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85)
러스트 [RUST]-985화
덩치가 크다는 것은 무겁고 힘이 세다는 뜻이었다.
큰 덩치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힘이 있어야 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 곰이 두 발로 벌떡 일어서면 아파트 3~4층 크기라거나.
그렇지 않아도 큰 무스의 어깨가 단독 주택만 하다거나. 쥐의 몸무게가 20kg을 넘었을 때부터는 기존의 생물학적 지식은 의미가 없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좋다는 것은 그 자체로 능력이나 마찬가지. 무거운 질량과 그를 뒷받침하는 힘은 원초적이지만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연계에서 변이는 대체로 덩치가 커지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그렇다면 큰 것만이 강하고 위험할까?
끼릭-끼릭-
스라라라락-
검은 물결이 터널에서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크기가 작다는 건 조그만 틈에도 파고들 수 있는 뜻.
끄아아아악!
시커멓게 달라붙은 개미들이 귀와 콧구멍 비명 지르는 입속과 안구를 파고 들어가는 모습. 터널 마감 공사하던 사람들이 작디작은 개미들의 습격을 받았다.
“저건 뭐야?”
“엑소슈트가 나갔어!””
“어? 센서는? 왜 센서가 작동하지 않은 거야?”
작은 것이 군체를 이룬다면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숫자가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작음에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생체 EMP다!”
“저렇게 작은 게? 그냥 보통 개미 크기잖아!”
“저게 전부 변이 개미라고?”
믿을 수 있건, 없건. 닥친 현실은 냉혹했다. 순식간에 엑소슈트가 먹통이 됐고 센서도 마찬가지. 혹한으로 일이 끊겨 터널 공사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산채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병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계속 뛰어!”
“터널 밖으로 나가!”
“문을 열어. 빨리!”
외부로 통하는 터널 입구가 굳게 닫혀 있었다.
“방한복은!”
“입을 시간 없다. 들고 뛰어!”
“밖은 영하 70도야. 금방 얼어 죽는다고!”
“그럼 개미한테 죽을 건가?”
“나가서 방한복 입으면 된다고! 그냥 열어!”
묵직한 금속음과 함께 두꺼운 문이 열렸다. 하나를 열자 반쯤 얼어붙은 공간이 나왔다. 너무 추운 나머지 중간에 공간을 둬 2중으로 만든 것.
끼르르르르-
아귀같이 몰려들던 조그만 개미들이 냉기에 닿자, 추적을 멈추곤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놈들이 멈췄어!”
“빨리 바깥문 열어!”
“FUCK- 온도를 봐. 눈으로 보라고!”
“영하 72도야. 방한복부터 입어야 해.”
벌써 두꺼운 방한복을 입은 자들이 먼저 외부 해치를 열기 시작했다.
“야! 잠깐. 아직 다 못 입었어.”
“기다려-”
그러거나 말거나 해치가 열렸다. 영하 72도의 차가운 공기가 순식간에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쓰리리리리-
끼릭-끼릭–
썰물처럼 움직이는 군체.
터널 깊숙한 곳으로 사라지는 물결을 바라본 생존자들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
‧
‧
CCTV 화면도 없었고 엑소슈트에 있는 전술 카메라에도 남은 영상이 없었다.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하드웨어가 물리적으로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독성이 강할 뿐 아니라 산성 쥐의 타액처럼 분해성이 커요.]마치 산성 쥐와 갈매기의 산에 독성이 더해진 것 같은 개미산. 새끼손톱 크기의 개미 인지라 독의 절대량은 매우 적었다.
절대량이 적었기 때문에 몇 마리가 문다고 한들 대형 변이 괴수에게는 그리 큰 위험이 아니었다. 두꺼운 가죽 억센 털을 뚫고 독이 살과 피에 닿을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작은 개미도 변이 괴수는 변이 괴수. 귓구멍과 콧구멍 같이 열린 곳을 통해 내부를 물기 시작하면 대형 괴수라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지 않아도 독에 취약한 인간은 더했다. 눈이나 귀, 콧구멍에 들어간 개미들이 살을 파먹고 들어가 뇌를 물어뜯는 순간 그걸로 끝.
[한 마리라도 뇌를 파고들거나 눈과 귀를 파고들면 인간은 전투력을 상실하니까요.]개미들은 영악했다. 도망치는 생존자의 옷에 붙어있다가, 방한복을 입을 때 옮겨가 기어코 귓속으로 파고든 것.
[그거. 개미들 본래 한 번 싸우면 죽을 때까지 싸운다고 하지 않았음?] [네. 맞아요.] [우리 개미보고 싸우라고 하면 되지 않음?] [저쪽 크기가 작고 숫자가 많아서 오히려 우리 개미가 불리해요.]저쪽은 평균적으로 5~8mm 크기인데 이쪽은 10cm 정도가 작은 축에 속했다. 큰 것은 이미 20cm는 넘었고 거대 개미로 가면 50cm가 기본.
크기 차이가 너무 나서 이쪽이 작은 쪽을 공격하게 어려웠다. 좌우로 벌어지는 개미 턱으로는 물기 어려울 정도로 작았기 때문.
마루도 딱히 방법이 없었다. 죽음을 펼쳤다고 해도 작은 개미들이 뚫어 놓은 구멍은 지름이 5mm 안팎이었다.
틈이 너무 작아서 죽음의 넝쿨이 파고들기도 힘들었고. 파고들어도 개미들이 통로를 막아버리면 방법이 없었다.
“유인도 안 당해.”
영악하기는 어찌나 영악한지, 마루가 한 번 쓸어 버린 뒤론 유인도 당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마루가 공사현장을 지키는 것도 어려운 것이, 개미들이 밀고 들어와 죽음의 정원을 쓰면 같은 편이 휘말리기 때문에 의미 없었다.
이래저래 총체적 난국.
“페로몬으로 대화를 시도했는데 소용없다고 했지?”
[네. 알아들은 것 같은데 공격했어요.]마루의 물음에 간호사가 대답했다.
“알아들은 건 확실해?”
[네? 예. 분명히 잠시지만 멈췄어요.]이쪽에서 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명령이 올 때까지 분명 공격을 멈췄었다.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여왕이 있는 곳과 터널이 뚫고 들어간 곳이 그리 멀지 않다는 뜻.
[설마. 전술핵을 쓰려는 건 아니지? 전술핵은 효과를 장담할 수 없어.]그렇다고 전략핵을 쓰기엔 너무 위험했다. 바로 위에 도시가 있을 뿐 아니라, 핵폭발로 생긴 인공지진이 단층에 영향을 줘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다.
“아니. 액체 질소를 넣어버리는 건 어떨까 해서.”
[액체 질소?]생존자를 추격하던 개미들이 냉기에 닿곤 추격을 멈췄다. 그 부분을 적극적 활용하는 건 어떨까?
[흐응- 액체 질소 그거. 땅에는 별로 효과 없잖음?] [흙이 단열재 역할을 해서 생각보다 효과가 크지 않을 거예요.]“시추 구멍을 뚫어서 액체 질소를 넣고 터트리는 방식을 써보자.”
[협상해보게?]“협상도 좋고 아니면 액체 질소에 당한 개미들이 위로 올라와도 좋고.”
인공지능 디아나의 분석에 액체 질소를 이용한 공략이 시작됐다.
[후퇴합니다.] [터널 인근에서 전부 사라졌습니다.]구멍을 뚫고 액체 질소 통을 넣고 터트리는 방식은 처음엔 효과 있었다. 하지만 몇 번 그렇게 밀어내고 나자, 개미들은 시추장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량을 동원해 파이프를 갉아버렸고, 시추장치를 망가뜨려 깊숙하게 파고들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대치가 이어지는 동안 개미에게 치명적인 살충제의 개발이 완료됐다.
[전부를 죽일 순 없어요. 세대가 교체되면서 살충제 내성 개미가 생길 테니까요.]“상관없어. 놈들을 전부 죽이거나 몰아낼 생각은 없으니까.”
목표로 하는 것은 영역을 정하고 건드리지 않기로 하는 것이었다. 북부 개미 제국과 서로 건드리지 않기로 한 것처럼 땅속에 있는 작은 개미들도 불가침 정도만 하면 그만이었다.
나주연이 새로 만든 개미 전용 살충제는 굉장했다. 증기 형태로 파고드는 살충제에 개미들은 통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죽이고 막고 다시 죽이는 게 끝없이 이어졌다. 한 달 가까이 이어진 대치 상태 끝에, 간호사가 작은 개미의 페로몬을 확인했다.
[왔어요. 작은 개미가 휴전을 요청했어요.]살충제라는 것을 알아차린 작은 개미들이 휴전을 요청한 것.
“휴전은 없다. 현재 전선에서 서로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종전하거나 아니면 계속 싸우자고 해.”
[에엣? 괜찮으시겠어요?]“겨울이라서 어차피 놈들은 위로 올라오지 못해. 어설프게 휴전했다가 그동안 살충제 내성 생긴 개미들이 생기는 게 더 위험하지.”
[네.]간호사가 종전 아니면 전쟁이라는 마루의 뜻을 작은 개미에게 전달했다. 인간이었으면 협상 기간에는 휴전이었겠지만, 개미들은 사람과 사고방식이 달랐다.
[협상은 협상이고 싸우는 건 싸우는 거다? 진짜 징그럽네.]살충제에 죽어가면서도 끝없이 몰려오는 작은 개미들에 학을 뗀 기순이었다.
다시 일주일 정도가 지난 뒤에야 작은 개미들은 종전을 결정했다. 새로운 살충제를 개발해 추가로 투입하고 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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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와(Ottawa) 지하에 작은 개미들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 진짜 주변에 물도 많고 지하수도 풍부해서 밑에 뭐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는데.] [확인해보니 다른 도시 지하에도 작은 개미들의 영역이 있었습니다.]심지어 몬트리올을 지나 퀘벡 지하에도 작은 개미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지하 30m 위쪽은 우리 영역으로 했으니까. 그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공사를 시작하지.”
본래대로라면 지하 100m 이하의 깊이에 만들어 핵에도 끄떡없는 대규모 지하 도시를 계획했건만. 어쩔 수 없었다.
[일반 개미의 개미산에 독성을 추가하는 실험이 성공했어요.]작은 개미가 가진 독특한 개미산의 연구도 계속됐다. 작은 개미의 변이 요소를 아군 개미에 이식하는 실험과 거대 개미의 인자를 결합하는 실험이 동시에 이뤄졌다.
[거대 개미의 변이 원인을 밝혀냈어요. 지금부터는 우리 개미들의 크기를 키울 수 있어요.] [크게 하는 건 난 반대. 이번 사태에서 봤지만, 크기가 큰 게 유리한 건 아니잖아.] [저도 인위적으로 크기를 키우는 건 반대입니다.]그 둘을 합치자는 나주연의 주장에 반대했던 기순과 후드였지만, 만에 하나 개미들과의 틀어져 다시 전쟁이 시작되면 개미는 개미로 막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부정할 순 없었다.
[그래도 유전자를 건드리는 건 반대야. 그거 나중에 어떻게 될 줄 알고.] [동의합니다. 시뮬레이션으로 확인했다고 하지만, 현실은 어떻게 될 줄 모릅니다. 액체 질소를 이용한 전술도 시뮬레이션과 다른 결과가 나온 걸 보면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기순과 후드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거대 개미처럼 크게 키우자는 건 아니에요. 우리 쪽 작은 개미를 10mm에서 최대 20mm 정도로 1.5배에서 2배 정도 키우자는 거에요.]일방적으로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체급까지만 키우자는 나주연의 이야기.
“일단 크기는 건드리지 말고. 독이 포함된 개미산은 시작해 보도록 하지.”
마루의 결정에 따라 개미들의 추가 변이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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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기온이 영하 50도에서 60도를 넘나들고 밤과 새벽에는 영하 70도 이하를 가뿐하게 찍기 시작하면서 사냥꾼은 둘로 나뉘었다.
겨울잠에 빠진 변이 괴수를 찾아 사냥하는 쪽과 터널 공사처럼 인프라 공사에 들어가는 쪽으로.
“안전하긴 개뿔이.”
“땅속에 그딴 개미들이 있을 거라고 누가 알았겠어.”
“어쨌든 그 빌어먹을 작은 개미들과 협상했다고 했으니, 이제 괜찮지 않나?”
“북쪽에 있는 개미 제국과 협상하더니 이번에는 우리 도시 아래에 있는 개미들과 협상이라.” “개미들이 상전이야 상전.”
“개미들 어떻게 못 하나?”
“이번에 살충제를 썼다면서?”
“한 번에 싹 죽이지 못하면 살충제에 내성이 생기니까 그렇지.”
“내성 안 생기는 살충제 만들면 되잖아.”
“기술 뒀다가 뭐 하는지 몰라.”
“슈퍼컴퓨터고 양자 컴퓨터고 있으면 뭐해. 개미 하나 쓸어버리지 못하는데.”
“어이 그만들 해. 이번에도 다른 나라였으면 사상자가 얼마나 생겼을지 모른다고.”
“그래. 땅속 깊숙한 곳으로 이어진 동굴에서는 다들 조심해.”
“간이 죄다 오그라들었나. 뭔 겁을 그렇게 먹었어.”
“개미만 미친 게 아니라 또 다른 미친 게 있을지 모르니까 하는 소리지.”
“적당히들 하고 오라고.”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고.”
영하 60~70도에도 사냥을 떠나는 사냥꾼들이 뒤를 향해 중지를 한 번 세우곤 발걸음을 옮겼다.
신성 왕국의 겨울은 그렇게 깊어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