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41)
러스트 [RUST]-941
스칼렛은 말로이의 목이 잘리는 걸 막지 못했다.
주변을 전부 불태우고 있었는데 어떻게?
놈의 공격을 잘 피했던 말로이가 어째서?
순간적으로 머리가 굳어버린 것 같았다. 팔목에 찬 팔찌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기운이 그녀가 정신을 차리는 데 도움을 줬다.
‘합창단의 능력이 먹히지 않았어.’
합창단의 정신파와 초고주파 공격에도 끄떡없었다고? 까마귀 떼가 떨어지면서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했는데.
파르르르-
팔찌도 없는 놈이 어떻게 버텼다는 거지? 팔목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한 그녀의 손끝을 진정시켰다.
‘머리.’
놈은 머리를 수확했다.
말로이 생각대로 놈들이 머리를 가져다가 정보를 뽑는다면 말로이의 머리를 넘겨줄 순 없었다.
“타올라라!”
미리 준비해두지 않았다면 단 한 번도 막지 못하고 몰살이었다. 이렇게 진창을 만들었음에도 말로이가 죽는 걸 막지 못했다. 심지어 그 검은 죽음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스칼렛은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고 방향을 정했다. 이렇게 시선과 팔을 일치시키면 더 강한 화력으로 불태울 수 있었다. 집중력의 차이.
폭발하듯 치솟은 불꽃이 말로이의 목 없는 몸통과 바닥을 구르는 머리통을 통째로 불살랐다. 블라디마루 칼린까지 잡았으면 좋았으련만 그건 실패.
‘말로이의 머리가 날아갔으니 이젠 날 노릴 거야.’
순식간에 숯더미로 변한 말로이의 시체가 바람에 흩날렸다. 그 잿가루 날리는 공간에 설핏 비치는 모습. 잿가루가 달라붙어 생긴 사람의 모습.
‘은신이다.’
잿가루가 묻은 블라디마루의 모습이 스칼렛의 눈에 들어왔다. 고양이 같은 움직임으로 불꽃을 피해 빙 돌아 움직이는 모습.
순간순간 바람이 불 때마다 잿가루가 흐려져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될 것 같았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고개를 돌리지 마.
눈동자를 움직이지 마.
놈이 알아챈다면 피할 거야.
놈이 알아채지 못하게.
진창에 들어오는 순간.
단 한 번에 끝내야 해.
살금살금 걸어오는 죽음이 찰박- 작은 소리와 함께 진창을 밟았다. 그리곤 잠시 멈춰선 블라디마루 칼린.
더 들어와.
더 들어와
조금 더.
몇 초가 몇 분은 된 것 같은 기다림 끝에 이어지는 발걸음.
찰박-
죽음이 서서히 옆으로 돌고 있었다.
‘뒤다.’
스칼렛은 집중했다. 능력을 단 한 번에 터트릴 것처럼. 찰박이는 작은 소리가 바람 소리에 섞여 흐트러질 때. 그녀가 외쳤다.
“죽어! 죽어버려!!”
콰릉- 콰르르르르르- 화아아아악!
그녀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터지는 불꽃. 검붉은 불꽃이 진창을 건너 ‘합창단.’이 있는 컨테이너까지 휘감았다.
혈액팩을 던지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도 불꽃의 범위에 휩쓸려 녹아버렸다.
끄아아아아악!
부하들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러도. 녹아버린 살과 끓어오르는 핏방울이 불꽃으로 변하는 모습에도 스칼렛은 능력을 멈추지 않았다.
“죽어어어어어어엇!!!”
피로 만들어진 진창이 그대로 지옥의 불구덩이로 변했다. 그녀의 오른손이 떨림을 멈췄다. 이겼다는 생각보다 살았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하악- 하악-
미친 듯 가빠진 숨을 가라앉히려는 그녀의 눈동자에 불꽃을 밀어내는 검은 영역이 보였다. 타오르고 재가되고 재가 된 만큼 다시 피어올라 끊임없이 다가서는 검은 영역.
‘아- 안···.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현실을 부정해도 죽음의 정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밀려오고 타오르고 무너지고 다시 밀려오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이 그녀를 노리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머리.’
‘내 머리를 잘라갈 거야.’
진창을 만든 피는 전부 불태워버린 상황.
더 불태울 것이 없었다.
정말?
없어?
있었다.
태울 것이 하나.
스칼렛의 동공에 불꽃이 일었다.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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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핵이 터진 것처럼 거대한 불꽃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
‧
‧
“손해가 막심하네.”
기순은 태평양에 있는 잠수함 네 척 가운데 한 척을 완파, 두 척을 반파 도망치는 한 척을 끝까지 추격해 나포하는 성과를 올렸다.
놈들의 잠수함은 가지가지였다. 엔진과 축전지 조합. 소형 원전 달린 것과 수소 연료에 축전지 조합까지 확보한 3척이 전부 제각각이었다.
잠수함 3척과 비행선 2척을 맞바꾼 꼴이라 교환비가 망했지만 그래도 극초음속 미사일을 비롯한 잠수함용 원전, 신형 엔진과 수소 연료 시스템을 구했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특이점에 도달한 과학 기술력이 있었어도 레일건, 코일건, 레이저, 중성자 빔 같은 분야를 팠지. 극초음속 미사일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레일건만 하더라도 마하 6에서 7에 달하는 탄속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지간한 미사일의 2배 속도였다. 굳이 비용이 비싼 극초음속 미사일을 연구할 필요가 없었던 것.
하지만 두들겨 맞아 보니 그게 아니었다. 레일건 탄환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방어막이 극초음속 미사일 몇 발을 버티지 못하고 깨졌다. 레일건 탄환과 극초음속 미사일의 중량 차이에서 생기는 파괴력이 달랐기 때문.
놈들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확보했으니 특이점에 달한 기술력으로 역설계(逆設計, Reverse Engineering) 하면 더 뛰어난 성능의 극초음속 미사일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검증된 샘플이 있으니 금방이겠지.’
벙커버스터 탄두를 장착한다면 땅속 깊이 숨어있는 것도 힘으로 뚫어버릴 수 있으리라.
‘일본 본토에 있는 놈들의 거점이 지하 깊은 곳에 있으니까. 극초음속 미사일로 벙커 버스터를 만들면 효과적일 거야.’
놈들의 북미 거점까지 알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올백과 불꽃 여자의 머리 수확이 실패하고 말았다.
머리통을 가져오기를 기다리던 기순에게 빈손으로 돌아온 마루가 고개를 저었다.
“꽝이다. 여자가 자폭했어.”
“자폭? 흡혈귀 년이?”
“그래. 자신의 몸을 통째로 연료로 삼아서 터졌다.”
“······.”
그럴 줄은 몰랐다. 죽음의 정원이 없었다면 정말 위험했다. 그 많은 넝쿨과 풀잎이 제대로 피어나기도 전에 불타버렸을 정도였으니까.
“왕님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됐다. 실패했는데. 뭘.”
마루가 대략 상황을 설명했다. 기순은 마루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놈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피를 쏟아부어 주변을 진창으로 만든 것도 그렇고 이상한 합창단 같은 걸 숨겨놓은 것도 마루가 아니라 친위대를 보냈다면 대량 학살 사태가 터졌을 법했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네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갔으면 죽었어.”
“······.”
김 양이고 다른 능력자 부대가 어쩌고 할 거 없이 전멸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비서도 버리고 도망쳤다며. 그런 여자가 갑자기 자폭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렇게 쾅! 해버리면 어쩔 수 없는 거지.”
“······.”
위로하던 기순의 실눈이 살짝 커졌다. 말하면서도 뭔가 이상했다.
“······.”
“······.”
흡혈귀고 식인귀고 고위급인 것들은 자기 목숨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인데 바로 자폭했다?
‘이상한걸. 단순히 공포를 이기지 못했다고 보기도 좀 그런데.’
한 번 마루를 겪어 본 여자라서 죽을 거 같으니까 혼자 죽지 않겠다. 그냥 ‘씨밤! 쾅!’ 해버렸다기엔 뭔가 찝찝했다.
‘이기적인 놈들이 자폭했다는 거잖아.’
남부연맹에서 나온 흡혈귀들은 서로 영역을 나누고 견제하고 있었다. 서로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놈들이기에 하나씩 상대할 수 있었고.
‘그럼 뭐지?’
살짝 커졌던 기순의 실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그러니까 천리안 놈의 목을 잘랐더니, 바로 시체를 태웠다고?”
“내가 근처에 있다고 생각했는지 머리통과 몸통 주변까지 싹 태웠다.”
당시 상황을 다시 묻곤 생각에 잠긴 기순이었다.
“뭐가 걸리는 게 있어?”
“머리를 불태우고 자폭했다는 건 정보를 주지 않겠다는 소리잖아.”
“그렇지···.”
“부하들 머릿속에 자폭장치 넣은 놈들이, 스스로 자폭했다는 거고.”
“······.”
“자기 목숨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고위급 식인귀고 흡혈귀였는데 바로 자폭했다는 게 좀 이상해서.”
“그래서 네 생각은 뭐냐? 왜 자폭한 거 같은데?”
“처음에는 죽음의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자폭했나 싶었는데, 천리안의 시체를 먼저 불태웠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그게 아닌 것 같더라.”
“그럼?”
“신념? 아니면 어떤 믿음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마루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흡혈귀가 믿음이 있다? 광신 테러처럼?”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일본 흡혈귀 셋 머리통에서 나온 정보 있잖아.”
자신들이 인류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 인류가 멸종하지 않으려면 강력한 능력을 귀족이 인류를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
“미친놈들이지.”
“어쩌면 그들의 생각도 일리 있는 건 아닐까?”
기순의 말에 마루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거점 정보를 지키기 위해서 자폭했다고 가정해봤어. 우리가 정보를 뽑는다는 걸 알아차렸단 말이지. 그래서 올백의 시체를 먼저 태웠고. 할 수 있는 걸 다 해도 널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닫자, 너와 같이 죽자고 자폭했다면···.”
조금 커졌던 기순의 실눈이 다시 가늘어졌다.
“정보를 지키려고 자폭했겠지. 널 막으려고 죽었겠지. 그럼 결국 귀족의 지배, 소수가 다수의 인간을 관리하는 신세계 시스템을 위해 죽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제까지 그런 놈들을 잡아 왔던 거 아니었나? 사람 잡아먹는 놈들 죽이고 다녔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 하는 마루의 눈빛에 기순이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놈들이 끝까지 이기적으로 자기만 살겠다고 했으면 이런 생각이 안 들었을 텐데. 자폭했다니까 좀 그래서.”
대재난이 터지기 전 인류가 했던 짓을 생각해 보자면 그랬다. 지구를 파먹으며 무한정 번식하고 그래야만 하는 건지.
100억 명이 넘게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면서도 인류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는 걸 정상이라고 해야 할까?
식량을 지원하면 무기로 바꿔먹고, 자신들에 반대하는 자들을 굶겨 죽이는 인간들. 종교의 자유를 이용해 다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파괴해도 괜찮다는 신앙인. 이익이 된다면 사람들이 죽거나 말거나 전쟁을 획책하는 자들. 돈이 된다면 타인을 죽이는데 거리낌 없는 사람들.
그런 모순을 없애기 위해서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들이 정말 잘못되기만 한 걸까? 식인귀가 가진 부작용을 없애려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었고, 실제로 흡혈귀가 된다면 혈액만으로 부작용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배력을 가진 귀족이 인간을 관리하는 것이 모순되고 파괴적인 인류를 제어하는 방법이라는 그들의 발상이 완전히 틀렸다고 하긴 그렇지 않을까?
기순의 이야기에 마루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야. 정신 차려. 라이저 제약 회장 기스 라이저가 한 짓이 뭐냐? 이제까지 우리가 잡은 식인귀, 흡혈귀들이 한 짓이 뭐야?”
인간을 갈아 마셨고 인간에게서 정수를 뽑아내 강해지려고 했다. 지배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지배욕을 정당화한다는 소리가 인간이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식량으로 장난치는 새끼들이 식인귀, 흡혈귀가 됐고. 병 걸린 사람들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새끼들이 식인귀, 흡혈귀가 됐다.”
“······.”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 종교를 장악한 놈들이 자기들 권력 잡겠다고, 대대손손 귀족이 되겠다며 지랄을 떨어 놓고 그 책임이 일반인들에게 있다? 그 새끼들이 진짜 인류를 위한다면 재산이고 권력이고 다 내려놓고. 종말을 막기 위해 모두 힘을 합하자고 했겠지. 그런 놈이 있었냐? 전부 일반인들이 잘못이라면서 인류를 감축해야 한다는 새끼들이 졸라게 자기 새끼는 잘 까고 다니지 않았든?”
“······.”
인류를 감축해야 한다는 놈들이 왜 자기들은 감축하지 않는 건데? 아 그건가? 자기들은 신인류가 됐으니까 감축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건가?
“다 필요 없고. 난 놈들을 인정할 수 없다. 자기들 마음대로 사람을 먹니 마니, 귀족이 어쩌니. 그 새끼들은 종말이 닥치지 않았으면 종말을 만들어서라도 그 지랄을 떨었을 새끼들이야. 신념을 위해서 자폭했다. 좋아. 근데 그 신념이 날 죽이고 세울 신념이라면 내가 그년의 신념을 왜 인정해야 하는 거지?”
“······.”
“그딴 신념 가지고 있는 새끼들이 있다면 보이는 족족 죽여야지. 아니. 찾아서 죽여야지 발 뻗고 잘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 그러려고 놈들 거점을 찾고 다녔지. 그런데 말이다.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올백과 불꽃 년의 머리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은. 일본에 있는 거점 3곳을 공략하면서 추가로 놈들의 거점을 찾지 못한다면 이곳에서 꼬리가 끊긴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놈들을 뿌리 뽑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체재 경쟁이 된다는 뜻이겠지. 놈들이 꿈꾸는 신세계와 신성 왕국과의 체재 경쟁. 아마도 어느 한쪽이 무너지기 전까지 경쟁과 충돌이 계속되겠지.
“놈들이 무슨 제안을 하건. 설령 인육과 피에서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놈들과 손잡을 일은 없을 거다.”
“······.”
하- 마루쉑.
그래서였나.
본능적으로 싸움이 끝나지 않을 걸 알고 있었던 건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수상 도시와 성층권 콜로니까지는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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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위급 흡혈귀를 모두 잃은 섬은 금방 무력화됐다.
레일건의 포격과 극초음속 미사일의 콜라보는 지하 벙커를 꿰뚫었으며,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분노를 풀기 시작한 강하부대의 공격을 막을 정도로 고위급 식인귀는 없었다.
“거점에 생각보다 자료가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아무래도 일본에 있는 거점을 전부 돌아봐야 할 것 같다는 마루의 말에 김 양이 눈을 부라렸다.
[금방 온다며. 여기도 분위기가 이상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