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70)
러스트 [RUST]-970화
제국.
해상 도시가 바라보이는 해변과 항구에는 홍염과 검은 연기가 가득했다.
“덴 브라운은 물러가라!”
“입주자격 제한은 반민주적인 짓이다.”
“거주의 자유를 무시하는 덴 브라운 정권은 퇴진하라!”
“헌법 위에 입주자격이 있다는 게 웬 말이냐!”
“LGBT! 사회적 약자에게 우선 입주권을 보장해야 한다!”
“여성이야말로 사회적 약자다! 여성이 먼저 안전한 해상 도시로 가야 한다!”
“종교차별 그만하라! 사탄의 교회는 평화의 종교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 있다!”
“사탄도 평화를 외치는데 사랑의 이슬람교를 차별한다는 건 헌법 위배다!”
덴 브라운이 계엄령에 서명했던 이유가 뭐였던가? 이런 개판이 나지 않도록 하려고 한 것이었다.
계엄령이 발령됐음에도 이렇게 수십만에 달하는 시위대가 해변과 항구를 점거하고 시위하고 있다는 건. 저들의 뒤를 봐주고 있는 세력이 있다는 뜻.
‘계엄부대가 시위대가 결집하지 못하게 먼저 제대로 막지 않았어.’
계엄부대의 명령에 혼선을 줄 정도의 윗선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기자들까지 다수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으니 강제 해산도 어려웠을 것.
게다가 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시위대가 있는 쪽의 부대엔 유색인종 비율이 높은 부대가 배치된 상황.
‘선을 넘으려는 생각인가?’
군부는 제국을 건국하면서 한 번 물갈이했었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선을 넘으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겠지.
“입주 상황은 어떻게 됐나?”
[입주자들이 가는 곳마다 시위대와 기자들이 따라붙어 진척되지 않고 있습니다.]“계엄군은?”
[비무장한 시위대에 노약자들도 다수 있어 해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무력을 동원해 강제 해산할 경우, 시위대가 무장할 가능성이 컸다. 민주주의와 헌법을 주장하는 무장한 시위대라···. 사실상 민병대와 전쟁하자는 소리가 되겠지.
‘곤란하군.’
해상 도시 정원은 최대로 해도 1,500만 명 내외. 제국 인구는 5천만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중‧남미에서 들어온 난민을 비롯해 날이 풀리면서 사방에서 모여든 생존자를 합하면 사실상 그 이상으로 봐야 할 터.
후륵-
덴 브라운은 미지근하게 식은 홍차가 쓰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위험한가?’
제대로 질서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해상 도시로 간다고 해도, 시위대가 배를 타고 따라올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탄 배를 공격한다면 본토와 해상 도시가 분리되는 결과가 생길 터. 그래서 해상 도시에 입주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경제적 보상책까지 마련했건만.
‘돈과 일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존과 안전이 우선이라니.’
어떤 국왕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을 사람들이 하고 있었다.
‘신성 왕국이 개입했을 리는 없으니···, 누군가 퍼트린 소리로군.’
어쩐지 홍차의 맛이 더욱 쓰게 느껴지는 덴 브라운이었다.
“입주민들에게 비상소집 장소로 모이라고 해. 이삿짐은 전부 두고 수화물 가능한 정도로만 챙겨서.”
입주 대상자 가운데도 정보를 흘리는 자들이 분명히 있을 테니, 우선 한 번 솎아내야 했다.
“정보가 새는 것부터 확인하지.”
미합중국의 모든 것이 무너졌다. 그 무너진 유산을 붙잡으려고 해도 종말은 그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듯했다.
‘권리와 의무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걸까?’
종말의 세계는 제국이 민주주의를 버리길 원하는 것 같았다. 그가 지키려고 한 민주주의의 유산이 그의 목을 조르고, 그가 피하려고 한 권력 투쟁이 어느새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식량난, 기후재난 그리고 변이 괴수들의 창궐까지 버텼지만, 민주주의와 헌법을 이용해 속부터 파고드는 권력 투쟁에는 대처하기 쉽지 않았다.
덴 브라운은 최소한의 선은 지키리라 생각했다.
민주주의의 종말을 원하는 것인가?
중세와 근대에 이르러 간신히 이뤄낸 민주주의가 없어지는 것을 원하는 것인가?
그런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전부 남부 연맹으로 갔거나, 귀족이 되겠다면서 스스로 식인귀가 됐을 텐데. 그들을 거르고 걸렀건만 또?
도덕, 양심, 질서가 무너지고 치안이 붕괴(崩壞)된 뒤에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건가?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권력 쟁탈전을 벌이는데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믿는 건가?
제국 시민은 민주주의를 이만큼 유지하고 있는 게 기적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아니면 알면서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덴 브라운은 결정해야 했다.
‘문제가 되는 의원들을 전부 솎아내야겠어.’
“아무래도 안 되겠군. 의원들 동향과 시위대와 연결된 의원 명단 올려보도록.”
[···숙청하실 생각이십니까?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시위대를 조종하는 건 너무 나갔어.”
[알겠습니다.]미합중국의 동부지역 9개의 주가 모여 미합중국을 계승하기로 했었다. 그렇게 건국한 제국이 스스로 망하려고 하고 있었다.
해상 도시를 중심으로 첨단산업 기술을 확보하고, 육지는 그 기술을 이용해 자원 조달과 영토 수복. 재건을 시작하는 것이 최선인데. 그것마저 정치 논리와 이기심으로 부정되고 있었다.
‘본토와 해상 도시를 분리해야 하나?’
제국을 둘로 나눠 운영해야 할까?
아니면 저들이 원하는 대로,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나을까?
그도 아니라면 올라오는 명단에 있는 자들을 전부···.
깊어지는 덴 브라운의 고민을 깨우듯 긴급 보고가 올라왔다.
[각하. 개미 무리가 뉴욕 외곽에서 발견됐습니다.]개미 토벌 작전과 뉴욕 재건사업이 시작된 것도 잠시. 대지진과 쓰나미로 모든 토벌 작전과 재건사업이 멈춘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보고된 적 없는 거대 개미입니다.]흐릿한 영상 속 개미의 모습은 확실히 컸다. 50cm~60cm의 개미도 엄청나게 큰 데 그것보다도 더 큰 개미라고?
족히 100cm 그러니까 1m는 충분히 될 법한 거대 개미들이 잔해를 옮기고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화면에 잡힌 숫자만도 무려 수백은 될 법했다.
마지막 토벌 작전을 돌린 게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따진다면 한 달 하고 보름 넘은 정도였는데, 벌써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올 정도로 숫자를 불렸다고?
‘아니다. 놈들은 더 깊은 곳에서 숫자를 늘리고 있었어.’
어떻게?
숫자를 늘리려면 먹이가 필요한데.
무슨 방법으로?
저렇게 덩치 큰 개미라면 더 많은 먹이가 필요했을 터.
덴 브라운의 뇌리에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뉴욕 지하에 자리 잡은 바퀴벌레. 그리고 쥐들이 바퀴벌레를 양식(?)하는 것 같다는 보고.
신성 왕국이 근처에 있던 개미 제국을 없앴을 때의 기록도 생각났다. 개미 제국에서는 개미들이 일종의 농업과 목축업을 하고 있었다는 정보였다.
모든 정보가 덴 브라운의 머릿속에서 결합 됐다. 그 결과 신경가스, 살충제, 방사능을 버틴 개미들이 대진과 쓰나미를 틈타 번성했다는 뜻이었다.
그런 개미들이 지상으로 올라왔다는 이야긴 지상에서 먹이를 찾아야 할 정도로 숫자가 늘어났다는 의미라는 것.
“맙소사.”
덴 브라운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덴 브라운보다 제국 의회가 선수를 쳤다.
[본 회의를 시작하기 전 덴 브라운 총통의 탄핵 표결이 있겠습니다.] [덴 브라운 총통은 헌법을 무시한 정책을 집행했으며, 해상 도시의 입주권을 개인의 사적 권력 유지를 위해···.]완전무장한 병사들이 대회의실 곳곳에 있었다.
[···국토안보국 직원들을 중심으로 뭉친 사조직이 권력을 뒷받침한 정황이 드러난바···.] [의회와 전문가의 권고를 무시한 정책과 외교를 통해 제국의 실질적인 이익을 침해했고···.]그와 오래 같이한 부하들 몇몇이 울분에 찬 눈빛으로 덴 브라운을 보고 있었다.
이래서 전권을 잡고 밀어붙이라고 하지 조언하지 않았었느냐?
그렇게 신념을 지킨다고 한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부하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어차피 변할 게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제국의 무역에 핵심이 될 파나마 전선에 주력을 투입하지 않고, 정예병을 계엄군으로 전용해 권력을 지키려고 했으며···.] [민주주의적 원칙을 어기고 제국 의원을 숙청하려고 한 정황이 밝혀졌다.]덴 브라운은 벨트에 있는 버튼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선을 넘는 자들이 생길 경우, 끝을 볼 수 있는 버튼이었다.
[개미를 핑계 삼아 자신의 권력을 강화, 유지하려고 긴급회의를 소집한···. 이에 덴 브라운 총통의 탄핵 투표를 시작한다.]이걸 선을 넘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자신의 정치력과 지도력의 한계를 탓해야 하나? 반대 여론과 견제는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투표가 끝났습니다.]버튼을 누르면 이곳에 있는 자들을 전부 제거할 수 있었다. 그 혼자만 살고 나머지는 전부 죽는 버튼.
[덴 브라운 총통 탄핵에 찬성. 289표. 반대···.] [···탄핵에 필요한 정족수가 넘게 찬성하여, 현재 시간부로 덴 브라운 총통의 지위는 정지하며···.]탄핵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소리쳐 반대하는 모습이 덴 브라운의 시야에 들어왔다.
[덴 브라운 전 총통이 임명한 행정부처장과 직원들도 일괄적으로 해당 직을 반납하고]직속 비서실 직원과 주요 행정부처 사람들이 무장 병사들의 인솔 아래 회의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벨트에서 손을 뗀 덴 브라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이 이렇게 진행됐다는 건 정보부가 돌아섰다는 뜻이었다.
그를 따랐던 정보부가 돌아설 정도라는 건. 그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거나, 이익을 주지 못했다는 소리겠지.
‘공정하게 하려고 했던 건 욕심이었나?’
언제나 위기였다.
그 위기를 넘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건만.
스윽-
덴 브라운은 자신이 앉았던 총통의 자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이게 사람들의 의지고, 신의 뜻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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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 브라운을 축출한 제국 의회는 빠르게 대통령 선거를 준비했다.
언론은 물 만난 고기처럼 매일매일 대통령 후보와 정책 관련된 소식을 쏟아냈고. 몇몇 주간지에서는 파나마 운하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보도했다.
형벌부대의 치솟는 사망‧실종자들, 클론 부대의 비인간적인 작전 태도 그리고 중‧남미 생존자들이 난민이 된 과정까지 자극적인 기사들이 넘쳐났다.
그런 기사들 가운데 뉴욕의 폐허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거대 개미 문제는 없었고, 필라델피아와 인근을 하얗게 덮기 시작한 거미줄에 관한 기사도 없었다.
마루는 제국에서 일어난 탄핵 사태를 보고받곤 어이가 없었다.
“개판이군.”
[개판이라고 할 것도 없지.]기순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국이 언젠가 한 번 크게 똥을 싸리라는 건 예정된 결과였다.
[덴 아재가 그렇게 됐다는 건, 국토안보국 출신 애들 가운데 돌아선 애들이 생겼다는 소리잖아. 어쩌겠냐? 뭐. 덴 아재 특성상 일발 뒤집기가 없을 리는 없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거잖아. 그럼 자기 발로 내려왔다고 봐야겠지.]조금 틀어졌다 싶으면 ‘인간.’ 해버린다니까. 그걸 그냥 감내하고 내려온 덴 아재가 보살이라면서 조소하는 기순이었다.
“······.”
[내가 없는 말 한 것도 아니고···. 쩝-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국에서 우리랑 교역량 늘리고 한국이랑 동남아에 보내는 물류 수송량도 늘리자고 협상해왔다. 근데 외교관으로 누굴 보내겠다고 했냐면, 덴 아재다.]그러니까 자기들이 끌어 내린 덴 아재를 외교관으로 임명한 것.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인성이 참 대단한 애들인 것 같아. 아니면 본래 그래도 되는 문화인지. 전직 대통령이 특사로 다니기도 했었으니 이상할 게 없는 건가? 그래도 옛날에는 특사였잖아. 외교관 임명. 진짜 내가 표정관리가 안 되더라.]“그래서?”
특수탄과 기존 배터리 공급량을 확대하고 운송량을 늘리기로 합의했다.
제국은 공식적으로 거대 개미와 거미에 대해 공동 토벌을 제안했지만, 불간섭 원칙을 다시 상기시키며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파나마 쪽은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는 듯싶다.]“병력을 그렇게 밀어 넣었는데?”
[아무래도 사람보다 개미들이 숫자 불리기가 빠르잖냐. 여러 군집이 연합했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군대개미가 쉽지 않나 봐.]“선거는?”
[대통령 선거는 점점 엉망진창이 되는 것 같더라. 완전히 반으로 쪼개진 것 같아. 그것도 문제긴 한데 해상 도시 문제도 질질 끌릴 게 확실해 보여.]진작 입주해서 신기술 적용한 엑소슈트와 무기들을 뽑아내고 있어야 할 판에, 모든 것이 대통령 선거 이후로 밀려버렸다.
그래서 신성 왕국 무기 수입을 부랴부랴 늘린 거였고. 그러고도 모자라 슬슬 거대 개미와 거미들이 걱정되기 시작하니까 공동 토벌 어쩌고 한 것.
“됐다. 거긴 알아서 하겠지. 잘했어. 불간섭 원칙 계속 유지하는 거로 하고.”
[알았다.]그렇게 8월이 지나가고 9월 중순이 끝나기 전. 파나마 전선에서 제국군이 대패했다.
형벌부대로 간 인원만도 30만이 넘었고 추가로 파병한 제국군 정예병 15만과 클론 부대 5만을 합한 50만이 쓸려버린 사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