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90
***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나는 광장이 잘 보이는 4층에서 치열한 패싸움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원래 싸움은 좆밥들 싸움이 제일 재밌다지 않는가.
“정의의 신격 루우벤님께서 이 자리에 어울린다!”
“닥쳐라! 수백 년간 빛의 신격 마르가님께서 서있던 곳이다! 어디 잡스러운 놈들이!”
프라하의 중앙광장에 유혈이 낭자했다. 누군가 검을 뽑아 든 걸 시작으로 이윽고 권총까지 불을 뿜어대게 됐다.
타앙! 탕! 탕!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 있던 신사들은 급히 몸을 숨기고 상대에게 총질을 해댔다. 사방이 화약의 흰 연기로 자욱해졌다.
“개판이군.”
“신혼의 단꿈은 금방 끝나는 법이군요. 합하.”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었으니까.”
프리드리히 왕과 그를 따르는 가신들은, 보헤미아 의회와 연이어 충돌 중이었다. 그런 신흥 세력과 구 세력 간의 다툼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얼마 전에는 보헤미아군의 총사령관을 어느 쪽 사람으로 앉히냐고 싸우더니만 이제는 종교로군.”
보헤미아는 빛의 신격 마르가의 교단이 융성했다. 반면 팔츠에서 온 프리드리히의 세력은 정의의 신격 루우벤을 섬긴다. 결국 자잘한 다툼이 계속 이어졌는데, 오늘 제대로 터지고 말았다.
왕의 명령을 받은 자들이 프라하 중앙광장에 있는 빛의 신격 마르가의 동상을 철거하고, 대신 정의의 신격 루우벤의 동상을 세우려고 했던 것.
당연히 프라하 시민들은 발끈했고 폭동이 일어났다. 그제야 프리드리히 왕은 자신이 경솔했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었다.
“합하.”
“응? 왜 그러나, 달타냥.”
“마치 남 일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팔츠의 신하들에게 정의의 신격 루우벤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부추긴 건 합하가 아닙니까?”
“나야 뭐 좋은 의도로 말했지. 누가 지들끼리 싸우랬나?”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하자 달타냥은 니가 그럼 그렇지, 란 얼굴을 했다.
“갈수록 보헤미아는 개판이 되어가는군.”
“프라하 밖은 더합니다. 도시를 벗어나면 바로 전쟁을 실감할 수 있죠. 초토화된 마을과 밭, 부모를 잃고 떠도는 아이들….”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로엘린은 할 일이 많아서 좋겠네.”
망가지는 건 보헤미아 뿐만이 아니었다. 황제 프란츠 4세의 처지도 갈수록 가관이다. 그는 끝없이 세어나가는 전비를 충당하기 위해 황실 재산을 저당 잡히고 있었다.
“황제의 힘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습니다. 요즘 칙령을 내려도 제후들이 듣는 둥 마는 둥 한다고 합니다.”
“제국 전체가 엉망이 되어 갈 거야. 사실 제국이라고 하기에는 조잡한 집단이었지.”
이 나라는 말만 제국이고, 말만 황제일 뿐이다.
제국에 있는 지방정부의 수를 모두 합치면 2,000여 개가 넘는다. 이들을 동맹과 군신 관계로 묶어 줄여도 300여 개 가량.
애초에 제대로 굴러가는 나라가 아니었다. 입법은 하려고 해도 각 지방정부 간의 알력 때문에 불가능했다. 행정은 짜임새라곤 조금도 없이 어설펐고 비리와 임기응변이 판을 쳤다.
이 모든 걸 억지로 이끌어 간 게 황제가 가진 힘이다. 역대 황제들은 강압적인 칙령으로 제국을 다스려왔다.
프란츠 4세가 경제 봉쇄를 하는데 괜히 기사가문들을 동원한 게 아니다. 정상적인 행정절차론 그게 불가능하니 무력을 쓸 수밖에.
하지만 그런 황제가 무너지고 있으니 제국이 개판 오 분전이 돼가는 걸 말할 필요도 없었다.
“황제는 협상하려 할 겁니다.”
“예상하고 있어. 하지만 이번에 어떻게든 끝을 내야 해. 협상을 원한다면, 협상하는 척은 해줄 수 있지.”
이 싸움의 선택지는 황제와 나, 둘 중 하나의 죽음 밖에 없었다.
***
며칠 뒤 악몽을 꿨다.
“으으윽…… 윽!”
결국 잠자리를 설치고 일어나 포도주를 들이켰다. 그러다 창밖을 보고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대체…!”
밤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제국 전체가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상을 느낀 건 나만이 아닌지, 프라하의 시민들은 잠옷 차림으로 밖에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공기가 역했다. 마치 저 멀리서 쓰레기 썩은내가 잔뜩 밀려드는 느낌이다.
“합하!”
달타냥이 급히 방으로 들어왔다.
“깨어나셨군요.”
고개를 끄덕인 뒤 창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갔다.
“굉장히 불길하군.”
“합하께선 무슨 일인지 아시겠습니까?”
짐작이 가는 게 하나 있긴 했다. 하지만 뭐라 대답하기 전에 천지가 진동했다.
키아아아아아아-!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가 울부짖고 있었다. 밖으로 나왔던 프라하의 시민들은 놀라서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비명을 지르는 자도 있었고 도망치는 자도 있었다. 그저 부들부들 떨며 울음을 터뜨리는 이도 여럿이었다.
“무언가 울부짖는 거 같군요. 마치 크게 화가 난 듯한?”
달타냥의 감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자가 하나 더 죽은 거야. 봉인이 갑자기 풀리자 발버둥치는 죽음이 화를 내고 있다. 걱정이군, 발버둥치는 죽음의 힘이 더욱 또렷이 느껴져.”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의 요구로 그의 봉인의 깨려 하고 있었지만 저런 초월자를 풀어놔도 될지 의문이었다.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아마 저 사태 때문에 일어난 일 같습니다만.”
달타냥은 제국 도처에 정보 수집을 위한 지부를 만들어뒀다. 곳곳의 정보원들에게 급히 들어온 정보를 갖고 찾아왔던 것.
“아이펠 고원에서 화산이 터졌다고 합니다.”
“뭐? 휴화산으로 알고 있는데 뜬금없이….”
“그리고 북쪽 항구들이 갑자기 일어난 해일로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
“그 외에도 과거 글로리에 루미에르를 초토화시켰던 거대 마수들이 제국 여기저기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줄줄이 재앙이 벌어지고 있단 소식이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이 진짜 망하긴 망하려나 보다.”
일단 달타냥에게 내 영지에 문제가 없는지 알아보라 시키고 칼리오네에게 연락을 넣었다.
-칼리오네. 지금 어디에 있나?
-아! 주군.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다.
위치를 물어보니 가르앵비크란 도시였다. 가보지 않은 곳이라 그림자 차원 이동을 쓸 수 없었다. 할 수 없지, 수정구로 대화하는 수밖에.
-파탈레 몬스트룸을 죽인 거야?
-응, 죽여 버렸다. 그런데 난리가 났네. 현재 갑자기 모젤 강이 범람해서 불의 마족들이 떼로 쓸려 내려갔다.
-아군은?
-피해를 보긴 했지만 위치를 잘 잡아서 괜찮다. 순전히 운이 좋았다.
그런데 칼리오네는 이전에 말한 것과 달리 파탈레 몬스트룸을 포로로 잡으려고 했다고 한다.
-죽이기에는 내키지 않는 여자였다.
-왜? 어땠는데?
칼리오네의 설명을 들어보니 파탈레 몬스트룸은 수호자가 모두 죽으면 발버둥치는 죽음의 봉인이 풀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사적으로 봉인이 풀리는 걸 저지하려고 했었다고.
-그녀에게서 사명감이 느껴졌다. 들어보니 본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자였다고 하더군. 하지만 수호자가 된 이래 달라진 것 같다.
-음…….
이제야 기억났다. 파탈레 몬스트룸은 자기 시녀를 대신 결혼하게 했을 정도로 자유를 원했었지. 뭐가 그녀를 그리 바꾼 걸까?
-절대로 자신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 그랬다. 거대한 악이 풀려날 거라고.
분명 수호자가 되어 봉인을 지키겠다는 뜻은 고결했다.
그녀도 그녀 나름의 이야기가 있겠지. 공주라는 자신의 위치를 뛰쳐나가 많은 일들을 겪었을 거다. 그리고 결국 수호자라는 자리를 받아들였다.
도망쳤던 권력을 승계하려는 것도 수호자인 자신을 지킬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설마 정전협정의 상대인 칼리오네가 수호자를 노리는 적이라는 건 몰랐겠지.
-하지만 주군, 그녀에게 어떻게 설명해줄 수가 없었다. 주군이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 때문에 봉인을 풀려고 한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비밀을 포함하고 있으니까.
발버둥치는 죽음의 봉인을 풀지 않으면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가 리켄티아투스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거다.
하지만 그 얘기를 해 파탈레 몬스트룸을 설득하기에는 누설해야 하는 비밀이 너무 많았다. 그게 곤란하다고 여긴 칼리오네는 설득을 포기하고 그냥 죽여 버렸다는 거였다.
-현명하게 처리했구나, 칼리오네.
나는 이번 일 때문에 절세검객 팔케가 떠올랐다. 신념과 용기를 갖고 있었지만 멍청하단 점에서 똑같았다.
솔직히 동정심이 안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 갈 수는 없었나, 하는 생각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호자 하나 구하자고 행성을 위태롭게 할 수는 없으니까.
-주군이 그렇게 말해주니 다행이다.
-뒤처리를 부탁할게.
이걸로 무덤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는 만족하겠지만 세계는 갈수록 나락으로 떨어져가는군.
수호자가 하나 또 죽었으니 분명 발버둥치는 죽음을 섬기는 암중세력에서 반응이 있을 거다. 이쪽과 접촉해 올 수도 있고.
한데 내 이런 기대는 며칠이 지나도 보답 받지 못했다. 대신 뜻밖에 황제가 밀사를 보내 화의를 요청해왔다.
“비텐바이어-바젤 공작 합하.”
“어서 오게.”
나는 프라하의 밀실에서 황제의 사절을 맞이했다.
“폐하께서는 이번 전역의 본질에 대해 이리 평가하십니다. 이건 보헤미아와의 갈등이 아니라 공작 합하와의 갈등이라고.”
“이 몸은 그저 보헤미아에 손님의 처지로 있는데 평가가 과하시군.”
“합하, 실질적인 부분에서 얘기를 나누시지요. 황제 폐하께선 합하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할 준비가 되셨습니다.”
황제는 화의를 위해 여러 가지 당근을 제시해왔다. 거기에는 제국 북부에 있는 황제의 또 다른 직할령의 양도까지 있어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손발을 다 자르더라도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건가. 하지만 그 양반은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제시하는 자였다.
“합하, 만약 회의에 응해주시면 황제께선 10년 뒤에 선양(禪讓)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게 황위를 물려주겠다는 거가.”
“그렇습니다.”
진짜 꺼내놓을 수 있는 건 모두 꺼냈구나. 물론 황제의 위는 선제후 투표로 결정되는 거라 선양하고 싶다고 선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황제가 후계자를 지목하는 것도 상당한 힘이 있다. 선제후 입장에서 황제랑 다투는 상황이 아니면, 어지간해선 수용하니까.
정치적 명분에서도 확실하고.
“폐하의 은혜가 참으로 깊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 머리를 부산하게 굴렸다. 대체 이렇게 달콤한 조건을 내세우는 이유가 뭘까?
마치 내가 무언가를 놓치게 하려는 듯했다. 하지만 겉으론 전혀 내색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밀사와 협의에 나섰다.
그렇기에 이 화의는 당장이라도 이뤄질 것처럼 보였다.
***
“비텐바이어-바젤 공작이 회담에 응했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황제 프란츠 4세는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 욕심 많은 새끼가 드디어 미끼를 물었군.”
당연한 얘기지만 황제는 순순히 발러슈테드에게 굴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화전양면 전술일 뿐이다.
“최고의 외교관들을 프라하로 보내도록.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처럼 사탕발림을 하면서 시간을 끌라.”
화의에 걸린 조건이 간단하지 않았다. 영지 수여와 선양까지 복잡한 법률적 검토가 필요했다. 양쪽의 실무진이 비밀스럽게 만나 한참이나 밀고 당기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 망할 비텐바이어-바젤 공작은 욕심이라면 제국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분명히 국경의 말뚝 하나까지 다 따지고 들 테니 시간 끌기 딱 좋겠지.”
“실로 그러합니다. 폐하.”
“하면 가서 최대한 그의 눈을 멀게 하라.”
신하들을 모두 내보낸 황제는 밀실로 가서 시커멓고 커다란 수정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마력을 불어넣어 상대를 불렀다.
-슈바르체토이펠.
이 검은 수정구는 마룡과만 이어져 있는 물건이었다. 잠시 뒤에 대답이 들려왔다.
-음? 제국의 황제가 웬일인가? 자네 성격상 안부를 묻는 것도 아닐 테고.
-미안하지만 부탁할 게 있어. 슈베르체토이펠.
-말해보게.
황제는 제국의 정세를 설명하고 발러슈테드와 화해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밀사를 보내 얘기 중인데 그 친구가 보통 깐깐한 게 아니더군. 자네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음…….
슈바르체토이펠이 귀찮은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황제는 과거의 일을 들먹여 상대를 압박했다.
-예전에 자네는 내가 드래곤이란 사실을 그에게 알려줬지. 그 뒤로 처신에 곤란한 점이 많았네.
-크흠!
그 점은 확실히 슈바르체토이펠이 잘못한 일이었기에 그의 대답이 궁해졌다.
-당시에는 자네와 그 녀석이 틀어질 줄 몰랐지.
-이제 와서 탓하고자 하는 게 아니네. 그저 그 벌어진 사이를 봉합하게 도우라 그거야. 자네가 중재에 나서주게. 원만하게 화의를 맺을 수 있게.
황제와 발러슈테드는 슈바르체토이펠 덕에 인연을 맺었다. 그러니 이 다툼을 해결하기에는 그가 제격으로 보였다.
-흐음… 일이 이렇게 됐으니 모른 척하긴 어렵겠지.
-고맙네. 괜찮으면 자네 둥지로 가도 되겠는가? 일의 논의도 할 겸.
-알겠네. 오랜만이니 좋은 술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지.
그렇게 수정구 통신은 끝이 났다.
“후우….”
황제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화는 자연스러웠다. 상대에게 수상한 구석도 없었다.
맘에도 없는 화의 덕에 발러슈테드를 상대로 시간을 끌고, 슈바르체토이펠을 만나러 갈 수 있었다.
“발러슈테드, 실컷 화의 조건이나 고민해 보라.”
황제는 음침한 얼굴로 탁자에 있는 단검을 쓰다듬었다. 드래곤에게 치명적인 독이 묻은 것이었다. 이것 한 방이면 그의 숙적은 자신의 가장 강력한 동맹을 잃게 될 터.
“그 뒤, 그분의 화신이 되어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주지.”
이제 황제에게 제국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다. 발버둥치는 죽음의 화신이 되어 신적 존재에 오르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그에 비하면 제국을 향한 집착은 한없이 가벼운 것이었다.
황제는 발러슈테드가 협상장에 묶여있는 것을 확인한 뒤에 바로 움직였다.
“역사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잠깐의 틈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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