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42)
러스트 [RUST]-942
뜬금없는 분위기 드립에 마루가 게슴츠레 김 양을 바라봤다. 상황이 심각하다면 어디가 어떻게 심각하다고 말했을 터.
“······.”
[지···. 진짜임.]결백하고도 순결하게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듯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김 양의 뒤로 간호사의 얼굴이 보였다.
껌벅껌벅-
‘에- 분위기요? 분위기가 이상해요?’ 하는 모습.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휙 고개를 돌린 김 양이 간호사의 표정을 보곤 아니라는 듯 항변했다.
[진짜임. 진짜 분위기가 이상함.]“무슨 분위기가 어떻게 이상한데?”
[날씨 풀리면 거미랑 개미들 정리하기로 했잖음.]“······.”
계속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이는 마루.
[우리 애들 지금 거의 2달 동안 구르고 있는데, 작업하기 전에 쉬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님? 그럼 애들 교대로 휴가도 보내줘야 하고, 장기전이 될지 어쩔지 모르는데 보급도 관리해야 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님?]틀린 말은 아니었다.
[후방으로 간 병력 관리하고 보급 생산 결정하고 행정처리도 그렇고. 그런 거 기순과 PD 아재가 하던 일 아니었음? 인공지능에 전부 맡길 수 없다면서 중요한 부분은 인간이 관리해야 한다고 해서 마지막 결제랑 점검은 두 사람이 하고 있었음.]김 양의 말에 마루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핑계인가 했더니 불순한 의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였다.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우고 몇 달째임? 분위기가 이상하지 않겠음?]확실히. PD 아재는 한국에서 일본 난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신앙을 모으고 있었고, 기순은 마루와 함께 다니면서 실질적으로 군대를 관리하고 있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본진을 오래 비우면 좋을 일 없는데. 나주연이가 있어도 걔는 연구하는데 눈이 돌아가서 다른 거 안 보고 있을 테고.]나주연이라면 회장까지 했었으니까 관리할 능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연구소장 하면서 그쪽으로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어서 그렇지.
[그러니까 최고 존엄이 빨리 와서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거 아니겠음?]“중심은 무슨.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후드가 미리 알아챌 수 있으니까 오버 그만해.”
마루의 담담한 반응에 김 양이 속으로 쳇-했다.
그냥 모르는 척 와주면 안 되는 건가? 너무 오래 비워둔 건 사실이니까. 흥-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았으니까. 생각해 볼 게.”
김 양과의 통신을 마친 마루는 바로 기순에게 갔다.
“후- 이거 알면 알수록 대단하네.”
섬을 점령하면서 손실된 자료가 많았지만, 남은 자료만으로도 놈들의 저력을 알 수 있었다. 전 세계적인 규모의 조직에서 손을 대지 않은 영역이 없을 정도였다.
“제약 업체와 곡물 업체도 그렇고 전력, 상수도까지 전부 엮여있었어.”
“그러냐? 김 양한테 연락이 왔는데. 본진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네.”
그 말에 자료를 살피던 기순이 모니터에서는 눈을 뗐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 하긴, 나도 그렇고 PD 아재도 없으니까. 그래도 반란이 일어나거나 그럴 상황은 아닐 텐데. 흐음- 그런 분위기인가?”
마루를 바라보는 기순의 눈빛이 뭔가 의미심장한 느낌이었다.
“뭔데 눈빛이 느끼해지는 건데.”
“아니. 김 양이 이제 다 컸다 싶어서.”
“뭔 개소리냐. 김 양 나이가 몇 갠데.”
“나이하고 상관없이 김 양이 좀 그렇기는 했잖아.”
“지랄하지 말고. 너랑 PD 아재 가운데 하나는 돌아가라.”
“그건···. 하-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PD 아재는 지금 일본 난민과 같이 있었다. 마루를 중심으로 한 홀리교 개혁을 위해서였다.
“PD 아재는 당분간 일본 난민들과 같이 있어야 해.”
기존 홀리교 교리로 ‘성수’를 만들고 ‘축성’을 할 수 있게 된 이상. 일본 난민을 통해 신앙을 얻지 못한다면 동물 그것도 쥐 중심으로 모인 신앙으로 마루의 능력을 유지해야 했다.
죽음의 정원이 무적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지금. 신앙은 더욱 중요한 자원이 됐다. 신앙으로 죽음의 정원을 통제할 수 있고, 신앙으로 능력을 강화할 수 있으니. 신앙이 충분하다면 죽음의 약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PD와 일본 난민들과의 궁합도 나쁘지 않았다.
2차 대전 직후 맥아더가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던 것처럼. PD 또한 일본 난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기존 홀리교에서 ‘성수’를 만들고 ‘축성’한 것처럼 PD도 성수를 만들고 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PD가 신성 왕국의 실세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싶었다.
“신성 왕국의 실세가 왜?”
“생존과 안전을 의탁(依託)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아.”
신앙도 신앙이고 기적도 기적이지만, 생존과 안전을 맡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일본 난민들에게 있었다.
대재난을 겪으면서 자연이 인간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경험한 일본 난민들이었다.
그리고 자연재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노리는 것은 변이 괴물, 변종 인간, 식인귀뿐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가장 큰 적은 또 다른 인간이라는 말처럼 생존자들이 또 다른 생존자들을 노리기 시작한 것.
지방정부와 지방정부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싸우기 시작했고 그건 마치 옛날 전국시대(戰國時代)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미묘한 지역감정과 지역 특색이 남아있는 일본이 찢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이라고 자부했던 일본의 치안이 무너지는 것도 그랬다.
“한국으로 탈출했어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
언제 터질지 모르는 오래된 원전이 근처에 있었고, 변이 괴수도 많았다. 까마귀들과 협상해서 노약자들과 병든 까마귀를 바꿔 먹기까지 하는 삶.
한국 정부는 식인귀 정부였고 그에 대항해 언제 전쟁터로 내몰릴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후 신성 왕국 국왕에 의해 한국 식인귀 정부가 무너졌지만 새로 정권을 잡은 한국 정부가 영토를 불법 점령한 일본 난민을 좋게 볼 리 없었다.
식량 사정은 언제나 열악했고 삶과 죽음은 덧없으리만큼 붙어있었다. 그런 와중에 기적을 목격하고 생존할 기회가 생긴다면? 당연히 그쪽으로 몰릴 수밖에.
“네가 억지로 신앙을 만들지 않겠다고 한 건 알겠는데. 일본 난민들 상황은 아니지 않냐? PD 아재가 조금만 힘쓰면 별 무리 없이 신앙을 모을 수 있는데. 굳이 기회를 놓칠 필요는 없지.”
일본 난민도 그렇고 이쪽도 그렇고 서로 좋은 일이었다.
“그럼 네가 가라.”
“지금은 좀 그래.”
‘네가 가라 디트로이트로.’를 거부하는 기순.
“왜?”
“나도 실전 지휘 경험이 필요해.”
기순이 생각하기에 앞으로 더욱 치열한 전투가 있을 것 같았다.
이번 거점 공략 작전만 해도 그랬다. 블랙 드레이크급 비행선 2척이 파괴됐고 사상자만 2백이 넘었다. 개미나 거미와 싸웠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사상자가 발생한 것.
개미와 거미도 어지간히 발달한 무기체계 무시할 정도로 괴물들이었지만, 이번 교전과는 성질 자체가 달랐다.
함정에서는 고폭탄이 터지고 곧이어 다연장 로켓포와 박격포, 전차의 포격이 이어졌다. 노심 아머의 방어막을 깨뜨릴 정도의 공격에 전열이 무너졌고 간이 벙커를 만들 수도 없었다.
간이 벙커를 보관한 물품 보관함이 터져버렸기 때문이었다. 폭파와 집중 포격에 강하부대가 가지고 간 보급품 태반이 날아가 버렸다.
극초음속 미사일로 비행선을 직접 타격한 것도 마찬가지. 그건 개미와 거미가 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제대로 된 전쟁 경험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비행선을 잃지 않았을 것이고 강하부대를 잃지 않았으리라.
기순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전쟁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놈들의 거점. 그냥 둘 건 아니잖아.”
“······.”
규슈, 관서, 홋카이도에 있는 놈들의 거점을 마루 혼자서 공격하는 건 위험했다. 이곳만 보더라도 놈들이 처음부터 대비하고 있었다면 지금 전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기 힘들었다.
당장 최고위급 흡혈귀들의 능력도 만만치 않았다. 원거리 공격, 순간증폭, 시체 조종, 천리안에 혈액 불꽃까지.
죽음을 넉넉하게 충전해서 싹 밀어버릴 거라면 모를까. 놈들의 머리통을 회수하고 자료를 온전하게 거둔다는 조건으로 싸운다면 쉽지 않았다.
마루도 기순의 말에 동의했다.
놈들이 셋 둘로 나뉘지 않고 다섯이 함께 있었다면 곤란했으리라. 아마 머리통을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실전 경험이 필요하다니. 말리지는 않을게.”
“······.”
“하지만 놈들의 거점에서 뭘 보든. 놈들의 자료에 뭐가 있든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꽃 여자가 자폭한 것만으로도 생각이 복잡해지는 기순이었기에 마루가 조건을 걸었다.
절대 타협할 수 없고 타협해서도 안 되는 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적도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며 그렇기에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고 보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 알았다.”
기순도 마루의 조건이 의미하는 게 뭔지 알았기에 동의했다.
‧
‧
‧
신성 왕국은 섬을 완전히 탈탈 털었다.
“여기 섬은 어떻게 할 거냐? 그냥 파괴하기는 아까운데.”
“놈들을 낚을 함정으로 써야지.”
“한 번 쓰고 버릴 생각이냐?”
“왜? 아까워?”
놈들의 기술력은 상당했다.
화산이 폭발하지 않게 용암을 미리 뽑아 압력을 줄였고 활화산의 열기를 이용해 지열 발전소를 돌렸다.
수증기와 연막을 이용해 화산재와 먼지처럼 항공 정찰을 막았고, 화산재와 먼지가 섬으로 밀려오는 것을 어느 정도 상쇄했다.
“놈들도 방어막 연구를 하고 있었어. 지금 실험 중이라는 자료가 있는 걸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놈들도 방어막 달고 나올 거다.”
방어막뿐만이 아니었다. 놈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기술은 생체공학이었다.
“놈들은 생체공학을 이용해 능력을 적극적으로 추출해 무기화하고 있어.”
그렇게 만든 것이 ‘합창단’이었다.
정신파 능력, 음파 능력을 실험체에 강제로 이식했다. 그걸 견디지 못한 실험체가 죽자, 시체 조종 능력을 이용해 일으켰다. 사실상 능력 발현을 강제한 것.
하나로 위력이 약하자, 여러 개체를 모아 ‘합창단’을 만들었고 그것으로도 위력이 부족하자 순간증폭 능력까지 추가했다.
“다른 거점에도 합창단이나 그와 비슷한 게 있을 수 있어.”
“강하부대는 어렵겠군.”
“아니. 강하부대도 가야 해. 저번에도 이야기했었지만, 언제까지나 왕님이라고 혼자 감당할 건 아니니까.”
노심 아머에는 정신파 대응 장비가 있었다. 장비가 있어도 싸우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이라면 놈들의 거점을 동시에 공략할 기회다.”
놈들은 도쿄에 있는 싱크홀을 장악하기 위해 각 거점에서 최고의 전력을 이곳으로 보낸 상황이었다.
도쿄 싱크홀 작전도 그렇고 섬에 대기하고 있던 흡혈귀들을 죽였으니, 놈들이 지휘하던 거점에는 전력 공백이 생긴 상황.
“놈들의 전력이 약하니. 우리 전력을 하나로 모아서 놈들을 각개격파하는 게 낫지 않겠어?”
“하나가 공격당하면 다른 둘이 숨어 버릴 수도 있어. 그렇지 않아도 지배력이 사라져서 이곳에 온 최고위 흡혈귀가 죽었다는 걸 알아챘을 테니까.”
지금이야말로 동시 공격 작전을 하기에 좋은 기회라며, 기순이 세 곳을 동시에 타격하자고 주장했다.
“규슈는 내가, 관서 지방 교토와 오사카 방면은 왕님이, 홋카이도는 기갑병을 중심으로 부대를 나눠서 동시 타격하자.”
그렇게 적의 거점을 동시 공략하는 작전이 시작됐다.
======
======
캐나다 탈환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총사령관 김 양은 우울했다.
이 우울함은 전부 백정 탓이었다. 일보고 금방 오고 휴가도 준다고 했으면서, 금방 오지도 않았고 휴가도 주지 않았다.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던 강추위가 영하 5도 7도까지 올라가면서 낮 최고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봄이 온 것.
쉬지도 못했는데 전쟁이 다가왔다.
‘배 째라 할까?’
백정이 빡치면 진짜 쨀 텐데?
개미랑 거미랑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짜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여름 될 때까지 오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요.
김 양은 하지 않던 기도까지 했다.
[퀘벡 북부지역에서 개미 무리가 발견됐습니다.] [개미 떼 퀘벡 방면으로 이동 중.] [오타와 북부에 개미 떼가 발견됐습니다.] [오타와로 개미 무리 진격 중입니다.]기도하던 김 양의 눈빛이 흐릿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