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63)
러스트 [RUST]-963화
마루는 이 흔들림이 단순한 진동이 아님을 알아챘다.
“지진···?”
어쩐지 이상한 기분.
분명히 미약하기는 해도 예전 일본에서 느꼈던 그 기분과 비슷했다.
우드드드드드드—-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전반적으로 방어력을 높인 블라디 아크 타워였지만,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지진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기초부터 내진, 면진 설계를 적용한 빌딩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지. 지. 지진.] [괜찮아. 연구실은 보강 공사 했잖아. 그리고 이쪽은 정신파 차단한다고 추가 공사했고. 빌딩이 무너져도 여긴 괜찮아.]기순이 파랗게 질린 나주연을 달래는 모습이 순간순간 일그러지는 화면 속에 드러났다.
‘대지진?’
점점 흔들림이 강해짐에도 마루는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일본에서 탈출하면서 느꼈던 대지진 같은 감각은 아니었다.
우드드—-
15초 정도 흔들리던 진동이 서서히 잦아들었음에도 항문에 묻은 찌꺼기처럼 깔끔하게 지워지지 않은 감각.
그리고 인공지능 디아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재시간 오전 11시 23분. 진도 5.8의 지진이 디트로이트와 윈저에 일어났습니다. 진원지는 지하 10km로 추정되며···.]진도 5.8의 지진으로 매번 진도 6이니 7이니 하는 지진 소식만 듣다가 5.8의 지진이라니 한숨 놓인다고 할까.
하지만 5.8의 지진도 만만한 건 아니었다. 오래된 벽돌 건물의 벽과 목조 건물의 지붕이 무너졌고 가스관과 수도관이 터진 곳이 나왔다.
도로가 꺼지거나 갈라진 곳을 비롯해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된 곳이 생겼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트를 약탈한다거나 절도 강도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랄까–
–까아아아악!
–까악 까악!
지진 직전에 날아오른 까마귀들이 지진이 끝나고 난 뒤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하늘을 배회하는 모습이 마루의 눈에 들어왔다.
[디트로이트와 윈저에 절도, 강도, 약탈 사건은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디아나가 피해 상황을 보고함에도 마루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어쩐지 지진이 끝나지 않은 것 같은 감각. 마루는 이런 느낌을 한 번도 그냥 지나친 적 없었다. 죽음의 정원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비행선 전부 동원해서 사람들 대피시켜. 주변에 있는 개미 왕국에 복구 지원 보내라고 명령해.”
[비상 대피 명령내렸습니다.]지진이 터지고 나자 디트로이트와 다리 하나 건너 윈저는 엉망진창이었다. 진도 5.8에 다리가 무너지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금이 간 건 사실.
아직은 충분히 안전했음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형비행선은 선적하던 물자를 다시 빼고 사람이 탈 수 있도록 승객용 모듈로 바꿨다.
“지진피해가 없는 곳은 어디지?”
[캐나다 북부 거점 요새 부분과 오타와, 몬트리올, 퀘벡 인근 지역입니다.]“지진이 그곳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 지진은 기존 기록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지진으로 예측하기엔 정보가 부족합니다.]마루는 바로 결정했다. 우선 대피시킨다.
“일단 그쪽으로 분산시켜 대피하는 것으로 하자.”
[알겠습니다.]상황을 분석한 뒤 위험이 지나갔다고 판단되면 다시 돌아오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마루의 빠른 결정에 대피가 시작됐다.
블라디 아크 타워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창문이 몇 개 금이 가고, 창문에 붙인 태양광 패널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지하 주차장에 균열이 생긴 정도.
미사일과 폭격에도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게 리모델링을 거친 빌딩이라 그런지 진도 5.8에는 끄떡없어 보였다.
분명히 안전한 블라디 아크 타워 안에 있음에도 그 미묘한 감각이 변하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계속됨에 마루는 결정을 내렸다.
“블라디 아크 타워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대피시키도록 해.”
[시뮬레이션 결과 블라디 아크 타워는 진도 6.5가 넘는 지진에도 견딜 수 있습니다.]무엇보다 이렇게 급하게 퇴거한다면 대부분의 연구를 동결한 뒤 대피하는 방법뿐이었다. 그 말은 뇌둥둥 장치를 비롯한 생체 단말기와 샘플을 두고 대피해야 한다는 뜻.
“상관없어.”
수상 도시로의 이전을 남겨두고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이야.
인공지능 디아나와 사만다는 이번 사태를 통해 신성 왕국이 지진과 같은 재난에 취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긴급 사태에서 그녀들은 대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공지능 디아나와 사만다의 본체는 슈퍼컴퓨터에 있었다.
트리아가 있던 모듈이 제거됐지만, 그래도 그들이 있는 모듈의 무게는 몇 톤에 육박했다. 분해해서 옮긴다고 해도 타워 크레인이 필요한 상황. 비상 긴급 탈출은 어림도 없었다.
[······.] [······.]인공지능 디아나와 사만다는 비상 탈출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조용했다. 이대로 지진이 끝난 것이라면 며칠 이내에 수상 도시로 이전할 테니 문제없었다.
아니,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일까? 이제까지 그녀들은 별다른 위기의식이 없었다. 죽음을 다스리는 블라디마루 칼린. 그러니까 마루가 있었고.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전략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이 있고 다종족 군이 있으며 병기 또한 최고인데 당연히 안전했다.
인공지능을 총괄하는 그녀들이 위험할 정도라면 신성 왕국이 존망의 기로라는 이야기일 테니.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군사력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위험한 상황이 됐다. 역사적 기록에서도 그렇고 미래 예측 시뮬레이션으로도 디트로이트와 윈저가 위험할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는 경우는 없었다.
[폐하께서 대피를 명령했다는 건.] [위험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겠죠.]디아나와 사만다 모두 마루가 가진 고유의 감을 알고 있었다. 죽음을 다루기 시작한 뒤로 특유의 감을 사용하는 사례가 없어지긴 했지만.
지금처럼 논리적이지 않은 명령을 내렸을 땐, 아마도 그 특유의 감이 영향을 줬으리라 보는 게 맞았다.
[연구원들의 대피가 시작됐습니다.] [차단벽으로 주요 연구실과 실험실을 분리했어요.] [비상 보안 시스템 시작. 무장 경비 장치 작동 허가.] [자동 포탑을 비롯한 로봇 경비대 작동 시작했습니다.]디아나와 사만다의 목소리가 슈퍼컴퓨터실에 울려 퍼졌다.
‧
디트로이트와 윈저를 합한 인구는 거의 4백만에 가까웠다.
신성 왕국의 인구가 5백만이 넘지 않는 것을 보면 사실상 디트로이트+윈저 생활권이 신성 왕국의 생활권을 대부분 차지한다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유 캐나다 사태 때문에 디트로이트와 윈저로 몰려든 인파 때문이기도 했고 수상 도시로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노리고 온 사람들 때문이기도 했다.
“환자들과 지붕이나 벽이 무너진 피난민을 우선 대피시키도록 해.”
[차라리 지금 수상 도시로 이주하는 것은 어떨까요?]후드가 어차피 이렇게 된 것. 수상 도시 이주를 시작하자는 의견을 냈다. 괜찮은 생각이었다. 아직 마무리 공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주를 시작해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바로 시작하겠습니다.]대피를 이용한 이주가 시작됐다.
‧
슈피리어 호수 위에 떠 있는 수상 도시는 그림 같았다. 처음의 설계와는 조금 달리 7조각으로 이뤄진 도시는 마치 꽃잎이 펼쳐진 모습이었다.
가운데 있는 중심 모듈을 기준으로 6개의 꽃잎이 둘러싼 모양. 하나의 꽃잎에 최소 100만 넉넉하게 200만 이상의 인구를 감당할 수 있으니, 수상 도시 전체가 감당할 수 있는 인구는 1천만이 훌쩍 넘었다.
신성 왕국 국민을 전부 데려와도 여유가 있었지만, 마루는 수상 도시 입주 조건을 철저하게 지켰다.
현역 군인과 그 직계.
연구진, 기술진과 그 직계.
친인척의 경우 전문 지식과 기술이 있을 때.
이게 기본 조건이었다.
여기에 범죄 이력이 없어야 했고 반사회적, 반국가적, 비윤리적인 사상이 없어야 했다.
그렇게 수상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의 숫자는 100만 명에 달했다.
“엄마 우리 이제 여기서 사는 거야?”
“그래.”
“벽지는 내가 골라도 돼?”
“같이 알아보자.”
[연구원과 기술진들은 전부 중앙에 있는 블라디 아크 타워 2로 모이시기 바랍니다.]“업그레이드한 기자재가 있다고 하던데.”
“연구 장비도 중요하지만, 아직 예전에 사용하던 자료와 샘플이 오지 않았잖아.”
“금방 오겠지.”
수상 도시로의 이주와 지진 안전지대로의 대피가 같이 진행된 것은 어쩌면 다행이었다.
“오타와까지는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그래도 오타와라서 다행이에요. 몬트리올이나 퀘벡까지 갔으면.”
오타와를 비롯해 몬트리올과 퀘벡은 인프라가 복구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전기는 어떻게 됩니까?”
[내일 오전 중으로 연결됩니다. 디트로이트가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다시 돌아가니까 잠시 불편은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안내 로봇에서 흘러나오는 정중한 목소리에 피난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물이 나오지 않잖아.”
“생수를 지원해 준다니까 참아요.”
“생수로 씻으라는 건가?”
“집에 있을 때는 그렇게 씻으라고 해도 안 씻더니.”
반파된 미시소거나 토론토에 비해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김 양과 토벌대가 변이 괴수와 드잡이질했던 도시인지라 인프라가 엉망인 건 사실이었다.
[전기와 상수도 연결은 3일 이내 완공될 것으로 보입니다.]일반적이었다면 이렇게 빨리 복구하긴 힘들었겠지만, 신성 왕국에는 쥐 공병단과 노동 개미가 있었다.
찍- 찍- (이쪽이다. 여기가 끊겼어.)
끼릭-끼릭- (파이프 가져간다.)
찌익? (뭐라는 거야. 파이프 가져왔네?)
끼릭- 끼릭- (파이프 가져온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땅속에서 이어진 작업은 순식간에 진행됐다. 무엇보다 쥐들은 이제 완전히 엄지손가락이 돋아있었다.
치지직-
찍- (반대쪽도 용접해!)
찌익- (알아. 하고 있잖아.)
쥐 전용 공구가 공급된 뒤로, 쥐들은 파이프 용접 같은 건 충분히 자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찌익- (이번에 우리 며느리가 손자를 낳았는데, 글쎄 엄지손가락이 두 마디더라니까.)
찌이익? (진짜. 오. 우리 손녀랑 이어주는 건 어때?)
반 마디 정도 돋았던 엄지손가락이 몇 세대를 거치면서 뚜렷한 마디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쥐들이 앞다리를 손처럼 쓸 수 있게 됐다는 의미였다.
“며칠 걸린다더니 바로 물이 나오네.”
“도로를 깨지도 않고?”
“공사하는 것 봤어?”
“아니. 공사하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대단하네. 무슨 기술이지?”
“기술이 문제가 아니죠. 옆집에 있던 배관 공사하던 그랙은 일자리 잃게 생긴 거잖아요.”
“그러고 보니 전선이랑 통신망 지중화 공사하던 매튜도 일거리가 너무 줄었다고 하더라.”
“이상하네. 인프라가 망가졌으니 인프라 공사 일감이 많아야 정상인데.”
쥐 공병대와 개미들의 지원으로 오타와, 몬트리올, 퀘벡의 긴급 인프라 재건이 끝났다.
‧
우르르르르-
바로 며칠 뒤, 5.4의 지진이 디트로이트와 윈저를 다시 흔들었다. 대부분이 피난했기도 했지만, 개미와 쥐 공병단이 긴급 보강 공사를 했기에 큰 피해가 나지 않았다.
크르르르르-
그리고 일주일 동안 연이어 5.7, 5.5, 4.9의 지진이 이어졌다.
[이제 지진이 끝나가는 것 아니냐? 약해지는 추세잖아.]블라디 아크 타워 격리 실험실에 있는 기순이 한 시름 놨다는 듯 말했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기순을 비롯한 죠셉 마이어 뇌둥둥과 그 외의 샘플을 수상 도시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엄중한 관리 속에서 옮겨야 하는데, 옮기는 도중 지진이 발생하거나 해서 밀봉한 것이 깨지기라도 하면 대형 사고가 터지기 때문이었다.
[느낌이 그러냐?]“그래. 일본에서 느꼈던 느낌이랑 비슷해.”
[미치겠네. 일본이야 섬 아래가 마그마 천국에, 액상화 현상? 그런 게 만들어지기 쉬우니까 그랬다지만 여긴 아니잖아.]제국에서 전략핵을 터뜨렸다지만, 그게 불의 고리와는 1,000km 단위로 떨어진 신성 왕국에까지 영향을 주는 건 아니었다.
“시뮬레이션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
마루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일본이 그렇게 무너질 줄 누가 알았나?
도쿄에 그렇게 거대한 싱크홀이 생길 줄 누가 알았고.
[이쪽 뇌둥둥은 내가 잘 지켜보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그래야지. 여차하면 뇌둥둥이고 샘플이고 다 거름으로 만들 테니까.”
[야. 나도 있는데?]“장렬하게 전사하면 또 부활시켜 줄 게.”
[미친. 실화냐? 진심이야? 그러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어?]“계속 죽고 살고 하다 보면 더 나아지지 않겠냐?”
낄낄거리며 놀리던 마루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야- 진심이냐? 저···.]“···온다.”
공기의 냄새가 변했다. 대지진이 터지기 직전 공기가 변한다고 하는 이야기처럼 분위기가 변했다.
까아아아악!
까아아악!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까마귀들.
그리고 동시에 땅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뒤따르는 천둥소리.
쿠르르르르르—-
하늘에서 울리는 게 아닌 땅에서 울리는 천둥소리.
낮고도 깊은 울림이 진동과 함께 퍼지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드등—-
블라디 아크 타워 옆에 있던 빌딩이 폭파 해체된 것처럼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붕괴.
[야- 우리- 이거-]새파랗게 질린 기순이 벽을 붙잡고 소리 질렀다.
펑-
쨍그랑-
특수유리로 된 창문이 진동과 비틀림을 견디지 못하고 깨지는 순간. 마루가 터진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휘리릭-
죽음이 마루의 발끝에서 솟아나 블라디 아크 타워를 붙잡았다. 공중에 매달린 마루의 눈에 보이는 풍경.
콰르르르르르릉-
우르르르르르르-
실시간으로 디트로이트가 무너지고 있었다.
‘시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블라디 아크 타워를 향해 마루가 죽음의 정원을 펼쳤다.
“넝쿨만. 넝쿨로 겉을 묶어!”
죽음의 정원에서 검은 넝쿨이 블라디 아크 타워 겉을 휘감기 시작했다.
빠직-
옆구리가 터지는 타워 옆을 붕대로 감싸는 것처럼 검은 넝쿨이 틀어막았다.
우지끈-
터지고 부러지려는 기둥을 깁스하듯 휘감는 넝쿨에 기순의 비명이 높아졌다.
[으아아아아–]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지진이 잦아들기 시작한 뒤.
주변에 남아있는 빌딩은 블라디 아크 타워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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