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49)
러스트 [RUST]-949
뒤로 멀찌감치 물러서는 개미 군집.
마루도 더 쫓지 않았다.
‘다행이군.’
한국에서 미리 한계를 시험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마루였다. 현재 위치는 북부 지역 캐나다의 중심부 언저리.
여기서 죽음의 통제를 풀어버리면 바다까지 북미 전체가 죽음의 영향권에 들어갈 게 분명했다.
대서양이나 북해, 태평양에 닿을 때까지 확장하는 죽음이라니. 죽음의 종말이 터지기 전 개미 군세가 뒤로 물러서서 다행이었다.
쉬리리리리릭—
취리리리리리—
통제 범위 반경 5km까지 확대된 죽음의 영역이 물러서는 개미 떼를 향해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꿈틀거렸지만, 통제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마루는 죽음을 소모해 넝쿨과 풀잎을 키웠다. 하늘로 치솟은 넝쿨과 풀잎이 5층짜리 건물 높이까지 쭉 솟아올랐다. 무려 15m~18m까지 치솟은 넝쿨과 풀잎.
‘현재 면적을 유지한다면 공중 공격은 저 높이까지 가능하다는 거고.’
죽음의 영역을 대폭 줄이고 넝쿨에만 집중한다면 저 높이 이상도 공격할 수 있겠지. 김 양이 대비한 것처럼 날개미의 날개를 태우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반격할 수 있다는 이야기.
이런저런 상황을 가정해 넝쿨과 풀잎을 움직이며 도발했지만, 뒤로 멀찌감치 물러선 개미 떼는 달려들지 않았다.
마루는 죽음의 영역을 해제했다. 까맣게 물들었던 바닥이 제 색깔로 돌아가는 광경. 반짝거리는 검은 입자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모습은 한순간의 환상인 것처럼 몽환적이었다.
흩어지는 검은 입자 속에서 마루는 토벌대 사령부에 있는 김 양을 만나러 발걸음을 돌렸다.
□□□—-
허공으로 녹아드는 입자처럼 마루의 모습이 사라졌다.
‧
김 양과 간호사는 눈을 깜박거렸다.
‘지금 우리가 보는 거 CG 아니지?’
‘아니죠?’
성층권 정찰비행선에서 보내온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십만 단위가 삽시간에 녹아버리는 것도 그렇지만, 개미들이 뒤로 물러난 뒤에 마루가 한 행동도 그랬다.
잭과 콩나물?
콩나물이었나?
어쨌든 그것처럼 하늘 위로 치솟는 검은 넝쿨의 모습은 압권이었다. 날개미들이 떼로 몰려온다고 한들, 저 넝쿨의 숲을 헤치고 들어올 순 없지 싶었다.
그리고 갑자기 죽음의 영역이 사라졌다.
“에에?”
“어응?”
검게 빛나는 입자로 변해 사라지는 죽음의 영역이었다. 죽음의 영역이 허공으로 없어지면서 마루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어디로 가셨죠?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는 김 양과 간호사.
두 사람이 모니터에서 숨은 마루 찾기에 집중하는데 소리 없이 문이 열렸다. 간호사는 문이 열리는지도 모른 채 화면을 보고 있었지만, 김 양은 아니었다.
“누구인가? 누가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연 것이야!”
부릅. 눈에 힘을 준 김 양이 고개를 돌리자, 앞에 서 있는 건 마루였다.
“나다.”
“와. 왔음?”
갑작스러운 마루의 등장에 김 양이 삐그덕 인사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간호사도 ‘에에엣-’하는 특유의 목소리로 마루를 반겼다.
“어- 오면 온다고···.”
‘말을 하지.’ 하고서도 아차-하는 표정의 김 양. 죽음을 펼쳤으니 통신기고 뭐고 전부 먹통이 된다는 걸 깜빡한 그녀였다.
아니. 잠깐.
김 양의 눈동자가 데구르르 모니터로 향했다가 앞에 선 마루로 향했다.
“어. 응- 음-”
지금 전선에서 여기까지 10km가 넘게 떨어져 있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나타난다고? 1초에 15m~16m를 이동한다고 해도 시속 54km~58km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에 나타난다고?
어떻게?
갑작스러운 등장. 말실수. 그리고 바로 옆에서 파닥파닥 싱싱한 리액션으로 정신을 쏙 빼놓는 간호사까지. 순간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김 양이었다.
진짜인가?
진짜 맞는 거 같은데.
혹시 지금 이 상황. 환상 같은 건 아니겠지?
정신계 대응 장비, 페로몬 차단 장치는 정상적이었다.
슬쩍 눈치를 본 김 양이 삐걱삐걱 척- 경례했다.
피식 웃은 마루가 끄덕 경례를 받곤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잘하고 있었네. 잘했다.”
“흐으– 응-”
‘근데 어떻게 온 것임?’ 진짜 궁금했지만 일단 꾹 참은 김 양이었다. 그런 김 양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루는 상황부터 확인했다.
“개미들 반응은 어때?”
“20km 넘게 뒤로 쭉 물렸음.”
김 양이 성층권 정찰비행선에서 촬영한 자료를 모니터에 띄웠다.
“저것들 좀 이상함. 정찰 당하고 있다는 걸 알 텐데도 땅굴이 아니라 지상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뒤로 후퇴했으면서도 계속 병력을 충원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드론과 까마귀 부대로 높은 고도에서 폭격하면 그대로 두들겨 맞는다는 걸 알면서도 후방에서 대놓고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모인 개미들의 크기는 천차만별이었다. 50cm~60cm짜리 개미도 있었지만, 10cm~20cm 이하의 개미들이 훨씬 더 많은 상황.
“주력은 큰 개미가 아니었나?”
“응. 처음에 자살 돌격한 개미들은 대부분 컸음.”
모니터를 바라보던 마루의 시선이 간호사를 향했다.
“페로몬 분석은 어땠지?”
“에- 또- 그러니까 ‘전진’이나. ‘돌격’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쪽에서 페로몬 통역기를 통해서 무슨 말을 하든 전혀 듣지 않았고요.”
페로몬 통역이 듣지 않았다?
“그리고 또 이상한 부분이 있었음. 개미 제국에서 개미들 잡을 땐 공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있었는데 이번 개미들은 맛이 간 것처럼 그냥 타죽으면서 달려들었음.”
뜨거운 불길을 피하는 건 당연한 본능이었다. 그런데 개미들은 그냥 타죽어서 길을 뚫었다. 그렇다면 죽음의 영역도 무시하고 계속 달려들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뒤로 뺐다.
“그러곤 숫자를 늘리고 있다는 건데···.”
“모여있으니까 핵 수류탄이랑 소형 핵으로 싹 밀어버리는 건···.”
“오염도는?”
“저렇게 뭉쳐있으면 많이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보조 인공지능도 처음보다 오염이 심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음.”
4월 중순이 지난 시점. 건조한 봄.
초반 교전했을 때, 네이팜과 핵 수류탄을 쏟아부은 여파로 전선 일대가 불타버렸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와 잿가루는 일본이 떠오를 정도였다.
‘개미 제국이 덴 아재의 제국을 공격한 이유와 지금 개미들의 행동 양식이 같다면.’
“변이 괴수는 어떻고?”
“저번에 갑자기 밀려오기는 했는데 그 뒤로는 없었음.”
변이 괴수들이 인간의 도시로 밀고 온 이유엔 개미들의 증식도 있겠지. 백만 단위의 개미들이 달라붙는다면 변이 괴수라고 하더라도 쉽지 않을 테니까.
그건 쥐떼도 마찬가지였다. 십만에서 백만 단위라면 숫자로 붙어봄 직하겠지만, 그게 천만 억 단위로 가면 쥐 떼도 개미 군단을 멈춰 세우긴 어려웠다.
‘그래서였나?’
그렇다면 지금 모여있는 개미들은 개미 군단에서 없어도 될 여분의 숫자라는 이야기. 크기가 천차만별로 섞여 있는 것도 그렇고 날개미가 많이 뽑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설명됐다.
밀 수 있으면 좋다.
하지만 밀지 못해도 개체 수 조절이 된다.
그런 심산이라는 건데···.
마루는 놈들의 뜻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죽음의 영역도 통제할 수 있게 됐겠다. 이참에 개미 리스크를 털어버릴 계획이었다.
“폭격해.”
“어? 진짜?”
마루가 허락할지 몰랐는지, 김 양이 반색했다.
“그래. 싹 밀어버리고 놈들의 본진이 어딘지 파악해.”
“알겠음.”
룰루랄라. 김 양은 바로 폭격 명령을 내리곤 북부로 치고 올라갈 병력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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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임시 수도 보스턴.
덴 브라운 총통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정찰비행선의 진입이 막혔다?”
“예. 신성 왕국이 장악한 캐나다 상공으로 들오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회해서 들어가는 것은?”
“그쪽 영공으로 들어가면 비행선과 신호가 끊깁니다.”
“신호가 끊겨?”
“네.”
신호가 끊긴다는 건 나포했거나 격추했다는 건데. 불간섭 원칙을 천명한 이후부터 신성 왕국의 성층권 비행선이 제국의 영공 밖으로 나갔다.
제국을 보지 않을 테니, 제국도 신성 왕국을 들여다볼 생각하지 말라는 뜻. 처음에야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문제였다.
“그쪽에서 날아온 연기와 잿가루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던가?”
“자기들도 원인을 확인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기 성분 분석결과에 따르자면 엄청난 규모의 산불이 났을 때나 생길 연기라고 했다.
‘미량의 방사능도 있다고 했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방사능도 있다는 결과. 전술핵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 전술핵을 썼다면 교전 중이라는 소린데. 대체 뭐와 싸우길래 보스턴과 뉴욕까지 연기로 뒤덮일 정도일까.
‘봄에 개미와 거미를 함께 토벌하자고 했었지.’
개미가 무섭다는 건 뉴욕 사태 당시 충분히 경험했다. 개미가 그렇게 위험하다면 거미도 만만치 않았겠지.
‘같이 토벌하자고 하더니 먼저 싸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건데.’
그렇다면 왜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거지? 개미든 거미든 싸우고 있다는 걸 밝히면 될 일을?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겼나?’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버나드 그린. 김기순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쪽에서 문의하면 저쪽에서 담당한 자는 기순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기순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톡톡톡-
‘한국 원정 이후부터인가?’
한국 원정 이후 동남아 원정을 함께한 기순의 행방이 사라졌다니.
“다시 공식적으로 항의하도록 해. 원인이 뭔지, 언제까지 이렇게 연기와 잿가루 때문에 피해를 봐야 하는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동남아 시장을 다시 확보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신성 왕국이 개입했나?”
한국 원정에서 멈추지 않고 동남아까지 갔다는 건가?
기순은 동남아 시장 개척에 두고 온 건가?
“예. 정보에 따르면 필리핀 내전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래서?”
“필리핀 반군 세력이 크게 줄어들었고, 한국 정부와 필리핀 정부가 협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남아 무역 규모를 확대했으면 한다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해. 그리고 신성 왕국이 필리핀에서 뭘 했는지 어떻게 지원했는지, 자세한 정보를 보내달라고 하고.”
톡톡톡-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던 덴 브라운이 말을 덧붙였다.
“동남아 무역량이 증가하면 물물교환만으로는 어려울 텐데. 교환 화폐는 뭐로 하겠다고 하던가?”
“신성 왕국 금화를 기축 통화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하긴 그냥 도와줄 블라디마루 칼린과 그린 순이 아니었다. 한국과 필리핀을 돕는 대가로 기축 통화 지위를 얻었겠지.
‘기축 통화라.’
어쩐지 그리운 울림이었다. 제국의 화폐. 제국 달러가 기축 통화로 사용됐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어려웠다.
동남아 시장이 활성화된다면, 예전처럼은 아니더라도 풍족한 세계화 시절의 조각을 맛볼 수 있겠지.
신성 왕국과 한국 그리고 제국의 삼자 무역은 가뭄에 단비 같았다. 제국은 부족한 군사력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었고, 신성 왕국은 기축 통화에 필요한 금, 은, 동을 비롯한 핵심 자원과 소비재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한국은 경제 붕괴를 피할 수 있었다. 여기에 동남아 시장까지 더해진다면?
“동남아 무역까지는 신성 왕국 화폐를 사용하도록 하고, 유럽과 남미와의 무역은 제국 화폐와 현물로 거래하는 것으로 하도록.”
“예.”
“해양 도시는 어떻게 됐나?”
“기초 공사가 끝나고 빌딩이 건설 중입니다.”
해양 도시의 기초가 완공됐다. 메가 플로트의 규모를 아득히 넘는 기가 플로트를 이어 만든 기초는 엄청난 규모였다. 공사 도중 규모를 더 키웠기 때문인데, 제국과 신성 왕국의 신기술이 합쳐진 결과였다.
바다 위에 뜬 인공 섬 위에는 높은 빌딩이 세워지고 커다란 나무들이 심어지고 있었다. 무너지기 전 뉴욕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은 엄청난 규모의 빌딩 숲과 특유의 직사각형 공원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모습.
덴 브라운은 그 웅장한 영상을 보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기와 잿가루가 짙은 안개처럼 가득한 보스턴 시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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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우웅-
깊고 날카로운 폭음과 함께 깊은 구멍이 뚫리는 모습. 단 한 방에 개미 왕국의 지하 동공까지 길이 열렸다. 극초음속 벙커버스터( bunker buster) 미사일이 해낸 일이었다.
놈들에게서 가져온 극초음속 미사일은 고작 몇 시간 만에 역설계와 보강 설계가 이뤄졌고, 시뮬레이션 실험을 거쳐 바로 생산됐다.
신성 왕국의 첨단 생산 장비는 갑작스러운 대량 생산은 어려웠지만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기엔 최적화된 장비였다.
이틀 만에 극초음속 미사일 시제품이 나왔고, 바로 현재 교전 중인 개미 군단에 사용됐다. 그 결과 신성 왕국이 손을 댄 극초음속 미사일은 무시무시한 관통력을 보였다.
[중앙 공동까지 열렸습니다.]“뒤로 물러서.”
머리 위에 대기하고 있던 드론이 멀리 떨어지자, 마루가 수직으로 뚫린 구멍 근처에서 죽음을 펼쳤다.
넉넉하게 흡수한 죽음이 소모되며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죽음. 마루는 그 죽음의 정원을 펼치지 않고 마치 액체처럼 만들어 구멍 안으로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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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 죽음이 개미 왕국을 덮쳤다.
그 갑작스러운 죽음에 개미들은 도망칠 수도 싸울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해일처럼 밀려든 죽음이 지나간 동공엔 개미였던 거름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