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80)
러스트 [RUST]-980
제국의 해상 도시는 신성 왕국의 수상 도시보다 훨씬 컸다.
해군 기지나, 해상 비행장으로 사용하는 메가 플로트를 뛰어넘는 규모. 그러니까 기가 플로트라 부를 구조체를 여럿 띄워 만든 해상 도시였다.
신성 왕국의 수상 도시가 인구 일천만을 거뜬히 수용하고도 남는다고 했을 때, 제국의 해상 도시는 그보다 훨씬 더했다.
인공 섬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녹지 공간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에 따라 만들어진 공원에는 야트막한 언덕과 작은 폭포까지 있었다.
추모식이 열리는 해상 도시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며 기순이 감탄했다.
[야- 진짜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제국이 해상 도시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2년이 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힘들 지경.
신성 왕국은 개미도 있었고 다양한 건축보조 로봇에, 인공지능까지 총동원했음에도 시간에 쫓기듯 허덕였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규모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와아아아아—-)
(와아———)
그런 거대한 해상 도시가 흔들리고 있었다. 생방송으로 보고 있던 기순이 어이없는 상황에 혀를 내둘렀다.
[진짜 저절로 와- 소리가 나오네. 죽었다고 추도식하고 있는데 살아서 등판? 이거 막장 아닌가?]“위험한데···.”
두 사람이 추모식을 본 이유는 해상 도시의 내부가 중간중간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추모식이고 해상 도시고 다 뒷전이 될 판.
(레온!)
(레온!)
(레온 보나드!!!)
기순은 마루가 말한 위험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챘다. 지금 상황 자체가 위험했다. 죽은 영웅이 살아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끓어오르고 있는데, 만약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면?
예를 들어 영웅이 죽은 것으로 한 이유는 그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라거나. 그런 영화 같은 폭로가 터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게 위험하겠네. 다른 쪽으로도 그렇고.]“다른 쪽?”
[상황이 상황이기도 하지만, 인기가 너무 많아.]“레온 보나드 덕에 생존한 병사들과 그 가족들까지 있으니까 그렇겠지. 분위기 탓도 있겠고.”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하필 제일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등장하는 건. 세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잖아.]“아···. 세력.”
기순의 말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치 세력이 아니더라도 뒷문을 뚫을 정도의 연줄은 있다는 소리니까. 위험하지.]해상 도시를 공개한다고 해도,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했을 터. 추모식 행사로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을 테니 한 명, 한 명 꼼꼼하게 확인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입도 심사는 했겠지.
그런데 그걸 뚫고 들어왔다는 건 제법 정치적인 세력이 있거나 최소한 뒷배가 있다는 뜻으로 봐야 했다.
그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레온 보나드가 살아있다는 걸 위에 알리지 않고 들어왔다는 것. 당연히 사지 멀쩡하게 살았으면 보고하고 복귀하는 게 정상 아닐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몰래 들어왔다.
자신의 생존을 절대 부인할 수 없도록 대중에 공개했다.
왜?
어째서?
지금 자신들도 바로 그렇게 떠올렸는데, 정치 괴물인 신임 대통령과 정당, 제국 의원과 군부는 어떻게 생각할까?
(카메라 꺼!)
(생방송 중단하라고!)
(테러다!)
(저건 레온 보나드가 아니야!)
(잡아!)
몇 개의 카메라가 꺼졌지만, 반대로 몇 개의 카메라는 그대로 그 장면을 송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외침이 여기저기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떠오르자, 군중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
(우——)
거대한 야유를 뚫고 누군가 레온 보나드의 이름을 외치자, 마치 파도가 증폭되는 것처럼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구름 같은 인파를 뚫고 경호원과 무장 경찰, 대테러 부대가 들어가려고 했지만,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이 그대로 방송됐다.
[이러다 누가 방아쇠라도 당기면 진짜 일 터지겠는데?]기순이 중얼거리는 순간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그와 동시에 팟- 생방송이 끊기고 방송국 조정 화면이 떠올랐다.
“말이 씨가 된 게 아닐까?”
‧
‧
‧
단 한 발의 총성이었지만 흥분한 군중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레온을 쐈다!’
‘전부 거짓말이야!’
방송을 강제로 막기 위해 메인 전원을 차단한 것이, 군중을 더욱 흥분시켰다.
‘부패한 정치인을 죽이자!’
‘놈들이 총을 쐈다!’
‘놈들이 우리 병사들을 사지로 몰았어!’
‘잡아!’
오차 범위 내의 선거였기에 애초에 신임 대통령과 행정부를 싫어하는 사람이 절반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짜증 나는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사건을 목격한 자들은 참을 수 없었다.
추모식이었기에 필라델피아 작전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가족뿐 아니라, 뉴욕 탈환작전과 파나마 작전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가족들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야당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죽었다는 레온 보나드가 살아오다니.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해야 할 만큼 문제가 있다?
그 때문에 우리 아들이, 남편이, 형과 동생이 죽은 게 아닐까?
그걸 무마하려고 이런 자리를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성난 군중에 유가족들도 합류하게 된 것.
[폭도들을 진압해.] [실탄 사격 허가 났다.] [놈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던 대테러 부대와 경찰에 떨어진 명령.
[폭도들이 단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 [쏘라고!] [······.] [······.] [폭도라고요?] [저기에 우리 가족들이 있습니다.]대테러 부대원들의 가족들도 추모식에 참석했다. 질서를 유지하던 경찰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총질하라고?
현장을 통제하던 병사들이 총을 거꾸로 들었다.
그리고 그건 해상 도시 방위부대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폭도들이 추모식에서 대통령 각하를 공격했다. 우리 부대는 폭도들을 제압하기 위해 출동한다.”
처음 반문했던 장교가 아닌 다른 장교가 똑같이 말했다.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명령 불복종인가?”
해상 도시를 지키는데 충실하려면 당연히 해상 도시에 가족과 친지들이 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방위병의 가족들은 해상 도시에 있었다. 그리고 그 가족들 대부분이 추모식 현장에 참여한 상황.
심지어 조금 전까지 생방송으로 추모식을 보고 있었기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들 알고 있는데 폭도로 몰아서 진압하겠다고?
말이 진압이지 방위부대를 출동시키는 건 총질을 해서라도 제압하겠다는 의미였다.
“미쳤나? 저기 네 부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명령이다. 그리고 레온 보나드가 살아있었는데 왜 지금에서 나왔겠어?”
그에 반대하는 장교들과 이유와 상황이 어떻든 폭동이라며 진압해야 한다는 장교들이 충돌했다.
‧
신임 대통령은 경호원과 함께 비상 탈출로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괜찮으십니까?”
“몸을 이쪽으로 기대십시오. 부축해드리겠습니다.”
“괜찮네.”
80세가 넘었던 예전 대통령들의 연령(年齡)을 생각하면 그는 아직 한창인 칠순 중반인 나이였지만, 급하게 움직인 탓인지 숨이 가빴다.
“후-가지.”
깊게 숨을 고른 그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힘드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힘겨운 발걸음 속에서도 대통령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레온 보나드를 외치는 군중의 함성이 환청으로 들릴 정도로 끔찍한 상황.
‘누가 총을 쏜 거지? 아니···. 어느 쪽에 쏜 건가?’
단 한 발의 총성으로 레온 보나드를 외치던 군중은 정부가 레온을 죽이려고 한다며 날뛰기 시작했고.
비서실장과 대통령 경호대는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한다고 판단해 폭도를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단 한 발로 양쪽을 모두 날뛰게 한 것.
이게 과연 우연일까? 설령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개 같을 수가 있나.
‘······.’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때 원흉을 찾는 방법은 간단했다. 누가 제일 큰 이익을 얻는지를 생각하면 됐다.
‘어떤 놈일까? 어떤 놈이 제일 웃고 있을까?’
설령 가장 큰 이익을 얻은 자가 범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때려잡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마련.
대통령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사람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선거 결과가 났음에도 지긋지긋하게 딴지 거는 야당 대표 ‘데이빗 화이트.’ 그리고 전 총통인 ‘덴 브라운.’
레온 보나드가 죽어도 야당은 환호할 것이며, 살아도 레온 보나드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면 그와 함께 정권을 뒤엎으려고 하겠지.
반대로 대통령인 자신이 죽어도 마찬가지. 레온 보나드를 앞장세워 현 정부를 탄핵하고 다시 선거를 하자고 할 것이고 데이빗 화이트의 당선은 확실하다고 봐야 했다.
덴 브라운도 의심을 피하긴 어려웠다.
전 총통이자 탄핵으로 물러난 사람. 순순히 자리에서 내려왔긴 했지만, 권력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당선 직후 제일 처음 한 것이 덴 브라운의 입김이 닿았다고 생각되는 고위급 장성은 전부 물갈이한 것이었다.
다만 현실적인 이유로 중간 장교들까지 한꺼번에 옷을 벗길 순 없었다. 군이 정상적으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허리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덴 브라운과 교감이 남아있는 중간 장교들이 파나마 작전, 뉴욕 작전 실패, 필라델피아 지원 거부상황을 덴 브라운에게 전했다면?
미합중국의 계승과 부활 같은 과거의 영광에 미친 덴 브라운이 가만히 있을까? 과거 미합중국 연방군이었다면 있지 않았을 정치질에 제국군이 희생됐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할까?
자신이 순순히 권력을 내려놓아서 이 지경이 됐다고 판단했다면? 그가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거대한 판이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그러니 둘 다 혐의는 충분했다. 어쩌면 둘이 작당을 했을지도.
‘이 빌어먹을 것들이.’
순간적으로 혈압이 오르며 숨이 턱 막혔다.
헉- 헉-
“각하 괜찮으십니까?”
“괜찮- 헉- 헉-.”
대통령을 부축한 경호원이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자, 사주경계와 함께 멈춰선 진형.
“차단벽이 내려졌으니. 잠시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헉- 허억- 알겠네.”
식은땀을 줄줄 흘리던 대통령이 간신히 숨을 돌리려는 데, 무슨 통신을 들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변한 비서실장이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각하. 도시 방어군 사령관이 장교들에게 감금됐다고 합니다.”
“헉- 뭐-.”
“도시 방어군이 통제를 벗어났습니다.”
“······.”
당황한 대통령을 향해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듯한 표정의 비서실장이 보고를 계속했다.
“그리고. 행정부와 제국 의회가 폭도에게 점령당했습니다.”
“하아- 학- 의원들은 안전···.”
“사상자는 없는 듯합니다만. 데이빗 화이트를 주축으로 긴급 임시 국회 소집을 선언하고. 각하의 탄핵 투표안을 발의했습니다.”
덴 브라운을 내쫓았던 방식을 그대로 자신에게 쓰고 있었다.
그보다 더 악독한 건 밖에는 분노한 군중이 있다는 점이 더 그랬다.
이게 말이 되나?
상황이 이렇게 된다고?
시간으로 따지면 사태가 벌어진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놈이. 그놈들이. 헉- 크어허헉-”
말을 끝내지 못하고 의식을 잃는 대통령이었다.
“각하! 각하!”
‧
데이빗 화이트와 야당 의원들은 기쁨을 억누른 채, 침통한 얼굴을 하느라 표정이 일그러졌다. 생방송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탄핵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파나마 작전에서 전사한 병사들이 30만입니다. 뉴욕 토벌전에서 사망 실종된 병사들의 숫자를 아직도 발표하지 않은 걸 보십시오.”
“레온 보나드 장군이 요청한 지원을 거부한 건 명백히 병사들을 죽이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국군의 보급과 지원을 정치적인 이유로 거부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제국 의원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성난 군중이 의회를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레온 보나드 장군을 증인으로 부르자는 데이빗 화이트의 말에 의원들이 동의했다.
“레온!”
“레온!”
제국 의회로 들어가는 레온 보나드의 발걸음마다 열광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증인 선서를 하는 레온 보나드의 목소리에 조용히 가라는 분위기.
“신과 제국의 앞에서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합니다.”
그리고 레온 보나드가 한 행동에 데이빗 화이트의 얼굴이 굳어졌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영상 자료를 올리겠습니다.”
현장 지휘관이 가지고 있는 기록 장치. 일종의 블랙박스를 공개하겠다고 하는 레온 보나드였다.
“저런 소린 없지 않았습니까?”
“조용히 하게.”
옆에서 속삭이는 의원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하는 데이빗 화이트였다.
후방 해치가 뜯어지며 빛이 쏟아지는 영상이 시작됐다. 밝은 빛 너머에 있는 누군가가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살아있네? 죽었을 줄 알았는데.]성별을 알 수 없는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있잖아. 그런 말 들어봤어?] [죽어서 영웅이 되는 것과 살아서 악당이 되는 거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야?] [여기 거미들 우리가 관리하고 있었거든.] [네놈들이? 거미를 조종하고 있었다고?]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래도 좋아. 그런데 그게 중요할까?] [······.] [당신이 보급을 요청한 걸 왜 무시한 걸까? 당신도 귀가 있어서 알고 있잖아. 당신을 부담스러워 하는 거.] [······.] [제국 의회가 덴 브라운 총통을 쫓아낸 이유가 뭘까? 당신이 유명해고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그리고 지금 정부와 군부가 하는 짓은 뭘 거 같고.]묵묵부답인 레온 보나드를 향한 목소리가 유혹했다.
[우리에게 합류해. 제국은 오래 가지 못할 거야. 우리가 건드리지 않아도. 거미나 개미 변이 괴수들이 아니더라도. 제국은 스스로 자멸할 거야. 지금처럼 말이지.] [우리 신인류는 당신 같이 유능한 사람을 원해.]계속된 유혹 끝에 목소리가 말했다.
[그리고 당신을 죽이려고 이용하려는 건 현재 정치인들만 그러는 게 아니야.] [당신이 문제를 일으키기 전 영웅으로 기억되게 하려는 사람도 있거든.]그리고 이어진 화면 멀리서 전술핵이 폭발하는 장면.
[내 말이 맞지?] [그래서 있잖아. 어떻게 생각해?] [죽어서 영웅이 되는 것과 살아서 악당이 되는 거 말이야.]제국 의회가 침묵에 잠겼고. 의회를 포위하고 있던 군중은 폭발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레온 보나드가 연설을 시작했다.
제국 의회는 해체됐고 정치인들은 분노한 군중에게 끌려나갔으며, 군부에서는 현 정권에서 진급한 장군을 상대로 프레깅(fragging)이 벌어졌다.
“레온!”
“레온!”
“레온 보나드!”
“제국의 구원자!”
“흡혈귀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은 자!”
천재 지휘관이며, 뉴욕을 탈환하고, 필라델피아 퇴각에서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한.
그리고 이제는 제국을 구원한 영웅.
그를 황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