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89)
러스트 [RUST]-989화
정신파 대응장비가 작동을 중지했다는 이야기에 분위기가 변했다.
“간다면서 왜 아직도 뭉개고 있나? 밖에 나가면 좋아하는 치킨이나 많이 먹고.”
데이빗 화이트의 이죽거림에 전 대통령 경호실장과 경호원들이 발끈했지만, 정작 비꼼의 대상자는 덤덤했다.
“그러지. 그럼 잘 해보게.”
“······.”
전 대통령과 그 일당이 별다른 대꾸도 없이 나서자, 데이빗 화이트의 눈썹이 구겨졌다. 너무나 선선히 포기하는 모습은 이상하기까지 했기 때문.
“무슨 생각이지?”
“정말 겁먹은 거 아닐까요?”
누군가의 한마디에 피식- 낄낄 웃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놈들이 정말 나가는지 확인하도록 하고. 우리는 계획대로 하지.”
목표는 레온 보나드. 그 개자식을 처리하는 것. 일단 레온 보나드를 정리하면 덴 브라운과는 대화가 가능할 터.
레온 보나드가 군권만 가진다고 했지만, 모든 독재가 그렇듯 군권을 가진 권력은 결국 정치권력까지 탐하기 마련이었다.
총기 자유화인 제국에서 황제가 권력 분립 약속을 어기고 군권을 이용해 독재로 간다면 제국 시민이 무장저항을 하겠지만. 그것도 본토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해상 도시는 총기 사고를 없애기 위해 총기제한이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총기 금지는 아니어도 강력한 화력 제한.
냉정하게 봤을 때, 황제가 변심하면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황제를 정리하기만 한다면 민주주의와 권력 분립에 진심인 덴 브라운과는 협상 가능하리라.
“덴 브라운은 신인류에 적대적이지 않습니까?”
“레온 보나드를 처리하고 선거까지만 가면 돼.”
여차하면 정신파를 사용하면 되는 거고. 만약 먹히지 않는다면 전 대통령 무리가 테러한 것으로 하면 되겠지.
정신파 대응장치가 멈춘 순간부터 해상 도시에는 비상 경계령이 떨어졌다. 통행이 제한됐고 자택에서 나오지 말라는 안내 방송이 이어졌다.
“대응이 예상보다 빠릅니다.”
“해상 도시 방어군이 움직입니다.”
총리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빠른 대응을 하는지. 차라리 황제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군을 동원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랬다면 황제가 언제든 군을 통원해 해상 도시를 통제하려 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텐데. 아쉬웠다.
“계획대로 간다. 황제를 잡을 때까지 무리하지 말고 시간만 끌어.”
“옛.”
황제 처리팀, 총리와 협상팀, 언론 방송팀 그리고 해상 도시 방어군 지연팀으로 나뉜 무리가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뉘었다.
‧
전 대통령을 따르는 자들은 출입 시스템이 오류가 난 선착장에 도착했다. 자동화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자 출입관리 직원과 비행장 경비대가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다.
“보안이 단단합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나가는 건 어렵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 뚫고 가세.”
“예.”
경호팀이 출입구로 향하자 경비대와 직원이 제지했다.
“무슨 일입니까?”
“현재 시스템 오류로 출입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아- 다름이 아니라.”
팟-
CCTV가 50센트 동전에 깨지고, 비상 경고등이 동시에 터져나갔다.
“무슨?”
“거기-”
경비대가 ‘거기 멈춰.’라고 말하기도 전. 이미 공격에 들어간 경호원들이었다. 식인귀 특유의 운동능력이 더해진 경호원들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한 경비원과 직원들이 순식간에 제압됐다.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대기하던 자동 포탑이 후방으로 포구를 돌렸지만, 이미 한 박자 늦었다.
콰직-
제어판을 뜯고 바로 해킹 장비를 이어 붙인 경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 우회 성공했습니다.”
“비행선 제어 시스템 장악했습니다.”
전 대통령과 일파를 태운 비행선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
총리실은 비상이었다.
[정신파 대응장비가 작동을 멈췄습니다.] [출입 시스템에 오류가 생겼습니다.] [중앙 통제실 연결되지 않습니다.] [중앙 통제실에서 폭력 사태 발생.] [방위군 출동.] [방위군 이동을 막는 무리가 있습니다.] [황제가 약속을 어기고 군사 독재를 하려고 한다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방위군 이동이 의회를 해산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방송이 있습니다.]이어지는 보고에 덴 브라운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출입 관리소 공격받았습니다.] [비행선 나포.] [요격 시스템 해킹.] [내부에서의 소행입니다.]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사태를 볼 때. 단순한 테러가 아니었다. 전 대통령 일파? 아니면 데이빗 화이트를 중심으로 한 야당 세력?
레온 보나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두 세력은 자취를 감췄다. 해상 도시의 내부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그들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놈들의 목적이 뭘까?’
레온 보나드를 견제하려고 했던 전 대통령과 군부도 선을 넘었고, 레온 보나드와 정신파 발생기를 이용해 대통령을 끌어내리려고 한 데이빗 화이트도 마찬가지였다.
두 세력 모두 선을 넘었고 그 결과 생긴 게 황제였다. 덴 브라운이 보기엔 자업자득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소란을 일으켰다는 건. 노리는 게 있다는 뜻.
‘황제를 암살하려는 건가?’
황제를 죽인다고 될 일이 아닌데? 의회는 황제를 지지하는 시민 대표들이 장악했고 신군부는 황제를 지지하는 장교들이 장악했다.
당장 레온 보나드를 죽인다면 의회와 신군부가 폭주할 터. 그걸 모를 자들은 아닐 텐데. 그렇다는 건 의회와 신군부를 통제할 방법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뭘까?
‘설마. 병신 같은 놈들이 흡혈귀가 된 건가?’
정신파 능력. 고위급 식인귀와 흡혈귀가 되면 생기는 지배력과 매력. 정신파 발생기를 얻을 정도로 놈들과 연결된 데이빗 화이트라면. 모든 것을 잃고 도망친 전 대통령이라면 식인귀가 되자는 유혹을 거부하기 힘들었을 터.
“황제 폐하가 위험하다. 식인귀 놈들이 황제 폐하를 노린다. 근위대에 무조건 발포하라고 해. 그리고 방위대도 이동을 막고 있는 것들을 밀어버리라고 해. 놈들은 식인귀다.”
[언론 방송에서 현장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긴급비상 방송으로 바꾸고, 집회 해산시켜. 정신파 대응장비를 사용했는데도 해산하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
[무력을 사용해서 해산하라는 명령이십니까?]“그래. 식인귀에 홀린 자들이다. 다시 말하지. 해산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무력을 사용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책임은 내가 진다. 무조건 진압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황제가 암살당하는 건 막아야 했다.
황제가 암살당하는 순간 폭주하게 될 의회와 신군부.
의회와 신군부의 폭주를 막기 위해 대항하는 시민군.
내전을 막기 위해 정신파와 지배력을 사용하는 신인류를 인정해야 한다는 자들까지.
어느 쪽이든 제국은 흔들렸다.
‧
중앙 통제실은 난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총 내려. 미쳤어!”
“비켜. 비키라고!”
새끼고양이를 향해 총을 겨누자, 그 앞을 막아선 직원이 태클했다. 차마 동료를 쏠 수 없었던 사람이 붙잡고 늘어진 자와 몸싸움을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새끼고양이를 죽이려는 사람과 그걸 막으려는 자들이 뒤엉킨 혼란.
“저거 봤어? 변이 괴수라고. 그냥 새끼가 아니야.”
“새끼가 뭘 알겠어. 풀어놓은 우리가 잘못한 거지.”
“그 많은 버튼 가운데 보안장치를 건드렸어! 저것들이 알고 누른 거라고!”
“진정해. 진정하라고. 그렇다고 총을 쏘는 건 아니잖아. 계기판 망가진다고.”
“비켜. 제정신이야?”
“총 내려. 일단 총부터 내려놓고 말해.”
탕!
간혹 총소리가 울렸지만, 그뿐. 새끼 고양이들은 인간들이 아웅다웅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문이 열리자 밖으로 나갔다.
위이잉-
그리고 그런 새끼 고양이를 반긴 것은 자동 포탑이었다. 자동 방어 시스템은 인간과 고양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정지.]미야옹? (뭐지?)
미양? (기계?)
[경고.] [정지.]열렸던 문은 이미 닫힌 상황.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새끼 고양이들은 인내심이 적었다.
미야?
그리고 기계는 귀여움을 몰랐다.
두두두두둑!
‧
황제의 거처를 지키는 근위대는 데이빗 화이트 일당의 습격에 밀리고 있었다.
[정신 차려!] [방위부대가 오고 있다.] [20분만 버티면 된다. 20분이야.]하지만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자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면서 방어선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차단 격벽 내려.] [후퇴한다.]묵직한 차단벽이 복도를 가로막고 잠시 전열을 정비하는 시간.
[탄이 얼마나 남았지?] [탄창을 재분배하면 일 인당 3개 정도씩 돌아갑니다.] [턱없이 부족하군.] [탄약도 부족하지만, 배터리가 더 문제입니다.]엑소슈트의 배터리 소모가 심했다. 고작 5분 버티는데 배터리 잔량이 70%나 소모된 것. 배터리 하나로 60분 이상 기동할 수 있는데 5분 남짓한 시간에 70%가 소모되다니, 엑소슈트에 있는 정신파 대응장치가 전력을 퍼먹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건 좋지 않은 의미였다.
[놈들 가운데 고위급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고위급이 있다면 휴대용 차단 장비로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중앙 통제실에서 정신파 대응시스템을 복구해야 할 텐데 소식이 없었다.
[20분이다. 이제 19분. 19분만 버티면 방위군이 도착한다.]탄약도 부족했고 배터리도 부족한 근위대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데이빗 화이트 일당도 절박하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전원 식인귀와 흡혈귀가 된 데이빗 화이트 일당을 막기엔 근위대의 화력이 너무 부족했다.
10분만 버티면 된다고 외치던 근위대장을 마지막으로 근위대가 전멸했다. 이제 황제가 있는 곳까지 남은 건 자동 방어 시스템뿐.
[해킹 성공했습니다.] [보안 시스템 해제 완료.] [탈출로를 차단했습니다.]위이잉-
전원이 끊긴 자동 포탑이 정지하는 소리, 복도를 가로막은 차단벽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황제의 알현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는 소리가 총성이 멎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시스템 재부팅 들어갔습니다.] [중앙 통제실과 비상 통제실이 해킹을 차단했습니다.]긴박한 무전이 도착했지만, 데이빗 화이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문이 열린 이상.
놈이 도망칠 탈출로까지 막은 지금.
체크메이트(Checkmate)였다.
데이빗 화이트가 알현실로 들어서자, 계단 위 옥좌에 앉은 레온 보나드가 보였다.
“그래. 그 자리가 마음에 들었나 보군.”
“······.”
살려달라며 애걸복걸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동안 신수가 훤해졌어.”
“······.”
데이빗 화이트를 내려다보는 레온 보나드.
“왜 말이 없지? 내 뒤통수를 칠 때는 혓바닥이 길더만.”
“······.”
하긴 뒈지게 생겼는데 혓바닥을 놀리긴 어렵겠지.
구차하게 죽지 않겠다는 건가?
그래 봐야 죽으면 끝이었다.
데이빗 화이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온 보나드를 겨눈 총구가 불꽃을 뿜었다.
탕-
팍-
레온 보나드의 향한 총알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옆에 박혔다.
“제대로 안 쏴?”
“아닙니다.”
탕-
팍-
머리를 향해 쏜 총탄이 또다시 빗나갔다. 총을 쏜 사람을 내려다보는 레온 보나드의 새파란 눈빛에 방아쇠를 연거푸 당기기 시작했다.
탕- 타탕- 탕-
팍- 파박- 팍-
그 자리에 앉아있는 레온 보나드의 주위에 틀어박히는 총탄.
마치 무엇인가에 휘어지는 궤적.
“···?”
“능력을 각성했나?”
데이빗 화이트는 추모식에서의 총성을 떠올렸다.
이미 그때 능력을 각성했을 터.
그걸 감쪽같이 숨기고 있었다니.
“그래. 그래야지.”
“······.”
“그 정도는 돼야지.”
검은색으로 번들거리는 단검을 뽑은 데이빗 화이트와 부하들이 옥좌에 앉은 레온 보나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
덜컹-
그들이 달려드는 순간. 옥좌 앞의 바닥이 통째로 푹 꺼졌다.
으아아아아악!
푸화아아아아-
비명을 파묻듯 시멘트가 쏟아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What the—!”
“FUC—-K—”
꿀렁꿀렁 외치는 소리.
저주.
분노.
절규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덜컹-
뻥 뚫렸던 바닥이 다시 본래대로 돌아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