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99)
러스트 [RUST]-999
동물들이 연합한다니. 이제껏 없었던 일에 한국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동물들을 토벌한다고 생존 영역까지 밀고 들어가서 생긴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동물들이 연합했다는 소립니까? 종이 다른데요?)
(종이 달라도 뭉쳤다는 건 어떤 방식이든 의사소통이 된다는 소립니다. 불가능해요.)
(어쨌거나 작전은 계속돼야 합니다.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동물 세력이 생겼는데 그들이 포위를 완전히 뚫고 탈출한다면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겁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토벌을 중지할 순 없습니다. 우리가 뒤로 물러서면 영악한 괴수들이 연합해 도시를 공격할 겁니다.)
(토벌을 중지한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지금 끝장을 봐야 합니다.)
그간 변이한 동물들을 숲으로 밀어낸 뒤로 민가를 습격하는 일이 줄어들었었다. 하지만 겨울이 닥치면서 육식, 잡식 동물들이 농가와 농장을 습격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멧돼지와 족제비류는 도시까지 내려와 식당과 사람들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한국 정부는 점차 증가하는 야생 변이 괴수의 습격을 뿌리 뽑을 생각이었다. 시작은 강원도지만 태백산맥, 소백산맥, 지리산을 거쳐 산이란 산은 전부 한 번 쓸어버린 생각이었다. 신성 왕국 군대가 도와주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하겠는가?
[한국 정부에서는 손을 댔으니까 끝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던데.]“내 생각도 그래. 머리가 똑똑한 놈들이니 어설프게 지나가면 반드시 보복당한다.”
손을 대지 않았으면 모를까 손을 대면 끝을 봐야 했다.
[똑똑해 보이던데. 간호사 불러서 적당히 협상하는 게 낫지 않겠냐?]“단순한 토벌이 아니라, 우리 병사들 능력 각성이 달린 작전이잖아. 난 동물보다 우리 병사들 능력 각성이 더 중요하다.”
[아니.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야기가 통하는 동물들을 따로 빼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북미에 있는 짐승들과 다르게 한국 동물들은 서로 소통하고 공동 대응하는 거 보니까. 우리가 데려가면 좋을 것 같은데.]“지금 포위한 애들은 늦었어.”
작심하고 때리기로 했는데 협상하자고? 한국 정부와 손잡고 작전하기로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동물들끼리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건, 동물들이 마음만 먹었다면 인간과 협상하자고 먼저 나설 수도 있다는 것.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마루의 단호한 결정에 기순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알았다. 작전 계속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전할게.]강원도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조이기 시작했다. 신성 왕국 군 30만, 한국군 35만을 합해 65만 병력이 공세로 돌아섰다.
(멧돼지다!)
(중기관총으로 저지해!)
(크레모어 격발!)
괴수의 부산물로 만든 폭탄이 터졌지만, 멧돼지를 한 번에 죽일 순 없었다. 전신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맹렬하게 달려드는 멧돼지에 화력이 집중됐다.
(밀리지 마라! 바리케이드를 펼쳐!)
(나무. 나무 위를 봐!)
그리고 그렇게 멧돼지가 시선을 끄는 동안, 다람쥐와 족제비들이 나무를 타고 급습했다.
(헬멧에 붙지 못하게 해!)
(손가락을 조심해. 놈들이 검지를 노린다!)
다람쥐와 족제비들은 영악하게도 엑소슈트의 센서가 모여있는 헬멧을 노렸다. 그게 아니라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검지를 노렸고.
(아아악! 내 손가락!)
(이 새끼들 손만 물어뜯고 있어!)
손은 관절부위가 많아 상대적으로 장갑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걸 집중적으로 노리는 괴수들.
귀엽게 생겼어도, 놈들은 분명 괴수였다. 병사 한 명에 다람쥐와 족제비 대여섯 마리가 달라붙어 갉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장갑판이 뚫렸다.
(화염방사기! 화염방사기 쏴!)
퍽-!
화염방사기를 장비한 엑소슈트가 갑자기 달려든 무엇에 치였다. 퍼어어어엉! 폭발하는 화염방사기. 사방을 휩쓸어버린 불꽃을 향해 달려가는 엑소슈트들 몸에 달라붙은 다람쥐와 족제비. 순식간에 전선이 엉망으로 변했다.
(뭐야?)
(방금 뭐였어?)
퍽-!
무에에엑!
고라니였다.
그렇게 뚫릴 듯한 포위망을 향해 짧고 강한 울음소리가 뛰어들었다.
컹! 컹! 컹!
신성 왕국의 군견들이었다. 몸통 박치기와 앞발, 뒷발 차기로 엑소슈트를 깡통으로 만들던 고라니들의 고개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돌아갔다.
뭬에에에엑?
그리고 그때는 이미 신성 왕국의 군견들이 덮치기 직전이었다.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냄새를 지우고 달려든 군견들. 심지어 바람이 있는 방향에서 소리를 내 시선을 유인하기까지 한 급습에 고라니들은 목을 내주고 말았다.
뭬에에엑! 뭬에에엑!
꿰에에엑! 꿰에에엑!
고라니의 다급한 소리에 멧돼지들도 길게 울부짖었다. 후퇴해야 한다는 듯한 처절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그리곤 사방으로 흩어지는 동물들. 고라니는 고라니대로, 멧돼지는 멧돼지대로, 다람쥐와 족제비, 너구리, 삵이 각자 작은 무리를 지어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신성 왕국 군과 한국군은 포위망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치직- 부상병들 수송해.] [예비대 투입해서 방어선 유지하고. 토벌부대는 추격을 시작한다.]흩어진 괴물들을 사냥할 차례였다.
‧
인공지능 디아나가 작전 현황을 보고했다.
[사상자가 예상보다 많이 생겼지만, 포위망을 지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머리와 얼굴, 눈과 손가락 부상자가 대부분이라 빨리 치료하는 건 어렵습니다.]그나마 다행이라면 클론 기술과 생명공학의 발달로 손실된 눈과 손가락을 배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치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부상병의 규모가 한국군만 5만 명에 가깝습니다.]“너무 많군. 게다가 손가락을 뜯어 먹고, 센서 부분만 집요하게 파고들었어. 노리고 공격한 거야.”
[네. 그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군견 지원을 요청했습니다.]“우리도 많지 않다는 걸 알 텐데?”
[지원이 어렵다면 군견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그게 목적이었군.”
인공지능 시술을 통한 군견 양성 프로그램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었다. 한국군이 보기에 이번 작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건 신성 왕국의 군견이었다.
동물들이 연합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지능적으로 공격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소형 동물이 엑소슈트를 공략한 방법은 안다고 막기 어려웠다.
신성 왕국이야 쥐나 개미와 교전한 경험이 쌓인지라 금방 대응했지만, 한국군은 그렇지 못했다.
달라붙은 동물들을 떨어뜨리겠다고 대구경 특수탄을 아군에게 쏘기도 힘들었고. 헬멧과 손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괴수를 잡겠다고 화염방사기를 쏜다면 아군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등장한 신성 왕국의 군견은 다람쥐와 족제비, 너구리와 삵이 달라붙은 것을 쉽게 떼어줬을 뿐만 아니라, 사각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고라니, 무식한 맷집으로 돌진하는 멧돼지마저 공격하기 좋게 지연시켰다.
마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것처럼 물 흐르듯 지원하는 군견들의 모습에 한국군과 한국 정부는 매료됐다.
그리고 그런 군견의 정체가 본래는 들개였다는 것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한국군과 정부의 눈이 돌아갔다.
한국에도 들개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수도권만 해도 들개들이 넘쳤고, 들고양이도 많았다.
들개와 들고양이의 숫자에 비해 사고가 적긴 했어도 명백히 위협적인 상황이었다. 그런 들개를 군견으로 바꿀 수 있다고? 들고양이를 다시 집고양이로 만들 수 있다고? 그럼 무조건 그래야지.
“그건 어렵다고 해. 인공지능 기술이 넘어갈 수 있어.”
[알겠습니다.]한 번 거절했음에도 한국 정부는 끈질겼다. 신성 왕국의 방송. ‘개와 고양이들이 스스로 떠난 이유.’를 본 한국 사람들이 한국 정부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한국도 개와 고양이들이 집을 나갔다. 그 이유가 주인을 위해서였다니. 인공지능 시술을 통해 다시 만난 개와 고양이 스토리에 한국이 들썩였다.
거기에 군견이 토벌 작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이야기까지 더해져, ‘내 새끼 찾아내라.’ 급의 여론이 형성됐다.
[이대로 가면 개와 고양이 때문에 정치적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인공지능 디아나가 한국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과거 한국에서는 캣맘이니 견모니 하는 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개와 고양이가 자취를 감추면서 그들의 영향력이 없어졌었는데 신성 왕국의 군견이 등장하면서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다는 것.
[제한을 둔 인공지능을 시술하면 괜찮지 않겠냐?]“무엇을 기준으로 얼마만큼 제한해야지? 인공지능에 자폭 기능이라도 넣으라고?”
드론이나 로봇이야 전투 목적으로 만든 거라지만, 동물과 파트너로 묶어주는 인공지능은 아니었다.
“뚜껑을 열면 자폭하는 기능을 넣으라는 거냐? 그걸 인공지능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들개와 들고양이들은? 사람들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인공지능 디아나가 제안했다.
[보안 사항에 동의한 인공지능을 모집하겠습니다.]인공지능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정보 보안에 동의한 인공지능을 넣자는 이야기. 인공지능이 많아지고 병렬 연산이 가능해지면서 군체처럼 연결되는 인공지능이었다.
[그러네. 보안 서약한 인공지능만 연결해줘도 일단 숨통을 트일 것 같은데. 지금 한국 정부가 흔들리면 우리도 피곤한 건 사실이잖아.]“인공지능들이 자발적으로 지원한다면야.”
마루의 허락하에, 한국의 들개와 들고양이들이 인공지능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신성 왕국의 군견들이 한국의 들개 무리와 접촉했고. 들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인공지능 시술을 선택하고 옛 주인과 재회했다.
‘우리 고양이를 찾아달라.’
‘들고양이가 된 애들을 찾아달라.’
다시 돌아온 개와 주인의 사례가 전해지자, 고양이 주인들이 나섰다. 그리고 한국 들고양이들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기생충 감염이 심각합니다. 그리고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체도 예상보다 많습니다.]예전 조사자료를 보면 서울시의 길고양이 절반가량이 톡소 기생충에 감염됐으리라 추정됐다. 이런 길고양이와 집을 떠난 집고양이 만나 들고양이가 됐으니 문제가 생길밖에.
“치명적인 바이러스?”
[네. 고양이 범백혈구 감소증의 줄임말로 통칭 범백이라고 합니다.]고양이 파보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바이러스성 장염으로 전염성이 매우 강하고 치사율이 높아 모든 고양잇과 동물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니까 퍼지는 게 제한···. 그렇군. 들고양이도 무리를 짓기 시작했으니 전염이 빨랐겠네.”
[그렇습니다. 신성 왕국보다 살아남은 고양이의 비율이 적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어쩔 수 없지. 우선 치료부터 하고. 들고양이에게도 제안해봐. 다시 사람들과 살 생각이 있는지.”
[알겠습니다.]한국 들고양이들도 고양이는 고양이였다.
미야아옹! (집사 후보들을 여기로 불러랑!)
메에에옹! (옛 집사에게 가겠다. 영접할 준비를 하라고 해라!)
한국의 들고양이는 크기 쪽으로 변이를 일으키지 않았다.
많이 커봐야 삵이나 서벌 정도의 크기. 확실히 신성 왕국 고양이보다 전반적으로 덩치가 작았다.
[자연적으로 섞였는데도 귀여운데? 아니 왜 귀엽지? 신성 왕국 애들보다 크기도 작고.]기순이 한국 들고양이를 보곤 놀랐다.
“크기가 작다고 만만히 볼 건 아니더라. 애들 덩치는 작은데 운동능력은 우리 애들이랑 비슷해.”
작은 크기에 비해 살벌한 운동능력이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한국 정부에 자료 보냈더니 뭐라고 해?”
[인공지능 시술을 거부한 개체는 사살해야 한다고 하지 뭐.]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생충을 퍼뜨릴 수도 있었고 고양잇과 동물에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언제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퍼질지도 몰랐다.
예전처럼 그냥 들고양이들이 그린벨트와 숲에서 살도록 그냥 둘 상황이 아니었다. 숫자가 늘어나면 다시 인간들과 접촉하게 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렇게 하기로 하고. 강원도 북부는 어떻게 됐지?”
[한국군이 마무리 지었고. 우리 부대는 원주에 집결했어.]“PD 아재는?”
[그 아저씨는 물 만난 고기지 뭐. 이상하게 일본 사람들이 잘 대접한다고 하더라.]“그래? 언제 돌아올지 물어봤냐?”
[이왕 시간이 걸린 거. 틀을 확실히 잡겠다고 하던데? 아- 맞다. 신앙이 늘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더라.]일본인들의 신앙이 많이 들어왔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 같았지만, PD가 예상한 것처럼 많이 들어온 건 아니었다.
[이상하네. 춘천하고 원주를 합해서 널 믿는 일본인들이 2백만은 됐거든. 신상이 들어온 거긴 하지?]“들어오긴 했어. 맨 처음 들어온 건 농도가 짙다고 해야 하나? 그랬는데 그 뒤로는 그냥.”
[아- 그래서 그런가?]“뭐가?”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일본 사람들은 어릴 적 신사(신도)에서 축복을 구하고, 교회(성당-기독교)에서 결혼하며, 절(불교)에서 삶을 마무리한다는 이야기가 있잖아. 거기에 너를 믿는 신앙이 끼어들어 갔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처음에는 상당히 강했는데.”
[처음에야 절박한 만큼 강했겠지만,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그렇게 된 거 아닐까? PD 아재는 포교가 잘됐다며 기대하던데. 신앙의 농도(?)가 옅다고 하면 실망하겠네.]“됐다. 적당히 하라고 해.”
강원도 북부가 정리됐고. 가평을 중심으로 경기도 동부까지 이어지는 공간이 열렸다.
[강원도 북부 포위망은 치웠고, 수도권 들개와 들고양이가 정리됐으니 이제 강원도 남부냐?]“능력을 각성한 병력은 어느 정도나 나왔어?”
[3만 정도.]“아직도?”
[처음에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데, 최근에는 별로 안 느껴져서 그런 듯.]“어렵네···.”
인공지능 디아나가 긴급 보고를 올렸다.
[태국에서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흰색 코끼리를 믿는 자들이 인신 공양을 한다고 합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