그녀의 눈빛은 공포를 불사르겠다는 것처럼 이글거렸다.
“죽어버려!”
피로 만들어진 진창이 폭발하듯 불타올랐다.
콰릉- 화르르르르르-
“스칼렛 진정해. 놈의 위치를-”
놈의 위치를 말해주려던 말로이의 눈이 커졌다. 어느새 자신의 뒤에 있는 무엇. 말로이는 올백이 앞으로 확 쓸리는 것을 무시하고 앞구르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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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가가각—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칼질이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다.
[쯧—-]작은 소리와 함께 기척이 사라졌다. 그리곤 15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타난 반응.
‘블링크?’
아니 그딴 마법 같은 능력은 아닐 거다. 순간 가속 계열일 터.
한 손으로 흐트러진 올백 머리를 뒤로 넘기며 다른 한 손으로 반응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려던 말로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스칼렛! 이쪽···.”
반응이 갑자기 수십 개로 흐트러졌기 때문이었다. 마루를 호위하는 까마귀들이 마루가 있는 장소 인근을 날아다니기 시작한 것.
“합창단!”
말로이가 차고 있던 팔찌를 꾹 눌렀다. 팔찌에서 튀어나온 바늘이 말로이의 팔목에 박히는 것과 동시에 컨테이너가 펼쳐졌다.
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컨테이너 속에는 머리에 긴 장침을 꽂은 자들이 합창단처럼 늘어서 있었다. 여기저기 몸에 호스가 꽂힌 사람들이 동시에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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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증폭되며 무언가로 변했다.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닌 뇌를 직접 흔드는 듯한 무엇.
‘잡았다!’
지끈거리는 두통에도 말로이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늘에서 교란하던 까마귀 떼가 살충제 맞은 벌레처럼 픽픽- 추락하는 풍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근거리에서 ‘합창단’에 맞았으니 놈도 버티지 못하리라···.
이제 기절한 놈을 잡으면 끝.
승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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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갑자기- 머리통을 쪼갤 것 같은 두통이 사라졌다.
“말로이!”
빙글빙글 회전하는 시선에 머리 없는 자신의 몸통과 이쪽을 향해 손을 뻗는 스칼렛의 모습이 보였다.
‘합창단’의 정신 공격에 당하지 않았다고?
정신파와 음파를 동시에 순간 증폭한···.
머릿속에 떠오른 놈의 위치가 목이 잘린 자신의 몸에서 스칼렛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스칼렛- 피해.’
뻐끔거리는 입술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했다.
툭- 데구르르-
서서히 풀어지는 말로이의 동공에 비친 것은 사방에서 치솟는 불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