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64)
러스트 [RUST]-964화
기둥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빌딩이 흔들리니 그저 비명만 나오는 기순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시바아아–”
—아아알?
안 무너졌네?
죽는 건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또 죽을 뻔하자, 살아보겠다고 반응하는 몸뚱이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었다.
이마를 촉촉하게 적신 식은땀을 소매로 훔치고 숨을 고르는 기순.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어쩐지 욕부터 나왔다.
“시발.”
사방에 금이 갔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진짜 무너질 줄 알았는데. 이게 기적이라는 건가?
[1-13 격리 연구실. 격벽 훼손.] [실험실 구역. 차단문 훼손 다수.] [응급 복구 시스템 가동.]붉은 경고등이 점멸되며 어쩐지 냉정한 디아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기순은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폈다.
진도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지만, 최소 7은 넘어선 규모의 지진이지 않을까 싶었다.
수직과 수평으로 갈라진 틈 사이로 창틀과 문틀이 비틀려 창문과 문짝이 뜯어진 모습이 보였다. 문이 우그러져 빠질 정도의 뒤틀림과 흔들림인데 무너지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
치지지직–
치직-파직-
신경을 바짝 세운 기순이 격리 연구실 복도로 나오자 사방에서 튀는 전기 불꽃들이 보였다. 완전히 끊어지지 않고 잡아 뜯기듯 이어진 전선에 스파크가 튀고 있는 듯했다.
‘불연성 재질로 썼다고 하니까 당장 불이 붙지는 않겠지만.’
기순이 조심스럽게 천장에 있는 CCTV를 보며 말했다.
“디아나? 여기 전장에 전선이 뜯긴 부분이 보이는데. 스파크 튀거든. 화재 위험성이 있으니까 전력 차단하는 게 좋지 않겠어?”
[해당 구역에 전력 공급을 차단할 경우. 격리 실험실과 연구실 보안 시스템이 전부 멈추게 됩니다.]“비상 전력도 있잖아. 그쪽으로 우회는?”
[현재 비상 시스템을 복구하고 있습니다. 비상 시스템이 복구되기까지 23분가량 소요될 예정입니다.]“그. 그래?”
[현재. 제3 연구실에서 제5 연구실까지 CCTV를 비롯한 센서가 고장 났습니다. 해당 구역을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죠셉 마이어 찌거기를 비롯한 뇌둥둥 있는 곳? 그리고 5호실이면 살아있는 샘플들 있는 곳인데?”
[격벽이 완전히 훼손됐거나. 생물학적 오염 위험이 판단되는 경우. 수동으로 개별 소각(燒却) 시스템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소각하라는 건 태워버리라는 소리였다. 여차하면 그냥 태우라고?
“꼭 그래야 하면 로봇이나 드론을 보내지?”
[···중간 지역에 죽음의 넝쿨이 들어와 부서지는 기둥을 지탱하고 있어, 전자기기 작동이 불가능한 역장이 생겼습니다. 드론과 로봇은 해당 구역을 지나갈 수 없습니다.]젠장.
기순의 실눈이 질끈 감겼다.
찌꺼기라고 하지만 그간 대화했던 게 죠셉 마이어 뇌둥둥이었다. 예전 정신파 테러 사태 당시 정신이 오염된 사람들도 있었고 이번에 새로 들여온 식물융합 샘플과 클론 연구실도 그쪽이었고.
“그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내 통제에 따른다면?”
[만약 구역 밖으로 탈출하는 실험체가 생긴다면 해당 연구 블록 전체를 소각하게 됩니다.]위험한 개체가 많았다. 당장 새로 들여온 식물융합 샘플만 하더라도 그랬다. 연구실에 있는 예비 클론과 결합하거나. 정신파에 오염된 사람들과 융합하는 등의 사태가 발생하면 복잡해졌다.
“아오- 알았어. 일단 갈 테니까. 비상용 노심 아머나 엑소슈트 좀 줘.”
기순의 요청에 디아나의 녹색 불빛이 흐리게 변했다.
[잊으셨습니까? 중간에 죽음의 넝쿨이 지지하는 기둥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아니. 그럼 무기라도 달라고.”
비상용 무기를 챙긴 기순이 방역복을 입고 이동했다.
“오- 씨-”
복도를 따라 이동하던 중, 디아나의 말대로 검은 넝쿨이 쪼개지는 기둥을 붙잡고 있는 부분이 보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셋.
기순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니까 블라디 아크 타워가 무너지는 걸 마루가 막았다는 소리였다.
‘물리력이 강해졌다고 하더니.’
이건 강해진 정도가 아니지 않나?
진도 7이 넘어가는 지진에서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지지하다니, 무슨 미친 힘이란 말인가?
‘이거 넝쿨이 위험하다고 했었지.’
넝쿨에 감기면 순식간에 생기가 빨린다고 했었다. 그러고 보니 검은 넝쿨이나 풀잎을 통해서 주변 상황을 마루가 알 수 있다고 했던가?
“혹시 내 목소리 들리냐?”
기둥을 깁스처럼 휘감은 넝쿨을 향해 작게 말해본 기순이 빤히 쳐다봤지만, 변함이 없었다.
“생명을 흡수하지 않아서 그런가?”
자극이 없으니 마루한테 전달되지 않는 것일지도.
검은 넝쿨로 휘감긴 기둥들을 지나 3구역으로 들어서자, 정신파가 기순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맙소사. 봤나? 정말 대단하군. 그렇지 않나?)
죠셉 마이어의 찌꺼기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정신파에서도 확연히 느껴지는 감각에 기순이 대답했다.
“마루가 좀 대단하긴 하죠. 그런데 정신파 차단 장치도 그렇고 문이 깨졌나 봅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지. 그래서 여기에 온 이유는 처분하기 위해서인가?)
“지금처럼 정신파를 무턱대고 밖으로 뿜지만 않는다면 별일 없을 겁니다.”
(그런가? 나만 문제가 아닐 텐데?)
“그러니까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말이죠. 여기서 뭐가 됐든 하나라도 밖으로 나가면 전체를 통구이 해버리는 게 절차라니까요.”
(확실히 그건 좀 위험하겠군.)
그런 죠셉 마이어의 정신파에 살짝 섞인 여러 가지 감정.
‘기순이 있는데도 전체를 태울까?’하는 듯한 의구심과 함께, 지금 이렇게 틈이 열렸을 때 마루와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살짝 느껴졌다.
“아- 진짜 여기 인공지능은 절차대로 할 거니까 엉뚱한 생각 마십쇼. 여차하면 통째로 처분한다니까요. 난 클론으로 다시 살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애들인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까 자네도 능력을 감추지 못하는군. 그래 내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된 건가?)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어렴풋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뭐든 3할은 숨기는 게 맞으니 그렇다고 하지. 하지만 자네가 좀 늦은 것 같아.)
“뭐가 늦었다는 소립니까?”
(클론 연구실 쪽에서 정신파를 써서 움직이는 개체가 있어.)
클론 연구실? 거기에 움직일 수 있는 게 있었나?
“클론 연구실이요?”
(탈출하려는 것 같은데.)
“일단 말려봐요. 여기 통째로 태운다고.”
(흠. 연결은 해보겠네.)
죠셉 마이어의 정신파가 끊기자, 기순은 클론 연구실로 달리기 시작했다. 차단 격벽이 반쯤 내려가다 멈춰진 클론 연구실이 시야에 들어왔다.
기순은 바로 고개를 들어 CCTV를 확인했다. 녹색불이 들어온 CCTV가 하나 보였다.
“디아나. 여기 보여? 아직 탈출한 거 없지?”
“뭔가 나와도 일단 태우지 마. 태우면 자료와 샘플 다시 구할 수 없잖아. 차라리 마루한테 상황을 보고해. 스피커 출력을 높이면 되잖아.”
[이미 현재 상황을 보고했습니다.]“후- 그러니까 태우지 않는다는 거지?”
[위험할 시. 소각처분 할 것을 허락받았습니다.]“미친- 아오- 됐으니까. 태우기 전에 다시 마루한테 허락받고 태워.”
기순을 바라보는 CCTV의 녹색 불빛이 흐릿해졌다. 기순은 반쯤 내려진 차단 격벽 안으로 들어갔다.
클론 연구실에는 기순의 예비용 클론을 비롯해 다양한 클론들이 있었다. 김 양과 간호사, 후드 PD 등 핵심인물이 전부 있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나루즈와 U+ 클론까지.
단순히 클론만 있는 게 아니라 팔다리를 비롯한 장기도 배양, 보관된 곳이었다. 그러니까 클론과 관련된 모든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잠깐. 뭐가 정신파를 사용한다는 거지?’
안으로 들어선 기순이 우뚝 멈췄다.
(이런. 미친년이군. 말이 통하지 않아.)
죠셉 마이어의 정신파가 기순의 뇌리에 닿았다.
“미친년?”
(그래. 블라디마루 칼린과 싸워보겠다는 생각밖에 없어. 자길 가둬뒀다고 악감정이 너무 커. 자라지 못하게 했다나?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 씹-
유 이사의 클론이지만 별도의 독립된 개체가 됨을 선택한 희연과 달리, 유 이사의 환생이라고 자신이 유 이사, 유다인이라고 선언한 개체가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링크할 수 있는 U+ 개체도 이곳에 있었고.
‘정신파를 이용해 탈출하려고 한다면, U+ 클론과 링크했다는 소리야.’
기순은 돌아가는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탈출하려고 한다는 것은 아직 탈출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링크를 통해 클론을 조종해, 본체를 옮기려고 한다는 이야기. 그녀가 탈출에 성공하면 희연이 링크하고 있는 U+까지 혼란스럽게 될 게 분명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지려고 할 거다.’
마찬가지로 이기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겠지.
‘테러고 뭐고 클론까지 있으니 자폭하는데도 거리낌 없을 터.’
기순이 바로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디아나. 여기 클론 실험실에서 유 이사가 U+ 클론과 링크해서 움직이고 있어! 마루한테 전해.”
유 이사가 링크한 U+라면 그 자체로 전쟁 기계였다. 희연이 링크한 U+만 보더라도 전투력 장난 아니었는데, 자신이 가봐야 인질이 되겠지.
[말씀드렸습니다.] [내부 CCTV가 파괴되어 실험실 내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직후 CCTV를 비롯한 센서가 파괴된 기록이 남았습니다.] [전자전 능력을 사용하는 개체가 있는 것으로 예측됩니다.]전자전 능력을 쓸 수 있는 클론?
능력자를 클론으로 해도 본체와 같은 능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설마 원하는 능력이 나올 때까지 뽑기를 돌리고 있었던 건가?
여기 연구원들 대체 뭔 연구를 하고 있던 거야?
‘마루가 올 때까지만 버티면 돼.’
3분? 4분? 그쯤이면 마루가 올 테니 잠시만 발을 묶으면 됐다. 기순은 반쯤 내려간 차단벽을 배수의 진처럼 삼았다.
몇 초나 지났을까?
두툼한 문짝이 알루미늄 캔처럼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U+ 개체가 복도로 모습을 보였다. 조각난 식물 샘플을 몸에 박았는지 등 뒤에 식물 줄기로 얽힌 팔이 달린 기괴한 모습이었다.
“시발–”
그리고 이어서 나온 U+들도 정상이 아니었다. 까드득- 고개를 돌린 U+ 개체에 느껴지는 감정은 똑같았다.
본체의 감정만이 그들에게 깃들어있었다.
자유를 찾았다는 환희.
싸울 수 있다는 기쁨.
그리고 저 건너편, 링크로 연결된 본체가 기순을 알아봤다.
“““기순?”””
동시에 떠오른 감정.
마구마구 이렇게 저렇게 하자는 이상한 감정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미친-”
조종간을 자동으로 바꾼 기순이 코일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화학 전기 복합식 소총이 특수탄을 뿜었다.
투다다다다다-
무탄피 탄약이라 탄피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50발 넘게 쏟아부은 기순의 머리 위로 자동 포탑이 열렸지만, 갑자기 동작이 멈췄다.
위이잉-
반쯤 열리다 만 자동 포탑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천장에 붙은 CCTV의 녹색 불빛이 사라졌다.
“““방아쇠부터 당기다니. 많이 컸네.”””
코일건도 배터리 표시 등이 나갔다. 전자기 가속이 멈췄지만 무탄피 화약은 아직 쓸 수 있었다.
“빌어먹을···.”
투다다다다다-
쏟아지는 총알이 점점 느려지는 것 같았다. 전자전 능력이 있는 개체뿐만 아니라, 생체 역장 같은 능력이 있는 개체가 있어 보였다.
U+만 링크한 게 아니라. 일반 클론에도 링크하고 있었다.
철컥-
재빨리 탄창을 갈아 끼운 기순의 얼굴에 스치듯 푸각- 뉴클립스가 돋아났다. 갑자기 튀어나온 뉴클립스에 몸이 굳어버린 기순의 눈에 서서히 붉게 물드는 공간이 보였다.
은신한 개체의 머리가 쪼개진 모습이 피로 그려지는 듯했다. 머리에서 목을 타고 몸에 흐르는 피로 은신이 풀리는 모습.
“······.”
말문이 막힌 기순이 뭐라고 말하기 전, 언제 뒤에 왔는지 모를 마루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
그런 마루의 등 위에 펼쳐진 40개가 넘는 검은 넝쿨은 마치 날개 같았다. 휘리릭- 넝쿨 끝에 달린 단검이 클론들을 조각내기 시작했다.
U+ 클론이고 능력자 클론이고 할 거 없이 순식간에 고깃덩이로 변하는 광경. 식물 샘플이 고깃덩이를 파고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검은 넝쿨이 식물과 융합된 고깃덩이를 휘감자 그대로 말라비틀어져 거름으로 변했다. 불꽃 능력이건 역장 능력이건 마루의 전진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능력이 강하지 않기도 했지만, 뉴클립스와 단검이 가진 특성을 견디지 못했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링크에 오염된 개체들이 지워졌다.
차단벽 밖에서 인공지능 디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쉽네요. 직접 볼 수 없어서.]어딘지 분한 듯한 감정이 느껴지는 인공지능의 목소리였다.
[2분이나 버티셨더군요. 잘하셨습니다. 동결 형벌을 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기순이 없었다면 2분을 버티지 못해 소각을 선택했을 거라는 디아나의 말이었다. 자동 포탑처럼 소각 장치가 작동을 멈춘다면 마루가 도착하기 전 도망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기순의 머릿속은 연이어 터지는 정신파로 윙윙 울리고 있었다. 마루를 막기 위해 유 이사가 전달하는 명령들.
산개. 우회. 급습. 다양한 능력을 때려 박으라는 다급한 정신파 명령이 점점 처절하게 변하고 있었다.
“······.”
어느새 복도를 전부 정리하고 연구실 안으로 사라진 마루의 뒷모습.
그리고 강력한 정신파가 벽을 뚫을 듯 퍼졌다.
큭-
갈라진 틈에서 새 나왔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정신파. 링크를 거는 정신파였다. 마루를 향한 정신파로 보였다.
(클론이라고? 모든 클론은 본체가 되길 바란다!)
(희연이라고? 나루즈? 기순? 클론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주제에!)
(너도 결국 모든 것을 잃을 거다!)
(강해지는 걸 멈춘다면 결국엔 잡아먹힐 거야!)
(멈춰!)
(멈추라고!)
그 속에 담긴 감정은 경악, 분노, 발악···.
모든 것이 섞여 있는 듯한 처절함이 순간적으로 뚝 끊겼다.
“······.”
자기도 모르게 총을 쥐고 있던 기순이 툭- 총구를 내렸다.
윙윙- 울리던 정신파가 깨끗이 사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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