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66)
러스트 [RUST]-966화
‘신앙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 마루였다. 믿음은 믿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했다.
신앙도 마찬가지, 오늘 키우던 고양이가 새끼를 순산했다고 신을 믿는다거나. 막걸리가 잘 빚어졌다고 신을 찬양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인공지능이 마루를 신앙하는 이유가 육체를 얻기 위함이라면, 순수했던 인공지능의 신앙이 인간다운 신앙으로 변한 것이겠지.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나주연이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같은 위기 시에 탈출할 수 없었기 때문인 이유가 가장 크다고.
“네 생각은 어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인공지능들이 몸을 원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몸을 가졌을 때 인공지능을 통제할 방법이 없어진다는 게 문제였다.
인공지능에 대한 모든 권한이 마루 국왕에게 있는 상황에서, 마루가 장기간 의식을 잃는다거나, 혹시라도 실종된다면 인공지능의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지금이야 슈퍼컴퓨터실 자폭장치를 김 양이 가지고 있다지만, 몸을 만들 때 자폭장치를 넣어서 만들자고 할 게 아니라면 무슨 수로 통제하겠는가?
폭주했을 때 강제 통제권도 그런데 더 미묘한 부분도 있었으니, 바로 인공지능이 요구한 몸의 성능이었다.
[인공지능이 원하는 몸이 단순한 로봇 그런 게 아니라서요.]융합 식물을 사용한 생체 신체, 나노봇과 신경접합을 이용한 기계와 생명체의 결합체 심지어 어떤 인공지능은 융합 식물처럼 인간과 융합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특히 노심 아머와 엑소슈트 보조 인공지능들이 그런 요청을 했는데, 조종사와 일체(?)가 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파트너와 함께한다는 건 좋은 것 아닐까요?’
‘조종사가 의식을 잃으면 어차피 제가 몸을 움직이니까요.’
보조 인공지능들을 독립된 몸을 갖기보다, 조종사의 몸을 공유(?)하길 원했다. 융합 식물 사례가 있어서 그런지, 자신들도 그와 같이 인간과 공존(?)하며 인간의 감각과 생활을 맛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최첨단 기술을 사용한 육체를 원하거나 인간과 공생(?)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위험하다는 거지? 비상시에 통제권도 문제가 되고?”
[네. 게다가 몸이 생기고 나면 자기 보존권을 가진 인공지능들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권리를 요구할 가능성이 커지고요.]인공지능 가상 인격, 기억의 자기 보존권을 준 마루였다. 함부로 인공지능을 삭제, 조작하지 않게 해준 것.
여기서 몸이 생긴다면 인공지능들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할 것이 분명했고 몸에 대한 권리까지 확보하게 된다면 근본적인 질문에 닿게 됐다.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도 투표권과 같은 권리가 있어야 하지 않나?’
‘사실 일은 우리가 다 하는 데?’
만약 인공지능에 소유권을 준다면, 인공지능이 일 한 것으로 재화와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그것을 소비하는 시스템까지 간다면 영화, 소설에서나 볼 법한 기계 사회의 도래였다.
[몸을 갖게 된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문제에요.]인공지능을 보조적 존재로 볼 것이냐? 아니면 하나의 종으로 볼 것이냐? 여기까지 갈 테니까.
[이번 수상 도시 이주 때, 까마귀와 늑대 무리 가운데 영역을 정해달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나주연의 이야기를 후드가 이어받았다.
까치들이 농경지를 받고 지역 방어와 순찰을 담당하면서, 까마귀와 늑대들도 자신의 영역을 갖고 그 지역을 중심으로 관리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 까마귀와 늑대가 투표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투표권이라기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보였다는 게 가깝고요.]까마귀들은 투표를 통해서 대표를 뽑는 것에, 늑대들은 무리의 우두머리를 정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는 쪽이었지만 어쨌든 정치적인 관심은 관심이었다.
특히 까마귀들은 이번 스위스 취리히 원정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무려 200이 넘는 숫자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리만 죽어도 왜 죽었는지 사인을 분석하고 복수를 하려는 습성을 지닌 까마귀들인데, 까마귀 정찰대 수백을 죽인 식물에 복수하지 않고 물러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까아아악? (인간이 그렇게 많이 죽었어도 그랬을까?)
까악! (불경하다!)
까아악? (불경하다고만 하지 말고 이유가 뭐냐고?)
까악? 까아아악- (다른 이유가 있겠어?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거지.)
까아아악! (불경한 것들 진정 또 벌을 받아야 알겠나!)
까악? (어쩌라고요?)
후드는 까마귀들이 모여 토론한 내용을 올렸다.
“취리히의 나무와 그렇게 마무리해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건가?”
[네.]김 양에게 간호사를 붙여 개미 통제에 신경 썼더니 그런 것 같았다.
간호사가 붙어있을 때는 까마귀들이 서운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바로 알려주고 소통이 됐었는데, 간호사가 개미를 관리하면서 까마귀들이 하소연(?)할 곳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간호사가 그냥 소통하는 게 아닌 것 같다.]정신파 능력을 얻은 기순인지라 간호사의 능력이 단순히 동물과의 의사소통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게임으로 따지자면 매력 능력치가 높아서, 민심이나 충성도 낮아지는 걸 막아주는 캐릭터.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아.]그러고 보면 인공지능과도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인공지능이라면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해커 출신인 후드와 더 잘 어울릴 법했는데. 오히려 컴맹에 가까운 간호사와 보조 인공지능 사이가 더 자연스러웠다.
[쥐들도 그렇고.] [그렇지 않습니다.]후드가 정보부대 쥐들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여하간 까마귀들은 한 번 위무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그래. 그러지.”
마루가 선선히 동의했다.
[위무에서 끝나는 게 좋을 것 같다.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만, 혹시라도 거기서 뭔가 보상을 준다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까마귀가 쓰레기를 주워오면 먹이가 나오는 자동 배급기를 설치한 실험이 있었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주워 넣어 먹이를 타가던 까마귀들이, 돌 조각을 넣어도 먹이가 나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는 쓰레기를 찾지 않고 근처에 있는 돌조각이나 나뭇가지를 넣고 먹이를 빼갔다.
변이를 일으키기 전 까마귀들도 그랬는데, 지금은 사람처럼 영악해진 까마귀들이었다. 이번 사태로 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하면 비슷한 상황을 만들려고 할지 모른다는 게 기순의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초창기처럼 또 정신 교육한다고 수천 마리씩 떼죽음시킬 수도 없는 노릇. 이미 마루의 죽음 능력을 본 까마귀들이었기에 마루의 죽음에 신비를 느끼기보다, 반감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알았다.”
인공지능의 몸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부터 취리히 식물과의 복수 없는 마무리로 까마귀들 일부가 불만을 가진 이야기까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마루가 결정을 내렸다.
“우선 보조 인공지능이 조종사와 융합하고 싶다는 건 기각이다.”
노심 아머를 비롯해 신성 왕국의 무기엔 보조 인공지능이 달려있었다. 조종사와 파일럿이 의식을 잃거나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면, 조종을 보조 인공지능이 맡아서 움직일 수 있었다.
인간 조종사가 무력화됐을 때를 대비해 보조 인공지능에 통제권을 주는 건데, 보조 인공지능이 조종사와 융합해 같이 무력화되기라도 한다면 본말전도였다.
“전투력이 떨어질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안전성에도 문제가 많아.”
정신파에 당한 조종사를 대신해 노심 아머를 통제하는 보조 인공지능, 생체 EMP에 당한 보조 인공지능을 리셋하는 역할을 하는 조종사. 이런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융합으로 날려버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융합을 통해 정신파와 생체 EMP 모두 대응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반대로 둘 다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당장은 안전하다고 해도 더 강한 정신파 더 강한 EMP로 공격받는다면 그때도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러니 보조 인공지능의 융합 요청은 받아 줄 수 없다고 해.”
[네.]“디아나와 사만다의 요청은 일리 있어. 하지만 그게 꼭 인간형 개체를 만들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아. 수상 도시로 이전할 때, 따로 분리 모듈 형식으로 만들어준다고 해. 슈퍼컴퓨터실을 탈출 잠수함처럼 움직일 수 있게 해줄 테니 일단은 그렇게 알라고 해.”
[그렇게 할게요.]나주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까마귀와 늑대가 정치적인 문제에 참여하고 싶다면 대표를 뽑도록 하라고 해.”
마루는 수상 도시가 아닌, 새로 재건하는 도시 가운데 한 곳을 시범적으로 자치 도시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우리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동물들과 같이 가야 하는 나라다.”
봉급도 주고 있었고 편의점이나 마트도 까마귀나 늑대, 갈매기들이 사용할 수 있었다. 인간과 같은 경제활동을 허용하고 있다는 이야기.
쥐떼의 경우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제한하고 있지만, 특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쥐들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경제활동을 허용하고 있었다.
경제활동을 허용한 상황에서 동물들이 대표를 내세워 자기들 원하는 걸 말하는 걸 막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마루였다.
“최소한 지구에서는 그래. 그러니까 동물 주제에 정치가 어쩌고 그런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조절 잘 해주면 좋겠다.”
‧
노동 개미들을 관리하느라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간호사가 호다닥 뛰어왔다. 보잉 보잉한 간호사의 모습에 김 양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뛰지 마셈. 어차피 회의 끝났어.”
“에? 에에에? 인공지능 때문에 중요한 회의라면서요?”
“중요하긴. 됐고. 까마귀 년들이 불만이 있다고 하네.”
“엣? 까마귀들이요? 그럴 리가 없는데.”
김 양이 슬쩍 회의록과 자료를 간호사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든, 없든. 어쨌든. 여기 자료 있으니까. 가면서 읽어보고. 공사는 어떻게 됐음?”
“아? 개미와 쥐들이 일을 잘해서 벌써 끝났어요.”
몸통 크기 50cm~80cm짜리 개미와 쥐떼가 백만 단위로 쓸고 나가자, 도로 전기 수도 인프라와 건물 외벽 공사는 순식간이었다.
바글바글 도로와 건물에 달라붙어 뚝딱뚝딱 해버리면 그냥 끝났다.
개미들이 시멘트와 흙을 섞어 특수한 소화액으로 버무린 마감재는 마치 스타코 비슷한 질감이었지만 물리적 특성은 그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전기 공사나 수도 공사는 쥐들이 엄청나게 잘했다. 가끔 하수구 뚫는 일도 있었는데 철근콘크리트도 뚫는 쥐들이 하수구 안으로 들어가면 막힌 걸 뚫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람들은 어때?”
“에-또- 좋지만은 않아 보였어요.”
김 양의 눈빛이 살짝 서늘해졌다.
“흐응- 다들 배가 불러서 그렇지 뭐.”
집 줬겠다. 먹을 것 꼬박꼬박 주겠다. 인프라도 후딱 고쳐줬겠다. 불만이 생길 게 뭐가 있나? 어차피 디트로이트와 윈저 박살 났는데 여기서라도 다시 자리를 잡고 살면 됐지. 불만은 무슨.
“각자 여길 골라서 온 게 아니잖아요. 친인척과 흩어진 사람들도 있고.”
“그거야 나중에 자리 잡히면 이사하고 그러면 되는 일이지. 다들 빠져서.”
“아- 자리 잡는다니까 생각났는데요. 계속 구호품으로 유지할 건 아니잖아요. 그럼 직장이랑 일하는 건 어떡하죠?”
간호사의 말에 김 양이 찔끔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도 조율하면서 서열 2위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웅대한 꿈을 안고 왔건만 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도시 인프라 구축, 건물 외벽 수리 같은 부분을 개미와 쥐떼가 다 해버렸다. 관련 직종 종사자는 비자발적 백수가 될 수밖에.
디트로이트에 있던 개인사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상가 분배, 업종별 기본 기자재와 물품 조달도 다시 해야 했다.
도소매 라인을 시작으로 최소한 마트와 식당부터 돌아가게 해야 하는데. 김 양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서 일단 보조 인공지능과 행정보조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았더니, 굳이 사람이 필요한가? 하는 결과를 내놓은 인공지능들이었다.
[인간이 들어가면 유통 마진(流通 margin)이 생기지 않나요?] [몇 단계에 걸쳐 붙이게 될 테니 비효율 적이 될 겁니다.] [요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배달 음식 정도의 질(quality)은 인공지능 로봇이 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달인, 전문가 수준의 음식이 아니라면 인간을 도입하는 것이 비효율적입니다.] [요식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서비스업에서 인간은 비효율적입니다.] [새로 도시 기능을 활성화 시키는 데 있어 반드시 인간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김 양이 받은 솔루션을 그대로 들려줬다.
“엣? 사람이 필요 없어요?”
“대충 식당은 레시피 대로 인공지능 로봇이 만들면 되고. 가계에 꼭 사람이 있을 필요가 있겠냐고 하던데? 로봇 관리 유지에나 사람이 필요하지 그것도 조만간 안드로이드 나오면 필요 없을 거라고 하고.”
“에에엣? 그거 괜찮은 거예요? 그럼 사람들은 돈 어떻게 벌라고요.”
나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김 양이 작은 주먹을 말아쥐곤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어째서 나한테 맡겼을까?
다른 때도 아니고 지진피해로 흔들리는 이 시점에 말이다.
진지한 서열 2위.
강인한 서열 2위의 힘을 보여주라는 것 아닐까?
응.
분명히 그런 것이리라.
김 양이 두 주먹 불끈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정공법을 사용하는 것이 맞겠지.
“군대임.”
“네?”
그래.
군대다.
군대라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당장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하지 못하는 업종 가운데 제일 만만한 게 직업군인이었다.
“일자리 없는 애들은 전부 직업군인으로 하는 것이야.”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