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74)
러스트 [RUST]-974
제국의 승리로 가득한 TV를 보고 있던 김 양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거 냄새가 난다니까. 탄 내 난다고 하지 않았어?”
“에? 그런 소리는 안 했는데요?”
아 맞다. 혼자서 생각한 거였지.
“저렇게 이겼다고 언론이고 방송이고 난리 치는 걸 보니까 피해가 막심한가 본데?”
“에에엣? 그럼 저게 다 사기라고요?”
방송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은 불바다가 된 하늘과 날개가 불타 우수수 떨어지는 날개미들의 모습이었다.
단 한 채널도 사상자 숫자를 언급하는 곳이 없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작전에서 작전이 고작 몇 분 남짓한 하늘 태우기밖에 없었을까?
간호사는 김 양의 불만스러운 표정과 TV 화면을 번갈아 봤다.
하늘이 통째로 불타오르는 광경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화염에 쓸려버린 날개미들이 떨어지는 장면은 통쾌했다.
저랬는데도 피해가 막심하다고?
저 장면만 봐도 크게 이긴 것 같은데?
미간에 주름이 잡힌 채 김 양이 툭 던졌다.
“슬슬 힘 떨어진다 싶으면 전쟁 영웅 등판시킬 거 같음.”
“영웅이요?”
응.
영웅.
대승 어쩌고 해봐야, 그거 오래 못 가지. 전쟁 터지면 무슨 저격수가 몇 명을 어떻게 했니, 부대원을 지키려고 누가 저렇게 했니 그런 기사가 왜 나오겠음?
다 순서가 있고 이유가 있고 작업에는 단계가 있는 법.
공교롭게도 김 양이 단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리의 주역을 만나다.’
‘천재 전술가의 탄생.’
‘제국군에 승리를 안겨준 전술장교 2계급 특진.’
‘레온 보나드 대위 2계급 특진.’
‘보나드 중령. 제국군은 강하다.’
같은 방송과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에에에에에에엣— 진짜로?”
눈이 동그랗게 커진 간호사의 시선을 느끼며 김 양이 우쭐했다.
‧
기순의 실눈이 제국의 승전보를 보곤 가늘게 휘어졌다.
[어떻게 생각하냐?]“이겼으니까 잘됐지 뭐.”
마루는 별 신경 안 썼다. 이겼든 졌든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
[진 거 같지는 않고 대충 비긴 거 같은데. 이겼다고 요란 떠는 것 같아서.]“신임 대통령이 선출됐으니. 정황상 무조건 이겼다고 해야 할 상황일 거다?”
관심이 없다고 해서 제국 상황을 파악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뉴욕 지하로 들어간 영상이 없는 걸 보면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거의 4주 넘게 한 작전이 달랑 저것밖에 없을 리도 없고. 여차하면 덴 아재를 긁어대던 언론들이 한목소리만 내는 것도 그렇지. 늘 있는 일 아니냐?”
언론과 정치의 결탁이라거나 재계와 언론의 결탁 같은 건 언제나 있던 일이었다. 덴 아재야 민주주의의 건전성 외치면서 자기를 물어뜯을 자유도 있어야 한다며 그냥 뒀지만.
언론이 재벌화 기업화 된 세상에서 건전한 언론을 부르짖는다고 가능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걸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게 지금 제국의 언론이었고.
마루의 담담한 평가에 기순의 실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제국에서 우릴 압박하면 어떻게 할 거냐?]“압박? 갑자기? 뭐로?”
[페로몬 번역기로 개미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우리가 그걸 넘겨주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뺏으려고 할지 몰라. 제국에서 본 건 달랑 블라디 아크 타워만 남은 모습이라서.]“그러니까 우리가 반쯤 망했다고 생각하고 말로 안 되면 힘을 쓰려고 할 거다? 제국 의원들은 날 봤으니까 반대할 텐데?”
[신임 대통령과 행정부, 새로 올라온 군부 장성들은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할 확률이 커. 의원들이 공포에 질려서 제대로 된 판단을 못 한다고 생각하겠지.]“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생각할 거다? 한국에서 죽음을 쓴 기록이 있는데 제국에서 모를까?”
[알겠지. 그런데 그걸 신임 대통령과 행정부, 군부에서 믿을까?]“뭐?”
[그 점조직 놈들이야 너에게 당한 게 있으니까 믿었고. 한국이야 직접 경험하고 생방송이었으니까 믿었겠지만, 덴 브라운이 아닌, 신임 대통령이나 그쪽 라인이 그 영상을 진짜라고 믿을까? 정교하게 제작한 CG라고 생각하지 않겠어? 신앙과 믿음에 대한 단서를 제국도 알고 있을 텐데. 그쪽에서는 너를 신격화하려고 한다거나, 그러기 위한 영상이라고 보지 않을까?]“그런가?”
[사실.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제국이 한국 영상을 거짓말이라고 믿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기는 해. 혼자 병력을 10만, 20만 단위로 쓸어버릴 수 있는데, 지구 정복을 하고 있지 않잖아.]기순이 피식 웃곤 이야기를 계속했다.
[안 그렇겠냐? 자기들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지구 정복을 하든지, 지구 통합을 하든 지 했으리라 생각할 테니 더욱 믿을 수 없겠지.]약점이 없는 능력은 아니지만, 압도적으로 중국 무장난민 부대를 밀어버리는 영상을 보면 그럴 만도 했다.
[그게 사기라고 하더라도 무섭기는 할 거야. 우리 왕님 능력을 식인귀들이 일으킨 제국 의회 테러 사건을 쓸어 버렸을 정도의 능력이라고만 가정해도, 시가전에서 막기 어렵다는 건 사실이니까.]“그런데 압박하고 무력을 쓰려고 할 거다?”
[뉴욕에 있는 개미를 끝내지 못했다면, 반드시 개미들이 복수하려고 할 텐데 그걸 감당할 방법이 없으면 어떻게 하겠어? 페로몬 번역기만 있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전쟁에서 이길 방법이 있는데, 개미를 쉽게 토벌한 장비가 있는데 그걸 신성 왕국이 주지 않아서 위험해진다고 생각한다면?
병사들에게 댈 핑계도 필요했다. 전우들을 잃은 이유가 신성 왕국이 이기적으로 페로몬 장치를 독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 대부분 제국군 상층부를 질타하기보다 신성 왕국의 이기심에 분노를 표출하겠지.
신성 왕국이 건재했다면 힘으로라도 뺏자는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대지진으로 초토화됐다고 생각하는 만큼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깊게 파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불간섭 원칙 뒤로 제국에서 전술핵, 전략핵을 엄청나게 생산한 것 같더라. 재외에 있던 미군이 가지고 있던 전술핵도 많이 회수한 것 같고.]“핵이 넉넉하니 그거로 압박할 거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냐? 대지진으로 우리 방공망도 망가졌다고 생각할 테니까. 호수에 있는 이지스함만 무력화시키면 달랑 하나 남은 블라디 아크 타워. 민간인도 피난 가서 없겠다. 압박하기 쉽다고 생각하기 쉽지.]기순의 말에 마루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 대통령이고 행정부고 다시 뽑게 되겠지.”
평안한 마루의 대답에 기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알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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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대통령과 행정부, 제국 의회는 뉴욕 거대 개미 토벌 결과에 고심했다.
“여왕개미를 놓쳤으니 작전은 사실상 실패입니다.”
“적의 둥지를 공략했으니 성공이라고 해야지요.”
“우리가 공략한 게 아니라 놈들이 둥지를 함정으로 삼은 거라고 하지 않습니까?”
“개미들이 자기 둥지를 함정으로 삼아서 주력 부대를 생매장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신성 왕국이 페로몬 장치로 개미들을 다룰 때도 간단한 명령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전부 위장이었다면? 사실은 개미들이 지성을 가지고 있다면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개미들이 지성이 있다면 자기들이 죽는데도 함정을 팠겠습니까?”
“지성이 있다는 건 두려움이 있다는 겁니다. 생존의 의지가 있다는 것이고요.”
신임 대통령이 얼굴을 찌푸렸다.
“개미가 이성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그게 중요한 거 아닙니까?”
파나마 작전 실패는 덴 브라운 정권에서 추진한 것이니 그쪽 책임으로 몰 수 있었다. 지금 뉴욕 토벌 작전도 대통령 선거 전, 제국 의회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을 이어받아서 한 것이니 그쪽 책임으로 미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건 아니야.’
이제 막 정권 시작 초기였다. 책임을 미뤄 제국 의회와 척지는 건 부담이 컸다.
‘다음 선거에서 분명 덴 브라운이 나올 터.’
제국 의회의 힘으로 덴 브라운의 세력을 미리 꺾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의회와 보조를 맞춰야 해.’
제국 의회가 덴 브라운을 끌어내린 이유가 있었다. 덴 브라운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적 통치가 제국 의원들이 보기엔 굉장히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미합중국의 민주주의에는 문제가 있었다. 총을 든 자유로운 시민이 피를 흘려 자유로운 국가를 건국했다는 것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나라가 이민자들로 만들어진 나라였으며, 계속해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나라였다는 점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이민자들이 계속 들어와 정치 세력이 된다면? 그래서 기존에 자리 잡은 자들을 정치적으로 밀어내 버릴 수 있게 된다면?
정치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분배였다. 그리고 민주주의란 다수의 의지에 따라 정치권력을 위임한다는 뜻이었다.
나중에 들어온 이민자들이 하나로 뭉쳐 정치 세력을 형성한다면? 먼저 피를 흘려 나라를 건국한 자들은 뭐가 되는가?
그런다고 민주주의 원리를 부정할 것인가? 그럴 순 없었다. 어쩌면 모순이라고 할 상황 속에서 미합중국의 민주주의는 묘해졌다.
대통령을 뽑는다면서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반 시민의 숫자보다, 선거인단의 숫자로 결정되는 어쩌면 이상한 구조가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리고 덴 브라운은 집권 2년 동안 공교육 개혁을 시작으로 암묵적으로 유지되던 권력 형성 구조를 건드리려고 했다.
그건 제국 의원을 비롯한 상류층을 견딜 수 없게 했다. 덴 브라운의 끝없는 이상주의가 현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고 판단했다.
차라리 총통이 되어 전권을 휘두르려고 했다면 타협의 여지가 있었지만, 덴 브라운이 추진하는 정책이 제국의 미래가 달린 권력 분배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기에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능력은 확실하지.’
신임 대통령도 그걸 알았다. 정권을 인수하면서 덴 브라운이 추진했던 국방 계획을 보면 확실히 그랬다.
신임 대통령이 생각에 잠긴 동안, 논쟁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있었다.
“여왕개미를 잡아야 합니다.”
“이번 겨울에 끝을 보지 않으면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심각한 위기가 될 겁니다.”
“거대 개미를 낳을 수 있는 여왕개미입니다. 먹이만 충분하다면 순식간에 무리를 키울 겁니다.”
“군집을 공격해 무리를 키울 수 있으니 삽시간에 규모가 커지겠지요.”
군부와 의회 모두 끝을 봐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방법이 문제였다.
“놈들을 전담하는 특수부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추적이 가능하겠습니까?”
“신성 왕국의 페로몬 번역기가 있다면 가능합니다.”
“신성 왕국이라.”
군부의 의견에 제국 의원들 다수가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2계급 특진한 전술장교 있지요? 그 사람을 특수부대 사령관으로 합시다.”
“기록을 보니까 그 장교가 개미들을 잘 잡는 것 같은데 말이죠.”
제국 의원들의 의견에 이번에는 군부에서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흠. 개미를 소탕하는 특수부대라면 규모가 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이번 작전으로 대위에서 2계급 특진으로 중령을 달았다지만, 여단이나 사단급 병력을 지휘하기엔 좀.”
개미들의 함정을 역이용해 날개미를 쓸어버린 것까지는 좋았다. 다만 그 뒤가 문제.
작전 장교는 진격을 멈추고 지금까지 장악한 지역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으나, 한 방에 날개미를 밀어버리는 데 성공한 장군들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전진하기를 원했다.
날개미들이 숨겨 놓은 땅굴을 시작으로 지하로 이어지는 대형 통로를 발견했고, 사령관은 토벌 작전의 끝을 보기 위해 진입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 끝에 개미들의 여왕이 있는 중심부에 도달했지만, 결과는 생매장. 뉴욕 지하를 점령하고 있던 개미들이 도망쳤지만, 주력 부대의 절반 이상 매장되고 말았다.
그게 이번 토벌 작전의 진실. 제국 의회와 군부는 다시 논의했다.
대대급 지휘관은 대령이 맡은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규모를 축소하는 대신 최신 장비를 보급하는 것으로 해, 2계급 특진으로 중령이 된 레온 보나드를 임명하기로 합의했다.
“신성 왕국은 어떻게 할까요?”
“우선 이번 토벌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하고 페로몬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립시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특수부대의 결과를 보고 결정합시다.”
제국 의원들이 결정을 미루는 모습에, 행정부와 군부 인사들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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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인터뷰로 진이 빠진 남자에게 병사가 다가왔다.
“중령님. 레온 보나드 중령님. 본부에서 명령서가 도착했습니다.”
개미 여왕을 추적 사살하는 특수부대 구성과 그 지휘관을 맡긴다는 명령서였다.
‘이번 겨울은···. 길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