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y Train RAW novel - chapter 5
“입 안이며 발가락 사이며 꼼꼼히 씻고 오세요. 욕실은 저기.”
그가 턱짓으로 알려 준 욕실을 멍한 눈으로 응시하였다.
“스볘타, 솔로 문질러서 아랫도리까지 깨끗하게 닦으세요. 더럽고 냄새나는 건 질색이니까.”
어린애를 다루듯 친절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잔악했다. 그의 웃음을 지켜보다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옮겼다. 힘없이 터벅대며 걷는 대신 곧고 ‘귀족답게’ 걸었다.
그게 헛된 자긍심이라 할지라도.
***
아마 지금은 11시쯤 되었을 것이다. 차를 타고 위르겐의 저택까지 오는 데 30분쯤 걸렸던 것 같다. 1시까지 정비소에 출근해야 하니 내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러나 어쩐지 어차피 오늘은 출근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김이 솟는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민요를 흥얼거렸다. 엘킨스키 특유의 민족주의적 관점이 잔뜩 들어간 군가를 흥얼거릴 기분은 아니라 오래된 민요만 불렀다. 욕조에서 나온 뒤에는 솔에 비누를 묻혀 그의 말마따나 곳곳을 박박 문질러 닦았다.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평소보다도 공을 들여 씻었다.
새빨간 자국이 허연 피부 곳곳에 남았다. 그래 봐야 위르겐이 붙잡아서 팔목에 생긴 벌건 자국에 비할 수는 없었다. 솔로 피부를 혹사한 대가로 생긴 쓰라림은 뒤늦게야 느껴졌다.
“제기랄….”
내가 쓰는 욕은 정비소 아저씨들이 쓰는 욕보다는 고상한 편이었다. 여자라서인지 한때나마 가졌던 귀족으로서의 자긍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분명 슬픔은 아닌 것 같았다. 정확히는 공포였다. 분노가 슬픔보다 낫다면 슬픔이 공포보다는 낫다. 밀려드는 우울함을 못 이긴 나는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고꾸라지지 않기 위해 바닥을 손으로 짚고 버티자 팔목이 처참할 만큼 욱신거렸다.
솔직한 심정으로 오빠 둘을 구하는 대신 나 혼자 도망치고 싶었다. 용기를 가지고 저지른 일이었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그간 수용소로 소포도 열심히 보냈고 가족들을 위해 충분히 노력했다. 보급품으로 나온 음식까지 팔아 가며 오빠들을 돕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제야 그럭저럭 적응하고 살고 있었다. 굴곡 많은 인생이니 이만 평탄할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애를 써서 밟고 또 밟았는데 좀처럼 삶의 굴곡이 없어지질 않는다.
얼마 전에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모진 소리를 들었다. 어제는 첫째 오빠가 죽었단다. 그런데도 슬프지가 않다. 너무 두려워서 슬플 수가 없었다.
“아….”
탄식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킨 나는 수도를 틀었다. 따듯한 물이 쏟아져 흩어졌다.
거품이 거의 씻겨 나갔을 즈음 나는 질구로 손끝을 옮겼다. 조심스레 힘을 줘 밑구멍을 후벼 파려 애를 썼다. 손가락에 물기가 가득한데도 뻑뻑하다.
손끝에 닿는 질구의 점막이 낯설게 느껴졌다. 축축하고, 부드러웠으며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나는 금단의 영역으로 치부했던 곳을 후벼 파기 위해 검지를 빳빳이 세웠다. 그 순간 나는 또 다른 종류의 공포에 휩싸였다. 성적인 부분을 멋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고 신부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눈을 감고 잠시간 성호를 그었다.
이건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천한 신자의 비천한 자존심을 위해서라고 신께 설명하며.
손톱을 세운 손가락을 천천히 밀어 넣고 질 벽을 긁었다. 쾌감은 전무했고 쓰라린 통증만 느껴졌다. 눈을 질끈 감고 신음하면서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제발.
파괴될 거면 내 손에 파괴돼. 찢길 거면 이 손에 찢기라고.
움직임이 빨라졌다. 나는 내 질을 샅샅이 긁어내기 위해 애를 썼다.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건드려야 처녀막이 찢기는 걸까.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욕조 위에 걸터앉아 내 살점을 짓이기며 울부짖었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행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분명히 잠가 뒀던 욕실 문이 열렸고, 셔츠 차림의 위르겐이 걸어 들어왔다. 나는 눈을 부릅뜬 채 딱딱하게 굳었다.
“생각보다도 가관이군요.”
아아. 비참하다. 정말, 정말 이건 너무 비참했다. 억울하다. 화가 난다. 내가 도대체 무얼 그리 잘못한 건가. 무얼 그렇게……. 이런 수치를 겪을 만한 죄가 내게는 없었다.
나는 질을 후벼 파던 손가락을 재빨리 빼낸 뒤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내 턱에 맺힌 게 눈물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위르겐이 내게 다가오는 순간, 나는 얼굴을 감싼 채 정신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정신을 반쯤 놓은 나는 그에게 제발 오지 말아 달라며 애원했다.
“그렇게나 피를 보고 싶다면야.”
다가오는 위르겐을 노려볼 힘이 더는 없었다. 그는 걸려 있던 보송보송한 수건을 쥐고 젖어서 눌러 붙은 나의 머리칼을 닦아 주었다. 그 뒤엔 팔을, 다리를, 젖가슴을, 얼굴을, 아랫도리를……. 마치 예술품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비정상적인 손길로.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위르겐에게 더는 공포를 감추지 못하고 덜덜 떨었다. 도중에 그와 눈이 마주쳤다. 잿더미를 뭉쳐 만든 것 같은 회색 눈동자가 지독했다.
그 순간 습윤한 살점이 입 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비집고 들어온 그의 혀는 내가 벅벅 닦아 둔 입 안을 정성스럽게 애무했다. 그는 내 치열을 훑고 혀를 얽으며 느긋하게 타액을 넘기고 삼켰다. 축축한 살점이 뒤엉키는 소리와 꼴깍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적나라해서 나는 그와 입을 맞춘 채로 흐느꼈다. 나는 눈을 뜬 채 죽었다.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부릅뜬 눈 사이로 눈물이 줄줄 흘렀다.
“고작 입맞춤에 이렇게 질질 짤 거면서 덜컥 청혼을 수락합니까?”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더 예쁘게 울어 봐요. 내가 발정 나서 빨리 사정하면 당신 입장에선 달가운 일 아닌가?”
엉망으로 흐트러진 나와 달리 위르겐은 입을 덮치는 와중에도 더없이 정갈했다.
그는 나를 수건으로 감싸 들고 욕실을 빠져나간 뒤, 나를 침대 위에 짐짝처럼 내던졌다. 그 바람에 각을 내어 정돈해 두었던 침대의 모양새가 망가졌다. 구겨지고 흐트러진 이불은 이 공간 특유의 균형을 깨트렸다. 나는 팔꿈치로 상반신을 지탱한 채 그를 맹렬하게 노려보았다.
“아무 때나 좋다더니. 미루고 싶습니까?”
“아뇨. 전혀. 어쨌든 당신하고 오래 끌긴 싫으니 빨리 박고 끝내요.”
어디서 레몬즙이라도 구해 질 속으로 짜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했다. 듣기론 레몬즙을 바르면 애가 안 생긴댔다. 아니… 그래도 들어설 아기는 들어선다. 홍등가의 수많은 여자들이 자식을 낳아 괴로운 삶을 대물림하는 까닭은 무엇이겠나. 고매한 공작 부인이 사생아를 잉태한 까닭이 무엇이겠나.
그럼 어떻게 해야 애가 안 생기지? 어떻게 해야? 당장의 성교보다 두려운 건 미래의 임신이었다. 정말 그의 뜻대로 애라도 가지게 된다면 모든 일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오래 끌기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조롱을 조롱으로 맞받아치는 위르겐의 목소리는 감정 없이 건조했다. 그는 무료한 얼굴로 서랍장을 뒤적여 안대를 꺼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엉덩이로 기며 그의 손길을 피하려 했다. 그는 사냥감을 몰아세우듯 나를 향해 서서히 기어 왔다.
후회가 밀려왔다. 허세를 부리지 말고 그에게 빌었어야 했다. 그래도 식은 치르고 시작해 달라고 애원을 할걸. 자존심이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단 말인가.
“고분고분하게 굴어야 빨리 끝내지 않겠습니까?”
내 턱을 부여잡은 위르겐은 부드러운 안대를 우악스레 묶었다. 암전이 닥쳤다. 눈앞이 캄캄해지자 나는 본능적으로 버둥대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든 안대를 풀어내려는 나의 양손을 한 손으로 그러모아 붙잡았다. 그에게 너무나도 손쉽게 결박당한 나는 반항할 의지를 잃고 절망했다.
“뭐…하는 거예요? 당장 안대 풀어요.”
“어차피 당신도 내 낯짝 봐 가며 섹스 하긴 싫잖습니까?”
순간 말문이 막혀 반박하는 것을 잊었다.
“장님은 다른 감각이 극대화된 채 살아간다죠.”
“…….”
“애무에 정성 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젖지 않은 곳에 쑤셔 박긴 싫으니 기왕이면 빨리 젖으세요.”
그간 위르겐이 보여 왔던 정중함이나 금욕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내뱉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법한 더러운 말들을 쏟아 내며 그는 나를 짓밟고 내 위에 올라탔다.
“오늘은 못 하겠어. 시간을 줘요. 조금만 미뤄 준다면 마음을 다잡고 창녀처럼 굴어 줄게요. 그러니까 제발…”
“달래 가며 할 생각은 없는데.”
짤막한 문장 한마디엔 멸시가 담겨 있었다. 정제되지 못한 차가운 분노와 경멸이 한데 섞이고 섞여 나를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것만 같았다. 납득할 수가 없었다.
“왜……”
내가 위르겐에게 증오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나를… 증오해?”
앞이 보이지 않아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나를 지켜보는지 알 순 없었다. 그러나 우울한 확신이 들었다. 그는 나를 감상하듯 느긋하게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사람 하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도 메말라 있을 눈빛을 상상하자 울분이 치밀었다.
“증오에 이유가 있어야 하나?”
위르겐의 크고 딱딱한 손이 빗장뼈를 훑으며 내려갔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든 나는 바르르 어깨를 떨었다. 그는 내 유두를 살살 꼬집고 간질이다가도 욱신거릴 만큼 갈급하게 주물렀고, 그럴 때마다 나는 흐느낌을 삼켰다.
“사랑에도 이유가 없다던데.”
그에게 발목을 붙잡힌 나는 연신 버둥거렸다. 무의미한 몸싸움은 길지 않았고, 벌어진 양다리 사이를 그가 비집고 들었다. 언제나 다물려 있던 음부에 닿는 서늘한 공기의 감촉만으로도 나는 억누를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냥 박아! 차라리 그냥 박으라고!!”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튀어 나가는 동시에 발끝이 오므라들었다. 그의 손끝이 음핵을 툭툭 건드렸다. 눈을 가려 극대화된 감각은 지나치게 예민해서, 작은 자극만으로도 엉덩이가 튀었다. 그는 조금 전보다도 훨씬 흉포하게 내 입술을 물고 빨았고, 입을 맞추는 동시에 아랫도리를 살살 문질렀다.
“으응….”
잇새로 샌 신음이 충격적이었다. 그가 내 음핵을 손에 끼워 넣고 끈질기게 굴릴수록 음란한 감각이 치밀었다. 척수를 타고 찌릿찌릿 올라오는 감각이 이상해서 몸을 비틀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그 와중에도 집요한 입맞춤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입술만 빨던 그는 목덜미와 유두를 빨기 시작했다. 혀와 손이 하는 맹렬한 애무에 몸이 눅진눅진 녹아들기 시작했다.
“으흣…”
쏟아지는 교성에 울음기가 섞였다. 나는 울었다. 목을 놓아, 괴롭게 흐느꼈다. 귓가로 번지는 위르겐의 뜨겁고, 습한 숨소리가 역겨웠다. 흥분에 절은 그의 숨소리는 내 것처럼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위르겐 씨… 말이 맞아. 당신 역겨운 얼굴을 안 봐야 그나마 빨리 젖겠….”
쏘아붙이던 목소리가 신음에 턱 막혔다.
느낌이 정말 이상했다. 이런 걸 도대체 왜 쾌락이라 이름 붙이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간지럽고… 차라리 빨리 끝이 나길 바라게 되는……. 이상하게 견디기가 힘든.
아니. 실은 갈구하게 되는.
멋대로 전율이 일었다. 폭죽이 폭발하듯 감각이 솟구치며 터졌다. 차라리 더 비벼 달라고, 더 뒤흔들고, 더 가혹하게 매만지라고. 그래서 내가 아무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나를 추락시키라고. 망가트리라고.
“지금 당신 밑구멍이 벌렁거리는데.”
조롱하는 그를 마주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천운이었다. 캄캄한 눈앞을 더듬자 그의 딱딱한 가슴팍이 닿았다.
“번들번들하게 젖었고, 벌겋고 통통하게 부풀어선…. 꽤 귀엽습니다.”
위르겐은 귓바퀴를 깨물며 나직하게 웃었다. 그는 부러 애액에 젖은 손을 내 뺨에 문질렀다. 나를 창녀로 끌어내리는 그는 더없이 즐거워 보였다. 그렇기에 쾌락을 내비치고 싶지 않았다. 오직 증오와 분노만을 내비치며, 그의 애무에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입을 꽉 다문 채 내가 무언가를 느끼고 있음을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버텨 보려 했다. 악문 잇새를 비집고 목 졸린 듯 적나라한 교성이 터져 나올 때도 얼굴을 구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수포였을 것이다. 내 의지는 조금도 관여하지 않았는데 허리가 들썩였고 골반 뼈가 경련했다.
“조언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빨리 젖는다면 그다음에 벌어질 일은 분명했다.
“지금부턴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위르겐의 손이 나의 다물린 살점을 억지로 벌려 냈다. 갈라진 틈으로 낯선 공기가 닿자 심장이 요동쳤다.
“그래야 덜 괴로울 겁니다.”
당장 그가 남근을 박고 들쑤실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들어온 건 길고 거친 손가락이었다. 질척한 소리와 함께 애액이 넘쳤다. 음부 사이로 들어온 손가락은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애액이 솟아나는 내벽을 긁고 유린하며 개수를 늘려 갔다. 뜨끈하게 열이 오른 음부는 진작 날이 서 있었다. 헐떡이던 나는 순간적으로 튀어 오르며 그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벨트를 푸는 철컥이는 금속음이 들렸다. 바지춤을 내리고, 남근을 꺼냈을 그를 상상하다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친 여자처럼 웃고 흐느끼다 단숨에 박혀 드는 성기에 비명을 내질렀다.
손가락 서너 개에 비할 수 없는 이물감이 느껴지며, 불에 데는 듯한 고통이 일었다. 음부가 찢어지는 것만 같아 머릿속을 지배하던 쾌감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울컥울컥 질액이 넘쳐날 만큼 젖어 있었음에도 비집고 든 남근을 감당해 낼 수 없었다. 크기를 짐작할 수 없어 입술을 떨었다. 추삽질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이제 다 쑤셔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연이어 그는 더 깊게 남근을 쑤셔 박았다. 더한 고통이 일며 온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골반을 붙잡은 그는 허리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고통이 전부라 생각했는데 음심을 품은 밑구멍은 쾌락을 느꼈다. 그의 고환이나 남근이 부딪힐 때마다 나는 음란하고 끔찍한 상상을 반복했다. 지금 나는 그에게 어떤 꼴로 깔려서 신음하고 있을까…. 그는 어떤 얼굴로 나를 바라볼까?
무자비한 추삽질에 쿠퍼액과 애액이 뒤섞이며 몸이 밀려 난다. 오랜만에 내 바람이 이루어졌다. 바람대로 내 머릿속은 새하얗게 질렸다. 느껴지는 것은 오직 음락과 고통뿐, 분노도 슬픔도 공포도 전부 사라졌다.
끈적끈적한 정액이 넘쳐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릴 때, 나는 마침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힘이 풀려 널브러진 채 진 빠진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곧이어 딱딱하게 부푼 성기가 다시금 음부 사이에 처박혔다. 남근을 파묻은 위르겐은 오랜 시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
몇 시간을 시달린 끝에 결박에서 풀려났다. 안대를 풀자 눈이 부셨다.
아아. 지난 3년간 봐 온 그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이상한 사람이긴 했지만, 행동거지는 정중했었다. 도대체 난 그를 무어라고 생각했던 걸까.
위르겐과 나의 만남은 지긋지긋할 만큼 지속됐으나 놀랍도록 단순했었다. 첫 만남 때부터 이어진 줄기찬 단순함이라 역사 또한 제법 길다.
처음 그를 만나던 날, 나는 그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
왼팔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는 위르겐 때문에 기가 죽어서 결국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그에게 시간을 내주었다.
면장갑을 끼고 작업했음에도 손이 지저분했다. 나는 기름때가 묻은 손을 수건으로 벅벅 닦아 내며 초조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진짜 군인이나 경관이 찾아온 것도 아닌데 초조해할 까닭 같은 건 없어. 숱한 위로를 가슴속으로 중얼거리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르춈의 친구라고 하셨죠? 아르춈은 제게도 소중한 친구예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베흐만 씨.”
새까만 기름때가 묻은 수건을 선반 귀퉁이에 놓은 나는 장의자를 질질 끌며 그에게 다가갔다.
“앉으시겠어요?”
위르겐은 침묵하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이 불편했던 나는 팔꿈치를 공연히 꼬집었다. 이래서 힐덴베흐크 사람들은 상종도 하면 안 된다. 그놈들은 하나같이 변태적인 무언가를 지니고 있으니까. 우리 민족을 몰살하겠다고 날뛴 주제에 번지르르하게 잘사는 꼴을 보는 게 역했다.
괜히 정부에서 힐덴베흐크 사람들을 굴라크에 처넣는 게 아니었다. 굴라크는 역겹지만 힐덴베흐크인을 처넣는 건 정당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기… 폰 베흐만 씨?”
“괜찮습니다. 전 서 있을 테니 앉으세요.”
혼자 앉아 있으면 어색할 것 같았지만, 다리가 후들거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의자에 앉은 나는 전보다도 더 고개를 꺾어야만 그를 마주할 수 있었다.
위르겐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그래도 정비소가 침묵만으로 가득 차지 않았던 건 옆 건물에서 기계음이 불규칙적으로 들려왔기 때문이다. 사실은 소음만이 닥치는 게 아니었다. 차를 넣고 빼기 위해 뚫려 있는 건물 정면으로 가혹한 초겨울의 바람이 그대로 몰아닥쳤다.
“춥지 않으세요? 난로라도… 아. 없네요. 다른 동료가 빌려 갔나 봐요.”
갑자기 찾아온 무례한 손님한테 과한 친절을 베푸는 건 순전히 위르겐이 아르춈의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두려워서도 아니었고, 그가 마음에 들어서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