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71)
러스트 [RUST]-971화
50만 병력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은 제국을 패닉에 빠뜨렸다. 9월 중순의 끝 대통령 선거를 고작 보름 앞에 둔 시점이었다.
“신성 왕국에서 페로몬 번역기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것만 있었다면 개미들이 뭔 짓을 할지 미리 알 수 있었습니다.”
“50만이 넘습니다. 탈출하지 못하고 당한 병력이 50만이 넘었어요.”
“형벌부대야 다시 채울 수 있다지만, 정예병과 클론 부대가 당한 것이 큽니다.”
“당장 죽은 숫자도 중요하지만, 희생자를 먹고 증식할 개미들이 더 큰 문제입니다.”
“파나마에서 위로 올라온다면, 그걸 막을 방법이 없어요.”
“멕시코는 내전 중이라 소용없을 겁니다.”
“개미 군집이 몰려오면 지난번처럼 국경을 뚫고 들어올 겁니다.”
다시 핵을 써야 하나?
전략핵은 말고 전술핵으로?
핵 아니면 막을 방법이 없는데?
전술핵이면 지진이 터질 정도는 아닐 테니 괜찮겠지?
“9월 중순입니다. 아무리 개미들이 밀고 올라온다고 하더라도 한 달은 걸릴 겁니다.”
“그렇지요. 10월 중순이면 남부 지역도 영하로 떨어질 겁니다.”
겨울이었다. 그 끔찍한 겨울이 지금은 개미의 북상을 막아줄 천연의 장벽이 됐다. 그렇다면 기회는 있었다.
“개미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놈들의 계획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놈들의 생각은 몰라도 어디로 갈지 이동 방향만 미리 알기만 해도 됩니다.”
신성 왕국의 페로몬 번역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귀결됐지만, 신성 왕국의 대답은 냉정했다. 페로몬 번역기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중‧남미가 뚫리고 우리가 뚫리면 다음은 자기들 아닌가?”
“흥- 놈들에겐 그 괴물 같은 왕이 있지 않소이까.”
블라디마루 칼린. 그 인간 같지 않은 종자가 길목을 틀어막으면 자기들은 안전하겠다는 것이겠지.
아니면 신성 왕국의 수상 도시는 신성 왕국 국민 전체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니, 개미들이 떠날 때까지 수상 도시에 틀어박히면 그만이라는 생각이거나.
“다른 조건도 없었소?”
“무기라면 팔겠지만,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는 걸 줄 수 없다고 합니다.”
페로몬 번역기는 개미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다. 그걸 가져다가 원리를 파악한다면? 개미들을 교란할 수 있겠지.
그렇게 한 번의 교란으로 개미 군집을 전멸시킬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이미 이성을 가지게 된 개미 여왕은 그에 ‘대응’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신성 왕국이 가진 페로몬 번역기의 쓸모가 없어지거나, 최악은 개미와 적대적으로 될 수 있었다.
개미 왕국 사이의 전쟁에서는 적 여왕개미를 찾아 찢어 죽이는 게 개미들이었으니까. 적 여왕개미도 페로몬으로 ‘살려달라.’ 했을 텐데 어떻게 그렇겠나?
신성 왕국이 개발한 보편적인 페로몬이 언제나, 항상 통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제국에서 페로몬 번역기를 가져다가 개미들의 방향만 알아보는 게 아니라. 다른 짓을 한다면?
그 결과는 누가 책임지지?
“어떻게 사용된다니? 우리가 그걸 가지고 뭘 어떻게 한다는 건가?”
“우릴 뭐로 보고!”
제국 의회는 분노했다. 무려 50만이 넘는 희생자가 생겼는데, 군사적 지원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고작 페로몬 번역기도 주지 않겠다고?
제국 언론은 신성 왕국을 신명 나게 물고 뜯었다. 그렇지 않아도 불간섭이니 어쩌니 그런 신성 왕국에 정나미 떨어진 제국 사람들도 활활 타올랐다.
‘신성 왕국은 믿을 수 없는 자들이다.’
‘제국에서 물건 팔아 이익 보면서 불간섭이라고?’
당연히 처음 시작된 것은 신성 왕국 상품 불매운동이었다.
‘살인 개미와 공존한다고? 미친 새끼들.’
‘50만이 넘게 죽었다고. 사람이 50만이나 희생됐는데 고작 번역기 하나 넘겨줄 수 없다는 건가?’
‘모두가 힘을 모아 개미를 막아야 할 상황 아닌가?’
‘자기들만 잘 먹고 살면 그만이라는 거야?’
신성 왕국 제품 없이 살아보기 도전(challenge)을 시작으로 신성 왕국과의 거래를 줄여야 한다. 제국이 군수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등의 여론이 강해졌다.
‘군수 독립을 해야 합니다.’
‘제국산 무기로 무장해야 신성 왕국에 끌려다니지 않지.’
‘사용량이 많은 괴수용 특수탄과 보병용 장비는 제국이 자체적으로 생산 소비해야 해.’
‘엑소슈트 기술도 이젠 다 알려지지 않았나?’
제국의 군수업자들은 그런 여론을 등에 업고, 군수 공장 보조금을 비롯한 제국산 무기를 제국군에 납품하도록 적극적으로 로비했다. 미합중국의 전통 군산복합체가 제국에서 부활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성 왕국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제국에서 물량이 빠지면 한국, 대만, 동남아로 돌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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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 제국의 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 되자, 제국의 여론은 극단적으로 돌아섰다.
언론의 부추김과 정치인들의 강경 발언 때문이기도 했지만, 본질은 자존심 문제였다.
미합중국을 계승한 제국. 뉴욕에 수소폭탄을 터뜨리면서까지 개미와 싸웠던 제국이 파나마 전쟁에서 50만의 병력을 잃었다.
그런데 이제껏 동맹이라고 함께했던 신성 왕국이 끝까지 불간섭 원칙을 고수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협상도 없고 조건도 없었다. 그건 마치 제국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태도가 제국 사람들의 자존심을 긁었다.
대통령 후보들은 앞다퉈 위대한 미합중국을 계승한 제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외쳤고, 오만방자한 신성 왕국을 넘어서겠다고 부르짖었다.
신성 왕국과 제국은 그렇게 갈라졌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페로몬 번역기 정도는 보낼 수 있었지 않나? 전문 인력을 같이 보냈을 수도 있고.]덴 브라운이 개인 소유하고 있던 통신기로 연락했다.
“왜 또 그러십니까. 페로몬 번역기 먹겠다고 중간에서 장난치면 진짜 끝나는 거 아시면서. 제국에서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실 수 있겠습니까?”
제국 군부나 정보부에서 페로몬 번역기 먹겠다고, 슥삭- 해버리고 손실, 실종 처리해 버리면? 그걸 언제까지 감출 수 있을까?
그 사실을 알게 된 마루가 그냥 넘어갈까? 마루가 그냥 넘어간다고 쳐도 인공지능 전체가 응징을 요구할 것이다.
기순의 이야기에 덴 브라운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중간에 장난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건 제국의 정보를 신성 왕국이 파악할 수 있다는 뜻.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해킹만 전문적으로 학습시킨 인공지능이 있다면? 그 인공지능이 양자컴퓨터의 연산력을 이용해 제국 정보망을 해킹한다면?
“왜 표정이 굳으십니까? 해킹하면 흔적이 남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우린 그런 거 안 합니다.”
흔적이 남는 해킹을 안 한다는 소리지, 정보를 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안 한 기순이었다. 어쨌든 거짓말은 하지 않았으니.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나?]“말씀드렸다시피 신성 왕국은 불간섭 원칙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모르고 있었지만, 기순이 태연하게 말했다.
[후-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이렇게 제국과 신성 왕국의 사이가 벌어지면 종말을 대비하는 데 좋지 않을 거야.]기순도 씁쓸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말이 통하던 사람이 덴 브라운이었으니까.
“어쩌겠습니까. 현실이 이런데.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할 일 없으시면 그냥 이쪽으로 넘어오시죠?”
덴 브라운 정도라면 수상 도시를 제외한 전 지역을 맡겨도 잘 굴릴 사람이었다.
[말이라도 고맙네만. 거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왕정이잖나? 나는 누군가가 내 머리 위에 있는 게 싫어. 누구를 내 밑에 까는 것도 적성에 맞지 않고.’ 하며 피식 웃는 덴 브라운이었다.
“너무 가셨다. 지금처럼 위험한 세상에서는 믿음직한 왕도 나쁘지 않던데요? 근데···. 왜 그냥 당하셨습니까? 숨겨둔 한 수 정도는 있으셨을 텐데 말입니다.”
[숨겨둔 한 수라. 글쎄. 모를 일이지.]덴 브라운은 말을 아꼈다.
다만 그의 고집스러운 눈빛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제국 의회가 투표를 통해 자신을 밀어냈다는 것. 그것에 그는 승복하고 있었다.
무엇에 대한 고집일까?
기순은 문득 자신이 그런 고집이 있는지 뒤돌아봤다. 인간에 대한 긍정, 인간에 대한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자신에게 고집이든 신념이든 남아있을 만한 게···.
그런 기순의 얼굴을 본 덴 브라운이 입을 열었다.
[이런 예언을 들은 적 있네.]물이 썩고 숲과 도시가 불타도 종말은 아닐 것이다.
땅이 흔들리고 화산이 폭발해 태양을 가려도 종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잃고
인간이 인간의 가치를 잃는다면 그날이 종말의 시작이리라.
“······.”
[믿음. 그래.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네. 물론 철없는 소리로 들릴 것이란 건 알아.]죠셉 마이어와 덴 브라운이 다퉜던 건 언제나 인간에 대한 믿음이었지. 강력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게 그였고 서로를 믿음으로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으니까.
기순의 실눈이 가늘어졌다.
“위기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
[자네도 대충은 알고 있겠지만. 다들 알고 있었네. 인류에게 오래지 않아 위기가 온다는 것은. 다만 이런 식으로 이렇게 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지.]죠셉 마이어와 그 찌꺼기도 했던 말이었기에 기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대규모 바이러스 사태를 일으킨 겁니까? 인간을 변이 인자의 생산 공장으로 만들기 위해서요?”
[자네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그런 표정 짓지 말게. 그런 세력도 있었고 그에 반대하는 세력도 있기 마련이니까.]미래가 위험하다는 것은 어느 쪽이든 인지하고 있었고. 그걸 기회로 인구를 줄이려는 자들, 소수의 인류가 진화해 다수를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었다.
소수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거듭나야 한다고 하는 쪽도 있었고 새로 알게 된 힘을 이용하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극도로 발달한 현대에서도 고대 유물을 둘러싼 쟁탈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규모 주술과 인신 공양이 벌어지는 건 생각보다 흔했고.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지 잠시 미간을 찌푸렸던 덴 브라운이 씁쓸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그저···. 그렇다네. 인간을 무가치한 것으로 보지 않았으면 해서라네.]개미에게 잡아먹힌 한 병사는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애인이었으며 미래에 어떤 아이의 아버지가 됐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을 테니.
“그리고 그런 관계와 가능성을 전부 무시하고 전쟁터로 몰아가는 게 인간의 정치, 인간의 권력이란 말이죠?”
[그래.]그래서 민주주의가 필요하네. 시민들이 모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체계니까.
그래서 신성한 왕이 필요한 것이군요. 제대로 된 왕이라면 자기 백성을 지킬 테니까 말이죠.
역사적으로 백성을 제대로 지킨 왕이 있던가?
안타깝지만 민주주의의 결과가 지금 제국의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제국은 민주주의기에 반드시 다시 일어설 걸세.
그럼 잘 일어선 뒤에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어떨까요? 돌아가는 꼴을 보니까 한참 허우적거릴 것 같은데.
[의외군. 자네라면 이해할 줄 알았는데.]“이해는 합니다.”
덴 브라운이 이야기하는 인간의 가치?
어쩐지. 그 말이 마음에 닿지 않는 기순이었다.
누군가의 형제자매이자 자식?
가족이랍시고 죽이려고 한 가족도 가족인가?
그러니 누군가의 자식이고 아버지고 어머니가 어쩌고 하는 건 통하지 않았다.
사랑?
사랑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의 시작은 호르몬의 영향이고 생리학적 화학 작용에서 영향에서 벗어난 뒤에는?
나루에게 당한 게 큰 기순이었다.
일방적인 관계나 마찬가지 아니던가?
그다음에는?
사랑이 인질이 되는 순간, 결국 아무 의미 없게 됐다.
그나마 믿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마루에 대한 믿음. 신뢰라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마루쉑 믿을 만한 놈이었으니까.
[그런가? 그래도 종말에 대한 예언은 기억해주면 좋겠네.]인간에 대한 가치가 사라진다면?
그렇게 믿음과 사랑이 없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신성 왕국은 어떤 나라가 될 건지.
문득 기순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인간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인간들에게 끌려 내려왔는데 말입니다.”
[본래 정치권력이란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주어진 게 아니지 않나? 모두를 위해 미래를 위해 선택하는 자리지. 아닌가? 그리고 정치인을 끌어내릴 수 있기에 건강한 정치체계 아닌가?]그게 민주주의의 묘미지.
나를 보게.
덴 브라운의 농담 아닌, 농담에 기순이 피식 웃었다.
낭만 지리네.
“그래도 제국이 망하면 난민 받지 않을 겁니다. 제국이 망한다고 애원해도 돕지 않을 거고요. 아시다시피 우린 왕님의 뜻대로 하는 골골대는 나라거든요.”
[이런···.] [그래도 말일세.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겼는데 말이야···. 피난민까지 받지 않는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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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를 장악한 개미들은 북진을 멈췄다. 딱 파나마 운하 지역만 먹고 멈춘 것.
위로 올라오면 전술핵을 쓰니, 대규모 미사일 폭격으로 어쩌니 했던 제국은 순간 당황스러웠다.
개미들의 움직임이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뉴욕에 출몰하고 있다는 거대 개미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쪽도 폐허가 된 주변만 돌아다니지 영역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행이군요.”
“이번 겨울에 다시 군을 정비하면 될 겁니다.”
혹한을 방패로 삼는다면 시간이 충분했다.
“필라델피아를 장악한 거미들은 어떻습니까?”
“그쪽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놈들을 그냥 두기엔 위험합니다. 내년 봄이 되면 숫자가 수천 배로 늘어날 텐데.”
“굳이 먼저 건드릴 필요 있겠습니까? 필라델피아면 뉴욕을 통해야 위로 올라올 텐데 말이죠.”
그냥 건드리지 말고 방어 위주로 가자는 쪽과 숫자가 더 불어나기 전, 겨울을 이용해 토벌해야 한다는 쪽으로 갈라졌다.
군부와 곤충 전문가들이 다양한 시나리오를 올렸고. 투표 결과 겨울을 이용한 토벌이 결정됐다.
“뉴욕의 거대 거미와 필라델피아에 있는 거미를 토벌하는 안건이 통과됐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다.
늦은 가을. 제국은 전쟁의 열기로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