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67)
러스트 [RUST]-967화
모니터 속 김 양의 표정은 결연해 보였다.
[그래서 당장 가능한 방법은 모두 군인이 되는 방법뿐임.]“그러니까 국민 모두를 군인으로 하자고?”
김 양은 분연히 국민개병제(國民皆兵制)를 주장했다.
[응. 그거 아니면 답이 없음.]“······.”
일단 국민개병제라는 말은 쉬웠다.
온 국민이 병역의무자라는 관점에서 병력을 징집하고, 징집한 병력을 군사훈련을 통해 군인으로 양성한 뒤, 국방 업무에 투입한다.
일정 기간마다, 추가 모집한 병력과 기존 군을 교체하며 전역한 군인을 예비군으로 유지하고 있다가 언제든 전시사태가 발생하면 예비군을 소집해 항시 전력으로 유지하자는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근현대역사로 봤을 때,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개병제를 하면서 정상적인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국민개병제로 병력을 모아 놓고 보급을 빼돌려 만 단위 사상자를 낸 나라 같은.
여러 이유로 신성 왕국도 징병이 아닌, 모병으로 했었고. 모병을 위해서 군역에 시민권을 연결하는 방법을 사용했었다.
선거권을 가지려면?
군대 가라.
나이가 많은 데요?
군대 가면 힘 안 쓰는 일도 있다.
수상 도시에서 살고 싶은데요?
군대 가라.
먹여 살려야 할 처자식이 있어서.
신성 왕국 군대는 먹고 살 만큼 준단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신성 왕국이 굴리는 병력도 인구 대비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에서 신성 왕국으로 이적한 병사에 더해, 한국에서 이주한 병사와 한국형 생체 시술을 받은 병사들 그리고 신성 왕국에서 추가로 모병한 병사를 합하면 40만이 훌쩍 넘었다.
거기에 기존 주 방위군과 예비대까지 포함하면 50만이 넘었고. 여기에 군무원과 군수생산‧보급 관련 업무 종사자를 포함한다면 가뿐하게 60~70만에 육박하는 규모로 성장한 군이었다.
신성 왕국의 인구가 5백만 남짓한 것을 보면 가히 미친 수준. 그런데 김 양은 국민개병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마루도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되물었다.
“군대 방법밖에 없나?”
그게 최선이야?
[여기 도시들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 건물이야 멀쩡한 게 많다지만, 생활 인프라는 아님. 생활 인프라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인프라 다시 살릴 동안 그동안 생필품, 생계비 무상 지원할 거 아니면 방법이 없음.]김 양은 생필품은 몰라도 생계비 지원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본디 인간이란 일 해야 하는 존재 아니던가?
방구석에서 놀고먹기 좋아했지만, 그 짧은 휴식을 위해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골든 트라이앵글 정글에서 똥물 뒤집어써 가며 일했던 게 김 양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온 것 아닌가?
그런데 피난민 됐다고 일하지 않고 공짜로 생계비 받고 산다고?
생필품도 아니고 생계비?
돈을 그냥 받겠다고?
그딴 걸 어떻게 보고 있나?
문제는 사람들을 굴리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탄광으로 보내고 싶어도 개미와 쥐떼가 광부를 더 잘했다.
공사장 막일을 시키려고 해도 마찬가지. 개미와 쥐떼가 더 잘했다.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 작업일수록 개미와 쥐떼가 더 효율적이었다.
짐을 옮기는 곰방만 봐도 개미들이 훨씬 잘했다. 자기 몸무게의 100배에서 300배까지 옮기는 개미들이 줄을 이어서 짐을 옮겨 버리면 순식간에 끝나니까.
심지어 가성비도 끝내줬다. 개미들은 고기 경단만 주면 끝. 그러니 배부른 인간을 쓸 곳이 정말 없었다. 그냥 놀고먹으라고 돈 주는 건 더 싫었고.
그럴 때는 뭐다?
군이 최고였다.
산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건. 배수로를 팠다가 다시 묻고 새 배수로를 파게 시켜도 군인이라는 단 한 단어로 모든 것이 가능해지니까.
기순의 김 양을 보곤 고개를 저었다.
[의도는 알겠는데···. 여긴 북미다. 서양 문화권이라고.]당장 나라가 망하게 생긴 것도 아닌데 징병 때리고, 군인에게 무작정 삽질부터 시키면 바로 불놀이 시작이었다.
그간 입을 다물고 있던 후드가 반반한 얼굴로 김 양을 바라봤다.
[국민개병제는 국민 전원을 군인으로 만들자는 겁니까?] [말귀 못 알아들음?]후드가 딴죽을 걸려 한다고 생각했는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김 양.
[여자, 아이, 노인도 대상에 넣겠다는 건 아니겠죠?] [내가 경험해 봐서 아는데. 여자, 아이, 노인이 총 들고 폭탄 들었을 때가 쩔었음.]애초에 여자, 아이, 노인은 국민이 아닌가?
그리고 총을 들지 못할 정도로 어린아이라면 그렇다고 쳐도 여자와 노인은 왜?
모니터 속 후드의 반쪽 얼굴이 ‘뭔 이런 년이 있지?’ 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건 후드를 바라보는 김 양도 마찬가지였고.
[문제는 국민개병제 자체가 아니라. 경제야. 그렇지?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군역을 생각한 거니까.]두 여자의 표정을 본 기순이 일단 화제를 돌렸다.
[비효율적이지만 사람들을 주축으로 디트로이트와 윈저를 재건하는 건 어떨까?]디트로이트와 윈저는 완파된 상황. 그 자리에 도시를 재건하고 피난민들이 살았던 업종을 그대로 되살리면 갈등이 적지 않을까?
[그렇다는 건 인공지능 로봇부터 개미와 쥐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말자는 겁니까?] [경제를 돌리려면 어쩔 수 없지요. 인공지능 로봇도 그렇고 개미와 쥐도 그렇고 사람들의 일자리를 너무 많이 뺏고 있는 게 사실 아닙니까?]이번에는 후드와 기순이 붙었다. 그리고 그 틈을 김 양이 끼어들었다.
[그 경제는 누구 경제? 일자리는 누구 일자리? 지금도 로봇 가져다가 공장에서 떼온 거 데워서 포장하는 집들 넘치는데. 그냥 날로 먹는 게 경제고 일자리고 사업임?]자동으로 매장 돌리지 않는 게 모지리라고 하던데? 유통으로 탱이 치지 못하면 바보라고 하고?
김 양까지 끼어들자, 기순이 학을 뗐다.
[신성 왕국에서 자영업자와 유통업자를 합해서 보면 상당히 비중이 높은 건 사실이야. 디트로이트와 윈저는 더 그랬고]본래 디트로이트는 망한 도시였다. 한 번 파산한 도시가 살아나기 시작한 건 작은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였다.
그렇게 돌았던 상업이 흔들렸던 건, 변이 괴수 사태를 비롯해 여러 사건이 터지고 신성 왕국이 건국되면서였다.
제국과의 무역은 유지됐지만 주로 군수품, 식료품 관련 무역이었다. 사실상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거래가 대부분인지라 기존 디트로이트에 있는 기업이 버티긴 힘들었다.
[다들 알다시피 디트로이트 경제가 다시 망했고 그걸 다시 멱살 잡고 강제로 살린 방법이 공사였어.]종말로 달려가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공사가 계속됐다. 무더위와 강추위에 견딜 수 있는 스마트팜, 다품종 소량 생산이 가능한 스마트 팩토리.
블라디 아크 타워에 있던 시설을 디트로이트 시내와 인근에 세운 건, 먹고 살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경제를 돌리기 위해서였다.
디트로이트를 감싸는 방어벽 건설. 구역별 방어 시스템과 인프라 재건 등. 인력을 갈아 넣어서 공사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 번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방어 시스템을 만들고 나자, 더는 인력이 필요하지 않게 됐다.
인력이 들어갔던 자리는 인공지능 로봇과 개미, 쥐가 대체했으며 사람들의 생활은 신성 왕국이 처음 건국했을 때 주기 시작했던 긴급구호물자와 생활보조금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자영업자와 유통업자가 많았음에도 먹고 살 수 있었던 건, 초기 지원 정책 때문이었고.]디트로이트와 윈저가 대지진으로 파괴되지 않았다면 어쨌든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아니라는 기순의 이야기에 김 양이 바로 답했다.
[그래서 내가 말하잖음. 인력 전부 군대로 돌려야 한다고. 아니면 지금 유통하지도 않는 유통업자, 집에서 손 빨고 있는 자영업자 전부 보조금 줘서 먹고 살라고 할 건가? 그건 아니잖음.]군은 완벽한 소비집단이었고 소비집단이어도 되는 유일한 조직이었다. 그리고 보조 인공지능의 보고를 아무리 봐도 김 양이 보기엔 군 말고 다른 대안은 없었다.
[사람을 줄이지 않는 이상, 경제 문제는 어쩔 수 없다니까.]빽 소리 지른 김 양이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분위기에 눈동자를 굴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왜 이렇게 조용해?’
적막을 깨고 마루가 결정했다.
“전부 군으로 돌리는 건 안 돼. 국민개병제를 하는 순간, 모두에게 선거권을 줘야 한다. 그것도 문제지만 모두에게 수상 도시 입주권을 줘야 하는 것도 문제고.”
마루가 정치를 엉망으로 하지 않고 있기도 하거니와 당장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국민개병제를 통해 전 국민이 선거권을 갖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불간섭 선언이나, 피난민 분산 정책, 수상 도시입주 문제를 비롯해 까마귀와 늑대에게 대표를 뽑으라고 한 것까지 전부 정치적으로 따지면 따질 게 넘쳐.”
그걸 노리고 당장 선거를 하자는 세력이 나올 게 분명했다. 완전한 입헌군주제로 가자는 세력이 생길 수도 있었고, 직접 민주제를 통해 신성 왕국의 미래를 결정하자는 세력이 나올 수도 있었다.
후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민주제를 하면 어떻겠습니까?]국회의원 같은 사람을 뽑지 않으면 어떨까? 기술적으로 해당 안건에 대해 국민 전체가 투표하는 직접 민주제도 가능하니, 직접 민주제를 도입하는 건 어떠냐는 후드였다.
마루의 무력으로 건국된 신성 왕국이었지만, 이제 수상 도시로 거점을 옮기고 나면 방어는 거의 확실한 상황.
인간을 벗어난 국왕이 없더라도 안전이 보장된다면 손에 쥔 선거권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인간은 정치적‧사회적 존재인지라 당연한 귀결이겠지.
[직접 민주제를 실현하면 당장 왕님을 건드리지는 않겠지만, 분명 권한을 양도받으려고 하겠지.]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지 않나요?]기순의 의견에 후드가 반발했다.
[나쁘지는 않지. 다만 제국을 보라고.] [제국은 간접 민주제기 때문이죠. 직접 민주제를 한다면 그런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겁니다.]후드의 대답에 가늘게 눈을 뜨는 기순.
[흡혈귀들이 자기들처럼 될 수 있는 앰풀을 무상으로 전원에게 뿌린다고 하면, 직접 민주주의를 시작한 신성 왕국 국민이 그걸 반대할까? 아니면 찬성할까?]피를 조금만 먹으면 되는 흡혈귀가 되는 앰풀을 공짜로 준다면? 자동으로 다이어트가 될 뿐만 아니라 최대한 미적으로 좋아져 매력 넘치게 변하는 흡혈귀가 될 기회인데.
심지어 잘 늙지도 않고 질병도 거의 낫고 잘 걸리지 않게 됐다. 피만 많이 먹으면 강해지는 그런 흡혈귀가 되자, 말자 투표로 결정하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냐? 흡혈귀냐? 직접 투표로 결정한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장담하지 못하면서 직접 투표?
직접 민주주의라고 해도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긴 쉽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인간의 이성과 직접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면 인간의 존재 가치는 어디서 찾죠?] [솔직히 인간이 존재 가치를 찾기엔 너무 늦었지. 그러고 보니 인간을 줄이려고 아주 노력-한 게 인간 아닌가?]클론이 된 판에 인간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것도 모순이긴 한데. 이런 기순 자신이 그러고 있었다.
‘하- 삽질만 했었네.’
그러고 보니, 인간을 신앙 생산기로 보는 한이 있더라도 인간의 가치를 지키려고 했었던 기순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무슨 소리긴. 내가 모자랐다는 소리지. 그래서 해킹해서 뭘 알게 되셨나? 왜 그렇게 됐고? 정부가 숨기고 기업이 감춘 걸 파다가 그렇게 된 거 아니었나?]정신파 능력과 감정 능력이 섞인 뒤로 기순의 반응이 좀 달라졌다는 걸 알아챈 마루가 이야기를 중단시켰다.
“그만. 당장 기술적으로 직접 민주제를 할 수 있다고 해도. 내가 할 생각이 없다. 미래를 대비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시기에 사서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어.”
신성 왕국 국왕 마루가 결정했으니,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것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남은 건 경제에 대한 부분이었다.
“디아나. 북방 개미 제국 영역과 변이 괴수 변동 상황은 어떻게 됐지?”
[북방 개미 제국은 확장을 중지하고 농업과 목축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북부 지방에 있는 괴수들은 집단화했거나 대형화한 괴수들만 살아남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대부분 초식동물은 대형화됐고 무리를 이뤘다. 이에 따라 육식 동물도 무리를 이루거나, 무리를 이루지 않은 개체일 경우 단독으로 사냥할 정도로 강력해졌고.
애초에 개미 제국이 있는 곳에서 살아남을 정도의 변이 동물이라면 그 자체로 피지컬 깡패나 마찬가지.
“변이 괴수 사냥허가를 민간에 푼다.”
[예?] [확실히 그것도 방법이 되겠네.] [오- 좋은 생각임.]현재 변이 괴수의 부산물을 장갑, 탄환 등 다양한 소재에 활용하고 있었다.
[소재 공급이 원활해질 수 있겠네요.]거기에 대형 괴수의 고기는 여러모로 ‘특식’이 됐고 효과도 있었다. 군이 괴수 사냥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이것을 민간에 개방한다는 이야기.
“괴수 사냥으로 경제를 돌린다.”
괴수와 드잡이질하다 보면 각성하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고, 괴수 부산물로 특수탄과 장갑 생산이 증가하면 무역에서도 특산품이 될 테니 경제가 돌아가겠지.
헌터 경제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